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보내는 휴가
올해는
정말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년초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강요된 바깥 출입 통제때문에,
또 요즈음은 년중 두달 휴가 대부분을 어쩔 수 없이 집에서 보낸다.
그러다 보니 여러 장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좋은 점은 가까이 있는 것을 좀 더 여유를 가지고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것을 남에게 맡기는 대신,
스스로 해보는 즐거움과 성취감뿐만 아니라
또 사물에 대한 이치와 메카니즘의 이해,
그리고 정밀한 도구들을 만들 수 있는
인간의 높은 지능에 대해서 감탄하기도 한다.
물론 전문가의 도움없이 문외한이 하는 단점들은 너무나 많다.
지난 주에 오랫동안 미루어 두었던 샤워장 벽면 타일을 보수하다가
서툰 솜씨로 타일 몇장 교체하려다 벽에 구멍을 내는 등
일이 크게 벌어져 온통 새로 다시 싹 다 바꾸야 했다.
여러 상점들을 오가며 필요한 장비와 어떤 물품을 사야하는 지
또 타일 자르는 방법도 실수와 시행 착오를 통해 배워가면서
작은 샤워장 내벽과 마루에 타일을 까는 데 일주일이나 걸렸다.
그제는
세면기 밑에 위치한 오래된 물꼭지 손잡이를 교체하려다
어슬프게 너무 힘주어 비틀다가 세면기에 부착된
부식된 파이프가 부서지면서
세면기 전체를 바꾸는 데 하루 종일이 걸렸다.
전문가에게 맡겼으면 일주일이란 시간대신
몇시간 안에 경비도 반의 반도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쓰지 않았던 근육을 써서 그런지
온 삭신이 아퍼온다.
어제 월요일에는
내 여행용 미니 벤의 트렌스미션 기어 변환이 좀 느슨해진 것 같아
유튜브를 보니 몇분만에 쉽게 하는 방법을 자세히 보여 준다...
Okay! That looks like a piece of cake! I will do it by myself!
해서 공기 흡입 파이프를 걷어 내다가
손과 팔이 엔진에 데이고 긁히면서
큰 나사 두개를 풀고 케이블 잠금 장치 안의
작은 고무링(10불짜리)를 교체하는 데 하루 종일이 걸렸다!
나사 두개 풀다가 하나는 어딘가 떨어져 숨어 버렸고
또 다른 하나는 나사가 중간에 부러져서
다시 이 상점 저 상점 오가면서 맞는 사이즈의 부품을 찾아 끼우는 데
아침부터 시작해서 해가 어두워질 때까지 겨우 끝냈다.
샤워를 하고 보니 팔둑에 데인 곳에 물집이 커다랗게 생겼다.
다시 약국에 가서 화상연고 큼직한 것을 산다.
정비소에 가지고 갔으면 고작 몇십불에 10분만에 끝낼 수 있는
단순한 작업이다.
오늘은
뒷뜰에 죽어가는 몇그루의 나무를 잘라보려고 계획하고
성능좋은 헤비 듀티 체인 톱을 사오긴 했는 데,
설명서를 보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무겁기도 하고 잘못하다간 손가락 몇개를
졸지에 잃는 수도 생길 것 같아 겁부터 난다.
고민 고민하다가 시간과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라도
나무 자르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내가 좋아하는 멍때리는 일로 오늘은 땡땡이를 치기로 마음 먹는다.
모처럼 키보드에 앉는다.
피아노처럼 자주 조율을 할 필요도
풍금처럼 페달을 밟아줄 필요도 없는
졸속스런 전자음악이 주는 한계일 지언정
편하고 부담이 없어
내 침실에서 펜티만 걸치고 전자가 내는(Synthesizer)
피아노와 교회음악 오르간 선택 버튼을 고루 비교해본다.
안개 낀 드뷔시의 감성적인 첫곡을 끝내고
견고하면서도 세심하고 격정적인 바흐 오르간곡에 몰입하면
시간의 흐름을 잊어버린다.
바로크 음악은 강약에 대한 해석이 자유로운대신
부지런해야 하고 잠시도 긴장을 느출수 없다.
오르간곡은 뭐니 뭐니해도
바하 오르간 8집( Orgelwerke)을 견줄만 한 게 없다.
40 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손도 대지 못한 곡들이 수두룩하다.
내일은 이 곡을 차분히 대면해 볼 생각이다.
물론 페달 저음은 생략하는 반쪽 음악이지만
손 연습만으로도 파이프 오르간의 페달 숙달에 큰 도움이 된다.
오후에는
모기가 사라진 화씨 73도의 완벽한 날씨여서
뒷뜰에 돗자리를 깔고
멍청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높은 바람에 꿈꾸는 듯 흔들리는 나무 가지들과
내 안의 생각들이 오고 감을 본다.
어떤 영성가들은
오고가는 생각의 폭포수를 그냥 미련없이 흘려보내라 하고
어떤 영성가들은
하나 하나 등한히 하지 말고 붙잡아 소중히 대우하라 하고…
둘다 맞는 말 같기도 하고 둘다 아닌 것 같기도 한 작금이다.
가만히 내 안을 들여다보면
어느듯 내 인생 내면의 계절조차도 가을인 것이 분명하다.
나의 내면의 세상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침묵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스승이다.
이 침묵안에 내가 느끼는 슬픔도 교만함도 사악함도
그리고 유머스러움과 선함도 모두 차곡 차곡 쌓여져 있음을 본다
마치 온갖 색상으로 무르익었다가 떨어지는 낙엽들이
하나 둘 차곡 차곡 쌓여져서
이 대지와 세상을 이루는 것처럼…
저녁에 어둠이 내리면
맘 내키는 대로 뒷뜰에서 바베큐를 하고
진한 포도주 2잔에 취해서 올려다 보는 밤하늘 저너머
누군가가 자꾸만 말을 걸어오는 듯 해서
홀린듯 자꾸 희미한 밤하늘을 올려다 본다
지금의 내 삶속에 가슴 에이는 그리움이랑 왜 없을까만
이 아련한 아쉬움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여전히 이름도 얼굴도 모를 그 누구를 아쉬워하면서
자꾸 힐끗 힐끗 최면에 걸린듯 밤 하늘의 별들을 올려다 본다
자꾸만 자꾸만 말을 걸어오는 듯 해서…
“니 누고…?!”
내 인생의 가을에 깊이 스며 절어드는 그리움과 아쉬움!
이런 것들은 충족시킬 수 있는 아무런 능력이 내게 없음을 잘 안다.
“Then, what else can I do?”
이빨이나 닦고 침대에 누워 실컷 음악이나 듣다가 잠드는 것 외에…?
너무 많은 것들이 내 집중력을 흩어버리고
너무 많은 것들이 내 능력 밖에 있는 걸…
지금껏
아슬아슬하게 요행스럽게 기적처럼 살아온 것들에 대해
믿지도 않는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잠자리에 든다
여전히
오늘 밤 꿈에서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그리움과 아쉬움들이
유령이 되어 내 꿈자리를 어지럽게 흩트려 놓을 것이고
내일 아침에는
또, 이를 떨구어 버릴려고
발버둥치며 일어나 또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Vacationing at home is not such a good idea after all...
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