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624) - 평화와 번영을 염원하며 만해의 길 걷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남북정상회담이 성공리에 끝나고 싱그러운 5월이 문을 열었다. 회담도중 남북정상이 온 겨레의 염원을 담아 심은 평화와 번영의 나무가 굳건하게 잘 자라기를 비는 마음이다. 두 정상이 심은 나무에 새긴 문구는 ‘평화와 번영을 심다’, 나는 결혼에 즈음하여 동작동 국립묘지에 이런 생각으로 기념식수 하였다. ‘밝은 사회, 평화의 나라가 이룩되도록 저희의 마음과 뜻을 담아 이 나무를 심습니다.’ 또 6.25 60주년에 즈음하여 가족과 함께 걸은 ‘회상의 피란길’(2010. 4. 10~ 24, 서울 – 고창 320km) 때는 ‘통일과 번영을 염원하며’를 구호로 내걸었다. 별개인 듯 하나로 엮어지는 염원이 민초로부터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공감하는 이벤트가 뜻깊다. 5월에 이어지는 북미정상회담도 세계인이 경축하는 좋은 결실 맺으라.
성공적인 남북정상회담의 기운을 안고 지난 주말(4월 28~29일), 불교아카데미가 주관하는 ‘설악산에서 금강산까지 만해의 자취를 따라 걷다’는 만해의 길 걷기에 다녀왔다. 작년 9월의 1차에 이은 두 번째 행사, 웅장한 백두대간의 설악산 줄기를 따라 강원도 고성군 건봉사와 통일전망대를 탐방하는 뜻깊은 이벤트다. 작년에도 참석하였지만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 탐방기를 적는다.
토요일(4월 27일) 오전 9시, 아내와 함께 장충단공원에서 출발하는 버스에 올랐다. 타워호텔을 지나 제3한강교를 건넌 버스는 9시 반쯤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추가탑승자를 싣고 한강변을 따라 남양주방면으로 향한다. 주최 측이 마련한 김밥으로 아침을 드는 동안 톨게이트를 지난 버스는 서울-양양을 잇는 고속도로에 접어든다. 주말이라 일부구간에서 정체, 우리가 탄 버스는 중간휴게소에서 잠시 휴식 후 동홍천 인터체인지에서 국도로 접어들어 인제를 거쳐 오후 1시경 진부령을 넘는다.
목적지인 고성군 간성읍 장신리 유원지에 이르니 오후 2시가 가깝다. 버스에서 내리니 아침 7시에 출발한 1팀이 흘리 임도입구에서 장신리 유원지까지 12km를 걸어 속속 도착한다. 오후 2시 10분, 1팀과 합류하여 건봉사까지 9.3km의 걷기에 나선다. 출발에 앞서 김윤길 불교아카데미 원장이 행사의 개요를 설명한다. 문화재청과 고성군, 건봉사의 후원으로 기획된 만해의 길 걷기를 가을에도 지속할 것임을 천명하며 때마침 이뤄진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로 주최 측이 기대하는 금강산까지 걸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한결 높아진 것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일행 모두 선견지명을 지닌 안목에 박수를 보낸다.
걷기참가자는 약 100여명, 북천 옆길과 군부대를 지나 꽤 긴 산길인 가마골을 거쳐 건봉사에 이르니 오후 5시가 가깝다. 건봉사 입구에 있는 송원대사의 석상을 지나 하늘로 치솟은 소나무 숲길이 인상적이다. 작년에는 장신리유원지에서 건봉사까지 버스로 이동하느라 지나쳤던 것, 사명대사로 익숙한 송원대사가 이곳에서 수천 명의 의병을 조련한 것과 6.25 때 전소한 건봉사의 참화를 딛고 꿋꿋하게 자란 수백 년 수령의 소나무들이 이곳의 볼거리라 적혀 있다.
도착하자마자 절에서 제공하는 공양에 이어 대웅전 앞의 봉서루에서 열리는 창작판소리공연이 펼쳐진다. 현담 주지 수님이 전통사찰인 건봉사의 연혁과 문화 유적을 소개하고 정태원, 이효덕 소리꾼과 강대현 고수가 육성으로 전하는 창작 판소리공연이 이어지는 산사의 저녁바람이 상큼하다.
숙소는 고성 바닷가의 오션투유 리조트와 왕곡리의 한옥마을, 세 대의 버스 중 두 대는 바닷가로 향한다. 나는 바닷가 행, 2년 전 해파랑길 걷기와 작년의 만해의 길 탐방에 이어 3년 연속 고성의 동해바다를 찾는다.
다음날(4월 29일) 새벽 5시 반, 바닷가로 나와 일출을 맞는다. 일출시간은 5시 35분, 옅은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태양이 찬란하다. 때에 맞춰 고깃배가 바다를 가르며 지나는 모습이 운치 있다. 오전 6시 반, 함께 온 가족들과 한 방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말씀의 주제는 연대와 거주의 한계를 정하신 하나님, 때마침 펼쳐지는 한반도의 역사적 섭리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전 8시 반, 버스에 올라 건봉사로 향하였다. 9시부터 건봉사 문화탐방, 다수는 신라 경덕왕 때(758년) 1만일 간 스님과 불자들이 결사하여 27년간 진행한 만일염불희의 등공대로 향하고 일부는 건봉사 주변의 문화재를 돌아보았다. 나는 작년에 등공대를 다녀온 터라 건봉사 주변을 돌아보기로. 경내에는 만해당 대선사 시비, 조영암 시와 노래비, 혜강 김규진 서예 글씨, 300년 된 노송, 석가모니 치아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금강산 고찰의 사진을 전시한 봉서루 등 볼만한 것들이 많다.
300년 된 소나무 아래에서 바라본 건봉사 전경
오전 11시, 건봉사를 출발하여 통일전망대로 향하였다. 작년가을 만해의 길 탐방에 이은 7개월만의 재방문, 선명하게 다가서는 북녘 땅을 눈에 담고 발길을 돌려 주차장 옆에 잇는 6.25전쟁체험전시관을 찾았다. 전쟁발발에서 휴전에 이르는 참혹한 장면을 살피며 새기는 평화와 번영의 염원이 더욱 간절하구나. 건봉사에서 접한 조영암 시인의 시, 출정사(出征詞, 광포한 시대에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많은 영혼들에게 위로가 되는 내용)를 떠올리며.
‘출정사(出征詞)
복사꽃 붉은 볼이 너무나 젊어
사랑도 하나 없이 싸움터로 달린다
나라와 겨레 위해 몸이 슬어도
천년 후 백골은 웃어 주리니
흐려오는 안정(眼精)에 얼비치는 사람아
흰 눈벌 촉루 위에 입 맞춰 달라.’
오후 1시 조금 전, 통일전망대를 출발하여 귀경길에 올랐다. 고성은 금강산 오가는 관광객들로 성황을 이루다기 지금은 한적한 고을, 다시금 북녘으로 이어지는 발걸음 열려 북적이는 날이 빨리 왔으면. 쾌속으로 달리던 버스가 바닷길에서 진부령 쪽으로 방향을 튼다.
오후 2시경, 웅혼한 기상의 내설악이 우뚝 솟은 인제의 국도변 휴게소에서 점심을 들고 동홍천에서 고속도로에 접어든다. 귀경차량으로 정체를 거듭하다 잠실올림픽 경기장에 도착하니 저녁 6시 반, 이곳에서 내려 분당의 아들네로 향하였다. 지하철역으로 나온 아들네 가족과 함께 저녁을 들고 처소에 이르니 저녁 9시가 가깝다. 잠자리로 찾아온 세 살 백이 손자의 재롱이 피로를 가시게 한다. 사랑하는 후예들아, 전쟁과 불안의 아픔 잊고 평화와 번영을 오롯이 누리라.
통일전망대에 도착한 일행들, 북녁땅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첫댓글 양희은 선생님의 '늙은 군인의 노래'가 잘 어울릴듯한 글입니다. 내년에 손주 손잡고 금강산 구경도 가능하지 않을까요?ㅋ아직 어리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