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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종전이 아니라 휴전이라네! 판문점 총격사건을 통해 분단현실 파헤친 대작
유엔과 북한의 공동경비구역 JSA(Joint Security Area, 9월9일 개봉). 한 밤 북측 초소에서 총성이 울린다. 초소를 뚫고 지나간 총구멍으로 카메라가 빨려들어가면서 판문점 총격살인사건의 수사가 시작된다. 수사에 나선 한국계 스위스군 소피 소령(이영애)은 남측 생존자 이수혁 병장(이병헌)과 북측 생존자 오경필 중사(송강호)의 진술서를 번갈아 분석하지만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남측 이병장은 북쪽으로 납치됐다가 간신히 탈출하는 과정에서 북한군을 쏘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북측 오중사는 남측이 일방적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공격했다고 주장한다. 사라진 탄피 한발이 이 사건의 열쇠일 터이지만 당사자들은 무조건 침묵하고 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사이에 두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수혁 병장은 수색중 지뢰를 밟았다가 북한군 오경필 중사에게 구출된 후 그를 형처럼 생각하며 우정을 쌓아간다. 휴전 상태임을 잊고 위험하게, 밤마다 선을 넘어 술도 마시고 선물도 주고 받고 고향 이야기도 나누던 이들은 예기치 못한 총격전에 말려든다. 후방의 도시나 마을이라면 너무나 평범했을 상황이지만 분단 경계선의 초병이기에 서로 총을 겨눌 수 밖에 없다. 카메라가 좁은 초소 내부의 좌우 공간을 팬으로 왕복하며 벌이는 이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들며 동시에 분단의 과제까지 고민하게 만드는 명장면이다. 이들이 왜 서로 총격전을 했는지 짐작컨대 남북의 지휘관들은 알고있지만 묻어두고 싶다. 이병장과 오중사도 이를 묻어두고 싶다. 다만 끝내 묻어두지 못한 죄책감과 휴머니즘 탓에 영화는 비극이 된다.
"미스터리 구조로 긴장을 끌고 가다가 회상 장면의 액션과 유머로 잊고 있었던 휴머니즘이 살아나면 비장하게 영화를 끝낸다." 감독이 공개적으로 밝힌 연출 의도를 약간 보태면 이 영화의 얼개가 명확히 드러난다. 지포 라이터 같은 소품을 활용한 복선 구조도 세심하다. 앞서 나온 대사를 기억하는 관객에게 더 많은 유머를 주고, 앞선 장면을 떠올리는 관객에게 더 즐거운 미스터리를 제공한다.
장르의 규칙과 일탈에 관해 풍부한 시각적 체험자인 박찬욱 감독에게
<이성복 편집장 sb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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