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을 만났다.
김지명
혼기를 놓쳤다. 맞선은 여러 번 보았으나 결혼할 인연이 나타나지 않아 노총각의 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장가가려는 마음이 조급해 아가씨라면 무조건 선을 보았으나 짝을 찾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친구들의 부인까지 동원하여 짝을 맞추어보려고 노력했지만, 서로 성격이 같고 체질이 같아서 혼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깃불도 음극과 양극이 만나야 불이 밝아지는 원리를 선보면서 뒤늦게 깨달았다. 음인으로 태어난 사내가 양인인 여인을 찾으려니 하늘에 별을 다 세는 만큼 어려웠다. 여자는 약 80%가 음인이기 때문이다.
음인은 반드시 양인을 만나야 부부가 될 수 있다는 원리를 알았다. 선보려고 다혈질의 아가씨를 찾아다녔다. 팔십 년도에는 반드시 장가가려고 어머니따라 절에서 기도도 빠뜨리지 않았다. 한 해가 시작되는 순간 간절곶에서 기도하기 위해 어둠을 밟으며 해맞이 장소로 달려갔다. 해변의 높은 언덕에서 수평선 너머 태평양 쪽으로 바라볼 때 넓은 바다가 훤하게 밝아온다. 고요한 수평선을 찢어놓고 치솟는 붉은 해는 한순간 올라오더니 세상에 생명의 빛을 밝힌다. 하루빨리 신붓감을 찾아 혼례식장에서 축하객들에게 환호의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오게 해달라고 손 모아 고개 숙이고 빌었다.
어느 날 야유회에서 십 년 후배인 직원의 부인을 우연히 만났을 때 노총각이라고 놀려댄다. 친구 부인에게 성격이 아주 급한 아가씨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부인은 주변에 아직 결혼하지 않은 친구가 있는데 나이 차가 많아서 하면서 망설였다. 십 년 차이는 건강한 사람에겐 숫자에 불과하니 다혈질의 아가씨가 있으면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하듯 정중히 부탁했다. 그녀는 중신아비 잘 모셔야 한다고 하면서 힘내 보겠다고 했다. 인연으로 이어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신부가 될만한 위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항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체질이 같으면 절대로 결혼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느꼈다. 남자는 대다수가 양인 체질이지만, 음인으로 태어나 양인의 여성을 만나야 하겠다고 생각하니 적막강산 같은 느낌이다. 부모는 대리만족하려고 서두르지만, 같은 체질은 화합하지 못하고 물과 기름처럼 분리된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깨달았다. 체질이 같으면 친구로서 궁합은 아주 좋지만, 부부는 절대로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칼바람이 귀때기를 아리게 하던 어느 날 십 년이나 젊은 후배와 주석에 앉았다. 회식 자리에서 후배는 형님은 왜 장가를 가지 않는지 이유를 묻는다. 미소만 짓고 있었는데 후배는 호주머니를 뒤지더니 수첩을 꺼내 부인의 친구들 전화번호를 펼쳐 들고 자랑삼아 보여주었다. 좋은 기회라 생각하여 눈앞을 스쳐 가는 숫자를 한순간 머릿속에 입력했다. 친구와 후배는 술맛이 좋다고 잔을 높이 들고 부딪치지만, 주석에 마주 앉아 술잔은 들지 않고 알쏭달쏭한 숫자만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며칠 후 머릿속에 입력된 전화번호로 다이얼을 돌렸다. 따르릉~여보세요, 처음 듣는 음성인데도 너무나 편안하게 들렸다. 애교스러운 아가씨가 전화를 받드니 누구를 찾는지 묻는다. 그곳에 유진이라는 아가씨가 있는지 물었다. 저예요, 누구세요? 현자 신랑이라고 했다. 아가씨는 반갑게 반기면서 친구의 안부를 묻는다.
요번 주말에 시간 되면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나자고 부탁했다. 아가씨는 기꺼이 승낙하고 주말에 보자고 하고 통화를 끝냈다. 태연하게 후배로 둔갑하여 한참을 통화했지만, 친구의 신랑음성을 전혀 알 리가 없었다. 유진과 길생은 주말에 울산으로 무거검문소 언저리에 친구 집에 먼저 들렀다 가자고 했다. 두 아가씨는 휴대전화기가 없었던 시절이라 연락을 하지 않고 바로 친구집에 들렀다. 친구 부부는 깜짝 놀라면서 갑자기 왜 왔는지 묻는다. 유진은 친구 신랑이 부르지 않았는지 눈을 댕그랗게 뜨고 처다보면서 물었다. 현자신랑 춘환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미숙은 속았구나 하면서 앞니를 물었다.
회사직원 춘환에게 이야기 듣고 모르는 척하면서 유진에게 전화했다. 아가씨가 전화를 받는 즉시 일전에 울산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분인지 묻는다. 맞아요. 왜 약해놓고 지키지 않았는지 물었다. 터미널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나오지 않아 온종일 기다렸다고 덧붙였다. 유진은 보복하겠다는 생각으로 인내심을 발휘하여 참고 또 참으며 대화를 이었다. 울산까지 가서 보지 못해 친구만 만나고 왔는데 엄청나게 보고 싶어요. 하면서 만남을 부탁한다. 지난번에 우리가 울산 갔으니 이번엔 총각이 대구로 오면 좋겠다고 아양을 떨면서 부탁한다. 그렇다면 가야지 하면서 덤덤한 목소리로 주말에 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요번 주말에 동대구고속버스터미널에서 열두 시에 약속하고 싶은데 어떠한지 물었다. 좋다고 하면서 버스에서 내릴 때 검정 색깔의 바바리에 오른손에는 신문을 들고 내리겠다고 했다. 그럼 그날 만나서 즐거운 이야기로 이어보자고 하고 통화를 끝냈다. 유진은 바람맞히는 것으로는 정도가 약하다고 생각하고 좀 더 심하게 복수하려고 고심했다. 친구가 왔으면 좋았을 텐데 오지 않아 혼자서 예행연습 하려고 일찍 와서 멀리서 지켜보면서 혼내 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당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세월에 끌려가면서 한순간 지나가는 시간도 기다림은 지루했다. 며칠이 한 달처럼 지루했으나 약속한 주말이 되었다. 약속 시각보다 한 시간 먼저 도착하는 표를 구매하여 버스에 올랐다. 달리는 버스에 앉아 차창 밖으로 세상의 경치를 내다보았다. 창밖의 풍경은 영화를 보는 것처럼 다양한 그림들이 스쳐 간다. 풍경에 취해 망상에 젖었을 때 과속으로 달리던 버스가 멈춰서는 곳이 동대구 고속버스터미널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곁으로 스쳐 가던 아가씨가 깜짝 놀라더니 응급 결에 인사한다. 유진은 바바리에 신문을 든 총각을 보자 무의식중에 인사하고 말았다. 아니 약속한 시각이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왜 벌써 왔는지 묻는다. 보고 싶어서 일찍 왔다고 하면서 웃었다. 유진 아가씨는 상하로 눈동자를 굴리더니 다방으로 안내한다. 테이블에 마주 앉아 많은 대화를 주고받을 때 인연 같은 느낌을 받았다. 분위기를 바꾸어 건강을 테스트하려고 앞산 공원으로 데이트하자고 했다.
대구까지 가서 머무는 인연을 찾은 것 같다고 좋아했다. 유진도 그런 느낌을 받은 것 같다고 하면서 노총각 구제하면 그 대가는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 세상에 공짜가 없으니 그 대가는 이불 속에서 반드시 값겠다고 하고 환하게 웃었다.
첫댓글 좋은 인연을 만나셨네요
늘 건강 하시고 행복하세요
고맙습니다.



운영자님 건강하게 지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