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주는 함정
토요일 아침 습관처럼 마운틴 바이킹을 나선다.
강을 2개 건너고 산을 3개 넘어서 호수(알렉산더)를 한바퀴 돌아
다시 되돌아 오는 인적이 드문 숲속에 난 26마일(42Km)의 긴 길이다.
서너군 데 급경사 언덕을 오를땐 저단 기어에도 숨이 차고 힘이 좀 들지만
그 보답으로 5파운드 정도를 뺄 수 있다.
또 숲속의 나무 하나가 일년에 평균 260파운드 정도의
성인 2명이 일년간 숨쉴 수 있는 양의 산소를 품어 낸다니
심폐 건강에도 좋은 것은 당연하지 싶다.
26마일이면 그리스의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의 거리이다.
오래 전 유럽 유학중 실제로
마라톤 평야에서 아테네 스타디움까지 달려 본 경험이 있다
아니, 정확히 반 이상을 헬레레 걸어서 아테네까지 내리 걸었다.
1/3의 시작은 평지였고 서서히 완만한 언덕을 오르다가
나머지 끝부분이 하향 경사로 눈앞에 보이는 도시가
뛰어도 뛰어도 여전히 멀리서 기진 맥진케 한다.
프로 마라토너들이 2시간 약간 넘는 시간에 뛰는 거리를
단거리 전력 질주 체질인 나로서는 4시간 반 정도의 한나절이나 걸렸지만
비장한 병사의 심정으로 뛰다가 걸었던
무더운 지중해의 여름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돈과 비싼 물건보다
경험을 사고 경험을 선물 하라는 현인들의 조언을
젊고 욕심많은 나이에 따르기란 정말 어렵다.
다 등 따시고 배부를 때 하는 소리 아니든가…
오늘은 한번도 가보지 않은 소나무 숲 가래길을 택했다.
Robert Frost의 The Road Not Taken을 생각하며;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뒤 한숨을 쉬면서,
난 족적이 적은 길을 선택했노라”고 회상하는…
쉬운 길보다는 예측불가하고 더 험한 길, 남들이 가지 않은 길로
새로운 도전과 자신의 길을 개척했다라는 자부심이었던가…
하지만 역시 되돌아 보면 그것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는
삶의 찰라성과 공허함을 토로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어치튼 그가 왜 숲은 이토록
“깊고 그윽하고 사랑스럽다”고 한 것인지 공감이 되는 날이다.
지난 밤비로 강물이 엄청 불어나 있고,
강풍으로 인해 잔가지들이 트레일을 뒤덮고 있지만
너저래한 대로 깊고 숲속은 적막하기만 해서
작은 이름 모를 여러 새소리들이 정겹다.
물이 바위들과 부딪치며 내는 소리,
바람이 나뭇잎에 부딛히면서 만들어내는 소리,
어느새 낙엽이 되어 성급히 떨어지는 마른 잎새위에
자전거 타이어가 지나면서 내는 바싹거리는 소리와
솔향과 가을 데이지와 유채화 향기에 취한다.
인생이란 여정길...
지금처럼 건너 가는 길, 외지고 험한 길,
오르막과 내리막 길, 울퉁불퉁한 길,
거목이 가로막고 있는 길을 지나면
평평하고 환하게 트인 즐거운 오솔길,
거기다 문득 예쁜 꽃들이 길가에서 맞아주는
황홀한 길까지…
이 숲속의 길이 꼭 인생의 축소판같다.
육체적 정신적 쾌감이나 포만감, 만족감을얻기위해서
병사의 심정으로 달려온 먼 길…
그 마지막 종착지가 행복이란 스타디움이라고 믿고 달려온 지나온 길,
하면 지금 여기서 온 인생 길은 도대체 어디로 이어지는 걸까?
또 어디로 갈까?
결코 만족할 수 없고 채워질 수없는 마음에
구원이란 신기루 허상만이 지나온 길에서나
다가올 길에서도 공중의 허화처럼 휑하기만 하다.
나에게서 구원(Salvation)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또 왜 자꾸 더 자유로워지고 싶은 것일까?
이젠 얼마남지도 않고 희석되어가는 약속과 책임으로 부터…
진정한 구원은
모든 두려움과 애착으로부터의 해방인가?!
진정 공포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인가?
부족함과 집착과 애착, 필요함으로부터의 해방이고,
마음이 만든 과거와 미래에 대한
부정적이고 불안한 생각들부터의 해방인가?!
마음이 만든 모든 짐작들과 희망들로부터의 해방인가?!
그런 데
왜 아직도 난 해방된 진정한 자유인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이젠 야망도 도전도 꿈도 더이상 의미가 없는 상태이고
아쉬울 것도 미련도 남아 있는 것도 아닌 데…?
아마도
내 마음에 축적된 경험과 시간들이 만들어 놓은 함정때문인가?!
지금 현재 이 순간은 아직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경험이 주는 시간의 덫!
그 어떤 도움이나 내가 뭔가가 되어야
내가 해방될 수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리할 시간, 완성할 시간,
사업을 넘기고 총집중할 시간,
그리고 은퇴를 한 후에야 시작할 수 있다고
모든 것을 미루어 둔다.
이렇게 미루다가
어느 순간에 캑!하고 뒈져버릴 지도 모르는 데…
은근한 예측불허의 두려움 또한 전혀 도움이 안된다.
이렇게 되면 시간은 구원을 위한 수단이며,
한편으로 솔직히 이 시간은 가장 큰 장애가 된다.
지금 이 순간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아직 멀었다고 결정적이고 절대적인 오판을 한다.
진실로
지금 이 순간만이,
이 지점만이 우리가 어디론가 실제로 가고있는 순간이 아닌가!
신을 체험한다 함은 더이상 신을 찾는 데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아도 좋다는 뜻이다.
해서 신은 미래를 약속하는 천국의 신이 아닌
지금 이 순간에 함께 숨쉬는 황홀한 삶의 신이 된다.
해서 결국 오직 한 지점만이 허용된다.
그 지점은 바로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이다.
지금 이 순간을 떠나 구원이 존재할 수없다고 본다.
미래가 기다려주는 일도 없다.
해서 미래에 있는 천국을 믿고 지금을 희생하고 속죄하라는
도그마는 존재하지도 않는 가짜 신을 믿으란 논리가 된다!
알렉산더 호수에 도착하니 엉덩이가 깨질듯 아프다.
아무래도 오늘 오후에 안장을 좀더 푹신한 것으로 바꾸어야겠다.
잠시 쉬고 싶지만 계속 그대로 페달을 밟는다.
내 앞에 놓여진 되돌아 집으로 가는 낮 익은 길은
모험도 새로운 경험도 아닌 편안함을 찾아가는 길이고
얼마쯤 참으면 집에 도착한다는 경험이 주는 믿음때문에
참아줄만 함은 또한 경험이 주는 함정이다.
이젠
더 이상 약속과 의리나 사명감이란 것으로
스스로 멍에를 뒤집어 쓰진 않으련다.
적어도 새로운 약속은 하지 않으련다.
앞으로 펼쳐진 길을
이젠 그냥
허허로이 가 보련다.
더 이상 경험의 축적이나 지혜의 축적이 주는
내가 파놓은 함정속에서 허우적거리진 않으련다.
“모든 경험은 더 많은 경험을 요구할 뿐이다.
경험에서 아무 것도 기대 하지 말라!”란
옛 선사의 일갈이 뇌리를 친다.
Expect Nothing from Experiences!
하지만,
약속도 욕망도 없는 정처없는 길에서
과연 어떻게 의미와 전률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니 피곤과 졸음이 온다
한숨 푹자고 일어나니 벌써 바깥은 어둠이 내린다
“허 참, 오늘 하루도 공쳤나?!
밤은 깊고 고요하니 누구랑 함께 꿈의 대궐을 거닐까? “ 혼자 중얼거리니
한 고승이 꿈 속에서 찾아와
방신와(활개를 펴고 드러 누워버린다)하며 껄껄 비웃는다.
“자네가 진정 원하는 게 해방이 아니지?!
해방된 자는 감동도 감사한 마음도 가지지 못하지 않겠나?!”
Oh!
Ah!
What an imbecile I have become!!
꺼이 꺼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자다가 깨어 났다가 비몽 사몽 밤을 지샌다.
Oh!
Ah!
I am busy again at least.
And I am not free after all!!
첫댓글 긴 장글 잘읽고 갑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