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을 바로 세우자
히틀러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자신이 겪은 체험을 적은 책이 있다. 원래 심리학자였던 빅터 프랭클이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으로 그는 수용소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후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삼아 새로운 심리치료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이를 소위 의미료법(意味療法, Logotheraphy)이라 부르는데 쉽게 말하자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살아가야 할 이유, 삶에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게 해주면 치료의 길이 열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프랭클 박사는 수용소에 있었을 때의 경험을 적고 있다. 혹독한 수용소 생활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체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고 재간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었다. 행동이 민첩한 사람도 아니었고 요령이 좋은 사람 역시 아니었다. 자신들이 이해할 수도 없고 감당할 수도 없는 고통 속에서도 고통이 주는 의미를 찾은 사람, 자기와 가까운 동료들과 빵 한 조각이라도 나누며 살려는 사람, 삶의 본질을 추구하며 고민하는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살아남더라는 것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수단과 방법에 매여 살고들 있다. 삶의 본질을 추구하여 좋은 뜻을 세우고, 비록 고생스럽더라도 그 고생 속에 깃든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 없이 마냥 요령과 수단에 의존하여 살아가려고 하는 풍조이다. 이런 시대의 풍조에 휩쓸려들지를 않고 삶에의 의미를 추구하며 뜻을 세우고 고생하고 손해를 볼지라도 본질을 찾아 나가는 일에 자신을 투자하는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줄 아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 갈 때, 우리의 정신문화가 이처럼 깊이를 더해 갈 때, 우리 사회는 보다 밝은 사회가 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의 릭 워렌 목사가 쓴 ‘목적이 이끄는 삶(Purpose driven Life)'이란 책은 우리에게 좋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즉 인생을 살아가는 데 영생(永生)을 향한 심원하고도 확실한 목적 즉 살아가려는 뜻을 먼저 세우고 그를 향해 정진해나갈 때 가장 활기 있고 가치 있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이다.
백강 이경여(李敬輿) 선생은 인조임금에게 먼저 뜻을 세우고 학문을 부지런히 하여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성의정심(誠意正心)의 근본을 깨달아 실천할 것을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반드시 성지(聖志)를 굳게 정하시어 밖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야 만사의 근본이 세워질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뜻을 세우는 것이 물론 제일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범연히 뜻을 세우는 것으로 말해서는 안 될 듯하다.” 하자, 이경여가 다시 아뢰기를, “아무리 평범한 일이라도 만약 뜻이 세워지지 않으면 끝내 이룰 수가 없습니다. 뜻을 세우는 요체는 학문을 부지런히 하는 데 있습니다. 전하께서 경연을 열고 강학(講學)하신 지 오래되었는데,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성의정심(誠意正心)의 근본을 실지로 깨닫지 못하신 듯합니다. 삼가 성상의 말씀과 하는 일을 보면 치우친 마음이 없지 않아 군신 사이에 성의가 서로 미덥지 못하니 모든 일이 번다해져 날로 망해가는 것은 괴이할 것이 없는 일입니다.” <출처: 조선왕조실록 인조16년(1638) 5월16일 기사>
이와 같은 맥락으로, 율곡 이이 선생은 그의 “격몽요결(擊蒙要訣) 제1장 입지(立志)”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처음 배우는 이는 먼저 뜻을 세우되 반드시 성인(聖人)이 될 것을 스스로 기약해야 하며, 조금이라도 자기 자신을 별 볼 일 없게 여겨 물러나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일반 사람도 그 본성은 성인과 똑같으며 사람의 본성은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구별이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성인(聖人)은 유독 성인이 되고, 나는 유독 평범한 사람이 되는가. 이는 진실로 뜻이 서지 못하고 앎이 분명치 못하고, 행함이 독실하지 못해서이다. 뜻을 세우는 것과 밝게 아는 것과 독실하게 행하는 것 모두가 나 자신에게 달려 있으니(志之立 知之明 行之篤 皆在我耳) 어찌 다른 데서 구하겠는가.”
2023. 3.17. 素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