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대학로의 근대 건물 문화 해설을 들었다. 1학년 아이의 엄마라서 점심 후 아이를 데려와야 해서 끝까지 다 듣지는 못하였고
건축물과 근대사에 대한 상식도 부족하여 많이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당시의 역사와 문화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에 기록을 남겨 놓는다.
대학로는 공연보러 자주 찾던 곳이긴 한데 근대 건축물들에 대해 따로 생각할 기회를 갖지 못했기에 역사가 있음직한 내용의
글들을 지나쳐 보는 것으로만 짐작할 뿐이었던 곳이다. 지난 주 성균관을 찾아서 그 역사를 안 후 일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어
좀 더 깊이 알고 싶어 신청한 장소인데 우리가 간 노선은 혜화역 3번 출구에서 만나 - (구)대한의원 - 함춘원 - 경모궁 터 - 서울대병
원 의과대학 -방송통신대학교 우체국 - 예술가의 집 - 마로니에공원 - 아르코 미술관, 예술극장 - 샘터 사옥이었는데 나는
서울대 의과대학까지 가지 못해서 못내 아쉽다. 다음에 다시 이 기회를 얻어 해설을 듣고 싶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사진으로 옮기려 한다.
사진 순서가 거꾸로 올려져서 여기가 내가 마지막으로 본 장소인데 봄꽃이 화사하게 양쪽으로 피어 있고 초록 물결이 일렁거려
향기도 짙을 뿐 아니라 경취가 무척이나 아름다왔다.
임오화변때 숨진 사도세자의 사당이 모셔졌던 경모궁터인데 복원될 예정이라고 한다. 복원은 의궤에 따라 진행될 것으로 복원 이후
에 꼭 다시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899년 장조로 추촌된 이후 종묘에 소속되었다고 하는데 유교에 근거하여 사후에 신분이 달라진 것, 그 과정에 있어서의 명분에 관한 역사적인 사료를 찾아보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풀밭엔 노란 민들레가 곳곳에 피어 있어 세월의 변천에도 천진하게 밝은 미소를 전하는 아이마냥 희망을 전해 주었다. 우리가 역사를 깊이 알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지키기 위한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오늘 뉴스에서 독도 문제를 붙잡고 끈질기게 도발하는 일
본의 흉악한 속내를 생각해 보며 어이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은 나에게 역사 의식을 자라나는 세대에게 심어 줘야 할 또 의지를 새
롭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자료를 수집하고 주장을 공고히 하여 토론에 익숙해야 할 이유도 국력을 키우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주와 위패, 사당 등 제례에 관해 배웠는데 몇 가지 밖에 기억하지 못하겠다.
장례에 대해 잘 모르겠으나 천주교도로 신주를 불태웠다는 죄목으로 참수형을 당한 윤선도의 후손 윤지충의 이야기를 목민심서에서
읽어서 유교식 장례에 대해 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예라는 것 또한 가변적인 것임을 생각하면 우리가 어떤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
는 것은 쉬운일이 아님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나 또한 이 점을 숙지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경청의 자세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것을 신으로부터 구한 지혜를 솔로몬 왕으로부터 배우고 싶다.
창경궁이 내려다 보이는 곳
100년 전 사람들이 보면 상전벽해를 실감할 풍경이고 100년 후의 사람들이 보면 빛바랜 과거가 될 지 모를 모습이 아닐까?
11시에 기계식 시계탑의 작동 원리를 볼 수 있는데 우리 아이들에게 꼭 보여 주어야겠다.
바로 이것....
높은 곳의 거대한 시계가 작동하는 원리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원형으로된 손잡이를 돌리자 시계가 소리를 내며 작동했다. 갑자기 살아 움직이는 동물처럼 신기했다.
영국 시계인데 그 때까지 우리 나라에는 이런 시계 기술이 없었다고 한다. 현재 바깥에서 보이는 시계는 전자식이고
이것은 작동되지만 보본의 개념이 더 강해 이용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시계를 수리할 사람이 없는 것도 작동시키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한다. 문학작품에 보면 시계탑에 대한 내용이 간혹 나오는데 로봇처럼 움직이는 시계를 보니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의욕도
생긴다. 나도 예전에 시계탑 아래서 약속한 사람을 한참 기다리다 그냥 집으로 왔던 적이 있는데.....
고종황제님.....
세브란스 병원과 국립 서울 의대 중 누가 최초의 서양식 의대인가에 관한 정통성을 두고 대립한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선생님께서도
이 부분에 대해 설명을 좀 길게 해 주셨다. 의견이 분분한데 나로서는 국력이 쇠퇴해 가던 시절 풍전등화와 같던 삶을 살았던
당시의 사람들과 그들이 이용했던 건물들이 안쓰럽게 느껴질 뿐이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까? 그래서 교류라는 게 참으로
필요한 힘을 키우는 과정임을 이번 문화해설을 통해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문화의 부흥기였던 정조 때 사회 지도층이었던 이들이
세계 정세를 알고 선견지명을 갖을 수 있었다면 이러한 운명을 피해갈 수 있었을것을 하는 안타까움이다.
이것은 현재 역시 격변하는 세계와 교류해야 되는 이유일 수 있겠다.
의학박물관
시기마다 다른 건축 재료에 대한 내용을 설명 들었다. 이 건물은 근대 건물로 가장 오래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전동성당과 약현 성당, 인사동의 천도교 건물 등에 대한 설명도 해 주셨는데 언제 기회를 얻어 가 보아야겠다.
건축 양식이 고딕, 르네상스, 바로코, 로코코로 이어졌는데 이것은 아치형의 레오바로코라고 한단다.
의대 건물인만큼 당시의 의료 선교사 알렌, 에비슨 등의 이야기를 들었고 지석영이 종두법을 처음 시작했다고 알려졌으나
그 이전에 박영선이 먼저 우두법을 시행했다는 설명도 들었다. 그리고 영. 정조 시기로 해서 계속 전염병이 많이 번졌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예방 의료에 관심이 높았다고 한다.
많대학로 탐방은 많이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자주 들르던 곳에 관한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는 유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