강감찬 의 천기누설
강감찬(姜邯贊) : 948(정종 3)~1031(현종 22) 고려의 명장.1010년(현종 1),
1018년(현종 9) 거란의 '성종'이 대군을 이끌고 고려에 침입하자,귀주에서
크게 이겨 살아 돌아간 적이 수천에 지나지 못 하였다.
강감찬은 아홉 살이 되도록 말을 못 하였답니다.의견이 멀정하고 글도 배우고
무엇이든 잘 하는데,단지 말만 못 한다. 어머니는 '언젠가는 감찬이가 말을 하겠지'
믿으며 지극정성으로 아들을 돌봤다.
아홉 살 가을, 고종사촌 누나의 혼인 날이 왔다. 어머니가 잔치에 갈려고
부산히 준비하고 있는데, 감찬이가 다가와서,
ㅡ어머니 고종누나 혼례식에 소자도 갈렵니다.
ㅡ응 !? 네가 말을 했느냐, 어찌 말을 하는구나, 이런 축복이 어디 있느냐.
암, 가고말고 가야지. 친척 어른들도 뵙고...새 옷으로 갈아입자.
감찬은 한마디만 하고선 더 이상 말이 없다. 어머니 혼자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기분이 들떠 있다.
해거름의 혼례청에는 하객들이 마당 에 봉당에 마루에 빽빽하다.
고대하든 새 신랑이 혼례마당 초석자리 위에 섰다. 훤칠하게 잘 생긴 새 손을
보느라 웅성웅성 정신들이 없다. 그 때, *이 노옴. 네 본색을 밝혀라*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하객들의 귀를 뚫어 놀라게 한다.새 신랑도 놀란 토끼눈
으로 소리 난 쪽을 살피고 있다.한걸음 앞으로 쓱 나선 강감찬이 또 대갈일성 한다.
'이 노~옴 ! 네 정체를 못 밝히겠느냐.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둔갑(遁甲)
술로 속이려 드느냐 !'
하객들이 놀라 휘둥그래졌다. 말 못한다고 한 걱정이던 감찬이가 것도 새신랑을
보고 벼락 치는 소리를 했다.더욱 놀라운 건 감찬을 빠이 쳐다보던 새신랑 얼굴이
푸르락불그락하고 몸을 들썩이며 좌불안석 못한다.
감찬 얼굴 한번 보고, 새신랑 얼굴 한번 보고, 하객들은 얼이 빠졌다.
'이 노~옴 ! 그래도 네놈이~!'
버티던 새신랑이 곤두박질을 서너 번 넘고 턱 뻗었다. 스르르 여우로 변해간다.
감찬 : '오다가 새신랑이 소피 본 일 있지요 ?'
가마꾼 : 예, 까치 고개에서 소피를 보고 왔습죠 !
감찬 : 시각이 급하니 속히 가보시오.
천년 묵은 여우가 인간 새 신랑을 발가 벗겨 바위틈에 쿡 끼워 놨다.
입술이 새파랗게 어어어 떨며 저체온으로 죽기 직전이었다.
※.열 살까지 천기누설을 못하게 입을 봉해 고려에 보냈는데(상제께서),고종누나
때문에 명(命)을 못 지켰다.열살까지 명을 받들었으면 대국(大國:중국)을 호령할
큰 인물로 왔는데..오호라 !! 아깝도다 !!??.
낙성대(落星垈): 강감찬 장군의 태어난 곳으로,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228번지.
ㅡ별이 내려온 곳이라는 뜻ㅡ
👍하늘에서 편파적으로 고려에만,유독 벼락을 많이 때리니, "내 하늘 버릇(법)을
고치리라"하고는 멀건 대낮에 엉덩이를 걷어 부치고 먹는 우물에 똥을 눴다.
아니나 다를까 하늘이 요란을 떨더니 마른하늘에 벼락을 때렸다."그럼 그렇치..."
감찬이 벼락을 받아 하늘로 올려 보냈다.
※.그 뒤론 벼락을 안 때렸다고 한다. 설에 의하면 강감찬 출생 전후하여 큰 운석이
떨어졌다고도 하고, 별이 내려와 강감찬으로 태어났다고도 함이다.
👉.邯(감)은: 고을이름 한. 사람이름 함이~'감'으로,
고려의 명장 강감찬(姜邯贊)의 邯은 감으로 속음화 되었다.
🔶. 강감찬 장군의 시.
孤鶴寵衛軒(고학총위헌)
雙鳶入毛論(쌍연입모론)
秋風無限恨(추풍무한한)
不能共一尊(부능공일존)
한 마리 학은 위 나라의 가마 위에서 사랑을 받고,
두 마리 솔개는 시전(詩傳)에나 빠져 있지만,
(나는) 가을바람에 시름만 무한하고,술 한 잔도 같이 나눌 길 없네.
좀 더 이해...
강감찬 장군은 이 시를 통해 입으로만 떠들면서도 임금의 총애를 받는
중앙고위 관료를 비꼬고, 이를 경계하도록 하는 한편 변방의 외로움,
상실감, 상대적 박탈감을 첫 두구와 나머지 두구의 정서적, 수리적
이중 대비 구조를 통해 진지하게 드러내고 있다.
많은 무관들의 시가 판에 박힌 듯 충정이나 기개를 노래하고 있는데
반해 강감찬 장군의 시는 비판적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만 하다.
또한 파자를 이용한 중의적 표현, 각 구의 첫자에 1,2, 3, 4의 수열을
교묘히 감추고 압운까지 절묘하게 맞춘 다체로운 언어유희를 시 곳곳에
꼭꼭 숨겨놨다.장군의 세심함, 비상함, 주도면밀함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하는 귀중한 작품이다.귀주대첩을 그냥 얼렁뚱땅 이긴 게
아닌 것이다.
이 한 수의 시를 통해서도 그분의 성정을 엿볼 수 있으니 글이 주는
공감의 힘은 천년의 세월도 무색하게 한다.
ㅡ오세창(1864~1953)선생의 글 중에서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