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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은 아직 봄이더라 – 서북능선(한계령,귀때기청봉,대승령,남교리)
1. 맨 오른쪽 인제는 운해에 잠겼다. 운해는 북천을 따라 소양강으로 이어진다
(…) 산은 역시 혼자 가는 것이 맛이 난다. 다도(茶道)에 혼자 즐김은 신(神)이요, 둘이 마심은 수(殊)요, 또 셋이면
승(勝)이라 하지 않았던가. 감히 그런 경지를 끌어올 엄두야 내지 않지만 부처님이 탁발을 떠나는 중들에게
‘여럿이 함께 하여 길을 가지 말라’
고 한 그 말만은 내내 가슴에 남는다. 되도록 널리 흩어져 부처님 가르침을 골고루 퍼뜨려라, 또는 여럿이 작당하여
민폐를 끼치지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경계의 뜻도 있을 테지만, 내가 이 말 속에서 건져내는 것은 오히려 그 행자의
마음속 수행과정에 있다. 그것은 낯설고 물설은, 따라서 때로는 신변에 위험이 없으란 법 없는 곳에서, 그 위험을
무릅쓸 줄 알고 또 혼자만의 외로움을 이겨내는 힘을 기르라는, 다른 말로 하면 인욕행(忍辱行)의 발원에 있는 것이다.
산이 그렇다.
―― 김장호(金長好),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중 ‘혼자 가는 산’에서
▶ 산행일시 : 2023년 6월 3일(금요무박), 맑음
▶ 산행코스 : 한계령,서북능선(귀때기청봉,△1,408.2m봉,대승령,안산 갈림길), 1,362m봉,십이선녀탕계곡,
복숭아탕,남교리
▶ 산행거리 : 이정표거리 18.5km
▶ 산행시간 : 12시간 40분
▶ 교 통 편 : 신사산악회(44) 버스 타고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23 : 50 – 잠실역 9번 출구
01 : 18 – 인제, 편의점 앞, 휴식( ~ 01 : 58)
02 : 30 – 한계령, 산행준비, 산행시작(03 : 00)
03 : 40 – 1,307m봉
04 : 05 – 서북능선, ┳자 한계령삼거리(1,353m)
05 : 30 – 귀때기청봉(△1,577.6m)
06 : 25 – 1,441m봉
08 : 56 - △1,408.2m봉
09 : 52 – 1,285m봉
10 : 33 – 대승령(大勝嶺, △1,210.2m)
10 : 56 – 안산 갈림길(1,353m)
11 : 18 – 1,362m봉
12 : 20 – 십이선녀탕계곡, 점심( ~ 12 : 45)
13 : 52 – 복숭아탕
14 : 54 – 응봉폭포
15 : 40 – 남교리, 산행종료
17 : 30 – 버스 출발
18 : 10 – 철정휴게소( ~ 18 : 28)
19 : 44 – 잠실역
2. 여명, 앞은 귀때기청봉 지능선 상투바위
3. 여명의 공룡능선
4. 일출 시작
5. 일출, 맨 오른쪽 뒤는 화채봉, 가운데에서 왼쪽은 공룡능선 1,275m봉
6. 스마트 폰으로 찍은 일출
7. 북천에서 소양호로 이어지는 운해
너무 일찍 한계령에 왔다. 한계령은 개방시간 3시를 엄수한다. 밤중 30분을 기다리기란 무척 지루한 일이다. 철문
앞과 광장에 모여든 수많은 등산객들 중에는 문을 열어달라고 아우성이지만 묵묵부답이다. 공단직원이 열어주는 것
이 아니라 3시에 자동으로 열리도록 세팅되어 있다. 한계령은 이 철문 말고는 달리 뚫거나 월담할 데가 없다. 주변
이 온통 바위절벽과 잡목 숲이다. 천혜의 관문이 아닐 수 없다. 봄이기 망정이지 겨울이면 얼어 죽어난다. 이럴 수밖
에 없는 것이 서울에서 늦게 출발하자 해도 밤 12시가 넘으면 그 출발장소로 모이는 대중교통수단이 여의치 못해서다.
철문이 열리자 역류하는 봇물이 터진 것 같다. 등 떠밀려 오른다. 예전에는 한계령에서 서북능선까지 데크계단이
없었다. 곳곳이 가파른 바위 슬랩이었다. 그 손맛 보는 재미가 없어졌다. 서북능선 한계령삼거리까지 2.3km. 첨봉
2좌를 넘어야 한다. 그 첫 봉우리인 1,307m봉을 오르기가 만만하지 않다. 땅에 코 박고 오른다. 대개는 이 봉우리를
오를 때 선두로 나설 것인지, 후미로 처질 것인지 판가름이 난다. 날이 밝으면 전후좌우가 가경이라 이곳저곳을
둘러보느라 걸음이 더디기 마련인데 캄캄한 밤중이라 보이는 것이 없어 막간다.
이래서 이 길을 밤중에 오는 것이 아깝다. 가리봉과 점봉산, 그 너머 산 첩첩, 귀때기청봉, 끝청봉 등등이 계절을
가리지 않고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밤중이 적당한 데는 장수대에서 대승령을 오르는 길이 아닐까 한다. 오를 때 넘
어갈 듯 가쁜 숨을 내릴 때 고른다. 처음에는 줄 이은 헤드램프 곁불로 대낮처럼 올랐으나 1,307m봉을 넘고부터는
내 헤드램프로 간다. 바윗길 내리막은 거리 감각이 둔해 스틱 짚고 더듬거리기 일쑤다. 데크계단 긴 오르막은 들숨
날숨에 정확하게 발걸음 스텝을 맞춘다.
엇박자가 나기라도 하면 힘들고 얼마 못 간다. 두 번째 오르는 긴 데크계단에서 앞서가던 일행 두 분이 등로 비켜
가쁜 숨 고르고, 내가 맨 앞장선다. 들판 눈길이 아니더라도 함부로 가서는 안 된다(不須胡亂行). 걸음걸음이 조심
스럽다. 뒤에 오는 사람들이 내 헤드램프 불빛 보고 그대로 따라온다. 서북능선 한계령삼거리에 내가 1착이다. 능선
에 부는 바람이 차다. 숲속 공터에서 휴식한다. 내가 헤드램프를 켠 채로 휴식하자 여기가 등로인 줄 알고 수대도
들르는 바람에 교통정리 한다.
혼자 가는 산행에서는 휴식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요기하며 커피까지 마시고 날이 밝아오기를 꽤 기다린 것 같은데
겨우 10분이다. 귀때기청봉을 향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끝청봉 쪽으로 간다. 0.5km 정도는 울창한 숲속을 간다.
그래도 큼지막한 돌들을 암릉 오르듯 긴다. 야광등이 등로를 안내한다. 호랑지빠귀 울음소리다. ‘히~’ 하고 길게 빼
는 소리가 음산하게 들린다. 앞에 가는 사람도 뒤에 오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 숲속이다. 호랑지빠귀는 나를 따라오
면서 울음 운다.
울산철새홍보관장인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의 글이다. 2021.7.28.자 울산신문에 기고한 ‘호랑지빠귀, 귀곡성(鬼哭
聲)의 명창’이란 제하의 글이다.
“호랑지빠귀. 새의 이름 앞에 호랑을 쓰는 이유는 지빠귀의 몸 색이 마치 호랑이 가죽처럼 얼룩무늬이기 때문에
그렇게 붙여졌다. 호랑지빠귀는 다양한 소리 중에 하필이면, 단순한 '히∼'와 '삐∼'의 소리를 선택했을까?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들 종간에 소통이 잘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소통하는 시간도 효율적으로 선택했다. 밤중 혹은 새벽
녘을 주로 이용한다. 다른 새들이 잠자고 있는 시간이라 조용하기 때문이다.
작은 소리, 단순한 소리를 내도 멀리까지 전달되는 효과가 크다. 결국 같은 종끼리 소통을 위한 독창적 방법이다.
호랑지빠귀는 늦봄부터 시작해 여름이 끝날 즈음까지 늦은 밤, 혹은 이른 새벽에 운다. 계절과 시간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새다. 호랑지빠귀는 안정적 환경이면 자주 운다. 울음소리가 자주 들리면 그곳이 안정된 서식처다. 그곳을
찾으면 지렁이, 곤충류 등 먹이가 풍부한 서식처일 가능성이 높다. '히∼'와 '삐∼'소리는 높낮이를 다르게 해서 우는
같은 새의 울음이다.”
9. 앞 능선은 가리봉으로 이어진다
10. 오른쪽 멀리는 안산
11. 앞 왼쪽이 상투바위
12. 점봉산, 그 오른쪽은 대선봉
13. 앞 가운데가 상투바위
14. 귀때기청봉
15. 가운데가 서북능선
16. 첫 햇살 받는 가리봉
17. 오른쪽이 점봉산, 멀리는 오대산 연릉
18. 점봉산, 그 오른쪽 뒤는 방태산
너덜지대에 올라선다. 너덜은 헤드램프를 소등해도 갈만하다. 공룡능선 너머가 부상(扶桑)이다. 그 주변과 점봉산,
가리봉 뒤쪽의 여명이 장려하다. 오늘 날씨가 쾌청한 조짐이다. 해가 뜰 때까지 앉아서 기다릴 필요가 없다. 가도 가
도 사방 트이는 너덜지대이니 오르다 바라보면 된다. 운해가 장관이다. 운해는 인제 북천을 따라 소양강으로 이어진
다. 때마침 일출 명소에 오른다. 배낭 벗어놓고 넓적한 바위에 걸터앉아 일출을 감상한다. 해가 솟자 갑자기 주변이
부산해진다. 온갖 새들부터 야단이다.
언제까지 지속될 것 같던 어둠이 마침내 물러났다. 뭇 산들도 기지개를 펴고 일어난다. 귀때기청봉도 이아침을 맞아
곱게 단장하였다. 걸음걸음이 경점이다. 올해는 마가목이 풍년이겠다. 마가목 가지마다 탐스런 꽃다발이다. 드문드
문 털진달래를 본다. 온 사면이 털진달래 군락이니 한창 때는 볼만했겠다. 나는 털진달래가 꽃이 작다는 것 말고는
진달래와 구별하지 못하겠다. 귀때기청봉 이 고산에 털진달래 아닌 진달래가 있을까 싶어서다.
털진달래(Rhododendron mucronulatum Turcz. var. ciliatum Nakai)는 꽃잎 바깥쪽(뒷면)이 흰털로 덮여있
다는 점에서 진달래와 구별된다고 한다. 털진달래는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의 정상 부근에 분포하는데, 햇빛이 잘
들고 배수성이 좋은 사질토양 바위틈에서 자란다. 털진달래의 일본명은 케겐까이쭈쭈지(ケゲンカイツツジ, 毛玄海
躑躅)이고, 영어명은 Hairy Korean rhododendron이다. 진달래에 대한 우리말의 유래는 김종원에 따르면 “진득
진득한 철쭉 종류 진득이의 새싹에서 전화한 이름임에 틀림없다.”고 한다.
한계령삼거리에서 귀때기청봉까지 1.6km.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만하다. 안복을 한껏 누린 날이다. 지난
주에는 비가 온다고 하여 포기하였다. 1km나 되는 너덜을 연신 암릉 오르듯 기기는 했지만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올랐다. 황철봉 북릉의 너덜은 갈 때마다 얼마나 지루했던가! 귀때기청봉의 정상 좁은 공터에서 샌드위치로 아침을
때운다. 정상주 탁주는 독작한다. 곧 일단의 등산객들이 올라오고 공터를 그들에게 물려준다.
캐이 님은 지금쯤 어디를 가고 있을까? 궁금하다. 어제 잠실역에서 아사비 님과 함께 만났다. 신사산악회 같은 버스
를 타고 설악산을 간다. 캐이 님은 다음매일산악회 버스로 오는 윈터 님과 상의할 것이라고 하며 들머리는 내원암골
이 유력하다고 했다. 나도 그들과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이 좋은 봄날 서북능선이 더 보고 싶었다.
산악회 버스를 기다리면서 내 나름대로 추측한 윈터 님의 작명을 얘기했다. 캐이 님은 그럴 턱이 없다고 한다.
얘기인즉슨, 최근에 우연히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중국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만월지하청상애(满月之下请相爱,
보름달 아래에서 서로 사랑하기를)(2021년, 판타지/로맨스)’라는 24부작 드라마다. 이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인 잘생
긴 허효동(쥐징이 鞠婧祎 분)이 중국 게임계의 기린아로 그 사실을 숨기고 활동하는 천재 게임디자이너인 ‘윈터(溫
特)’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칭 ‘설악 청년’이라 하니 설악을 좋아하고, 특히 겨울의 설악을 좋아해서 ‘윈터’라고
하지 않았을까도 생각한다.
근래 드물게 맑은 날이다. 남쪽으로는 방태산과 오대산 연봉 연릉이 서쪽으로는 봉화산과 사명산이, 북쪽으로는
마산봉, 죽엽산, 칠절봉, 향로봉, 그 너머로 희미하게 금강산이 보인다. 돌길 주춤주춤 귀때기청봉을 내린 다음 봉봉
을 오르내린다. 뒤돌아 귀때기청봉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저 미끈한 남서벽이 허벅지를 뻐근하게 한다. 그리
고 가리봉의 울근불근한 수많은 산줄기는 저절로 다리에 힘이 솟구치게 한다.
19. 귀때기청봉의 털진달래
22. 안산에 이르는 서북능선
23. 공룡능선, 가운데 오른쪽이 1,275m봉, 맨 왼쪽은 황철봉
24-1. 귀때기청봉
24-2. 가운데 끄트머리가 소양강이다
25. 뒤 암봉이 장군봉(?)
26. 왼쪽 뒤가 마산봉
27. 참기생꽃(Trientalis europaea L.)
앵초과 여러해살이풀이다.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특산식물이다.
꽃이 기생이 쓰는 화관과 닮았다고 하여 참기생꽃이라고 한다.
어느 해 겨울에 이곳 설사면을 돌다가 실족사한 사고가 났던 곳에 데크계단을 새로이 설치하였다. 그래서일까, 서북
능선의 흠이라고 하면 짜릿한 손맛 볼 데가 없다는 점이다. 봉봉이 경점이다. 귀때기청봉에서 내려다볼 때는 납작
엎드려 다소곳하던 봉봉이 너 잘 만났다 하고 불끈 일어선 느낌이다. 어디 쉬운 산이 있던가. 어느 해 봄날 솜다리를
보았던 사면을 들른다. 여기던가, 저기던가, 못 찾겠다. 풀숲은 큰앵초 세상이다.
등로 옆 바위 아래 풀밭에서 뜻밖에 기화요초(琪花瑤草)를 본다. 참기생꽃(Trientalis europaea L.)이다. 친견하기
는 처음이다. 이런 날은 기분이 참 좋다. 참기생꽃은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특산식물이
다. 산림청이 선정한 희귀식물이며, 환경부가 멸종위기 식물로 선정한 보호식물이기도 하다. 일본명은 코츠마토리
소우(コツマトリソウ, 小褄取草)이다. 츠마(褄)는 기모노의 끝단을 얘기한다고 한다. 일본의 꽃이름의 유래는 꽃
과 잎의 끝에 붉은 기운(아카미 赤身)이 들어가 있어, 이것이 기모노의 끝단처럼 보인다는 데서 나왔다고 한다.
△1,408.2m봉 오르기가 힘들다. 오르는 데크계단을 세어보았다. 첫 번째 구간은 150개다. 그 다음 34개를 오르면
조망 좋은 암반이고, 살짝 내렸다가 곧추선 협곡을 오른다. 다시 곧추선 50개 계단. 그런 다음 돌길 한 피치 오르면
△1,408.2m봉이다. 왼쪽 사면을 돌아 넘는다. 길바닥에 있는 삼각점은 ‘설악 307, 2007 재설’이다. △1,408.2m봉
바로 뒤쪽(북쪽)이 큰감투봉이다. 울창한 잡목 사이로 그리로 가는 소로가 나 있다. 작은작투봉 넘어 내리면 백담사
가 가까운 영실천과 만난다.
오른 만큼 떨어진다. 사면 돌아 능선에 오르기를 반복한다. 지도를 보면 봉봉이 물수제비처럼 이어져 있다. 1,285m
봉 오르기가 의외로 힘들다. 하늘 가린 숲속 완만하고 긴 오르막이다. 북진방향이 서진으로 꺾이는 1,270m봉 오른
쪽 사면이 펑퍼짐한 게 보기에 좋아 들른다. 초원에 박새가 무리 지었다. 대승령은 능선을 약간 벗어난 왼쪽 사면을
돌아 오른다. 대승령 공터는 땡볕이 가득하다. 곧바로 안산 갈림길을 향한다.
대승령에서 안산 갈림길(1,353m)까지 1.0km. 고도차 140m. 무척 힘든 구간이다. 기력이 어느 정도 소진되었고,
좌우 둘러 조망은 가렸고, 그 절반은 가파른 오르막이니 게거품 문다. 안산을 들를까 말까, 여러 걸음동안 생각한다.
이대로 하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그런데 지난 5월 26일 오후에 비법정탐방로인 칠성봉 인근에서 구조요청이 들어
와 50대 남성을 찾느라 산악구조대가 총출동하여 장시간 수색한 바 있다. 공단에서는 비법정탐방로를 더욱 엄중하
게 단속하고 있다 한다.
또한 비법정탐방로 출입에 따른 과태료도 대폭 올랐다고 한다. 첫 번째 적발 시 20만원, 그 다음은 30만원, 그 다음
은 50만원이라고 한다. 안산은 그 길목인 대한민국봉(1,396m)에서 국공이 지키더라고 한다. 하늘재 님이 걸린 적이
있다. 혼자여도 사정없이 잡는다고 한다. 안산을 가지 않기로 한다. 그 대신 응봉능선 1,262m봉을 들르기로 한다.
작년에 하늘재 님과 십이선녀탕계곡 상단에서 올랐던 코스다. 오늘은 그때와 반대로 내려가기로 한다. 그 길을 잘
찾을 수 있을까 의문이지만 아무 데로 내려도 십이선녀탕계곡이다.
┫자 남교리 갈림길을 신속히 지나고 1,262m봉을 넘고 약간 내린 암반에서 휴식하며 준비한다. 지도 보고 지형
자세히 살피고, 나침반을 꺼내어 보기 쉽도록 목에 건다. 서진한다. 박새가 안내한다. 자세 낮춰 잡목 밀림을 헤치
고, 이끼 낀 너덜지대 지나면 넙데데한 풀숲이다. 한편 김장호가 말한 ‘인욕행(忍辱行)’이다. 적막산중이라 내 거친
숨소리조차 크게 들린다. 그러하기 1시간 남짓이 오붓하다. 곰순이들이 서로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여기저기서
손짓한다. 바쁘다.
너덜 지나 십이선녀탕계곡에 내리고 태연히 여러 등산객들 속에 섞인다. 이제는 물구경이다. 물소리가 시원하다.
포말 이는 물소리가 큰 데는 와폭이 흐른다. 두문폭포는 소리부터 우렁차다. 그 아래 대폭은 계류 가까이 내려가
바라본다. 구름이 햇빛을 가려주어 사진 찍기 좋다. 수동모드로 한다. 셔터속도는 1/4초, 조리개 심도는 최대한 깊게
(22 ~ 36) 한다. 감도는 찍은 사진을 모니터로 확인하며 조정한다. 그리고 숨을 멈추고 부동자세하여 셔터를 치약
짜듯이 느긋이 1단에 이어 2단을 누른다. 찰각하는 소리가 경쾌하다.
29. 곰취
30. 연령초
31. 멀리 가운데가 점봉산
32. 큰앵초
33-1. 멀리 오른쪽은 사명산, 그 앞 왼쪽은 봉화산
33-2. 가리봉, 예전에 가운데 건천골로 가리봉을 오르기도 했다
34. 요강나물
35. 천남성
36. 물참대
봉숭아탕(용탕)은 십이선녀탕계곡의 백미다. 이를 중심으로 한 팔폭팔탕이 예로부터 경승이었다. 관폭대에 배낭을
벗어놓고 오래 머문다. 그리고 봉숭아탕을 노산 이은상이 「雪嶽行脚」에서 본 눈을 빌려 바라본다.
“最上龍盪에는 垂瀑의 裡壁面에 所謂 “龍穴”이란 것이 싯검잏게 뚫렷는데, 自古로 土人의 祈雨處라 하는 만콤
이곳을 單純한 勝景으로 보기보담은 오히려 神靈靈驗한 存在로 알아왓든 자취도 살필 수 잇겟습니다. 그는 如何間
에 盪邊巖上에 앉아보매 果然 急流 碭碎하고 萬縷 集하야 盪에 고인 물이 오히려 다시 떨어지기를 바삐하는데 餘波
四方에 허터져 瑩瑩然한 空花를 피어 그 끝이 없는 냥은, 사람으로 하여금 술 아닌 술에 醉하잖은 醉力으로 끌어드
립니다. 이곳이야말로 造化의 苦心中作한 곳이어니 어찌 陶醉를 辭讓할 것이며 또한 어찌 陶醉를 避할 길 잇으리오.”
팔폭팔탕 지나고도 폭포는 수없이 이어진다. 그중 응봉폭포가 가경이다. 예전에는 그 아래로 접근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데크로드에서 먼발치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옥계반석의 연속이다. 반석에 내려가 옥계에 탁족한다. 발을
물에 담그자 서늘한 기운이 머리끝까지 뻗치고, 휘감기는 물살에 발바닥이 간지러워 얼른 빼냈다가 다시 담그기를
반복한다. 여기가 칠음대인가 저기가 구선대인가,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
노산 이은상을 행복했다. 이 십이선녀탕계곡을 오르면서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경치를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으로
감상했으니 말이다. 그가 부럽다. 그는 응봉폭포 아래에서도 이런 경치를 보았다.
“無數한 地上의 樂聖들이 宮, 商, 角, 徵, 半微羽, 中閑의 七音을 짧고 길게 받고 넘긴, 온갖 樂調의 本源이 알고
보매 여기입니다.
千人의 于勒과 萬人의 베토벤을 한데 뭉친 그 어떤 이를 千萬人이나 다시 모아 그 偉大, 崇高, 淸雅明朗한 大作大
曲을 내어놓게 할지라도, 이 七音臺의 들을스록 神祕한 自然의 妙樂을 따를 수는 없을 겐니다.
(…) 이 七音臺의 七轉流나 九仙臺의 九轉流가 한 개요 둘도 아닌 萬丈大盤石 우으로 連絡된 데 잇어서는, 더 한層
驚異의 눈이 찢어질 근심도 채 못하고 힘껏 떠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九仙臺의 淸秀한 品資! 九仙臺의 秀麗한 姿態! 神祕와 恍惚의 極侈奢한 面紗布를 쓰고, 圓舞, 轉舞旋舞, 曲舞를
가추가추 보이는 이 藝術의 殿堂!”
남교리(嵐校里). 탐방지원센터 앞에 있는 음식점에 들른다. 노천 나무숲 그늘에 탁자 놓았다. 음식점 종업원들이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 산행을 마친 등산객들이 속속 몰려들어 서다. 나는 막국수와 막걸리 한 병을 주문했다.
막국수가 주문이 밀렸다며 한참 늦게 나온다. 막국수 면발이 아주 질기다. 막국수라기보다는 물냉면이다.
설악은 아직 봄이었다. 능선에 서면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그랬고, 탁족하여 알아본 차디찬 계류가 그랬고, 귀때기
청봉 기화요초 털진달래, 참기생꽃, 등로와 풀숲을 눈부시게 수놓은 큰앵초가 그랬다. 그러나 무엇보다 결정적인 건
야들야들한 곰순이가 그랬다. 서울 가는 길. 기분 좋게 녹작지근한 졸음에 서북능선의 여러 풍경이 아른거린다.
37. 함박꽃나무
38. 십이선녀탕계곡에서 처음 만나는 무명폭
39. 응봉
40. 복숭아탕 바로 위쪽 폭포
41. 복숭아탕
44. 응봉폭포
45. 응봉폭포 아래 무명폭
첫댓글 요즘은 설악이 심난하네요. 경방전에 다녀오는게 장땡인듯 합니다
그렇습니다.
요즘 국공들의 신경이 무척 예민해졌다고 합니다.
아무튼 조심해야겠습니다.^^
참기생꽃은 처음 봅니다.
꽃잎이 마치 기생 치맛자락 같습니다.
일본어로 コツマトリソウ(小褄取草)인데, 한자는 아마도 일본어가 아니고, 한국어 기생초(妓生草)인듯 합니다.
こづま [小づま·小褄] 는 치맛자락이란 뜻입니다. 치맛자락을 걸친 풀이라는 뜻이겠죠. 기생이란 말은 없네요...
ツマトリソウ(端取草)라는 것도 있네요. 이것도 마찬가지 기생꽃이라네요.
일본어 사전에 ‘コツマトリソウ’를 검색했더니
기생초 妓生草
명사
1.
コツマトリソウ.
2.
ハルシャギク.
라고 나옵니다.
‘小褄取草’ 말고도 ‘妓生草’라고도 하는 줄 알았습니다.
기생초는 해석인가 봅니다.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한편, 小褄取草의 츠마(褄)는 기모노의 끝단을 얘기한다고 합니다.
일본의 꽃이름의 유래는 꽃과 잎의 끝에 붉은 기운(아카미 赤身)이 들어가 있어
이것이 기모노의 끝단처럼 보인다는 데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우철의 『한국 식물명의 유래』(일조각, 2005)의 관련 내용입니다.
기생꽃(鄭,1937)(앵초과 Trientalis europaea v.arctica) 참기생꽃의
이명(愚, 1996, 중국 옌볜 방언)으로도 사용.
(이명) 기생초, 좀기생초, (유래) 식물체가 작고 꽃이 예쁘다는 것을 기생에 비유. → 참기생꽃.
참기생꽃(鄭, 1949)(앵초과 Trientalis europaea)
(이명) 큰기생꽃, 기생초, 참꽃, 기생꽃.
(유래) 참(아주) 에쁜 꽃. 작고 어여쁜 자태를 에쁜 기생에 비유.
기어코 서북능선을 가셨군요. 기암괴석, 동트는 공룡능선, 봄꽃, 봄나물...설악의 여러 모습을 실컷 구경하셨겠군요. 시원하시겠습니다..덕분에 저도 시원하게 감상했습니다^^
눈이 고팠던 설악 서북능선이 해갈되었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참기생꽃을 본 것은 큰 수확이었습니다. ^^
매주 설악 가시네요. 새벽 설악이 장엄합니다...
설악에 대한 갈증이 조금 가신 듯합니다.^^
이제 다른 산도 좀 가 줘야겠습니다.
털진달래 기생꽃에 곰순이 조망까지 풀코스 하셨읍니다 ㅎ
ㅋㅋ 모처럼 일타여러피 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더욱 조심해야겠습니다.^^
@악수 기생꽃은 지리에도 있드만요
@캐이 갑자기 지리산이 가고 싶어집니다.^^
털진달래가 아직 있네요. 조망도 훌륭하고요. 안산은 안가시길 잘하셨어요. 일요일날 강씨봉에서 국망봉 사진이에요.
털진달래가 나 오기를 기다리다 지쳤더라고요.
일요일에도 날씨가 아주 좋았네요.^^
혼자 즐기신 서북능선이군요. 저도 7월에 오롯이 혼자 설악을 탐방해 보려 합니다.
7월이면 설악산은 피서지이기도 하겠네요.
기대하겠습니다.^^
솔로산행의 즐거움을 같이 느껴봅니다. 슬슬 독사도 만날 계절인데 다행히 산길에 뱀은 없었나 봅니다. 야생화 찍을 때 조심하십시오. 정신이 들꽃에 팔려 발밑의 독사를 못볼 때가 있더군요.ㅋ
각별히 조심합니다.
특히 머리 위로 바위를 잡을 때는 독사를 집지 않도록 신경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