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물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엣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시집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1982)
[작품해설]
이 시의 화자는 시와 시인의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 답한다. ‘시가 뭐냐?’는 누군가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만 화자 – 시인은 시내를 배회하다가 ‘저물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 빈대떡을 먹’는다. 그러다가 문득 화자는, 자신이 길거리엣 만났던 사람들이야말로 고생스럽게 살면서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고, 이들이 바로 시인임을 깨닫는다.
그들이 바로 이 세상의 ‘알파’요, ‘고귀한 인류’요, ‘영원한 광명’이며 진정한 의미의 ‘시인’이라는 생각에 도달했다는 이 시의 진술은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이어서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시인은 유치하다고 생각할 만큼 단순한 이 진술 속에 인정이 사람다움의 기초라는 인식을 담아낸다. 이를 통해 시인은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는 자신의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한편, 현실 세계의 비정함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또한 그것이 시인이 행하여야 할 중요한 사회적 책무임을 우회적인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작가소개]
김종삼(金宗三)
1921년 황해도 은율 출생
일본 코요시마(豊島) 상업학교 졸업
1954년 『현대예술』에 시 「돌각담」 발표하며 등단
1957년 전봉건, 김광림과 함께 3인 공동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 발간
1971년 「민간인」으로 『현대시학』 작품상 수상
1978년 제10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84년 사망
시집 :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공저, 1957), 『본적지』(김광림⸱문덕수와 공저, 1968), 『십이음계』(1969), 『시인학교』(1977), 『북치는 소년』(1979),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1982), 『큰 소리로 살아있다 외쳐라』(1984), 『김종삼전집』(1989), 『그리운 안니 로니』(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