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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널리 먹던 홍어찜 한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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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규환 |
| 홍어가 돌아왔다. 사라졌던 홍어(洪魚)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기억 저편으로 물러갔던 푹 삭힌 홍어가 내 곁으로 왔다. 사람들은 왜 홍어에 열광하는 건가.
30년 전 내 고향 전라도에선 명절 때는 전어와 상어, 준어, 병어에 빠지지 않고 홍어찜이 상에 올랐다. 밋밋한 찜에 실고추만 올리면 죽었던 음식이 살아나 미각을 자극했다. 결 좋게 툭 찢어 쏘옥 넣으면 발효된 홍어에 열이 가해져선지 강알칼리로 바뀌어 "턱!" 숨이 막히니 "헉!" 하고 놀라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보면 진한 박하 향이랄까, 싱싱한 자연산 멍게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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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다른 홍어찜-양배추에 막걸리 식초 양념을 듬뿍 발라 먹으면 정말 끝내 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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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규환 |
| 뿐이던가. 아버지와 나는 어머니와 형제들을 따돌리고 홍어 뼈와 간 따위의 내장을 넣고 짤박하고 매옴하게 탕을 끓여 숨을 가까스로 내쉬면서 그 톡 쏘는 맛보느라 옆 사람 눈치 잊은 지 오래였다. 명절 준비 잘 돼 가는지 소홀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시골마을에 시집 장가가는 혼례를 치르면 미리 장을 봐와서 항아리에 지푸라기 한 줌 넣고 사료부대에 싸서 이레 쯤 푹 삭혀 컬컬하게 무침을 해서 빙초산 몇 방울 떨어뜨리면 시큼하다. 오도독 씹히는 물렁뼈가 귀를 열어 울려주고, 고소한 참깨에 배와 생밤, 조청이 어울려 달달하니 종합예술치고 홍어는 가히 절대 미각이요, 으뜸이며 홍어대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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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 이리도 홍어탕 거품이 요동을 치는 건가. 이게 약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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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규환 |
| 전깃불이 들어오기 전 까마득한 동네에 불이 나가면 집집마다 빨래 걷기 바쁘다. "불 나갔다"고 하는 건 누군가 죽어 혼백이 땅에 떨어지는 걸 말한다. 이제나 저제나 하며 돌아가실 날을 잡았다지만 붙은 목숨 쉬 끊어지지 않으니 제아무리 호상(好喪)인들 미리 홍어를 사다둔 집안 없었다.
초상이 나면 동네 장정들은 돼지를 잡는 게 급선무지만 벌써 눈썰미가 좋은 사람 몇몇은 삼십 리가 넘는 먼 길을 달구지 끌고 출발하였다. 오일장이 서면 다행이지만 왕복 대여섯 시간을 달려 광주(光州)까지 가서 장을 봐오면 새벽 밥 먹고 떠난 길이 해지기 일쑤였다.
부랴부랴 비닐부대에 막걸리와 홍어를 섞어 밀봉하거나 항아리 안에 넣는다. 벌써 마당 구석지엔 조문객 발길이 잦으니 돼지고기 앞다리 하나에 뒷다리를 삶은들 참꼬막과 홍어가 빠지면 '감 놔라 배 놔라.' 보다 간섭이 심해지니 김이 몽실몽실 나는 70도가 넘는 새 두엄 퇴비자리에 파묻어 고온에 급히 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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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산홍어회. 간도 싱싱합니다. 빛깔만 봐도 맛있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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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규환 |
| 손놀림을 빨리하여 무채에 미나리, 배, 대추, 당근을 기본으로 온갖 양념 넣고 둘둘 비벼서 간만 맞춰 한 접시씩 담아내면 일 홍어, 이 돼지고기, 삼 꼬막에 사과나 배가 곁들여지면 잔칫상 걱정할 것 없었다. 더군다나 새우젓을 놓지 않아도 찬 성질의 홍어와 더운 성질의 돼지고기가 서로를 경계하여 녹이고 입맛 돋우니 체할 일 없이 뒤끝이 좋았다.
나는 마을 잔치가 있을 때마다 어른들 손을 잡고 상을 구해다 드리거나 상을 들어 손님 앞에 내놓기도 하고 뒤처리를 하면서 홍어 한 접시 받아들면 무침에서 큼지막하게 썰어 버무린 홍어 골라 먹는 재미에 빠져 지냈다. 다시 접시를 들이밀면 몇 점 더 주니 친구들과 나눠 먹었다.
무침은 어머니 음식이다. 탕은 아버지와 나를 연결해줬다. 꼬들꼬들 말린 찜은 조상을 생각나게 하는 통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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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어 간을 애라고 한다. '애가 탄다'고 할 때는 창자가 타는 것이며 '애간장이 녹는다'는 건 간이 녹는다로 풀면 된다. 곧 애는 창자의 통칭이며 애간장은 간만을 일컫는다. 소금기름을 듬뿍 발라 씹지 말고 입천장과 혀에서 압축을 시켜 굴리면 제 맛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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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규환 |
| 이제 30여 년이 흘러 잃어버린 고향풍경에 가슴아파하고 있지만 2년여 전부터 톡 쏘는 홍어에 빠져 살았으니 나는 홍어 하나로 고향을 되찾았다. 추억을 찾았다. 아름답던 그 시절을 맘 놓고 허세 부리며 즐기고 있다. 매료되었다. 냄새쯤은 아랑곳 않는다. 하루 거르면 내 몸이 허락하지 않을 만큼 중독되었고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끌고 다니며 먹고 있다.
홍어는 흑산도 산이 제일이지만 한 때 씨가 말라 누군들 입에 대지 못했다. 그 뒤 그 번잡스런 영산포와 목포도 죽었다. 그러다가 어족자원을 보존하는 조치를 취함은 물론 지구반대편 칠레에서 수입이 늘어가면서 다시 우리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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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합(三合)은 홍어회, 돼지고기, 묵은김치다. 여기에 막걸리를 마시면 홍탁삼합(洪濁三合)이 된다. 퓨전 홍어요리이며 초보자들이 먹기에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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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규환 |
| 드라마 <대장금>에서 여름철에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생선회로 홍어를 소개했는데 장금이 왈 "마마님 자꾸 씹으니까 맛이 납니다. 약간 흐물흐물한 생선회에 비해서 육질도 차지고 처음엔 코끝이 찡하고 그 담엔 입안이 상쾌하고 끝 맛은 청량합니다." 이게 진정한 홍어 맛이다. 어찌 임금에게 상한 음식을 줬을까 보냐.
한번 입에 대면 놀란다. 그 상한 것 같은 암모니아 냄새 때문에 놀라자빠지는 게 홍어다. 뱉고 싶지만 참아 먹고 나면 그 독한 냄새에 절어가는 자신을 보고 또 놀란다. 첫 대면을 어떻게든 치르고 하루 이틀 지나면 또 먹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으면 대한사람 아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마니아가 되어 간다.
홍어는 버릴 데가 없는 생선이고 만만한 '홍어 좆'도 두개나 달렸다. 정력의 상징인 홍어를 해음어(海淫魚)라 하든 분어(鱝魚)라 부르던 용왕님 근처에 버티고 서있던 이 고약한 생선의 효능 효과는 <자산어보>와 <동의보감>에 나와 있지만 내 식으로 한번 풀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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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매달 1회 정기모임을 엽니다. 번개모임은 수시로 있답니다. 여럿이 함께 먹으면 저렴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가끔 흑산홍어도 배달해서 먹는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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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규환 |
| 술은 먼저 어떤 향도 첨가되지 않은 막걸리로 준비한다. 회나 삼합, 찜 또는 무침을 차리고 미나리나 천일염 볶은 걸 마련한다. 먹는 순서는 일 코, 이 애, 삼 날개, 사 살, 오 뼈인데 그 맛이 제각각이다. 남은 걸로는 탕을 끓이자.
코는 톡 쏘는 맛이 일품이며 애간장 녹이는 불포화지방산 덩어리 간은 아이스크림보다 더 부드럽게 사르르 녹는다. 두 가지 맛난 부위를 먹는 행운은 쉽지 않으니 본격적으로 날개 살을 먹어보자.
잘 볶아 빻은 소금 두세 점을 찍어 질겅질겅 씹는다. 살이 쉼 없이 토도독 터져 나온다. 인절미가 이런 맛이던가. 싸하게 혀를 마비시키면 입을 닫고 잠시 숨을 멈추라. 서서히 콧구멍을 열면서 숨을 내뱉으면 본래의 향긋함을 체현하고 막혔던 콧구멍이 뻥 뚫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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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어 라면. 이제 저는 라면도 그냥 라면은 맛이 없어 먹지 않습니다. 다음에 홍어 라면 끓이는 방법을 소개하겠습니다. 밀가루만 들어가면 속이 더부룩한데 홍어 라면은 그렇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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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규환 |
| 컬컬하던 목구멍이 개벽의 환희를 맛보고 해소, 가래를 쓸어내린다. 삽시간에 감기도 달아난다. 니코틴도 제거한다. 위장에 도착하여 멈춰있던 음식물을 잘게 분해하고 소장 대장을 거치면서 머나먼 12m 길 따라 고일 법도 하지만 엉겨 붙은 내 몸속 기름때를 쫙 훑어낸다.
여기에 어제 그제 더부룩하게 뭉쳐있던 변을 삭히니 악의 근원 변비도 걱정할 게 없다. 자연 장과 혈관 주위를 감싸고 있는 기름이 제거되니 살 빼는데 웬만한 약 몇 재 쓰는 것보다 나으며 순환과 소통이 원활하니 피부미용에 탁월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뿐인가. 산후조리에 좋은데 아직 밖으로 나오지 못한 노폐물을 빼내는데 이보다 좋은 음식 없다. 특히 약해지기 쉬운 물렁뼈를 살리는 효험이 있다. 당뇨에 좋고 p.H 9.5 강알칼리 홍어가 산성화된 몸을 되돌리고 항균항암효과는 따를 자 없다. 보리앳국이나 탕은 술독마저 없앤다. 요산 때문에 당뇨가 감쪽같이 치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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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외로 싸가지고 다니며 먹는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의 열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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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규환 |
| 잘 먹고 잘사는 법 돈에만 있지 않다. 생활의 질과 건강은 발상의 전환에 있다. 제철 음식 먹는 것과 주변에 가까이 늘 있어왔던 것에 숨어 있질 않던가. 발효음식 천국에서 사는 우리는 행복하다. 우린 세계 200여 국가 중 유일하게 홍어를 즐기는 행운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다.
하여튼 다시 다가온 홍어에 요즘 살맛난다. 기실 쇠고기 냄새도 길들여졌을 뿐 역하기는 마찬가지다. 홍어 냄새가 조금 나기로서니 한번으로 포기할 하찮은 존재는 아닌 것이다. 용기를 내보자.
한로(寒露)부터 한식(寒食)까지 6개월이 제 맛이요 제철이다. 삶은 돼지고기와 도톰한 홍어회 사이에 2년 묵은 김치를 얹어 입이 터져라 오물오물 씹어보라. 막걸리로 입을 헹구면 배마저 부르다. 다른 회 찾지 않는다.
가을 산행과 나들이에 홍어 몇 점 나누면 정이 듬뿍 쌓인다. 남은 홍어 라면에 몇 점 넣으면 면발이 야들야들 소화 걱정 없다. 바야흐로 하늬바람에 홍어 향 솔솔 풍기면 가히 참지 못하여 홍어 집 주위를 맴도는 풍경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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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출출하니 생막걸리 한잔 하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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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규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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