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語集註大全卷之十八
미자(微子) 제십팔(第十八)
此篇多記聖賢之出處, 凡十一章. 이 篇은 聖賢들의 出處를 많이 기록해 놓았다. 모두 11장이다. 미자 제1장. 微子去之 箕子爲之奴 比干諫而死 미자는 떠나가고 기자는 종이 되고 비간은 간하다가 죽었다.
微箕 二國名 子 爵也 微子 紂庶兄 箕子比干 紂諸父 微子見紂無道 去之以存宗祀 箕子比干皆諫 紂殺比干 囚箕子以爲奴 箕子因佯狂而受辱 微와 箕는 모두 나라이름이다. 子는 작위명이다. 미자는 주왕의 서출 형이다. 기자와 비간은 주왕의 숙부다. 미자는 주왕의 무도함을 보고서 그를 떠나가 종묘사직을 보존하였다. 기자와 비간은 모두 간언하였으나, 주왕은 비간을 죽였고, 기자는 가두어 노비로 삼았다. 이에 기자는 가짜로 미친 체 함으로 인해서 모욕을 받았다.
史記宋世家 微子者殷帝乙之首子而紂之庶兄也 紂旣立不明淫亂於政 微子數諫不聽 度終不可諫遂亡 箕子者 紂親戚也 紂始爲象著 箕子歎曰 彼爲象著 必爲玉杯 爲玉杯則 必思遠方珍怪之物而御之矣 輿馬官室之漸自此始不可振也 紂淫泆 箕子諫不聽乃被髮佯狂而爲奴 王子比干者 亦紂之親戚也 見箕子諫不聽而爲奴 則曰君有過而不以死爭 則百姓何辜 乃直言諫紂 紂怒曰 吾聞聖人心有七竅 信有諸乎 乃遂殺比干刳視其心 微子曰 父子有骨肉而臣主以義屬 故父有過 三諫不聽 則隨 而號之人臣 三諫不聽 則其義可以去矣 於是遂行 周武王伐紂克殷 微子乃持其祭器造軍門 於是武王乃釋微子復其位如故 사기 송세가에 의하면, 微子라는 사람은 은나라 왕 제을의 큰아들로서 주왕의 서출 형이다. 주왕이 이미 즉위하였지만 밝지 않아, 政事에 과도하고 어지러웠다. 微子가 여러 차례 간언하였지만 듣지 않자, 끝내 간언할 수 없음을 헤아려서 마침내 도망쳐버렸다. 箕子라는 사람은 주왕의 친척이다. 주왕이 처음에 상아로 된 젓가락을 만들었는데, 기자가 탄식하며 말하길, ‘저 왕이 상아 젓가락을 만들었으니, 반드시 옥으로 된 술잔을 만들 것이고, 옥 술잔을 만든다면 반드시 먼 지방의 진귀하고 괴이한 물건을 생각하여 그것을 거느리려 할 것이며, 수레와 말, 관원과 궁실의 사치도 점차 이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떨쳐낼 수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왕이 음란하고 방탕하여 기자가 간언해도 듣지 않자, 마침내 머리를 풀어헤치고 미친 척하여 노예가 되었다. 왕자 비간이라는 사람도 역시 주왕의 친척이다. 기자가 간언하여도 듣지 않자 노예가 된 것을 보고서 말하길, ‘임금에게 잘못이 있어도 죽음으로써 간쟁하지 않는다면, 백성들을 어찌 나무랄 수 있단 말인가?’라고 하면서 도리어 직언으로 주왕에게 간언하였다. 주왕이 노하여 말하길, ‘내가 듣기로 성인의 심장에는 7개의 구멍이 있다고 하는데, 정말로 그러한 것이 있소?’라고 하고는 마침내 비간을 죽여서 그 심장을 갈라보았다. 미자가 말하길, ‘부자에게는 골육의 정이 있지만, 신하와 군주는 義로써 묶여진 것이다. 그래서 아비에게 잘못이 있으면 3번 간언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그냥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신하로 불리는 사람은 3번 간언하여 듣지 않는다면, 그 義에 있어서 떠나갈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이에 마침내 떠나갔다. 주나라 무왕이 주왕을 치고 은나라를 이기자, 미자는 오히려 그 祭器를 가지고 주무왕의 군문에 나아갔다. 이에 무왕은 마침내 미자를 풀어주고, 그 지위를 옛날처럼 회복시켜 주었다. 孔子曰 殷有三仁焉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은나라에 세 어진 사람이 있었다.”라고 하셨다.
三人之行不同 而同出於至誠惻怛之意 故不咈乎愛之理 而有以全其心之德也 세 사람의 행동은 같지 않았지만 모두 지극한 정성과 측은해하고 아파함의 뜻에서 나왔기 때문에, 사랑의 이치에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그 마음의 덕을 온전히 할 수 있었다.
楊氏曰 此三人者 各得其本心 故同謂之仁 양씨가 말하길, “이 세 사람은 각자 그 본래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에, 모두 똑같이 어진 사람이라 일컫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微子之去欲存宗祀 比干之死欲紂改行 可見其至誠惻怛處 不知箕子至誠惻怛何以見 朱子曰 箕子比干都是一樣心 箕子偶然不衝著紂之怒 不殺他 然見比干恁地死 若更死諫無益於國 徒使君有殺諫臣之名 他處此最難 微子去却易 比干一向諫死又却索性 箕子在半上落下 最是難處 被他監繫在那裏 不免佯狂 所以易中特說 箕子之明夷 可見其難處 故曰 利艱貞 晦其明也 內難而能正其志 箕子以之 他外雖狂 心則定也 누군가 묻기를, “미자가 떠난 것은 종사를 보전하고자 함이었고, 비간이 죽은 것은 주왕의 행실을 고치고자 함이었으니, 그 지극히 정성스럽고 측달한 부분을 알아볼 수 있지만, 기자가 지극히 정성스럽고 측달하였다는 것은 무엇으로써 알아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기자와 비간은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기자는 우연히 주왕의 노여움을 맞닥뜨리지 않아서 주왕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비간이 이렇게 죽는 것을 보고서도, 만약 다시 죽음으로써 간언한다면, 나라에 유익함이 없고 헛되이 임금으로 하여금 간언하는 신하를 죽인다는 오명을 갖도록 할 것이니, 그가 이 일을 처리하는 것이 제일 어려웠을 것이다. 미자가 떠나간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이고, 비간이 줄곧 간언하다가 죽은 것도 또한 도리어 강직한 것이지만, 기자는 절반쯤 오르다 떨어졌으니 제일 처신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에 의하여 그곳에 묶여서 억류되었으니, 거짓으로 미친 척하는 것을 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주역 안에서 특히 말하길, ‘기자의 밝고 온화함’이라 하였으니 그 처신하기 어려움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말하길, ‘곤란할 적에 올곧음을 이롭다고 여기는 것은 그 밝음을 어둡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안으로는 어렵지만 능히 그 뜻을 바르게 하는 것, 이것을 기자가 취하였으니, 그는 비록 겉으로는 미친 사람이었지만 마음은 곧 굳게 안정된 사람이었다.”라고 하였다. 或問按殷紀微子先去 比干乃諫而死 然後箕子佯狂爲奴爲紂所囚 蓋微子帝乙元子當以先王宗祀爲重 義當早去 又決知紂之不可諫也 故遂去之而不以爲嫌 比干少師義當力諫 雖知其不可諫而不可已也 故遂以諫死而不以爲悔 箕子見比干之死 則知己之不可諫 且不忍復死以累其上也 見微子之去 則知己之不必去 且不忍復去以背其君也 故佯狂爲奴而不以爲辱 此可見三仁之所爲易地皆然 或以爲箕子天畀九疇未傳而不敢死 則其爲說迂矣 同謂之仁者 以其皆無私而各當理也 無私故得心之體而無違 當理故得心之用而不失 此所以全心之德而同謂之仁歟 史記三子之事與夫子此言 先後不同者 史所書者 事之實 此以事之難易爲先後耳 或問에 이르길, 사기의 은본기에 따르면, ‘미자가 먼저 떠났고, 비간이 마침내 간언하다가 죽었으며, 그러한 후에 기자가 미친 척하여 노예가 되어 주왕에게 구금되었다’고 하였다. 대체로 미자는 선왕 제을의 원자(큰아들)였으니 마땅히 선왕과 宗祀를 귀중하게 여겨야 하기에, 義에 비추어 마땅히 일찍이 떠나야 했으며, 또한 주왕에게 간언할 수 없음을 확실하게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떠나면서도 이를 불만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비간은 少師였기 때문에, 義에 비추어 마땅히 힘써 간언해야만 했다. 비록 주왕에게 간언할 수 없음을 알았더라도, 그만두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간언하다가 죽으면서도 후회스럽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기자는 비간의 죽음을 보았기에 자신도 간언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또한 다시 죽음으로써 차마 자기 윗사람에게 누를 끼치지 못하였던 것이다. 미자가 떠난 것을 보았으므로, 자신마저 떠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으며, 또한 자기까지 또 떠남으로써 차마 제 임금을 배반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미친 척을 하여 노예가 되었으면서도 모욕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에서 세 분의 仁人께서 행한 바가 서로 입장이 바뀌었어도 모두 또 그렇게 하였을 것임을 알아볼 수 있다. 혹자는 기자가 하늘이 수여한 九疇를 미처 전하지 못하여 감히 죽을 수 없었다고 생각하기도 하나, 그 말은 너무 우활한 것이다. 세 분을 모두 함께 仁人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모두 사사로움이 없으면서 각자 이치에 합당했기 때문이다.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에, 마음의 體를 얻어서 이치에 어긋남이 없고, 이치에 합당하기 때문에 마음의 用을 얻어서 잃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덕을 온전히 하는 방법이면서, 그들을 모두 함께 어진 사람이라고 말하는 까닭이 아니겠는가? 사기에서 기록한 세 분의 일이 공자께서 여기에서 하신 말씀과 그 선후가 다른 것은 사기에서 쓴 것은 일의 실질이고, 여기에서는 일의 난이도를 선후로 삼았기 때문일 따름이다. 張氏庭堅曰 死者非沽名 生者非懼禍 而引身以求去者 非要利以忘君 仁之所存 義之所主 其去就死生 不在於一身而在於天下國家也 장정견이 말하길, “죽은 사람은 명성을 사고자 함이 아니고, 산 사람도 화를 두려워한 것이 아니었지만, 제 몸을 이끌어 떠나기를 구한 것은 잇속을 구하여 임금을 잊고자 함이 아니라, 그것이 仁이 보전된 바이고 義가 주재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떠나거나 나아가거나 혹은 죽거나 사는 것 모두 제 한 몸에 달려 있지 않고, 오히려 천하나 國이나 家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勉齋黃氏曰 或問言仁與集註不同者 先師言仁之義 則固以心之德愛之理爲主矣 言人之所以至於仁 則以爲無私心而皆當理也 或問之言 指三子之所以至於仁而言也 集註之言 正指仁之義而言也 然其曰不咈乎愛之理而有以全其心之德 曰全 曰不咈 則或問之意 亦在其中矣 讀者默而識之 可也 면재황씨가 말하길, “혹문에서 仁을 말하는 것이 집주와 다른 것은, 先師께서 仁의 뜻을 말할 적에, 본래부터 마음의 덕과 사랑의 이치를 위주로 하였기 때문이고, 사람이 仁에 이르는 방도를 말할 적에는, 사심이 없어서 모두 이치에 합당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혹문의 말은 세 분이 仁에 이른 방도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고, 집주의 말은 바로 仁의 뜻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이치를 어기지 않고서, 그 마음의 덕을 온전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온전하게 함도 말하고 어기지 않음도 말한 것이니, 곧 혹문의 뜻도 역시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다. 독자들이 묵묵히 알아내면 되는 것이다.”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愛之理 分言之仁也 心之德 專言之仁也 不咈乎愛之理 指惻怛而言 有以全其心之德 指至誠而言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사랑의 이치는 나누어 말한 仁이고, 마음의 덕은 오로지 말한 仁이다. 사랑의 이치를 어기지 않는다는 것은 惻怛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고, 그 마음의 덕을 온전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지극한 정성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厚齋馮氏曰 三人者 不特爲國大臣又有親屬之愛存焉 使爲大臣而已也 以道事君 不可則止 惟其有親屬之愛 宗祀存亡 寔同休戚 故或死或去或囚而不辭 是以謂之仁 후재풍씨가 말하길, “세 사람은 단지 나라의 대신이었을 뿐 아니라 또한 친척의 사랑도 있었던 것이다. 만약 대신일 따름이었다면 道로써 임금을 섬기다가 안 되면 그만두는 것이다. 오직 그들에게 친척의 사랑과 종사의 존망이 있었기 때문에, 진실로 편안과 근심을 같이 한 것이었다. 그래서 혹자는 죽었고 혹자는 떠났으며 혹자는 구금되었으면서도 이를 사양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이들을 어질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前三句 門人因孔子殷有三仁一句 却記上三事爲提頭 然當時所記 必有次序 當箕子未奴比干未死時 微子已有去志 書曰 我其發出狂 吾家耄遜于荒 箕子又勉其去曰 詔王子出迪王子弗出 我乃顚隮 則微子之去在先無疑 其次箕子之奴 比干之死 雖未知孰先孰後 竊意箕子之諫必在先 是時紂尙能容止囚奴之而已 及比干繼之則忿嫉已甚 故竟殺之 三人之行雖不同 皆非有所爲而爲之也 或問據史記殷紀 以爲箕子之奴 在比干旣死之後 次序與此不同 疑當以論語爲正 又曰 集註於伯夷叔齊求仁得仁章曰合乎天理之正 卽乎人心之安 於此 則云不咈乎愛之理 此處便有差等 皆合字卽字是順說 不咈 則似有所咈而實無所咈 且如微子是紂之兄 箕子比干是紂之諸父 皆同姓之親 今或去或奴或諫死 皆似傷乎愛之理 然其本心只是愛君憂國 皆有至誠惻怛之意 故曰 不咈乎愛之理 中庸稱舜曰大德必得其名 至武王只說不失天下之顯名 蓋武王殺紂 似乎失名 其實不失 쌍봉요씨가 말하길, “앞의 세 구절은 문인들이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은나라에 세 분의 어진 사람이 있었다’는 한 구절을 바탕으로 하였지만, 도리어 세 가지 일을 기재하여 넣어서 첫머리로 삼았다. 그러나 당시 기록한 바에는 반드시 순서가 있었을 것이다. 기자가 아직 노예가 되지 않았고, 비간이 아직 죽지 않았을 당시에도, 미자는 이미 떠날 뜻을 가지고 있었다. 서경에 이르길, ‘우리 이 광기를 드러내자, 우리 집 늙은이들이 황야로 숨어버렸다.’고 하였고, 기자가 또 그에게 떠날 것을 권면하며 말하길, ‘왕자에게 떠나가는 도리를 알려주었으니, 왕자가 나가지 않으면, 우리의 종사는 마침내 거꾸러졌다 올라가 뒤죽박죽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미자가 떠나간 것이 먼저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다음에 기자가 노예가 된 것과 비간이 죽은 일은 비록 어떤 것이 먼저고 어떤 것이 나중인지 알지는 못하지만, 나는 기자의 간언이 반드시 먼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당시에 주왕은 아직 구금하고 노예로 만드는 것에 그침을 용납하였을 뿐이다. 비간이 계속하여 간언함에 이르자, 분노와 미워함이 너무 심하게 되었기 때문에, 뜻밖에도 그를 죽였던 것이다. 세 분께서 행하신 바는 비록 달랐지만, 모두 어떤 목적이 있어서 행하신 것은 아니었다. 혹문에서는 사기의 은본기에 의거하여, 기자가 노예가 된 것은 비간이 이미 죽은 다음에 있었다고 여겼는데, 순서가 이와 서로 같지 아니하니, 마땅히 논어를 옳은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한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길, “집주는 백이숙제가 인을 구하여 인을 얻었다는 장에서 말하길, ‘천리의 올바름에 부합하고 인심의 편안함에 나아간다’고 하였지만, 여기에서는 사랑의 이치를 어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부분에서 바로 차등이 있는 것인데, 모두 合자와 卽자는 순응하여 말한 것이지만, 어기지 않는다는 것은 마치 어기는 바가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어기는 바가 없는 것이다. 또한 미자의 경우는 주왕의 형이었고, 기자와 비간은 주왕의 숙부였으니, 모두 같은 성을 가진 친척이었다. 지금 혹자는 떠나고 혹자는 노예가 되고 혹자는 간언하다 죽는 것이 모두 사랑의 이치를 손상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그 본심은 그저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것일 따름이고, 모두 지극한 정성과 惻怛의 뜻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길, 사랑의 이치를 어기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중용에서 순임금을 칭송하여 말하길, ‘大德은 반드시 그 명성을 얻는다’고 하였고, 무왕에 이르러서는 그저 ‘천하에 드러난 명성을 잃지 않는다’고만 말하였다. 대체로 무왕이 주왕을 죽인 것이 명성을 잃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잃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至誠惻怛 蓋謂三仁愛君憂國 皆非有所爲而爲也 一有所爲而爲之 則雖有惻怛之意而非出於至誠矣 至誠者 仁之存 惻怛者 仁之發 集註特下不咈二字 蓋自上文不同字生來 三子之行不同 其跡似相違 以去者爲仁 則不去者 似咈乎仁矣 以死者爲仁 則不死者似咈乎仁矣 惟其皆有至誠惻怛之意 則其去就死生 雖不同而皆不咈乎愛之理 卽所以全其心之德也 운봉호씨가 말하길, “至誠과 惻怛이라 함은 대체로 세 분의 어진 사람이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한 것이 모두 어떤 목적이 있어서 행한 것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일단 어떤 것을 위하여 하는 것이 있다면, 비록 측달의 뜻이 있을지라도, 곧바로 지극한 정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것이다. 至誠이라는 것은 仁을 보전함이고, 惻怛이라고 하는 것은 仁을 드러냄이다. 집주에서 특별히 어기지 않음이라는 두 글자를 쓴 것은 대체로 윗글의 서로 다름이라는 글자로부터 생겨난 것 같다. 세 분이 행하신 바가 같지 않다는 것은, 그 자취가 서로 어긋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니, 떠나는 것을 仁이라고 여긴다면, 곧 떠나지 않는 것은 마치 仁을 어기는 것처럼 보인다. 죽는 것을 어진 것으로 여긴다면, 죽지 않는 것은 마치 仁을 어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오직 그들이 모두 지극히 정성스럽고 측달하는 뜻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이 떠나가고 나아가며 죽고 사는 것이 비록 서로 다르지만, 모두 사랑의 이치를 어기지 않는 것이니, 곧 그 마음의 덕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