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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우 따라 아니오니골을 가다
1. 맨 왼쪽은 중청봉, 오른쪽 구름이 덮인 봉은 귀때기청봉
두고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고 뒤를 돌아다보며 계곡을 돌아 나가니 앞으로 염마(閻魔)처럼 막아서는 석가
봉, 뒤로 맹호 같이 덮누르는 신용(神容)이 천진봉(天眞峰)! 전후 좌우를 살펴봐야 협착(狹窄) 골짜기는 그저 그뿐
인 듯, 진퇴유곡의 절박함을 느끼며 그대로 걸어 나가니 간신히 트이는 또 하나의 협곡!
물에 감길 듯이 정겨운 황천강(黃泉江) 물줄기를 끼고 돌면 길은 막힌 듯 나타나고 나타나는 듯 막히고, 이 산에
흩어진 전설과 저 봉에 얽힌 유래담을 길잡이에게 들어 가며 쉬엄쉬엄 걸어 나가는 동안에 몸은 어느덧 심해(深海)
같이 유수(幽遂)한 수림 속을 거닐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 정비석(鄭飛石, 1911~1991), 「산정 무한」
▶ 산행일시 : 2023년 5월 27일(토, 금요무박), 흐리고 비
▶ 산행인원 : 7명(캐이, 술끊, 덩달이, 바람부리, 윈터, 동그라미, 악수)
▶ 산행코스 : 장수대, 대승폭포, 옛길, 서북주릉 1,381m봉, 남교리 갈림길, 1,362m봉, 1,363m봉, 아니오니골,
구만동, 용대리
▶ 산행거리 : 도상 13.0km
▶ 산행시간 : 13시간 10분
▶ 교 통 편 : 신사산악회(44명) 버스 타고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23 : 55 – 잠실역 9번 출구
01 : 20 – 인제, 편의점( ~ 02 : 00)
02 : 25 – 장수대, 산행준비, 산행시작(02 : 35)
03 : 00 - 대승폭포
03 : 50 – 옛길 갈림길, 조식( ~ 04 : 50)
05 : 45 – 서북주릉 1,381m봉, 휴식( ~ 05 : 58)
06 : 12 – 남교리(7.6km) 갈림길
06 : 40 – 1,362m봉
07 : 00 – 1,363m봉
09 : 20 – 아니오니골 합수점 근처, 중식( ~ 10 : 25)
13 : 00 – 석문
14 : 10 – 김부자 터
15 : 10 – 구만동, 한오름산장
15 : 45 – 용대리 삼거리, 산행종료, 석식( ~ 17 : 15)
17 : 35 – 버스 출발
18 : 18 – 철정휴게소( ~ 18 : 27)
19 : 45 – 동서울 강변역
2. 서북주릉 대한민국봉 주변
4. 큰앵초, 온통 큰앵초 세상이다
5. 연령초, 끝물이다
6. 설악산에는 날씨가 순식만변 한다. 중청봉은 안개에 가렸다
7. 큰개별꽃
8. 큰앵초
설악산 가는 신사산악회가 경유하는 잠실역 9번 출구다. 설악산을 가신다는 캐이 님을 만났다. 나는 한계령에서
서북능선으로 타고 탕수골 십이선녀탕을 지나 남교리롤 갈 예정이라고 하였다. 귀때기청봉 올라 털진달래를 보고
탕수골 내리면서 애기괭이밥 꽃도 보고, 복숭아탕도 볼 거라고 했다. 또한 거기서는 걸음걸음 전후좌우가 경점이지
않겠느냐 했다. 그러자 캐이 님이 설악산 일기예보 위성사진을 보여주며 09시부터 비가 내릴 거라고 한다. 귀때기청
봉 털진달래도 이미 졌다고 한다.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한계령에서 남교리까지 바위 섞인 산길 18km를 여러 봉우리 넘으며 가기가 결코 쉽지 않다. 거기를 혼자서 비와
안개 속을 가야 한다니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설악산 가는 차중에서 혹시나 하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지만
캄캄하다. 이럴까 저럴까 생각하느라 눈 못 붙이고 뒤척이며 인제에 왔다. 예전에는 무박 산행할 때면 한계삼거리
설악휴게소를 들르곤 했는데, 거기는 휴업한(?) 상태라 인제터미널 근처 편의점 앞에서 휴식하며 설악산 개방시간
03시를 맞춘다.
캐이 님 일행을 따라 아니오니골을 가기로 한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 나까지 7명, 대부대다. 모두 반가운 악우들이다.
장수대. 승용차 몇 대만 주차했을 뿐 적막한 산속이다. 장수대에서는 03시 이전이라도 철문을 열고 입산할 수 있다.
초정 김상옥(草汀 金尙沃, 1920~2004)은 「관동순례(關東巡禮)」에서, “일찍이 자장(慈藏) ㆍ 원효(元曉) ㆍ 진조
(晉照) ㆍ 환적(幻寂) 같은 불제자들이 들어와 고요히 참선하고 독경하던 산인데, 그리고 김매월(金梅月) ㆍ 김삼연
(金三淵) ㆍ 성창산(成昌山) ㆍ 권소유(權少遊), 심지어 김금원(金錦圓) 같은 여류시인이 들어와 고요히 시를 읊고
글을 짓던 산인데” 왜 하필 이런 명산에 장수들이 들어온 것에 한탄한다.
또한 노산 이은상(鷺山 李殷相, 1903~1982)은 『雪嶽行脚』에서 설악산에 드는 마음가짐을 경건하게 가다듬는다.
노산은 삼연 김창흡(三淵 金昌翕, 1653~1722)의 「葛驛雜詠」 제24수를 들면서, “隱欺치 못할 罪過가 내 몸 내 맘속
에 그득하고도 紅塵萬丈속에서는 秋毫半點이 보이지 않엇건만 이 거륵한 自然의 門前에 이르매 스스로 昭昭하여
雪嶽神에게 告하지 않을 수가 없음을 느낍니다.”라고 하였다.
설악산에서 갈역정사(葛驛精舍)도 지어놓고 은거생활을 하며 읊은 삼연의 「葛驛雜詠」 제24수는 다음과 같다.
觀迹超然物外身
求諸方寸愧平人
昭昭自有難欺者
罪我其惟雪嶽神
살아온 자취 돌아보니 몸은 초연히 세속을 벗어났건만
마음에게 물어보니 보통사람에게도 부끄럽기만 하구나
밝고도 밝은 마음이라 스스로 속이기가 어려운 것
나를 벌하는 것은 오직 설악산의 신뿐이라네
9. 중청봉
10. 귀때기청봉
11. 1,362m봉
12. 귀때기청봉
13. 구름에 가린 귀때기청봉
14. 맨 왼쪽이 구름에 가린 귀때기청봉
15. 대승령
16. 앞은 대승령, 그 뒤는 가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17. 맨 왼쪽은 중청봉
장수대 철문을 설악의 사나이 ‘청년 윈터’ 님이 연다. 다른 이들은 철문을 열 줄 몰라 철책을 넘으려고 했다. 하늘 높
이 솟은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의 넓은 길이 나오고 그 옆에 대승폭포와 대승령, 한계산을 읊은 여러 옛 문인의 시를
전시한 시판이 있다. 여류시인 김금원(金錦圓, 1814~ ?)의 시가 맨 먼저다. 그는 1830년 3월 14세 때 남장을 하고
설악산을 왔다. 그의 시다.
千峯突兀䅤天餘
輕霧初敍畵不如
好是雪岳奇絶處
大乘瀑㳍勝庶廬
천봉 우뚝 서 하늘 찌르는데
가벼운 안개 걷히니 그림도 그만 못하리
좋구나, 설악산의 기이한 절경이여
대승폭포가 여러 여산폭포보다 낫네
한계사(寒溪寺) 가는 길이라고 한다. 왼쪽 산자락에 흐릿한 인적이 보인다. 천년고찰인 한계사는 불이 자주 나서
다섯 번이나 절터를 바꾸었는데, 마침내 오늘날 백담사 된 것이라고 한다. 적막하여 사중폭포(四重瀑布) 물 흐르는
소리가 사뭇 조심스럽다. 긴 데크계단 오르막이 시작된다. 어쩌다 트인 하늘에는 별들이 초롱초롱 빛난다. 아니 볼
것을 보아버렸다. 비가 오지 않고 날이 맑을 것만 같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당초 계획대로 서북능선을 갔어야 했는
데 하는 아쉬움이 슬쩍 스친다.
35분을 냅다 치고 올라 대승폭포 관폭대다. 대승폭포가 잔다. 코 고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우리보다 먼저 오른
일단의 등산객들이 있다. 그들에게 자리를 인계받아 휴식한다. 빙 둘러앉아 입산주 탁주 나눈다. 지난주에 오가고
또 오는 길이라 익숙할 법도 한데 헤드램프 비춰 가는 길이라 낯설다. 계류 건너는 다리 위에 수수꽃다리가 피었다.
향기가 진하다. 지난주에 아침밥 먹던 장소가 여기던가 저기던가 기웃거리며 간다.
옛길 갈림길 약간 못 미처 계류 옆 공터가 그곳이다. 이른 아침밥 먹는다. 헤드램프 불 비춰 먹는다. 떡사리 넣은
부대찌개와 라면이다. 의정부 골목 부대찌개가 예전 맛이 아니라 형편없이 변했더라고 성토하며 먹는다. 나는 새벽
공기가 소슬하여 겉옷 껴입는데 바람부리 님은 소에 내려가서 알탕한다. 실은 입산을 위한 목욕재계이리라. 옛길로
간다. 이 길이 돌길 따라 대승령을 올라 안산 갈림길을 가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
오지산행 팀을 만난다. 반갑다 말을 다 할까. 그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오른다. 서로 산행코스가 비슷하다.
뵈는 것이 없으면 겁이 없는 법. 지난주에는 짙은 안개 속이라 뵈는 것이 없어 막 올랐는데, 오늘은 가파른 오르막이
빤히 보이고 뒤로 자꾸 물러나는 공제선이 아득하다. 그래서도 더욱 힘들다. 별들이 지자 하늘은 뿌예졌다. 주릉에
오르면 조망이 어떠할지 궁금하다. 급하다. 내가 앞서 나간다.
서북주릉에 오르고 배낭 벗어놓고 조망 살피러 대한민국봉 쪽으로 간다. 잡목 숲속 울퉁울퉁한 돌길이다. 1,381m
봉 근처로 조망이 트인 데에 왔다. 건너편 가리봉이 멋지게 보일 텐데 안개에 캄캄하니 가렸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
릴 듯한 기세다. 얼마나 다행인지. 이리로 오기 잘했다. 뒤이어 일행들이 오르고 가급적 신속히 비탐구간을 벗어난
다. 남교리 갈림길 지나고 산등성이 넘어 휴식한다. 이따금 수렴 사이로 기웃거려 보는 서북주릉은 운무가 유희한다.
등로 주변과 풀숲은 큰앵초(Primula jesoana Miq.)가 한창이다. 큰앵초는 홀로 피어도 아름답고 무리지어 피어도
아름답다. 너른 풀숲에 무리지어 피어 있는 모습은 일대 장관이다. 걸음걸음 밟지 않도록 조심한다. “큰앵초의 속명
프리뮬라(Primula)는 중세 라틴어로 ‘봄에 피는 첫 꽃’이라고 한다. 종소명 에조아나(jesoana)는 일본 간토 지역
이북에서부터 홋카이도에 이르기까지 일본 북부 지역에 널리 살았던 아이누 또는 홋카이도를 지칭하는 옛 이름
‘에조’에서 비롯하고, 한자 하이(蝦夷)에 대한 일본식 발음이다.”(김종원, 『한국식물생태보감 2』)
한글명 큰앵초는 일본말에서 따왔다. 일본명은 오오사쿠라소우(オオサクラソウ, 大櫻草)이다. 한자 앵초(櫻草)는
이른 봄에 벚나무 종류(櫻)처럼 예쁜 꽃이 피는 들풀(草)인 것에서 유래한다. 영어명은 Korean Primrose,
Yezo(Ezo) Primros이다.(김종원, 위의 책)
20. 큰앵초
22. 곰취, 하늘재 님 사진
23. 앞 왼쪽은 박쥐취, 독초다.
24. 노거수인 주목 앞에서 휴식
25. 노거수인 주목은 속이 비었어도 싱싱하게 살아 있다
26. 잡목 숲속에서 고고한 자태를 자랑하는 연령초를 보면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27. 아니오니골 상단
28. 연령초, 꽃이 지려고 한다
1,362m봉 정상은 키 큰 나무숲이 우거져 아무런 조망을 할 수가 없고, 건너편 1,363m봉의 깎아지른 바위 절벽 위
가 경점이다. 억센 잡목 숲이 빽빽이 우거져 거기에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수대로 교대하여 다가가 대승령
에서 중청봉에 이르는 장쾌 무비한 서북주릉을 바라본다. 운무가 순식만변 한다. 운무가 주릉을 가려버리자 우리는
안심하고 물러난다. 그리고 풀숲 사면 누빈다. 흩어져 누비다 길 잃을라 뭉쳐간다.
노거수인 주목을 본다. 그 앞에서 휴식한다. 이 주목은 속이 비었다. 그래도 잎은 푸르다. 나는 아직 이보다 더 큰
주목을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라는 두위봉의 주목도 이보다는 더 우람하지 않았다. 여기서
멀지 않는 곳에 이 주목보다 더 거대한 속이 꽉 찬 주목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큰 나무를 보면 엄숙해지고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꼭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아니오니골을 향한다. 골짜기가 가까워질수록 길이 험하다. 덩굴 숲
뚫고 이끼 낀 바위지대를 지난다.
길이랬자 내가 가는 데가 곧 길이다. 한편 내일 다리몸살 팔몸살 할지라도 재미난 길이다. 산악인 손경석(孫慶錫,
1926~2013)이 「가을 불영사 계곡 길에서」에서 본 그런 골짜기다.
“태고의 밀어를 간직하고 태고의 원색을 재현했으며 원시의 자연이 구성되어 있다. 구차한 말이 이를 따르지 못하
며 옹색한 색이 이를 좇지 못한다. 시인이 수없이 감탄사를 연발하다가 이을 길을 잊을 게고, 범인이 속세의 죄를
여기서 뉘우치게 된다.”
아니오니골 상단 합수부 근처에서 이른 점심밥 먹는다. 산을 오는 이유 중 하나인 점심이다. 덩달이 님과 같이 오는
날이면 미식에 포식한다. 재작년에 대둔산에서 이베리코가 그랬고, 오늘은 와규가 그러하다. 캐이 님이 최근에 캔
더덕을 가져와서 더덕주를 만들었다. 곰취는 윈터 님이 무한 공급한다. 셰프는 바람부리 님과 동그라미 님이다.
삼합은 이를 말한다. 식후 아이리스 커피 모양내어 마가목주를 살짝 섞은 커피로 입가심한다. 만복이 되어 일어난다.
계곡 양쪽 비탈진 사면을 번갈라 내리다 계곡 너덜을 지난다. 얼근했던 술기운은 진작 다 달아났다. 계곡은 순해졌
는가 하면 다시 사납기를 반복한다. 계류는 실폭으로 흐르다가 너덜 밑으로 복류한다. 석문을 지나기 전이다. 협곡
왼쪽의 가파른 사면을 트래버스 할 때였다. 바람부리 님이 맨 앞장서고, 그 뒤는 동그라미 님이, 그 바로 뒤에는
술끊 님이 가고, 그 뒤를 나는 좀 더 떨어져서 갔다.
으악! 하는 비명(?)이 들리기에 순간 앞을 바라보니 술끊 님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곧이어 쿵하고
계곡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겠지 하고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술끊 님을 구조하러 동그라
미 님은 그 절벽을 주춤주춤 내려가고, 나는 계곡으로 내려갔다. 얼마나 다쳤을까. 앞이 캄캄했다. 여기는 구조 헬기
가 접근할 수 없는 깊은 계곡이다. 술끊 님은 절벽 나뭇가지에 걸리는 바람에 더 이상 추락하지 않았다. 한 바퀴
구르면서 떨어지고 우선 보기에는 이마에 상처만 났다.
술끊 님 본인도 그 순간 죽는 줄로만 알았다고 한다. 천행이었다. 술끊 님 아내의 기도발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길을 잘못 들어 그런 줄 알았는데 그 절벽 위의 가파른 사면을 트래버스 하는 게 외길이었다. 앞으로도 그런 험로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 설악신의 경고는 엄했다. 가파른 사면을 트래버스 할 때마다 오금이 저린다. 계곡도 지나기
수월하지 않다. 캐이 님은 엎어지면서 소에 머리를 박아 물을 배부르게 들이켰다고 한다. 나 역시 계류 가까운 바위
슬랩을 지나면서 매어 있는 슬링을 잡았는데도 된통 미끄러지는 바람에 무릎이며 팔꿈치가 멍들었다.
자빠지고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엎어지고 성한 사람이 없다. 윈터 님이 향도한다. 비가 제법 내리기 시작한다. 이미
온 비까지 맞는다. 비에 젖은 풀숲 헤치니 금방 다 젖는다. 김부자 터를 지나자 길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김부자 터
는 널찍한 평원이다. 아직 김부자 터라고 단정하기에는 이르다고 한다. 사기그릇 등 사람이 산 흔적은 보이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될 우물을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물을 얻으려고 계곡까지 내려가기에는 너무 멀다. 청년 윈터 님
의 얘기다.
절벽 아래 벌통집과 제단 지나고 목책 넘어 한오름산장이다. 구만동 마을이다. 살았다. 우산 받치고 대로 따라 용대
리로 간다. 용대리 삼거리 중국음식점에 들어간다. 국밥과 쟁반짜장 주문하고 점심때 마신 페트병 더덕주 더덕을
꺼내 더 짜낸다. 잔 들어 무사산행(無死山行)을 자축한다.
29. 는쟁이냉이, 산갓이라고도 한다
30. 아니오니골, 바람부리 님이 이곳에서도 선녀 대신 알탕하였다.
31. 가운데 멀리 봉우리는 응봉 능선
32. 천남성
33. 아니오니골, 계류는 복류한다
34. 함박꽃나무
35. 아니오니골
36. 구만동 주변
37. 구만동에서 용대리 가는 길, 수레국화
첫댓글 그만하길 다행입니다. 천운입니다.올라갈때는 그래도 길찾기가 수월한데 내려가는 길은 쉽지 않은 길이 아니오니골입니다. 오지팀도 12년전엔가 내려오면서 엄청 고생했던 생각이 나네요.
며칠전에 올라가면서 찍은 아니오니골에서 가장 큰 폭포입니다.
그렇습니다.
비도 많이 내리지 않았기에 다행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즐거웠던 하루였습니다.^^
큰일날뻔 했군요. 다행입니다...근데 설악을 아주 뽕 빼시네요^^ ...아껴서 다니세요. 닳아요^^
그러렵니다.
그러면 당장 갈 데가 마땅치 않으니 고민이고. ^^
형님 저는 내년에는 감자밭등이나 갈람니다요. 내 스틱은 걍 주목 근처에 있겠구안ㅇ르
칼바위 님 스틱은 속이 비지 않은 주목 근처에 두었다고 했잖아요.
거기는 하늘재 님이 갔어요.^^
내년에는 이곳 저곳 두루 두루 다니세요.^^
위치가 어디인가요 저한테 카톡을 넣어주세요. 응봉가는데 있는 주목인가요? 혹시 가면 제가 찾아 드릴게요.
@하늘재(김석호) 응봉가는데 있는 주목 근처 맞어요
햐~ 산행기 좇아다니며 읽는 것도 바쁘네요. 부럽고 부럽습니다. 안산하시길!
나이에 비례하여 느는 것이 겁입니다.
무슨 미련이 있다고 이제는 겁나는 게 겁납니다.
아니어니골이 의외로 험하지요. 술꾼은 그나마 다행입니다...김부자터를 찾기는 해야 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