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함이 가득한 부다페스트>
부다페스트에 도착한 시간은 9시 30분. 우리가 가려고 하는 트래블스호스텔(Travers hostel Hill)은 기차역에서 제법 떨어져 있어서 트램이나 버스를 타야했다. 일단 일일 교통권을 끊기로 했다. 물어 물어서 기차역 지하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에서 일단 일일 교통권을 끊었는데, 어린이용은 없다고 해서 모두 어른권을 끊었다.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으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우리에게 표 파는 곳을 가르쳐준 여학생도 잘 모르겠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헝가리 역시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고 헝가리 화폐인 포린트를 사용했다. 돈이 없어서 환전을 해야 했는데, 기차역이라 환전율이 나빴다. 노란 잠바를 입은 아줌마( 인터넷에서 유명한 민박집 아줌마인 “노란 잠바 아줌마”인지 물었더니 자기는 아니란다)는 아주 친절하게 환율이 나쁘니 환율이 좋은 곳에서 환전하라고 했다. 그런데 불행하게 우리가 도착한 날은 토요일이었다. 그러니 은행은 모두 문을 닫고 사설 환전소밖에 없었다. 이렇게 장기간 여행을 할 때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게 되면 난감할 때가 많다. 이럴 때 요긴하게 쓰이는 것이 신용카드다. 처음에 우리는 환율이 나빠도 사설환전소에서 환전을 하다가 나중에는 신용카드를 이용하여 현금을 인출했다.
부다페스트에는 동역과 서역이 있는데, 우리가 도착한 역은 동역(Keleti)이었다. 기차역에는 많은 호객꾼들이 있었다. 숙소호객꾼, 그리고 택시 운전사들. 그런데 모두들 참으로 친절했다. 노란 잠바 아줌마도 그랬고, 택시 운전사 아저씨 역시 친절했다. 택시아저씨는 우리에게 호객행위를 하다가, 우리가 일일권을 보여주며 Travers hostel Hill로 간다고 하자 우리의 짐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많은 짐을 들고 어떻게 버스를 탈거냐며 택시를 타라고 했다. 그래도 우리가 버스를 탄다고 하자 타는 위치를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다.
버스를 타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아저씨가 고개를 흔든 이유를 몰랐다. 버스는 너무 비좁아서 배낭을 메고 타기엔 정말 힘든 곳이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타서 서 있을 자리조차 없었다. 우리는 숙소까지 버스로 세 구역이라서 잠시 가다가 내리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버스 세 구역이 우리나라 시내버스 열 구역쯤은 되어 보였다. 한 구역이 엄청나게 길었던 것이다. 우리가 내렸던 기차역인 동역과 우리의 숙소는 도나우강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강 저쪽인 부다 지역에서 페스트 지역으로 건너온 것이다. 우리가 내릴 곳이 다되어 가자 우리 옆자리의 손님은 아는 체를 해주며 내려야 한다고 몸짓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동양인들이 짐을 잔뜩 지고서 지도를 들고 기웃거려대는 모습이 흥미로웠던지, 아니면 친근감이 들었던지 모두들 도와주려는 마음자세가 느껴졌다.
부다페스트 시내 교통기관은 버스와 트램 그리고 지하철로 이루어져 있는데, 일일권은 이 모든 교통기관을 모두 이용할 수 있으므로 시내 관광에 매우 편리하다. 또 10매 묶음도 있었는데, 그것은 필요한 만큼 잘라서 쓰면 되므로 그것을 이용해도 된다. 지하철만 이용하는 회수권은 가격이 더 싸다. 트램이나 버스에는 중간에 펀칭하는 곳이 있으므로 하면 되고, 지하철은 입구에 펀칭하는 기계가 있어서 역시 펀칭을 해야 한다. 만약에 펀칭하지 않고 탔다가는 무임승차가 되어 몇 배의 벌금을 내야 한다. 또 한 가지, 부다페스트의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는 무척 빠르다. 빠르기는 프라하가 더 심한데, 주의하지 않으면 아래로 굴러 떨어질 수도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의 에스컬레이터만 보다가 경사가 급하고 길고, 빠른 동유럽의 에스컬레이터를 보자 아찔했다.
Travers hostel Hill은 교통이 매우 편리한 곳에 위치한 대학기숙사인데 여름 동안 여행자들에게 빌려주는 곳이었다. 10년 전 파리에서 파리 8대학 기숙사에서 묵었던 경험이 있는데, 그때의 기숙사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대학기숙사에 예약을 했는데, 기숙사의 수준이 너무나 달랐다. 건물은 새 건물이었지만 청결도 면에서 지금까지 여행한 중에 제일 더러운 곳이었다. 그 점이 제일 나빴고, 나머지는 좋았다. 아침식사도 괜찮았고, 교통도 좋았다. 6명으로 사흘을 예약했던 우리에게 많은 변화가 있어서 한 사람은 여행이 취소되고, 또 두 사람은 2박을 하고 돌아가야 한다고 사정을 했더니 괜찮다며 아무런 수수료를 받지 않았다. 너무 고마웠다. 아마 대규모 숙소여서 그런 모양이었다.
우리는 먼저 늦은 아침을 먹기로 했다. 맥도널드에서 아침을 먹으며, 우리가 가려고 하는 곳의 교통편을 알아봤다. 부다페스트는 다른 곳들보다 물가가 비쌌다. 물가의 척도는 대략 맥도널드 가격으로도 알 수 있는데, 다른 곳보다 비싼 편이었다. 숙박비, 차비, 음식값 등 모든 면에서 그랬다.
우리는 트램을 타고 먼저 모스크바 광장으로 가서 그곳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마차시교회로 갔다. 그곳에서 환전소를 찾아서 환전을 하고 먼저 어부의 요새로 갔다. 어부의 요새에서 한 떼의 한국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서울에서 왔는데, 이화어학당에 다니는 외국인들에게 숙소를 제공해주고 그들의 집에서 묵을 계획으로 온 몇몇 가족이었다. 그런 방법으로 여행을 하는 것도 참으로 좋은 일인 것 같다.
어부의 요새는 요새 같지가 않다. 하얀 뽀족 첨탑이 무슨 동화나라 같다. 요새라고 하면 웅장하고 적을 막아내려는 비장함이 보이는 곳이네, 그렇지가 않다. 안내서를 보니 건국 1000년을 기념하는 건조물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런 느낌이 들 수밖에. 다음으로는 마차시교회를 가려고 했으나 공사중이어서 내부 관람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린 다시 tu틀을 타고 왕궁으로 향했다. 왕궁은 몇 차례 중수를 거쳐서 별로 볼 것이 없고, 대신 왕궁미술관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왕궁미술관에서는 마침 특별전이 열려 피카소, 로트렉, 샤갈 등의 다양한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19세기 헝가리를 대표하는 화가인 뭉카치 하이의 작품이다. 가난하고 어려운 헝가리 시민들의 삶을 그려놓은 작품에서 화려한 야경이 빛나는 헝가리의 겉모습이 아닌 숨겨놓은 실제 모습을 보는 듯했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너무 피곤하여 어디 가서 온천이나 하려고 했다. 기숙사 직원에게 물었더니 기숙사에 딸린 곳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부푼 꿈을 안고 갔는데, 불행히도 그곳은 수영장이었다. 산들이와 나는 괜찮았지만 나머지 분들은 수영에는 별로라,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우리들보다 키가 커서인지 수영장 바닥이 너무 깊었다. 산들이는 가쪽으로 붙어서 봉을 잡아가면서 수영을 하고 나머지 분들은 물에 한번 들어갔다가 실망하셔서 나오셨다. 그래도 다행히 사우나실이 있었다. 그곳에서 땀을 빼고 샤워를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잠시였지만 물에 몸을 담그고 나오자 한결 개운했다. 우리는 역시 목욕하는 민족인 모양이다. <마차시교회>
안내책자에 나온 식당에 가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하고 지도를 보며 차를 탄 우리. 우리가 식당이 있는 동네라고 짐작하며 갔던 곳은 전혀 엉뚱한 곳이어서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그런 식당이 보디지 않았다. 근처에 있던 카페 직원에게 물어보았더니 대형 지도를 가지고 나와 자세히 찾아보더니 우리가 길을 잘못 찾아온 것이라고 했다. 모두들 허기는 지고, 날은 어두워오고, 그럴 때 우리에게 쉬운 길을 가르쳐준 것은 바로 중국식당이었다. 다른 때와 달리 이번에는 모두 고마운 마음으로 중국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었다. 아저씨는 오래간만에 중국어 실력을 발휘해가며 주문을 하셨고, 우리는 앉아서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따끈한 우롱차와 달콤한 맛탕 같은 시럽이 잔뜩 발린 빵도 맛있었다.
우리는 세체니 다리로 가서 야경을 구경하기로 했다. 다시 트램을 타고 세체니 다리에 내려 걸어서 다리를 건너기로 했다. 야경은 단연 부다페스트다. 그 웅장함이 정말 아름다웠다. 부다 강변에 위치한 왕궁과 마차시 교회 국회의사당 등 모두 불을 켜고 있으니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마침 그때 출발하는 유람선이 있어서 우리는 유람선을 타고 야경을 구경하기로 했다. 유람선에서는 가벼운 음료를 서비스하고, 오디오 가이드가 있었는데, 한국어 가이드고 있었다. 1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와인을 마셔가며 유람선에 본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사진을 엄청 찍었는데, 야경 사진은 한 장도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멋있는 사진을 찍으려면 반드시 삼각대를 가져가야 한다. 하지만 우린 좋은 사진을 가지느니, 삼각대를 안 가지고 다니는 것이 훨씬 편하다는 것을 안다.
<어부의 요새에서 대려다 본 도나우강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