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여, 오늘밤은 이렇게 무더워 나는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거리를 거닙네. 맥고 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거리를 거닐면 어데서 닉닉한 비릿한 짠물 내음새 풍겨 오는데, 동해여 아마 이것은 그대의 바윗등에 모래장변에 날미역이 한불 널린 탓인가 본데 미역 널린 곳엔 방게가 어성기는가, 도요가 씨양씨양 우는가, 안마을 처녀가 누구를 기다리고 섰는가, 또 나와 같이 이 밤이 무더워서 소주에 취한 사람이 기웃들이 누웠는가. 분명히 이것은 날미역의 내음새인데 오늘 낮 물기가 쳐서 물가에 미역이 많이 떠들어 온 것이겟지.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날미역 내음새 맡으면 동해여, 나는 그대의 조개가 되고 싶읍네. 어려서는 꽃조개가, 자라서는 명주조개가, 늙어서는 강에지조개가. 기운이 나면 혀를 빼어 물고 물 속 십 리를 단숨에 날고 싶읍네. 달이 밝은 밤엔 해정한 모래장변에서 달바라기를 하고 싶읍네. 궂은 비 부슬거리는 저녁엔 물 위를 떠서 애원성 이나 부르고, 그리고 햇살이 간지럽게 따듯한 아침엔 이남박 같은 물바닥을 오르락내리락하고 놀고 싶읍네. 그리고, 그리고 내가 정말 조개가 되고 싶은 것은 잔잔한 물밑 보드라운 세모래 속에 누워서 나를 쑤시러 오는 어여쁜 처녀들의 발뒤꿈치나 쓰다듬고 손길이나 붙잡고 놀고 싶은 탓입네.
동해여!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조개가 되고 싶어하는 심사를 알 친구가 하나 있는데, 이는 밤이면 그대의 작은 섬-사람 없는 섬이나 또 어느 외진 바위판에 떼로 몰려 올라서는 눕고 앉았고 모두들 세상 이야기를 하고 지껄이고 잠이 들고 하는 물개들입네. 물에 살아도 숨은 물 밖에 대고 쉬는 양반이고 죽을 때엔 물 밑에 가라앉아 바윗돌을 붙들고 절개 있게 죽는 선비이고 또 때로는 갈매기를 따르며 노는 활량인데 나는 이 친구가 좋아서 칠월이 오기 바쁘게 그대한테로 가야 하겠습네.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친구를 생각하기는 그대의 언제나 자랑하는 털게에 청포채를 무친 맛나는 안주 탓인데, 정말이지 그대도 잘 아는 함경도 함흥 만세교 다리 밑에 님이 오는 털게 맛에 해가우손이를 치고 사는 사람입네.
하기야 또 내가 친하기로야 가재미가 빠질겝네. 회국수에 들어 일미이고 식혜에 들어 절미지. 하기야 또 버들개 봉구이가 좀 좋은가. 횃대 생선 된장지짐이는 어떻고. 명태골국, 해삼탕, 도미회, 은어젓이 다 그대 자랑감이지 그리고 한 가지 그대나 나밖에 모를 것이지만 공미리는 아랫주둥이가 길고 꽁치는 윗주둥이가 길지. 이것은 크게 할 말 아니지만 산뜻한 청삿자리 위에서 전복회를 놓고 함소주 잔을 거듭하는 맛은 신선 아니면 모를 일이지.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전복에 해삼을 생각하면 또 생각나는 것이 있습네. 칠팔월이면 으레히 오는 노랑 바탕에 까만 등을 단 제주 배 말입네. 제주 배만 오면 그대네 물가엔 말이 많아지지. 제주 배 아즈맹이 몸집이 절구통 같다는 둥, 제주 배 아뱅인 조밥에 소금만 먹는다는 둥, 제주 배 아즈맹이 언제 어느 모롱고지 이슥한 바위 뒤에서 혼자 해삼을 따다가 무슨 일이 있었다는둥……, 참 말이 많지. 제주 배 들면 그대네 마을이 반갑고 제주 배 나면 서운하지. 아이들은 제주 배를 물가를 돌아 따르고 나귀는 산등성에서 눈을 들어 따르지.
이번 칠월 그대한테로 가선 제주 배에 올라 제주 색시하고 살렵네.
내가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제주 색시를 생각하도 미역 내음새에 내 마음이 가는 곳이 있습네. 조개껍질이 나이금을 먹는 물살에 낱낱이 키가 자라는 처녀 하나가 나를 무척 생각하는 일과, 그대 가까이 송진 내음새 나는 집에 아내를 잃고 슬피 사는 사람 하나가 있는 것과, 그리고 그 영어를 잘하는 총명한 4년생 금이가 그대네 홍원군 홍원면 동상리에서 난 것도 생각하는 것입네.(동아일보 1938.6.7)
요점 정리
백석이 지은 경수필이다
서정적, 묘사적, 회상적, 감상적, 향토적
대화체이면서도 독백적인 담담한 어조인 이 수필은 동해에서
독백적인 어조와 향토적 풍물과 관련된 어휘 구사 그리고 대상의 의인화, 반복과 첨가의 문장 구조, 작가의 태도가 대상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을 나타내고 있음을 특징으로한다.
아름다운 동해의 정취와 추억을 밀어올린다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르 마시고, 날미역 냄새를 맡으면 나는 조개가 되고 싶고, 그 이유는 물개와 친하고 싶음이요, 물개를 생각하면 맛있는 동해의 안주가 생각나고 안주는 또 제주배를, 제주 배는 동해에 두고 온 사람들을 생각나게 한다.
*출전 : 동아일보(1938)
내용 연구
동해여(의인법과 돈호법으로 무생물을 의인화하여 말을 거는 방식), 오늘밤은 이렇게 무더워 나는 맥고모자(밀짚으로 결어서 만든 여름 모자)를 쓰고 삐루(beer, 맥주)를 마시고 거리를 거닙네[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각 문단의 첫문장에 반복되는 구절로 기행 수필의 성격을 지니지만, 이러한 표현으로 인해 독자들에게 색다른 맛을 느끼며 또한 리듬감이 생겨 산문에서 운문의 느낌을 얻을 수 있어 시처럼 개인적인 정감을 느끼게 하고, 작자의 개인적인 체험을 보다 강조하는 효과까지 주고 있다.)]. 맥고 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거리를 거닐면 어데서 닉닉한 비릿한 짠물 내음새(미역의 냄새 묘사) 풍겨 오는데, 동해여 아마 이것은 그대의 바윗등에 모래장변(넓다란 모래 벌판)에 날미역이 한불 널린 탓인가 본데 미역 널린 곳엔 방게가 어성기는가, 도요(도요새)가 씨양씨양 우는가(의성법), 안마을 처녀가 누구를 기다리고 섰는가, 또 나와 같이 이 밤이 무더워서 소주에 취한 사람이 기웃들이(비스듬히) 누웠는가(동해여 아마 이것은 ~ 기웃들이 누웠는가 : 유사한 형태의 구절 반복, 소재의 열거). 분명히 이것은 날미역의 내음새인데 오늘 낮 물기가 쳐서 물가에 미역이 많이 떠들어 온 것이겠지. - 동해의 날미역 냄새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맥고 모자'와 '삐루'는 당시에 새롭게 등장한 세련된 신식 문물을 나타냄) 날미역 내음새 맡으면 동해여, 나는 그대의 조개가 되고 싶읍네(조개가 되어 물 속을 다니고 달을 맞이하고 노래를 부르고 처녀들의 발뒤꿈치를 쓰다듬고자 하는 소망을 나타내고 있다.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경지를 나타내고 있음). 어려서는 꽃조개가, 자라서는 명주조개가, 늙어서는 강에지조개가. 기운이 나면 혀를 빼어 물고 물 속 십 리를 단숨에 날고 싶읍네. 달이 밝은 밤엔 해정한(바닷물 고요한) 모래장변에서 달바라기를 하고 싶읍네. 궂은 비 부슬거리는 저녁엔 물 위를 떠서 애원성(당시 유행하던 조선 후기 잡가의 한 곡조)이나 부르고, 그리고 햇살이 간지럽게 따듯한 아침엔 이남박(쌀 따위의 곡물을 씻거나 일대에 쓰는 함지박의 한 가지) 같은 물바닥을 오르락내리락하고 놀고 싶읍네. 그리고, 그리고 내가 정말 조개가 되고 싶은 것은 잔잔한 물밑 보드라운 세모래 속에 누워서 나를 쑤시러 오는 어여쁜 처녀들의 발뒤꿈치나 쓰다듬고 손길이나 붙잡고 놀고 싶은 탓입네(조개가 되고 싶은 이유로 소망을 성취하려는 방법이 매우 소박하고 진솔한 재미가 있음). - 조개가 되고 싶음
동해여!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조개가 되고 싶어하는 심사를 알 친구(물개를 친근하게 표현)가 하나 있는데, 이는 밤이면 그대의 작은 섬 - 사람 없는 섬이나 또 어느 외진 바위판에 떼로 몰려 올라서는 눕고 앉았고 모두들 세상 이야기를 하고 지껄이고 잠이 들고 하는 물개들입네. 물에 살아도 숨은 물 밖에 대고 쉬는 양반(물개의 보조 관념)이고 죽을 때엔 물 밑에 가라앉아 바윗돌을 붙들고 절개 있게 죽는 선비(물개의 보조 관념)이고 또 때로는 갈매기를 따르며 노는 활량(특별히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생활하는 사람으로 한량을 말함이고 물개의 보조 관념)인데 나는 이 친구가 좋아서 칠월이 오기 바쁘게 그대(동해)한테로 가야 하겠습네(여기서 작자가 풍류를 즐기는 사람인 선비, 양반, 한량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친구와 같은 동해의 물개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친구를 생각하기는 그대의 언제나 자랑하는 털게에 청포채를 무친 맛나는 안주 탓인데(물개의 맛있는 안주), 정말이지 그대도 잘 아는 함경도 함흥 만세교 다리 밑에 님이 오는 털게 맛에 해가우손이(해가리개. 햇빛을 가리는 차양)를 치고 사는 사람입네.
하기야 또 내가 친하기로야 가재미가 빠질겝네(빠지지 않네). 회국수에 들어 일미이고 식혜에 들어 절미(뛰어난 맛)지(대구법). 하기야 또 버들개('버들치'의 방언. 잉어과에 속하는 민물고기. 비늘이 비교적 크며 몸빛은 등 쪽이 암갈색이고 배 쪽이 희끄무레함) 봉구이(붕어구이)가 좀 좋은가. 횃대 생선 된장지짐이는 어떻고. 명태골국, 해삼탕, 도미회, 은어젓이 다 그대 자랑감이지(열거법) 그리고 한 가지 그대나 나밖에 모를 것이지만 공미리(학꽁치)는 아랫주둥이가 길고 꽁치는 윗주둥이가 길지. 이것은 크게 할 말 아니지만(작지만은 은밀한 즐거움이므로) 산뜻한 청삿자리 위에서 전복회를 놓고 함소주(상자째 갖다 두고 마시는 소주) 잔을 거듭하는 맛은 신선 아니면 모를 일이지. - 동해의 맛있는 안주에 대한 그리움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전복에 해삼을 생각하면 또 생각나는 것이 있습네. 칠팔월이면 으레히 오는 노랑 바탕에 까만 등을 단 제주(濟州) 배 말입네(안주 - 제주배). 제주 배만 오면 그대네 물가엔 말이 많아지지. 제주 배 아즈맹이 몸집이 절구통 같다는 둥, 제주 배 아뱅인 조밥에 소금만 먹는다는 둥, 제주 배 아즈맹이(아주머니) 언제 어느 모롱고지(모롱이, 산모퉁이의 휘어둘린 곳) 이슥한 바위 뒤에서 혼자 해삼을 따다가 무슨 일이 있었다는 둥……, 참 말이 많지. 제주 배 들면 그대네 마을이 반갑고 제주 배 나면 서운하지. 아이들은 제주 배를 물가를 돌아 따르고 나귀는 산등성에서 눈을 들어 따르지. 이번 칠월 그대한테로 가선 제주 배에 올라 제주 색시하고 살렵네(자연 친화적 태도가 강함). - 제주 배에 대한 추억
내가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제주 색시를 생각해도 미역 내음새에 내 마음이 가는 곳이 있습네(처녀 하나, 슬피 사는 사람 하나. 금이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함). 조개껍질이 나이금을 먹는 물살에 낱낱이 키가 자라는(한 해 두 해 지나면서 몰라보게 성장하는) 처녀 하나가 나를 무척 생각하는 일과, 그대 가까이 송진 내음새 나는 집에 아내를 잃고 슬피 사는 사람 하나가 있는 것(작자는 아내와의 이별한 후 만주 등지를 유랑하는 생활을 함)과, 그리고 그 영어를 잘하는 총명한 4년생 금이가 그대네 홍원군 홍원면 동상리(제주배 -> 마을 사람들)에서 난 것도 생각하는 것입네. - 옛 추억에 대한 회상 (동아일보 1938.6.7)
정철의 가사 작품 "관동별곡"에서 동해 바다의 장관을 그린 마지막 대목을 읽어 보고, 다음활동을 해보자.
(1) 두 작품에서 "동해"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방식은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점을 말해보자.
이끌어주기 : 묘사는 보이는 것을 그리듯이 보여 주는 표현 방법이다. 그러나 묘사는 대상의 모습이나 상태를 단순히 객관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대상을 떠올리게 해 준다. 묘사의 이러한 특징을 이해하고, 두 작품에서 "동해"의 모습을 어떻게 묘사해 내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한다.
[예시답안]
두 작품 모두 여행을 통한 체험과 경치, 그에 대한 자신의 감회 등을 내용으로 한다. 하지만 두 작품은 상당히 다른 성격을 가지는데, 우선 하나는 가사, 다른 하나는 기행 수필이라는 갈래상의 차이가 그렇다. 또한 두 작품은 "동해"라는 동일한 대상을 놓고 그것을 묘사하는 방식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다음은 "관동별곡"에서 동해바다를 묘사한 부분이다.
대단히 과장되고 스케일이 큰 상상력을 보여준다. 그가 바라본 동해의 모습은 요동하는 고래의 그것과 같이 역동적인 모습이다. 반면에 "동해"에서 표현되는 동해는 작자의 경험과 삶의 배경으로서의 동해이다. 동해 자체가 존재하거나 움직이는 모습보다는, 동해와 관련된 작자의 체험이나 기억을 통해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출처 : 한계전외 4인 공저 블랙박스 문학)
백석의 '동해'와 정철의 '관동별곡'
'동해'의 작가는 개인적인 추억과 관련지어 바다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 반면에 '관동별곡'의 지은이는 역동적인 모습을 통해 심적 갈등을 드러내고 있다. 풍류를 즐기고자 하는 자연인으로서의 개인과 관료로서의 사회적 자아 사이의 갈등을 파도치는 바다의 형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과 입장의 차이에 따라 대상을 묘사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2) 두 작품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작자의 관점과 입장은 어떻게 다른지 친구들과 이야기해 보자.
이끌어주기 :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입장의 차이에 따라 대상을 묘사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예시답안] :
'관동별곡'에서 동해바다는 작자의 심적 갈등의 표상으로 묘사된다. 그의 내면에서 갈등이 강렬하게 파도치고 있었기 때문에 동해바다는 파도치는 바다로 표현되고 있다. 반면 '동해'의 동해 바다는 작자의 추억이 담겨 있는 대상으로 묘사된다. 작자의 추억을 중심으로 동해 바다는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관동별곡'의 작자가 가지는 심적 갈등은 사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자아와 개인적 자아간의 갈등이라는 점에서 중세적인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비친 바다의 모습은 일종의 이념적인 표상이다. 즉 자유와 격정의 표상인 것이다. 이에 비해 '동해'의 작자가 가지는 동해에 대한 추억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이다. 이 때문에 '동해'에서 동해를 표현하는 어휘들은 구체적이고, 동원되는 사물이나 상황들은 향토적이며 토속적이다. 이는 작자가 구체적인 체험, 즉 개인의 체험과 관련하여 동해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출처 : 한계전외 4인 공저 블랙박스 문학)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기행 수필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상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작자의 심리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나감으로써 시처럼 개인적 정감이 넘쳐 흐른다. 작자는 동해 바다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아름다운 바다 풍경과 사람들을 정겹게 떠올리고 있지만, 한편으로 그 이면에는 왠지 쓸쓸한 분위기가 감돈다. 그것은 작자만이 느끼는 삶의 상실감일 수도 있고, 아름다운 삶의 순간을 영원히 지속하고 싶은 낭만적 동경의 표출일 수도 있다. 작자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반복적 문장을 통해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작품은 담담한 어조와 함께 물 흐르듯 미려(美麗)한 문체를 창조해 내고 있다.(출처 : 한계전외 4인 공저 블랙박스 문학)
이해와 감상1
이 작품은 동해를 여행한 개인적 체험을 써 나간 수필로 동해를 청자로 의인화하여 일상적인 대화체의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한편, 독백적인 어조로 서술한 감상문 형식의 수필이다. 이 작품의 특징은 동해의 아름다움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주관적 정서에 의한 대상의 묘사에 있다. 즉 '동해'를 청자로 의인화하여 작가의 말을 건네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작가가 바라보는 대상인 동해를 좀더 친근한 입장에서 느끼게 한다. 또한 작가 자신은 상상 속의 동해에 대한 감흥을 회상하면서 독백조로 이야기를 진술하고 있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작가가 동해 바다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자기 자신이 소중하게 여긴 것들을 연쇄적인 연상을 통해 아름다운 바다 풍경과 사람들을 떠올리면서도 쓸쓸한 분위기를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작가가 느끼는 삶의 상실감일 수도 있고, 아름다움을 영원히 지속하고 싶은 낭만적 동경일 수도 있다.
이해와 감상2
언젠가 가보았던 동해 바다의 경치, 풍물, 그에 대한 자신의 감회 등을 나타내고 있는 글이다. 동해 자체의 풍경보다는 동해와 관련된 글쓴이의 체험이나 기억을 통해 '동해'를 느끼게 해 주는 것이 특징이다. 동해를 '청자(聽者)'로 여겨 대화를 나누는 듯하고, 혹은 자신의 느낌을 혼자 읊고 있는 듯한 어조가 독특하다. 기행 수필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대상에 대한 감성적인 표현으로 마치 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 향토적인 어휘를 자주 사용함으로써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그런 속에서 글쓴이의 외로움이 은근히 드러나면서 작품 전체는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심화 자료
동해의 표현상의 특징
이 작품은 우선 작가가 '동해'를 청자로 의인화하여 일상적인 대화체를 구사하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또한 그 내용에 있어서는 향토적인 어휘가 빈번하게 구사되고 있으며, 동일한 내용의 반복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맥고 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라는 구절을 매 문단의 서두에서 반복하면서 작가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첨가하고 있다. 작가의 개인적 체험과 관련하여 동해를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 - 이지', '- 이지', '- 습네', ' - 읍네', ' - 렵네' 등과 같은 어미를 사용해 대화체이면서도 독백적인 어조를 취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독자는 작품의 내용에 더욱 친근감을 느끼면서 작가의 정서를 감상할 수 있다.
동해에 쓰인 다양한 수사법
돈호법 : 동해여!
의인법 : 동해를 의인화해서 부르고 있다.
직유법 : 이남박 같은 물바닥을
대구법 : 회국수에 들어 일미이고 식혜에 들어 절미지
반복법 :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열거법 : 명태골국, 해삼탕, 도미회, 은어젓이 다 그대 자랑감이지
의성법 : 도요가 씨양 씨양 우는가
백석
1912∼1963. 시인. 본명은 기행(夔行).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신. ‘白石(백석)’과 ‘白奭(백석)’이라는 아호(雅號)가 있었으나, 작품에서는 거의 ‘白石’을 쓰고 있다.
1929년 정주에 있는 오산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34년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전문부 영어사범과를 졸업하였다.
그 뒤 8·15광복이 될 때까지 조선일보사·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함흥 소재)·여성사·왕문사(旺文社, 일본 동경) 등에 근무하면서 시작 활동을 하였다. 한때 그는 북한에 남아 김일성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고 전하지만, 확실치가 않다. 백석은 그 시대 어느 문학동인이나 유파에도 소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였다.
그는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이를 계기로 〈마을의 유화(遺話)〉·〈닭을 채인 이야기〉 등 몇 편의 산문과 번역소설 및 논문을 남기고 있으나, 그는 실지로 시작 활동에 주력하였다. 1936년 1월 33편의 시작품을 4부로 나누어 편성한 시집 ≪사슴≫을 간행함으로써 그의 문단 활동이 본격화되었다.
이후 남북이 분단되기까지 60여 편의 시작품을 그가 관여했던 ≪여성≫지를 위시하여 당시의 신문과 잡지에 발표하였다. 분단 이후의 북한에서의 작품 활동에 대해서는 밝혀진 것이 없다.
한마디로 백석은 자신이 태어난 마을의 자연과 인간을 대상으로 시를 썼다. 그 마을에 전승되는 민속과 속신(俗信) 등을 소재로 그 지방의 토착어(土着語)를 구사하여 주민들의 소박한 생활과 철학의 단면을 제시한 것이다. 어린 시절로 회귀하여 바라다보는 고향은 대개 회상적이거나 감상적인 것이 상투이지만, 백석은 그 체험조직에 있어서 탁월한 재능을 보이고 있다.
그의 어린 눈에 비쳐진 고향의 원초적인 자연과 인간의 모습을 재현함으로써 환기되는 정서의 순화를 의도하고 있다. 그는 마을의 민속이나 속신 같은 것을 재현시키면서도 자신의 감정이나 주관의 개입 없이 언제나 객관적인 입장에 섰다.
그 마을의 자연과 소박한 주민들의 원초적인 ‘삶’의 리얼리티를 노래하고 있을 뿐이다. 그가 이룩한 이런 시적 성취는 우리 근대시사에서 매우 높이 평가되고 있다.
돌이켜 보면 그의 만주 행은 함흥에서부터 계획해 오던 것이었고, 또 그가 재차 서울로 와서 옛 직장을 다시 나가고 한 해를 머무른 것도 결국은 나 때문에, 내가 마음에 걸려서였던 것 같다. 나 아니었으면, 그는 진작 함흥에서 만주로 곧장 떠나갔으리라. 그가 만주땅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깊은 속뜻을 내 얕은 여자의 소견으로 어찌 감히 짐작인들 했으랴..... . 그는 내가 자기 권유대로 쉽게 따라오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중략)
만약에 내가 그때 만주로 함께 갔더라면 어찌 어찌 되었을까. 아마도 진작 그곳 생활이 지겨워진 나의 성화에 못 이겨 우리는 다시 서울로 돌아와 함께 살았을 것이다. 그를 만주에서 온갖 고생을 하게 하고, 생활고에 시달리게 한 것도 나였고, 국토가 둘로 쪼개어져 그를 다시는 북에서 서울로 돌아올 수 없게 만든 것도 모두 내가 미욱했던 탓이다.
만주 신경 시절 백석과 같은 집에서 살았다는 작가 송지영(宋志英) 씨의 술회로는 백석이 그때만큼은 고향의 부모에게 매달 약간의 송금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수입이 괜찮았다고 한다. 그 무렵 항상 검정 두루마기를 입고 다녔는데, 송 씨가 "그 옷, 서울의 김이 보냈구려."하고 농을 걸면, 백석은 갑자기 쓸쓸한 표정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 그 이후 백석은 실직 상태가 되어서 만주의 이곳 저곳을 전전하며 몹시도 고달픈 생활을 하게 되었던가 보다. 그가 이렇게도 모진 고생을 했었다는 생각을 하면 온통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다. 그 시절 만주의 쓸쓸한 하숙방에서 쓴 것으로 보이는 그의 시 "횐 바람벽이 있어"를 통해, 나는 필시 나의 모습으로 짐작되는 부분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때가 해방 직전이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생활의 외로움과 고달픔은 그의 마지막 시 "남신의주유동 박시봉방"에 낱낱이 그렁그렁 박혀 있다. 깊은 밤에 그의 전집을 끌어안고 이 시를 혼자 목이 메어 읽어 가노라면 주체할 길 없이 솟구쳐 오는 뜨거운 눈물을 나는 참지 못한다. 이 시에서 그의 맑고 고결한 정신은 이미 세속을 훨씬 떠나 있는 듯하다.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흡사 그가 눈앞에 당장 되살아 온 듯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이 말 속에는 평소의 그의 성품, 현실에 임하던 그의 모습 같은 것이 그대로 생생하게 스며 있다.
그와 헤어지고 어느덧 50년 세월이 흘러갔다. 시간이란 게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가 이날 이때까지 온갖 곡절을 겪으며 살아 온 것도 헤아려 보면 모두가 백석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고, 또 그를 향한 반발심이 물 끓듯 끓어넘친 탓이 아닌가 한다. 그때 그를 따라 만주로 가지 않았던 실책으로 내가 그를 비운(悲運)에 빠뜨렸고, 나 또한 서럽게 살아왔다. 어찌 모든 것을 이대로 마감해 버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지금도 젊은 그 시절의 백석을 자주 꿈에서 본다. 그는 나의 방문을 열고 나가면서 아주 천연덕스럽게 "마누라! 나 잠깐 나갔다 오리다." 하고 말한다. 한참 뒤에 그는 다시 들어오면서 "여보! 나 다녀왔소!"라고 말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세월을 반백 년이나 흘러 보내었는데도.... 내 나이 어언 일흔 셋, 홍안은 사라지고 머리는 파뿌리가 되었지만, 지난날 백석과 함께 살던 그 시절의 추억은 아직도 내 생애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우리들의 마음은 추호도 이해로 얽혀 있지 않았고, 오직 순수 그것이었다. 그와 헤어진 뒤의 텅빈 세월을 살아오면서 나는 차츰 말이 어눌해지고, 내 가슴 속의 찰랑찰랑한 그리움들은 남이 아무리 쏟으려 해도 결코 쏟기지 않던 요지부동의 물병과 같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의 시 전집이 발간되었다는 소식은 지금껏 물병에선 수십 년 동안 고였던 서러움이 저절로 콸콸 쏟아져 나온다.(출처 : 이동순 편, '백석 시 전집')
美의 범주
미적인 것의 범주 구분은 근본적으로 주관(자아)과 객관(대상)이 조화롭게 합일된 상태를 이상적인 미의 상태로 간주한다. 숭고미란 절대적인 예찬을 보낼 수 있는 대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며, 비장미란 그 대상에 대해 극적인 슬픔과 격정을 느낄 때 나타난다. 우아미란 자아가 대상의 멋스러움을 관조하며서 즐길 때 나타나는 미의식이며, 골계미란 풍자나 해학을 통해 웃음의 정서를 유발하는 미의식이다. 이처럼 미의 범주는 심미적 정서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미의 범주에 대한 인식은 시대와 삶에 따라 달라진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참 좋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