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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량파괴무기, 地下要塞(지하요새)의 全貌(전모)
日本, 月刊 現代(겐다이) 편집부
북한은 83년부터 소련으로부터 核武器(핵무기)를 수입해 왔다. 人民軍 最高司令部(최고사령부)의 心臟部(심장부)인 “鐵奉閣(철봉각)의 베일을 벗긴다”. 세계가 주시하는 核개발을 비롯하여 북조선 인민군의 全貌(전모)를 아는 前 人民軍 최고간부 중 한 사람이 작년 비밀리에 북한을 脫出(탈출) 하였다. 1997년 황장엽 서기가 한국으로 亡命(망명)한 후 最高位(최고위)의 出國者(출국자)이다.
本誌(본지)는 중요 인물 안영철(가명) 장군과의 장시간에 걸친 독점 인터뷰에 성공하였는데 이하는 安 장군이 밝힌 조선인민군의 최고 기밀이며 북한에 대한 武力행사가 거론되는 현 시점에서 크게 참고가 되는 資料라 하겠다. -편집부 주-
“나는 조선인민군에 30년 이상 복무했으며 그 중 10년은 金正日 國防委員長 側近(측근)에서 근무했다. 그러나 金日成 主席이 죽은 후에는 일반국민 만이 아니라 우대받는 軍人(군인)들도 굶주림과 病苦(병고)에 고생하며 살 氣力(기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러한 慘狀(참상)에 대하여 나는 중요 會議席上(회의석상)에서 이래가지고는 軍이 유지될 수가 없다. 보다 더 정직하게 報告(보고)하자고 주장해 왔으며 김정일 위원장과 面談(면담)하는 기회에서도 여러 번 솔직하게 軍의 實情(실정)을 말하고 改革案(개혁안)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金正日은 정치적 억압만 강화할 뿐 근본적인 개혁을 하려고 하지 않았고 保身(보신)에만 바쁜 주변 간부들이 나를 배척하기 시작하였다. 군에서 失脚(실각)함은 죽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암담하게 생존하기보다는 외부에 나와서 證言(증언)을 통하여 金正日 體制를 흔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래 애착을 가졌던 軍을 배반하고 가족을 남겨놓고 出國하였을 때 심한 갈등이 느꼈지만 나는 이런 危險(위험)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鐵琫閣(철봉각)에서 이라크전쟁을 분석하다
出國 후에도 김정일 가족과 정보통로를 갖는 나에게는 북한 중추의 情報가 들어온다. 최근 접한 것이 이라크전쟁에 관한 것이다. 이라크전쟁은 북한에 큰 영향을 주었다. 開戰(개전) 초부터 김정일은 자신의 動靜(동정)에 대하여 보도하는 것을 禁止(금지)하였다. 그리고 전쟁 중에는 인민군 최고사령부, 野戰指揮所(야전지휘소)라고 하는 지하 깊이 들어가 있는 極秘(극비)의 사령부 안에 틀어박혀서 作戰組(작전조)라고 불리우는 김정일 軍事戰略補佐室(군사전략보좌실) 멤버들을 모아놓고 戰況(전황)을 분석하며 지냈다.
作戰組(작전조) 멤버에는 金斗南 作戰組長(작전조장), 조명록 최고사령부 總政治局長, 김영춘 總參謀長(참모장), 金明燮 노동당 작전부장 이하 軍과 당의 최고지휘부 120명 정도가 포함되어 있다. 작전조에서 주목해야 할 사람은 金斗南 대장이다. 이는 金永南 최고인민회의 常任委員長의 3男으로 김정일로부터 군의 監視役(감시역)을 위임받아 김정일 다음 군의 實權者(실권자)이다. 작전조에는 또 미사일이나 레이다와 같이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있다.
인민군의 최고기밀이 되어 있는 이 野戰(야전) 指揮所(지휘소)는 金日成 광장으로부터 동북 15km 정도 떨어진 平壤市 三石區域의 國士峰(국사봉)(444m) 地下(지하)에 있다(지도 참조). 지휘소 入口(입구)에는 聞文里와 長壽源(장수원) 貯水池(저수지)가 있으며 어느 쪽의 입구로부터도 12m 지하로 내려가면 폭 9m, 높이 4.5m, 길이 600m의 터널에 이르게 된다. 터널의 벽면에는 放射線(방사선)을 차단하기 위한 亞鉛(아연)으로 防壁(방벽)되어 있다. 이 터널형의 地下요새가 조선인민군의 司令塔(사령탑)이라고 할 최고사령부 野戰指揮所(야전지휘소), 통칭 鐵琫閣(철봉각)이다.
<철봉각>은 상하 2층 구조물이며 지하 1층에는 9개의 戰鬪(전투)指揮所(지휘소)가 배치되어 있다. 그 중 하나가 <監視室(감시실)>인데 러시아의 정찰위성이나 세계의 TV영상 화면이 큰 電光(전광)판넬로 시시각각 떠오르게 되어 있다. 15명 가량의 專門人力(전문인력)이 24시간 態勢(태세)로 근무하여 分析(분석) 業務(업무)에 종사한다. 畵像(화상)시스템은 이런 <감시실> 設備(설비)를 비롯하여 평양지구 反航空(반항공)司令部의 野戰指揮所(야전지휘소), 그 管下(관하)에 旅團(여단) 聯隊(연대) 大隊(대대) 중대의 戰鬪指揮所(전투지휘소)가 정비되어 있다. 참고로 말한다면 그 畵像(화상)시스템의 器材(기재)는 모두가 日製(일제)이다.
지하 2층은 16개 방으로 나뉘어진 최고 幹部(간부)들의 執務室(집무실)인데 김정일의 집무실은 입구로부터 네 번째 우측 방이다. 너비는 약 200m이며, 대형 電光판넬이나 PC 등 최신 器材(기재)들이 完備(완비)되어 있다. 또 戰時(전시)에는 여기가 生活거점이 되므로 침대나 食事用(식사용) 테이블, 샤워장 등 전용 화장실까지 붙어 있다.
김정일이 현재 살고 있는 곳은〔56호 官邸(관저)〕라고 불리우는 본 저택이 아니라 〔501호 官邸〕라는 별장이다. 이곳이 鐵琫閣 (철봉각) 지하 2층이 지하터널로 연결되어 있다.
김정일은 監視室(감시실)에서 미군의 이라크 空爆(공폭) 광경을 보다가 ‘美帝(미제)도 별 것 아니군’ 이라고 중얼대었다고 한다. 김정일은 이라크전쟁을 보고 도리어 安心했다는 것이다. 이라크군이 美軍에 의하여 분쇄된 것도 이라크가 沙漠(사막)의 나라이기 때문이었다. 발견하기가 용이한 沙漠地帶(사막지대)에서도 미군은 이라크군의 지하군사 據點(거점)을 찾는데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런데 國土(국토)의 태반이 山岳(산악)지대인 北韓(북한)에서는 곳곳에 구축해 놓은 地下要塞(지하요새)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제2의 이라크는 되지 않는다는 自信(자신)을 얻게 되었다.
김정일의 이런 자신은 이번 내가 국내의 주요 要塞(요새) 위치를 폭로함으로써 무너져 버릴 것이다. 왜냐 하면 미군이 이러한 요새를 空爆(공폭)하면 壞滅的(괴멸적) 타격을 입힐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도 조선인민군의 심장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鐵琫閣(철봉각)>이다. 이 지하요새가 공격을 받는다면 김정일은 비상구에 설치한 다른 지하터널로 탈출할 수가 있다. 이 비상지하 터널은 黃海(황해) 연안 南浦(남포)항까지 80km 정도 연결되어 있다.
철봉각에는 비상구가 또 하나 있는데 이것은 5km 북쪽에 百足山(해발393m)에 있는 保衛司令部(보위사령부) 野戰指揮所(야전지휘소)와 연결되어 있다. 그 도중 3km 정도 가는 지점에 地下변전소가 있다. 또 국사봉에서 보면 북동방향에 퍼져 있는 山脈(산맥) 지하에는 보위총국의 戰車師團(전차사단)의 基地(기지)가 있으며 이 가장 중요한 거점을 방위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적인 立體전쟁을 對備(대비)하라
후에 말하는 것과 같이 북한은 철봉각을 비롯하여 國土전체가 지하 要塞化(요새화)되어 있다. 다음과 같은 제2차 韓國戰爭(한국전쟁)을 위한 攻擊(공격)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① 보병 3개 군단을 갖는 前線(전선)사령부와 海空軍(해공군)의 5할 戰力(전력), 특수게릴라 12개 旅團(여단)이 신속하게 休戰線(휴전선) 남측의 주한미군의 최전방과 최후선으로 동시 突擊(돌격)한다. ② 海軍(해군) 空軍(공군)의 나머지 5할 戰力(전력)과 미사일부대는 公海上(공해상)에 집결해 있는 美軍함대나 오키나와의 美軍基地(미군기지)를 集中的(집중적)으로 공격한다. ③ 북한에 대하여 敵軍(적군)이 空爆(공폭)할 시 民兵(민병)이 중심이 되어서 장기간 방위한다. ④ 전병력의 4할에 해당하는 특전부대, 기계화 보병, 중거리 포병, 공병부대 등은 최고사령부의 직속부대로서 임기웅변하여 敵軍(적군)을 타격한다.
조선인민군은 1980년대까지 3개의 군 조직 관할 하에 10개의 步兵軍團(보병군단)을 두고 육해공군이 각기 전투에 임한다는 傳統的인 전략을 취해 왔다. 그러나 91년에 걸프전쟁에 큰 충격을 받은 김정일은 현대의 立體戰爭(입체전쟁)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命令(명령)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10년 간 機動部隊(기동부대)를 師團(사단)으로부터 旅團(여단)으로 변경하였다. 또 步兵(보병)군단에 포함되어 있었던 半民間部隊(반민간부대)나 民間人 부대를 9개의 지방방위사령부 관하에 옮기는 것부터 軍조직의 전반에 거쳐서 再編制(재편제)까지 하게 되었다.
쿠바의 秘密(비밀) 核基地(핵기지)
구체적으로 근년에 와서 전략적으로 강화하고 있는 것이 다음 5개 부분이다. 제1부분.대량파괴무기를 비롯하여 最新銳(최신예) 武器(무기)를 도입한다.
우선 핵무기에 대해서. 脫北이후 매스컴에 처음으로 밝혀지는 최고 비밀이지만 북한은 1983년 탱크처럼 위장하여 소련으로부터 核武器(핵무기)들을 극비리에 수입해 왔다. 현재 소련제 4개의 핵미사일이 兩江道(양강도) 三池淵郡(삼지연) 胞胎里(포태리)의 地下미사일 施設(시설)에 수용되어 있다. 이 핵미사일에 사정거리는 8000km이며 美國 본토를 照準(조준)하고 있다.
북한군은 구 소련제만이 아니라 스스로 開發(개발)한 核武器(핵무기)도 수십 발 보유하고 있다. 이것은 주로 東海岸(동해안)의 부대들에 배치되어 있으며 사정거리는 4000km, 최대의 標的(표적)은 오키나와의 美軍基地(미군기지)이다.
핵무기에 관하여 또 하나 지적해야 할 것은 쿠바의 秘密基地(비밀기지)의 존재이다.
북한은 70년대 초부터 同盟國(동맹국)인 쿠바에 留學生(유학생)들을 仮裝하여 1000명 이상의 軍 技術者를 보내왔다. 그 중에는 쿠바인과 결혼한 기술자도 적지 않다.
쿠바에는 소련 지도로 군사교육을 받은 군인과 그 子弟(자제)들을 합하여 수천 명이 있다. 소련으로부터 극비리에 核武器(핵무기)를 수입하여 核(핵)미사일 基地(기지)를 만들어 왔다. 미국으로부터 經濟制裁(경제제재)를 받은 쿠바는 핵탄두가 美 본토를 향해 있는 북한의 軍事基地(군사기지) 덕택으로 미국에 대한 抑止力(억지력)을 갖게 되었다.
生化學(생화학)무기에 관해서 保衛總局(보위총국) 산하의 1개의 전문 旅團(여단)을 두고 있다. 이 여단은 화학무기도 5000개 이상 보유하고 있다. 生物兵器(생물병기)는 현재 없으나 이미 培養(배양)시스템을 완성시켜 놓았으며 有事時(유사시)에 아무 때나 미사일에 搭載(탑재)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생화학무기도 소련 遊學組(유학조)가 중심이 되어 擔當(담당)하고 있다.
金의 연수표(?)로 전투기를 購入(구입)하다
이처럼 북한은 전통적으로 무기나 군 시설을 소련에 의존해 왔지만 현재도 미그 戰鬪機(전투기)를 러시아로부터 購入(구입)하고 있다.
金日成은 生前에 “우리 軍은 超高速(초고속) 전투기가 불필요하다” 라고 말했지만 아마도 本心은 아니며 너무 高價여서 삼가했을 뿐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미그 전투기에 각별한 執念(집념)을 가지며 2000년대 초에는 극비리에 최신예 미그31 전투기를 20여대 구입하여 평양에 북 30km에 있는 순천공항에 배치하였다. 심각한 經濟難(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불하겠다는 그의 한마디로 決定(결정)되어 버린 것이다.
김정일은 軍事예산만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가 소유하는 延手票(연수표)로 지불해 왔다. 북한에서는 연간 30톤 정도의 金鑛石(금광석)을 채집해왔는데 본래는 國家財産(국가재산)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김정일에 獻納(헌납)되며 국민은 금의 所有(소유)나 판매가 금지되어 있다.
북한군은 또 新型砲彈(신형포탄)의 개발도 추진해왔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종래의 砲身(포신)은 북한 地形(지형)에 가장 적합하다고 하며, 함경남도 함흥시에 龍城 機械工場(기계공장)에서는 230km 大型砲身(대형포신)을 生産(생산)하며 포탄도 계속 改造(개조)하여 왔다.
예를 든다면 최근 105mm 放射砲(방사포)와 122mm 방사포의 砲彈(포탄)을 개조하였다. 개조후의 포탄은 전시용이라 하여 黃色(황색) 마크의 케이스에 넣어서 별도로 보관하고 있다. 37과 57km 高射砲彈(고사포탄)도 2000년 초두에 改造品이 완성되었으며 구식 砲彈(포탄)과 순차적으로 교체하여 왔다. 현재까지 구식 포탄을 회수하여 慈江道(자강도) 前川郡(전천군)의 軍需工場(군수공장)으로 반환한 것은 620 훈련소와 포병사령부의 소속부대 전차사단이다.
북조선군이 강화하고 있는 제2분야는 公海上(공해상)의 공격을 말한다. 황해남도 海州의 제4군단의 반을 西海岸(서해안) 海岸線(해안선) 방위부대로 고정배치하여 나머지 반은 황해북도의 제2군단과 연동시키고 있다. 또한 동해안의 함경남북도를 각기 방위하는 제7군단, 제10군단의 중거리포 부대를 海岸司令部(해안사령부)로 이전하여 공해상의 공격도 海岸(해안)부대)가 독자적으로 실행하도록 했다.
公海上(공해상)의 공격을 김정일은 2000년 지대함 미사일의 증산을 명령하였다. 그 때문에 청진시의 군수공장은 230mm의 지대함 미사일을 대량생산하여 지대함포 6개의 문을 1개 중대로 하여 40개 중대를 동해안에 배치하였다. 또 70년대 말부터 대공방위를 위해 평양에 배치했던 대구경 고사포(85-100mm)를 지대함 미사일로 사용하기로 하고 동해안에 100개 남짓 중대에 재배치하였다.
북조선군은 금년 2월 24일과 3월 10일에 동해안에 地對艦(지대함) 미사일 發射(발사)실험을 하였다. 이것은 오끼나와의 미군기지로부터 공해상으로 나오는 航空母艦(항공모함)을 狙擊(저격)하는 훈련의 일환이다.
그러나 평양에서 온 정보로는 4월 1일에 서해안에 着彈(착탄)한 미사일을 남포로부터 동해 쪽으로 육로이송 도중 오발 발사한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국내에서 개발한 미사일은 일단 남포로 가져가서 電子裝備(전자장비)를 하는 것이다.
또 금년 2월 20일에 북조선군의 미그19 전투기가 처음으로 서해안에 NLL(북방한계선)을 넘어서 남침하였고, 또 3월 2일에는 동해안에서 미그29 전투기가 미군의 RC135S 정찰기에 급접근하였다. 이것도 같은 훈련이었다.
북조선군은 물론 휴전선 공격도 종래와 같이 重視(중시)하고 있으며 再編成(재편성)이 진행되고 있다. 게릴라 부대인 19개 特攻旅團(특공여단)은 海・空軍으로부터 분리하여 矯導隊(교도대) 지도부의 직접 지휘하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국 내에 각자가 담당하는 지역에 보다 더 빠르고 파괴력이 강한 타격을 줄 수 있도록 훈련을 강화하고 있다. 동시에 機械化(기계화) 砲兵(포병), 보병의 6개소에 있는 훈련소 중에 620 훈련소, 806 훈련소, 815 훈련소 등 3개소를 戰線司令部(전선사령부) 산하에 두고 臨戰態勢(임전태세)를 갖추게 하였다.
三重의 同心圓(동심원)으로 平壤을 방위한다
전략적으로 강화하는 제3부분은 首都 平壤(평양)의 防衛(방위)이다.
걸프전에서 새삼스럽게 놀라게 된 것이 미군 空爆(공폭)의 威力(위력)이었다. 그래서 수도 평양을 空爆(공폭)에서 방위하기 위한 대규모 훈련을 매년 1회 행하며 연구를 거듭 했다. 그 결과 99년 처음으로 平壤지구 高射砲(고사포)사령부에 고사포병 55사단과 7개의 대공 로켓트 연대를 추가하여 평양지구 反航空司令部(고사포병 7개 여단, 機動(기동)고사포 2개 연대, 對空(대공)로켓트 7개 연대)를 편제하여 <圓形長壁(원형장벽) 火力체계>를 완성하였다.
이것은 평양시내를 三重의 동시 원상으로 수비하는 시스템이다. 일번 外側(외측) 圓上(원상)에는 中口徑砲(중구경포를) 배치하고, 두 번째 원상에는 小口徑砲(소구경포)도 일번 內側(내측)의 작은 원에는 대동강 下流에 高射砲(고사포)를 집중배치 하였다. 이것도 한번에 60000발의 고사포탄을 평양 상공으로 發射(발사)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火力부족으로 현재 발사할 수 있는 密度(밀도)는 35000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地上戰(지상전)을 대비한 首都防衛(수도방위)는 보위총국, 인민무력부, 인민보안성의 3자가 一體(일체)가 되어서 하는 것이나 주력은 보위총국 제2국 소속의 전투부대이다.
평양시 주변에는 제3군단 소속의 보병부대와 425훈련소 소속의 機械化 부대, 전차 지도부 소속의 5개 전차사단이 배치되어 있다. 戰車(전차)사단 중 105 사단과 106사단은 동부전선을 담당하고 107사단과 108사단은 평양-남포 고속도로를 따라 서부전선을 담당한다. <폭풍우>라고 명명된 98년에 製造(제조)한 최신예 전차로 무장한 109사단은 최고사령부를 방위한다.
해군부대에 陸軍服(육군복)을 입히다
북조선군이 전략적 역점을 두는 제4부는 機密保持(기밀보지)의 철저화이다.
金正日은 軍의 간부 기술자들에게 “敵(적)의 정찰위성의 공중촬영을 방지하는 방법을 생각하라”고 거듭 命令(명령)하고 있다. 그리고 당면 대책으로서 <위장행동>을 권장하고 있다.
예를 든다면 재작년 초에 全體(전체) 길이 약 80km의 평양-남포 고속도로를 건설했을 때의 일이다. 이 工事(공사)와 병행하여 다음 세 가지 軍務(군무)를 수행했다. ① 부근 군사시설의 改造(개조)공사 ② 8-5 훈련소와 평양 방위사령부와 陸上(육상)부대의 解散(해산) 및 제3군단으로의 편입 ③ 機械化部隊(기계화부대)의 4-5 훈련소 신설
이 때 이 세 가지 軍務(군무)부문은 夜間에 조명없이 했으며 대낮에는 민간인 부대를 다수 동원하여 전혀 관계없는 僞裝(위장)행동을 취하게 했다.
機密保持(기밀보지)의 중요성은 해군과 똑같이 했다. 작년 1월 동해안 新浦市 앞 바다에 떠있는 馬養島(마양도)를 極秘(극비)시찰했던 김정일은 “東海岸(동해안)의 戰力(전력)을 은폐하라”는 중요 지령을 내렸다. 그 후 잠수함 부대와 해상 미사일부대가 기동을 중단했다. 동시에 그들의 軍服(군복)을 해군복에서 陸軍服(육군복)으로 갈아입으며 육군과 분간할 수 없도록 했던 것이다.
전력강화를 위한 제5부분은 군사교육의 改編(개편)이다.
2000년 인민무력부 교육국은 “인민군대 내에 군사학교에 교과목을 일부 변경해야 한다”라는 標題(표제)의 문서를 김정일에게 제출했다. 거기에는 다음 두 가지가 적혀 있었다. ① 김일성 정치대학에서 정치군관의 군사실무 능력향상을 위하여 일반교양과목의 시간을 半分(반분)하여 그 대신 군사 專門科目(전문과목)을 대폭 증가한다. ② 김일성 군사종합대학 연구생 제도를 폐지하며 연구생들 전원을 美林大學(평양에 있는 理科系 제일의 대학)에 轉校(전교)시켜서 현대의 하이테크 전쟁에 대비하는 연구에 종사케 했다.
김정일은 이것도 批准(비준)하였다.
타 대학에서도 개혁이 추진되고 있다. 예를 들어서 해군대학에서는 99년도부터 '海岸砲兵(해안포병) 강좌'를 신설하여 증강된 해군포병들 교육을 하는 체제를 만들었다. 姜健종합군관학교에서는 특수보병부대의 임무확대를 위하여 “특수보병강좌”를 설치하였다. 함경북도 의성군에 있는 비행군관학교에서도 초고속 비행기에 의한 저공비행훈련을 실시했다.
金正日은 전쟁을 일으키지 못한다
이처럼 북한은 한국전쟁 후 50년이 지난 현재까지 한반도의 무력통일을 목표하며 줄 곳 달려 왔다. 軍이 김정일에게 제출했던 금년 1월 10일 현재 통계에 의하면 직업군인이 1,943,881명이다. 인구는 2300만 명에 지나지 않는데 군의 비율로 보면 세계 제일이다. “군사가 만사”라는 격이다.
그러나 나는 단언할 수가 있다. 金正日은 제2차 韓國戰爭을 일으키지 못한다. 현재 조선인민군에서 강력한 부대로 인정받는 것은 12개의 게릴라여단, 장거리포부대, 미사일부대, 공군의 장거리 공격부대, 그리고 쿠바에 있는 핵미사일 基地(기지) 뿐이다.
현재 북한군의 약점은 다음 4가지이다. 첫째, 군인들이 허약하다. 김일성시대에는 평균 몸무게 목표가 62.5kg 이었는데, 95년부터 식량사정이 악화되어 98년에 체중조사로 보면 평균체중이 43.5kg 이었다. (중략)
본래 군인에게는 白米(백미)를 배급하도록 규정이 있는데 실제로는 세 끼가 옥수수로 되어 버렸다. 그나마 하루에 옥수수 1개인 경우도 있다. 예외는 김정일 직속의 特戰부대인 12개 게릴라여단과 공군 2개 사단, 핵무기를 담당하는 4개의 특수부대이다. 이 특수부대에게만은 세 끼를 쌀밥으로 주라고 되어 있다. (중략)
軍이 김정일에게 제출한 금년 1월 10일 현재의 최신 데이터에 의하면 03년 1년 동안 필요 전쟁 비축미가 764,500톤이라고 한다. 현재 확보량은 527,800톤이므로 확보율이 69%이다. 작년 같은 시기의 확보율이 43%였다는 것을 보면 상황은 매우 개선된 것이다. 그 이유는 外國으로부터의 원조미가 증가하여 그것이 전쟁 비축미로 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식량원조를 하면 그만큼 전쟁위기가 높아진다는 것이 된다.
제2의 약점은 思想(사상)의 악화이다.
김일성 시대의 북조선군은 물질적 결함을 메꾸고도 남음이 있는 강인한 정신력이 있었다. 그러나 95년에 식량부족이 심각해지면서 軍의 사기가 크게 저하하였다. 예를 든다면 自由主義라는 은어가 군 내부에 유행하였는데 이것은 군인들이 민간인 집에 가서 강도질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군의 주둔지에서 軍民관계가 악화하였다. 김정일이 어느 부대를 시찰할 때에 그 부대의 장군은 창고의 비축미를 병사들에게 많이 베풀어서 그 날만 땜질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다.
이런 상태이므로 지금은 장군으로부터 병졸에 이르기까지 김정일에 충성을 맹세하는 군인은 하나도 없다. 누구나 자기 職務(직무)만 마치면 뒷일은 어떻게 되든 모른다고 상관하지 않는다. 전투에서 승리하기보다 하루 속히 除隊(제대)하고 싶다는 것이 군인들의 본 마음이다. 이러한 상황을 김정일 자신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사상적 통제를 한층 더 강화했고 최근에는 군 간부를 모아놓고 이러한 정신상태로 전쟁을 할 수 있겠나, 하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開戰(개전) 후 일주간 분밖에 없는 燃油(연유)
김정일의 제3의 약점은 석유가 결정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 (중략) 97년부터 연료부족 때문에 중장비를 가동할 수 없게 되었으며 大部隊의 機動訓鍊(기동훈련)은 중지되어 왔다. 또한 東과 西의 海岸부대는 포 사격장에서 實彈射擊(실탄사격)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연료소비량이 가장 많은 空軍(공군)의 비행훈련도 연간 계획의 10%수준으로 떨어져서 비행사의 전투능력은 크게 저하되어 있다.
이러한 慘狀(참상)에 속을 태웠던 김정일은 2000년에 “내년부터 군사비 支出(지출)을 50억 달러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큰소리 쳤다. 그러나 2001년의 군사지출은 그의 반액도 안되는 23억 달러였다.
김정일은 2001년 1월 全軍(전군)에게 戰時用(전시용) 연료 1개월분을 확보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래서 군인들은 軍務(군무)를 제쳐놓고 海外에 나가서 달러벌이를 위해 마구 뛰게 되었다. 그러나 석유 이외의 수입을 표면상 금지했으므로 뇌물이 더욱 더 격증하였다. 또 군 간부들 간에도 연료강도나 밀매가 횡행하였으니 혼란이 더욱 심해져가는 일방이었다. (중략)
제4의 약점은 통신 지휘망이 극도로 취약하다는 점이다.
현재 북조선군이 보유하는 장거리 무선통신 器機(기기)의 대부분은 소련제인데 有用期間(유용기간)이 훨씬 지난 상태이다. 또 국산의 중장거리 短波(단파), 超短波(초단파) 無線機(무선기)는 障害波(장해파)에 의한 통신마비가 빈번하며 통신거리가 매우 짧으므로 거의 무용지물이 되어 있다. 유선통신 기재도 성능이 열악하며 낡은 通信線(통신선)이 조금밖에 없음으로 戰時(전시)에는 有線通信(유선통신)을 기대하지 말라는 지시가 나와 있을 정도이다.
더욱이 충전기의 성능도 매우 열악하여 통신기기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태로 인하여 북조선군은 戰時(전시)에 통신기기를 이용하여 전투명령을 주고 받을 수 없는 상황을 대비하여 다음과 같은 방법이 통달되어 있다. ① 전령은 문서나 구두로 전한다. ② 烽火(봉화)를 올려서 신호한다. ③ 이미 정해진 전투명령서를 따라서 주체적으로(알아서) 전투행동을 한다.
요컨대 반세기 전에 있었던 한국전쟁 때보다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다.
통신기기 이외에도 지하에 보관되어 있는 展示用(전시용) 화학물질이나 의약품도 變質(변질) 열악화 되어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 대부분이다. 보유 화학무기가 5000톤이라고 하나 태반은 유용기간이 지나서 實戰(실전)에 사용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북조선군은 김정일의 명령이라 전쟁준비에 여념이 없다. 북조선군은 현재 철봉각 외에도 다음과 같은 비밀지하 요새를 전국에 만들어 놨다.
最高司令部
○예비지휘소 : 慈江道(자강도 )中江郡 雙頭山(해발1280m)의 지하로 2층구조. 입구의 五佳山(오가산,높이1227m)에서 지하터널약 20km 앞 雙頭山(쌍두산)까지 연결. 1개 연대가 주둔하여 시설을 관리하고 있다.
○야전병원 : 평양시 용성구성 어은동(해발 430m의 융골산에 있는 어은동 사적의 건조물內에 비밀입구). 폭 5m. 높이 4.5m의 터널 안에 50m2 이상의 수십 개 터널이 있고 설비가 완비된 幹部전용 야전병원이다.
○지하저장고(4개소) : 제1저장고는 평양시 강동군 제석산(해발 421m)의 지하. 2층 구조의 터널이 만들어지고 전시의 화력장비를 보관. 제2저장고는 평양시 모란봉 구역애 있다. 2층구조인 지하 저장고로 입구는 김일성 경기장의 우측에 있는 평양교량건설 작업소의 정문. 지하1층에 고사포, 지하 2층에는 전시용의 기동장비를 보관. 제3저장고는 평양시 삼석 구역에 있는 청운산(해발 163m)의 지하. 동서남북 4개소에 입구를 가진 보위총국 관리하의 저장고로 식량, 의복, 의약품 대량의 생활필수품을 보관. 제4저장고는 평양 북쪽의 평산시 청용산(해발 517m)의 지하. 철제의 거대용기에 약 5만 톤의 연료를 저장.
人民武力部
○야전지휘소 : 평양시 서성구역 서산동. 출입구는 3군데. 2층구조의 지하터널이 인민무력부의 司令塔(사령탑)이다.
○예비지휘소 : 자강도 희천시에 있는 희천전자 기계공장의 지하.
○야전병원 : 남포시 천리마 구역 대평리(해발 327)의 대포산의 지하에. 인민무력부11호 병원이 이전할 수가 있는 규모의 야전병원을 있다. 너비 5m, 높이 4.5m의 폭 구조로 입구는 두 군데.
○지하저장고 : 세 군데다. 제1저장고는 평양시 상원구 중리. 반 지하 터널과 지하 터널의 2중 구조로 평시에는 예비로 사용하는 기동기재를 저장. 제2저장고는 평양시 용성 구역 중2동 임불산(해발210m)의 지하에 있으며 역시 2층구조. 인민무력부의 병기국이 관리하는 병기 및 포탕의 저장고이다. 제3저장고는 자강도 전천구 비삼봉(해발 1830m)의 지하. 두 군데의 출입구를 가진 의복의 종합창고이며 인민 부력부의 문서보관도 겸하고 있다.
○軍團(군단) 제 1군단에서 12 군단의 기본 지휘소 등의 위치⋯ (중략)
이상이 두꺼운 베일에 가려진 朝鮮人民軍(조선인민군)의 실태이다.
북한 정도의 군사대국이면서도 전쟁을 일으킬 수 없는 김정일은 앞으로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담보하여 미국이나 기타 多國間의 협의를 추진하는 길밖에 살 길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국제사회가 1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북조선과 안이하게 타협해 버린다면 그 위험한 독재자를 다시 소생하게 만드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金正日 한 사람을 매장해 버리면 200만 조선인민군이 붕괴하며 2300만의 북한 국민은 해방되어서 동북아시아의 평화가 올 수가 있다. 지금이야말로 국제사회가 단결하여 김정일의 숨통을 끊어놓을 시기일 것이다. (2003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