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갈라티아 3,1-5 루카 11,5-13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주님께 청하였으나 받지 못한
경험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주님께 탓을 돌리다가
‘그럼 나는 주님께 전적인 신뢰를 드리며 청하였던가?’ 하는 질문을 던져 봅니다.
오늘 복음은 청하는 자와 청을 들어주는 자의 관계에 주목합니다. 한밤중에 빵 세 개가
필요하였던 사람은 아무나 무턱대고 찾아간 것이 아니라, 그것을 꾸어 줄 만한 친분이 있는
벗에게 찾아갑니다. 바라는 것을 얻어 내고자 영리한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한밤중에 자고 있던 그 벗은 귀찮기도 하고 이미 잠든 식구들을 깨우기가 곤란하다며 거절하지만,
친구의 청은 한 번으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계속 졸라 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친구 사이였고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줄곧 졸라 대다’로 번역된 그리스 말
‘아나이데이아’는 ‘뻔뻔스러움’ 또는 ‘부끄러운 줄 모름’을 뜻합니다.
절박한 상황에서 친구끼리라면 조금 염치없이 뻔뻔하게 굴어도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서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가 누구에게 청하고 있는지를 깨닫고 그에게 무한한 신뢰를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한 신뢰 관계는 친구 사이보다 어쩌면 부모 자식 사이에 더 끈끈하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벗이 부탁하는 청도 거절하기 힘든데, 자녀들이 청하는 것을 아버지가 거절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자비를 신뢰합니다. 세상 어떤 아버지보다도 선하신 분, 바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의 사소한 청 하나도 허투루 흘려들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것이 우리의 구원 여정에 꼭 필요한 선물이라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우리의 영적 여정에 필요한 선물은 결국 성령의 은사입니다.
아버지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가운데 그 좋은 것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인천교구 정천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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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갈라티아 3,1-5 루카 11,5-13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영화 ‘반지의 제왕’이 있습니다. 영화는 3부작으로 제작되었습니다. 1편은 ‘반지원정대’
2편은 ‘두개의 탑’ 3편은 ‘왕의 귀환’입니다. 이는 이냐시오 성인의 영신수련과 주제가 비슷합니다.
영신수련의 주제는 ‘하느님의 영광’, ‘두개의 깃발’, ‘사랑을 얻기 위한 명상’입니다.
반지의 제왕은 절대반지를 향한 주인공 ‘호빗’의 긴 여정입니다. 영신수련은 영원한 생명을 향한
그리스도의 생애입니다. 절대반지는 ‘성공, 명예, 권력’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헌신, 겸손, 나눔을 통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악의 탑을 멀리하고 선의 탑을
선택해야 합니다. 인생은 선과 악의 대결입니다.
비록 현실에서는 악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왕의 귀환으로 결국 선이 승리합니다.
신앙의 여정도 그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죽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처절한 실패이고 억울한 죽음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다시 일어났습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일어났습니다.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일어났습니다.
원망에서 감사함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것을 선택하지 않고 하느님의 영광을 선택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축복을 넘치도록 주실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깃발을 선택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에는 머물 곳이 많습니다.
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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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대 프란치스코 신부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갈라티아 3,1-5 루카 11,5-13
마음 깊은 곳의 갈망 마음 깊은 곳의 갈망을 좇아가면 하느님을 만난다.
부제서품을 앞두고 나는 호주 사막 한가운데서 8일 피정을 했다.
멜버른에서 사막까지는 기차로 꼬박 29시간이 걸렸다. 아침 여명이 밝아오면서 드러나는
벌건 사막엔 살아 있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어 보였다. 모든 것이 바싹 말라 있었다.
나는 사막이 주는 위압감에 눌렸고 몸이 쪼그라드는 느낌을 받았다.
원주민들이 나를 바라보는 모습도 편하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피정을 지도해 주실 수녀님께 멜버른을 떠나 이 사막에 오기까지의 여정과
내 마음의 움직임을 이야기하였더니 수녀님은 간단히 “두려움이군요. 피정 동안 이 사막의
환경에 자신을 열어보는 연습을 하세요”라고 하셨다.
피정 첫날, 나는 피곤해서 낮잠을 잤다. 한참을 자고 있는데 어디선가 악기를 연주하는
소리가 들렸다.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를 찾아가듯 나는 소리나는 곳을 찾아갔다.
그 소리가 나는 곳은 마을회관이었다. 하지만 원주민들이 혹시 나를 거부하면 어쩌나 싶어
망설이다 내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내 이야기를 들은 수녀님은 나에게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냐고 물었다.
나는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수녀님은 위축되어 있는 나에게
“마음 깊은 곳의 갈망을 좇아가세요.그러면 하느님을 만날 것입니다”라는 말을 해주셨다.
내가 그 회관에 편안히 들어가는데는 약 4일이 걸렸다.
첫째 날은 문에서 1미터 안으로 들어가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다음날은 주변 의자에 앉아서 10여 분을 있었다.
그 다음날 갔더니 어린아이들이 먼저 와서 내게 말을 걸었고 나는 그들과 함께 놀았다.
경계의 대상이었던 원주민들에게 환대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예수회 김정대 프란치스코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