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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4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5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6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시인은 고통의 어둠 속에서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하며 절규하지만, 결국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발견하고 구원을 찬양합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2절 시인은 네 번이나 "어느 때까지"라고 부르짖으며 응답 없는 하늘을 향해 깨어진 마음을 토로합니다. 이 탄식은 불신앙의 표출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깊은 신뢰에서 비롯된 진실한 기도입니다. 삶의 멍에가 우리를 짓누르고 주님이 얼굴을 가리신 것처럼 느껴질 때 억지로 괜찮은 척 감출 필요가 없습니다. 상처 입은 아픔을 그대로 쏟아 내는 정직한 탄식이야말로, 절망의 벽을 허물고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용기 있는 첫걸음입니다.
1-2절 '어느 때까지'로 번역된 히브리어 문구(아드-아나)는 '어디를 향하여', 혹은 '어디까지'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아드 아나"를 외치는 시인은 단순히 이 고통이 멈출 시각을 재촉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이 어두운 터널이 자신의 삶을 결국 어느 목적지로 인도할 것인지 그 영적인 좌표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의 '길이'가 아닌 고난의 '방향'을 묻는 순간, 탄식은 하나님의 섭리를 찾는 기도가 됩니다.
3-4절 원수들이 시인을 '사망의 잠'으로 밀어 넣으려 할 때, 시인은 여호와를 '내 하나님'이라 부르며 눈을 밝혀 달라고 간구합니다. 사망의 그늘에 갇힌 영혼에 생명의 빛을 비추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 구원의 길이라 믿은 것입니다. 인생의 거친 노도(怒濤)를 만날 때 우리의 환경을 바꾸어 달라고 하기보다,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선과 면밀히 접촉할 수 있는 영적 감각을 회복하게 해 달라고 먼저 구해야 합니다.
5-6절 시인의 절망이 갑자기 확신과 기쁨과 찬양으로 바뀝니다. 처해 있는 상황은 변한 것이 없지만, 시인의 시선이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히. 헤세드), 곧 언약 관계 안에서 결코 끊어지지 않는 신실하심과 인애하심으로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고난의 완전한 제거가 아니라, 변치 않는 주님의 사랑이 나를 붙들고 있다는 확신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가 그 신실하신 인애의 방향으로 삶의 닻을 내릴 때, 비로소 탄식은 승리의 노래로 승화됩니다.
기도
공동체-헤세드의 주님을 향해 마음을 돌려, 변함없는 사랑을 담대히 찬양하게 하소서.
열방-2022년과 2024년에 홍수로 수천 명이 사망한 파키스탄에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기후 위기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의 활동이 성과를 거둬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줄어들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