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진리인 말씀이 하나님의 법이라 할 수 있고, 사실 이 시간 우리들이 가까이 하고 있는 두꺼운 성경책의 말씀 하나하나마다 모두 직간접적인 하나님의 법이 아닌 것일 수가 없는데 그렇기에 오늘날 모든 인생들에 있어 따지고 보면 하나님의 셀 수 없는 법들 앞에서 꼭 원죄를 거론하지는 않더라도 그 누구라도 억만 죄인이 아닌 자들이 없는 것인데..
무엇보다 만일 그 누군가가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되었다는 것은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참으로 겨자씨 정도의 믿음으로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원죄 뿐 아니라 그와 같은 억만 죄악들에서의 사함이자 나음이며 의롭다고 칭함 받게 된 것임을 의미하고, 더 나아가 실상 이미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온전히 거듭나게까지 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가면서 범하게 되는 크고 작은 죄악들에 있어서 결코 그러한 죄악들을 가볍게 여겨도 된다거나 죄악이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만만한 것이라거나 실상 죄악들을 범해도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사실상 실제로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 삶의 자리와 인류 역사의 현장들 속에서 범하게 되는 여러 모양의 죄악들에 있어서 진정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조화되시고 완전히 하나되시며 상상을 초월하는 힘과 은혜로 역사하시고 절대적으로 함께 인 치심으로 이미 참예케 된 구원이라는 것이 중간에 돌이켜 지는 차원인 것일 수는 없는 것이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더욱 사랑하셔서라도 그 죄악들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들에 따라, 또한 하나님 아버지의 시간과 계획과 섭리에 따라 일정 시간 하늘의 힘과 응답과 형통들 등은 막으시곤 하는 것이고 그 대신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징계와 곤고함들을 아끼지 않으시곤 하는 것인데..
아무튼 억만 죄악들도 한 순간에 믿음으로 자복하고 돌이킴과 함께 사함 받고 나음을 입게 되며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과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까지 얻고 누리게 되는 것이 구원의 세계인 것이고 믿음의 역사인 것이며 무엇보다 회개와 나음의 실제임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서 어둠의 세력들이 우는 사자들과 같이 삼킬 자들을 찾는 이 험악한 세상에서 사는 한 죄악들을 범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기에 그에 있어서 당연히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한 사함과 회복들, 또다시 새로워짐과 얼마든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들 등이 없을 수는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의 삶의 자리에서의 크고 작은 죄악들에 있어서의 자복이나 회개들에 있어 사함과 나음들, 회복과 역전들에 대한 확신이 없어 보이거나, 또는 아주 막연하고 추상적이거나 심지어는 잘못 알고 있거나, 더 나아가 실질적으로 회개와 돌이킴들을 가볍게 여기면서 그로 인한 놀라운 능력과 복들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모순 아닌 모순들이 있음을 자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머리털보다 많고 억만 죄인이 아닐 수 없는 자들이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한 순간에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고 의롭다고 칭함 받으며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곧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로 뒤바뀔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범하게 되는 크고 작은 죄악들에 있어서도 그 이름으로 자복하고 돌이킴과 함께 실제로 얼마든지 사함과 나음들이 있을 수 있고, 회복과 역전들도 생생할 수 있다는 것이며, 그것이 생각 이상으로 당연하고 마땅할 수밖에 없음은 실상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이신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께서 정말 구원자이시고 그러한 모든 죄악들과 그로 인한 문제들보다 더 크시며, 그러한 예수님으로 인한 구원의 일들 속에 하나하나 모두 다 포함되는 것이고 전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고..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마다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경험케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것이기 때문이며..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으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 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하나하나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누리고 경험하며 이뤄지고 성취되어 지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이고..
근원적으로는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실 뿐 아니라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단 한 시라도, 단 한 번이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아래 본문에서도 잘 알 수 있는 것처럼 구주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인 구약 시대에 있어서도 처음의 회심과 구원의 일들, 삶의 자리에서의 자복과 사함들 등에 있어 그러한 이치와 원리는 완전히 동일한 것이고,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에 다 포함되고 전적으로 직결되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한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이고, 무엇보다 그 모든 길과 통로와 접점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이 아니실 수 없는 것인데..
다만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할 수 있도록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창세기 3장의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계시, 아벨의 양의 첫 새끼로 올려 드린 희생 제사, 다양한 희생 제물과 피 제사들, 유월절 어린 양, 광야 모세를 통한 장대 위의 놋뱀, 회막, 성전, 제사장, 선지자, 믿음의 선배들을 통한 약속과 계시들 등과 같은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었던 것일 뿐 아니라 그와 마찬가지의 방법과 이치로 인해 오늘날 우리들이 사도 바울처럼 순간순간마다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죄악과 세속과 정욕들 등으로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이 아닌 치열한 말씀의 결단과 몸부림들로 인한 살아 있고 깨어 있는 신앙이 될 수 있는 것이듯이 아래 본문의 기자인 다윗을 위시해서 모든 신실한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마다 날마다 죄악들과 싸울 수 있었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 있어서는 자복하고 돌이킬 수 있었던 것이며, 게다가 그로 인한 사함과 나음들, 회복과 역전들도 실제로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고, 더 나아가 주야로 더욱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살아 있고 깨어 있으며 치열하고 뜨거운 믿음들도 될 수 있었던 것이며, 심지어 다윗 같은 경우는 간음과 살인 교사와 유사해 보이는 있을 수 없는 죄악에서도 사함을 받게 되고 나음을 입게 되며 모든 게 합력하여 선이 되고 완전히 역전이 되며 그 누구보다 연단되고 치열해진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을 회복하고 더욱 성장하게 되어 오늘날 우리들에 이르기까지 깊은 도전과 영향력들이 되는 믿음의 대선배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시편32:5)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3년 8월 4일(금)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