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꿈길에서
황진이(黃眞伊)
서로 그리워하고 만나는 일 꿈길뿐인데
내가 임을 찾아갈 때는 임께서는 나를 찾아 떠났네
원컨대 긴긴 내일 밤 꿈속에서는
같은 시각 꿈길 가운데 만나지이다.
相思夢(상사몽)
相思相見只憑夢(상사상견지빙몽) 儂訪歡時歡訪儂(농방환시방농)
願使遙遙他夜夢(원사요요타야몽) 一時同作路中逢(일시동작로중봉)
[어휘풀이]
-儂訪(농방) : 내가 방문하다. 儂(농) : 나, 저, 당신
-遙遙(요요) : 멀고 멀다. 遙(요) : 멀다, 아득하다. 떠돌다.
[역사이야기]
황진이(黃眞伊:생몰연대 미상)는 조선 중종 때의 개성 출신 기녀였으며 여류 시인으로 호는 명월(明月)이다. 시서(詩書)와 음률에 뛰어났다. 그의 전기에 대한 직접 사료는 없고 야사에 의존하여 여러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으며 어느 면에서는 신비화시킨 부분도 있다고 한다. 황진이의 출생에 관하여는 황진사의 서녀라는 설도 있고 맹인의 딸이라고도 전해진다.
그녀는 미모와 가창뿐 아니라 서사에도 정통하고 시가에도 능하였다. 당대의 석학 서경덕을 사숙(私淑)하여 거문고와 주효(酒肴)를 가지고 그의 정사(亭舍)를 자주 방문하여 공부하였다고 한다. 당시 10년 동안 수도에 정진한 생불이라 불린 지족선사를 유혹하여 파계시켰으며 서경덕을 유혹하려 하였으나 실패한 뒤 사제 관계를 맺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박연폭포와 서경덕 그리고 황진이를 포함하여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부른다.
황진이의 작품은 주로 연석이나 풍류장에서 지어졌으며 기생의 작품이라는 제약 때문에 후세에 많이 전해지지 못하고 인멸된 것이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5~6수가 전해지마 작품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황진이는 시조에도 천재적 재능을 보였으니 「동짓달 기나긴 밤을」이 『청구영언』에 수록되어 있으며 뛰어난 시적 감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 /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 어른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황진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임제의 시조 한 편이 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었는다 / 홍안은 어데 두고 백골만 묻혔느니 /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임제(林悌:1549~1587)는 조선시대 문인으로 호는 백호(白湖)이다. 백호는 35세 때 서북도 병마평사로 임명되어 임지로 부임하는 길에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가 황진이를 위한 시조 한 수를 짓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를 알게 된 조정에서는 그의 행동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으며, 결국 그가 신분에 어울리지 않은 행동을 하여 체통을 지키지 못했다 하여 삭탈관직을 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 한시와 함께하는 우리나라 역사 『노을빛 치마에 쓴 시』
지은이 : 고승주. 펴낸 곳 : 도서출판 책과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