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2. 큐티
시편 30:1 ~ 5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관찰 :
1) 표제어
- 다윗의 시, 곧 성전 낙성가 => 본 시편은 다윗이 쓴 시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성전 낙성식을 위해 본시를 지었다기 보다는 후대의 사람들이 시편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성전 낙성가로 합당하여 그렇게 사용했기 때문에 이러한 명칭이 붙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12절로 이루어진 비교적 짧은 본문임에도 불구하고 10번 “여호와”라는 성호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와 “당신”이 13회, “내 하나님”이 2회 사용되었습니다. 이 시편이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다윗은 본 시편의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과 자신의 친밀함을 부각시키고자 하고 있습니다.
2) 주님을 찬양하는 이유
- 1절.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 본 절은 “כִּי”(키, 왜냐하면)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시편 30편은 그래서 찬양으로 시작해서 찬양으로 마무리됩니다. 본 시편에서 다윗은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두 가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주께서 다윗을 끌어내셨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는 우물에서 끌어낸다는 의미도 있지만 죽음의 위기로부터 건져낸다는 의미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로 다윗은 그의 대적들로 하여금 기뻐하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에 여호와를 찬양할 수밖에 없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의미는 대적이 파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미워하는 자들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해악을 끼치는 자들에 대해서 파멸이 임하게 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는 단지 두 가지의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다윗이 본 시편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여러번 부르고 있는 것을 통해서, 또한 다른 표현으로 계속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계심 자체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는 것을 짐작하게 됩니다.
- 2절.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 다윗은 자신의 과거 경험을 짧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죽을 병에서 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윗이 하나님께 치유해 주실 것을 간절히 간구했고, 하나님이 응답해 주심으로 치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된 간증입니다. 그로 인해서 다윗은 아무리 큰 문제와 환난을 만나고 고통스런 상황이 자신을 짓누른다 해도 그로 인해서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체험했고, 하나님의 존재하심 그 자체로 인해서 다윗은 언제나 소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 3절.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 “여호와”는 시편 30편에서 10번 이나 사용되고 있는 본 시편의 핵심 단어입니다. “엘로힘”이 하나님의 권능과 전능하심, 그리고 창조주 되심을 구체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하나님의 성호라면 “여호와”는 하나님의 자존성을 강조하거나 하나님의 사역과 관련하여 하나님이 구속주이심을 드러내는 성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여호와”는 언약적인 측면과 관련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성실히 이행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명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다윗은 본 시편에서 의도적으로 12절 중에 거의 대부분의 절에서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성호를 사용함으로 구원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행사와 다윗 자신과의 특별한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거의 죽게 되었었는데, 약속대로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성도(백성)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라
- 4절.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 다윗은 백성들에게도 여호와를 향하여 감사와 찬양을 돌릴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성도들은 여호와의 ‘헤세드’를 구하며 그에 대한 응답으로 그의 거룩한 성품과 능력을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체험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헤세드를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 약속받은 언약 공동체의 구성원들로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 5절.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 다윗은 다시금 본 절에서 “כִּי”(키, 왜냐하면)를 사용하여 언약 공동체의 구성권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해야 하는 이유로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로우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은혜로우심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윗은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분노는 죄에 대한 의로운 반응이며,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를 이끌어 내기 위한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으로 하여금 잘못된 길을 버리고 의로운 길을 걷도록 도와주시려는 하나님의 은총의 또다른 표현인 것입니다. 다윗은 그렇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는 “잠깐”이라는 것입니다. 어둠이 몰려드는 저녁은 진노를 상징하고, 동이 터오는 아침은 여호와의 구원을 상징합니다. 다윗은 밤에 울음이 찾아오더라도 아침이 되면 손님처럼 떠나게 될 것이라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신 다른 손님인 “기쁨”이 찾아오게 될 것이라 노래하고 있습니다. 밤이 지나면 아침이 찾아오듯이 여호와께 회개하고 그 죄를 용서받은 자는 죄로 인해 받고 있는 모든 고통과 눈물을 잊어버리고 여호와께서 주시는 평강과 기쁨을 맞이하게 될 것임을 고백적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가르침 :
1)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구원해 주셨고, 대적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하셨음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구구절절 “여호와”를 찾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론적인 이유로 하나님을 찬양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어떤 일과 공로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이 존재하심 그 자체가 다윗에게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였던 것입니다.
2) 다윗은 자신의 백성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고 오고 오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기에 다윗은 자신의 역량이 미칠 수 있는 모든 이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3) 다윗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진노는 순간이고, 하나님의 은총은 평생이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헤세드를 경험했기 때문에 노래할 수 있는 간증입니다. 하나님의 진노 역시 사실은 은총을 베푸시기 위한 은혜의 방편이라는 것을 다윗은 알았던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진노에 빠르게 회개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은총을 더 크고 풍성하게 누리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적용 :
1)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저의 경우도 미얀마로 오는 과정, 그리고 지금까지의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존재하심 자체가 제게 소망이고 찬양의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시다면 이 세상은 지옥 그 이상의 고통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존재하시기에, 궁극적으로 성취될 하나님의 공의가 있을 것이기에 기쁨을 회복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심 그 자체가 찬양의 이유입니다. 그것을 깊게 깊게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주님을 찬양합니다.
2) 하나님의 진노는 잠깐이요 하나님의 은총은 평생이라는 것이 또한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도록 사인을 주시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 때 회개하면 하나님은 은총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소망스러운 하나님이신지요! 진정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