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 화원이 집안에 있다는 건 큰 축복을 받은 것과 같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쑥쑥 자라나는 식물의 에너지를 오롯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심, 그것도 아파트에 산다면 절대 느낄 수 없는 무지개 같은 행복이기도 하다. 꽃이 좋고 식물에 끌려 집안 가득 온실을 마련한 한재길·임지수 부부가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아파트, 한옥, 단독주택에서 두루 살아봤어요. 파주 헤이리 주택은 생애 두 번째로 지은 단독주택이죠. 원래 주택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건 아파트에 대한 갑갑증 때문일 거예요. 아무리 넓은 평수에 살아도 왠지 갇혀 있는 느낌이 들고, 엘리베이터에서 사람을 만나도 반갑지가 않았거든요.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아뜰리에17의 권문성 소장님을 알게 됐고, 집 짓는 스타일에 반해 설계를 부탁했죠.”
이들 부부가 권 소장에게 요구한 조건은 단 한 가지였다. 꽃을 가꾸며 살고 싶으니 집안에 온실을 만들어 달라는 것. 그리고 몇 년 뒤, 헤이리에 모던한 집 한 채가 탄생했으니 바로 지금의 고막원이다. 1층에는 도자기와 가구를 전시 판매할 수 있는 아트숍이, 2층에는 부부의 여유롭고 호젓한 살림공간이 들어섰다. 그리고 하얀색 긴 직사각형의 건물 중앙에는 아이스크림콘을 닮은 원기둥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바로 이들 부부가 오래도록 꿈꾸어온 온실이었다.
1 집안 곳곳에 자리한 선인장과 각종 화초는 이들 부부에게 삶의 여유를 선사한다.
2 온실에서 바라본 1층 전시장 모습. 도자기류와 가구를 전시 및 판매하고 있다.
3 온실에서 2층 주거공간으로 이어지는 문. 뒤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임지수 씨가 고양이와 한 시간 정도 운동을 즐기는 옥상이 나온다.
4 거실에서 침실로 이어지는 긴 통로. 오른쪽으로는 온실의 풍경이, 왼쪽으로는 마당의 풍경이 통유리를 통해 시원하게 펼쳐진다.
남미의 열정을 닮은 선인장 온실 고막원의 온실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든다. 회색빛의 모던한 노출 콘크리트와 통창 그리고 초록색 식물들이 어우러져 마치 남미의 식물원에라도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곳의 주인공은 모두 선인장이다. 마치 열대의 기운을 한껏 품고 있는 듯한 키 다른 선인장들이 온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들 부부도 종류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선인장 군락이다.
시선을 하늘로 옮기면 하루 종일 따뜻한 햇살을 전달하는 타원형의 천창이 보인다. 이른 아침, 온실에 발을 디딘 햇빛은 화단을 부드럽고 둥글게 감싸다 저녁이면 서서히 사라지는데, 노출 콘크리트에 햇살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의 향연이 또 다른 볼거리다. 권 소장은 온실의 천창을 가리켜 계절과 시간에 따라 각기 다른 그림자를 드리우는 커다란 해시계와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유선형 계단도 천창만큼이나 매력적이다. 보통의 계단이 실용성을 강조한 나머지 미적 감각을 해친다면, 고막원 온실의 계단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척 멋스럽다. 마치 다른 세상으로 이어지는 마법의 계단처럼, 별다른 지지물 없이 공중에 가볍게 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통창과 모던한 가구가 만들어낸 스타일리시한 개인공간 마법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비로소 부부의 생활공간인 2층 현관에 닿는다. 긴 직사각형의 건축물은 원뿔 온실을 중심으로 생활공간이 반으로 나뉜다. 오른쪽이 서재와 부부침실의 사적 공간이라면 왼쪽은 거실과 식당의 공용공간이다.
거실에서 모던한 감각을 자랑하는 주인공은 긴 식탁이다. 언뜻 보아서는 식탁인지 작업실의 탁자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 스타일리시한 식탁은 지인이나 친척들이 모두 모여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길게 설계됐는데, 평소에는 부부가 신문을 읽거나 개인 작업을 하는 다용도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식탁이 더욱 매력적인 이유는 나무 질감을 그대로 살려 천장을 장식하고 모던한 벽난로를 연결시킨 센스 때문이다. 여기에 평소에는 식탁의 느낌을 최대한 가미하지 않기 위해 부엌을 폐쇄적으로 설계한 점도 눈에 띈다. 먹는 공간을 탈피해 집안의 분위기를 잡아주는 인테리어 역할을 부여한 셈이다.
“식탁 위에 천창이 있어요. 그런데 좀 독특한 게 위가 아니라 옆으로 설계돼 있다는 점이에요. 빛이 한번 굴절되어 집안에 쏟아지도록 한 거죠. 거실에 퍼지는 빛이 밝으면서도 부드러운 비밀이에요.”
5 거실의 풍경이 무척 독특하다. 8~10명이 앉을 수 있는 긴 탁자가 마치 바닥에 놓인 조형물처럼 모던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탁자 뒤 하얀 선반에 놓인 색색의 엽서는 이들 부부가 1층에서 전시한 작품의 엽서와 팸플릿.
6 종류를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선인장이 온실과 집안 곳곳에 자리한다. 특히 아담하고 독특한 모양의 선인장이 많은 편이다.
7 ‘ㄱ’자형으로 놓인 넉넉한 원목 소파가 따뜻하면서도 모던한 느낌을 풍긴다. 무엇보다 부부가 자식처럼 기르고 있는 고양이가 할퀴지 못해 실용적이라고.
8 거실과 연결된 2층 나무데크.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2층에서 야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주인의 감각을 보여주듯 앤티크한 화분과 작은 의자들, 그리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낮잠을 즐기고픈 흔들의자가 잘 어우러져 있다.
9 거실 통로에서 화장실로 이어지는 공간. 양쪽 수납장이 모두 하얀색인데다 천창을 통해 햇살이 떨어져 언제나 밝은 분위기가 연출된다.
10 2층 주택 끝에 마련된 부부의 침실. ‘ㄷ’자 형식으로 나무무늬가 침실을 감싸고 있어 창 밖 자연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마당의 주인은 야생화와 자작나무 그리고 이웃 2층 주거공간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주변 환경을 조망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거실 벽면이 대부분 통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어디에 있건 온실과 마당의 푸르름을 만끽할 수 있는 것. 특히 거실에서 침실로 이어지는 긴 통로를 지나다 보면 오른쪽으로는 온실의 풍경이, 왼쪽으로는 마당의 풍경이 시선을 잡는다. 유리를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이 묘하게 섞여 있는 구조는 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이들 부부에게 참으로 잘 어울린다.
이들 부부는 바람이 시원한 날이면 마당에 나가 더욱 싱그러운 자연을 만나기도 한다. 온실이 선인장의 집이라면, 마당은 야생화와 자작나무의 보금자리쯤 된다. 부부가 공 들여 심은 야생화 밭에서는 봄부터 가을까지 바통 터치를 하듯 외발톱꽃, 금낭화, 능소화 등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마당 한쪽의 자작나무 40그루는 바람이 불 때마다 시원한 소리를 선물한다.
“집안에 있는 것보다 마당에 앉아 있는 걸 좋아해요. 그런데 여기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자꾸 일거리를 찾게 돼요. 풀도 뽑아줘야 하고, 마당의 화초도 돌봐줘야 하니까요.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일만 하기도 한다니까요(웃음).”
날씨가 좋은 날이면 마당의 키 작은 의자는 이웃들과의 수다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지나가는 이웃사촌이 있으면 잠깐 불러서 이야기도 하고 차도 마시며 삶의 여유를 즐긴다. 아파트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기쁨이다.
꽃을 사랑하다 얻은 뒤늦은 도전, 그래서 더욱 즐거운 인생 헤이리에 살면서 임지수 씨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자연스럽게 이웃사촌이 됐다. 대부분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각종 모임에 참석할 일도 많아졌다.
“이웃끼리 모여서 미술사, 철학 강의를 듣거나 성경 공부를 해요. 그것도 아니면 국선도나 스포츠댄스를 즐기고요. 예술 쪽에 종사하는 분들이 많다 보니 작은 모임인데도 수준이 무척 높은 편이에요.”
요즘 임씨는 가을에 열릴 ‘헤이리판 페스티벌’에 선보일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헤이리의 축제인 만큼 거주자들이 직접 참여하는데, 그녀가 발표할 작품은 ‘IN THE GARDEN’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도자기 작가와 함께 식물과 꽃을 주제로 육면체 조형물을 설치할 예정이라고. 그녀는 “은퇴할 나이에 뭔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고 도전할 수 있어 무척 행복하다”며 웃는다. 아마도 지금의 기회는 온실과 마당에서 정성스럽게 꽃을 가꾼 그녀의 노력이 불러온 듯했다. 헤이리에 고막원이란 집을 짓고 비로소 자연과 어우러진 삶을 살고 있다는 한재길·임지수 부부. 이들은 아이스크림콘을 닮은 온실을 집안에 들이고 푸른 마당을 가꾸면서 선인장, 야생화와 벗하며 사는 법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들의 삶은 야생화만큼 싱그러워졌고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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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나도 이런 집을 갖고 싶어요...
집들이 너무 좋아요.. 부럽당^^
많은것 배우네요 감사
정말 부럽네요,,,,
부.럽.다.
맨 위에 사진은 헤이리에서 본듯하네요~~~
정말 그림같은 집이네요.
진짜 온실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