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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이불요(光而不耀)
빛은 있으나 빛내지 않는다는 뜻으로, 빛은 빛이지만 빛이 겉에서 빛나는 빛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光 : 빛날 광(儿/4)
而 : 말이을 이(而/0)
不 : 아니 불(一/3)
耀 : 번쩍거릴 요(羽/14)
출전 : 노자(老子) 58章
이 성어는 노자(老子) 58장에 나오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其政悶悶, 其邦惇惇.
其政察察, 其邦缺缺.
그 다스림이 어리숙하면 그 나라는 돈후해지고, 다스림이 깐깐하면 그 나라는 황폐해진다.
禍福之所倚, 福禍之所伏, 孰知其極.
其无正也.
재앙에는 복이 기대고 있고, 복에는 재앙이 엎드리고 있으니, 누가 그 끝을 알겠는가. 정해진 올바름이란 없다.
正復爲奇, 善復爲妖.
人之迷也, 其日固久矣.
올바른 것은 다시 이상한 것이 되고, 선한 것은 다시 요망한 것이 되니, 사람들의 미혹됨은 참으로 오래되었구나.
是以聖人方而不割, 廉而不劌, 直而不肆, 光而不耀.
이 때문에 성인은 반듯하면서도 남을 재단하지 않고, 청렴하되 남에게 상처주지 않으며, 곧되 널리 펼치지 않고, 빛나면서도 번쩍거리지 않는다.
광해군 때 권필(權韠權)이 시를 지었다. '어찌해야 세간의 한없는 술 얻어서, 제일 높은 누각 위에 혼자 올라 볼거나.'
安得世間無限酒, 獨登天下最高樓.
성혼(成渾)이 말했다. '무한주(無限酒)에 취해 최고루(最高樓)에 오른다 했으니, 남과 함께하지 않으려 함이 심하구나. 그 말이 위태롭다.'
뒤에 권필은 시로 죄를 입어 비명에 죽었다.
정인홍(鄭仁弘)이 어려서 산속에서 글을 읽고 있었다. 감사가 우연히 묵었다가 한밤중의 글 읽는 소리에 끌려 그 방으로 찾아갔다. 기특해서 시를 지을 줄 아느냐고 묻고, 탑 곁에 선 어린 소나무를 제목으로 운자를 불렀다.
정인홍이 대답했다. '작고 외론 소나무가 탑 서쪽에 있는데, 탑은 높고 솔은 낮아 나란하지 않구나. 오늘에 외소나무 작다고 하지 말라. 훗날에 솔 자라면 탑이 외려 낮으리니.'
短短孤松在塔西, 塔高松下不相齊.
莫言今日孤松短, 松長他時塔反低.
감사가 그 재주와 높은 뜻에 탄복하며 말했다. '훗날 반드시 귀히 되리라. 다만 뜻이 지나치니 경계할지어다.'
나중에 그는 대단한 학문으로 벼슬이 영의정에 올랐지만 인조반정 때 88세의 나이로 형을 받아 죽었다.
도덕경 21장의 말이다. '반듯해도 남을 해치지 않고(方而不割), 청렴하되 남에게 상처입히지 않으며(廉而不 ), 곧아도 교만치 아니하고(直而不肆), 빛나되 번쩍거리지 않는다(光而不耀).'
반듯하고 청렴한 것은 좋지만, 그로 인해 남을 해치거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곧음은 자칫 교만을 부른다. 빛나는 존재가 되어야 하지만, 너무 번쩍거리면 꼭 뒤탈이 따른다. 빛나기는 쉬워도 번쩍거리지 않기는 어렵다.
순자(荀子)에서도 '군자는 너그럽되 느슨하지 않고(寬而不慢),청렴하되 상처주지 않는다(廉而不 )'고 했다.
남구만(南九萬)이 병조판서 홍처량(洪處亮)의 신도비명에서 그 인품을 두고 '화합하되 한통속이 되지는 않았고(和而不流), 부드러우나 물러터지지도 않았다(柔而不絿)'고 한 것이나
삼국사기에서 백제의 새 궁궐을 두고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儉而不陋), 화려하나 사치스럽지는 않았다(華而不侈)'고 말한 것도 다 한가지 뜻이다.
사람은 얼핏 보아 비슷한 이 두 가지 분간을 잘 세워야 한다. 지나친 것은 늘 상서롭지 못하다.
도덕경(道德經) 제58장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정치가 대범해지면 백성들이 순박해지고, 정치가 까다로우면 백성들이 다투게 될 것이다.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화는 복이 의지하는 곳인 바, 복에는 화가 숨어 있는 것이다.
孰知其極, 其無正.
누가 그 궁극을 아는가, 절대적인 올바름이란 없는 것이다.
正復爲奇, 善復爲妖.
바른 것이 기이한 것이 되고, 선한 것이 요사한 것으로 변한다.
人之迷, 其日固久.
사람들이 상대성을 깨닫지 못한지 오래다.
是以聖人, 方而不割, 廉而不劌.
그래서 성인은 반듯하지만 남에게 그리 되라 하지 않고, 자신이 청렴하다고 남 또한 그렇게 만들려 하지 않는다.
直而不肆, 光而不燿.
자신이 바르다고 그대로 밀고 나가려 하지 않고, 영지(靈知)의 빛을 간직하고도 내 비치지 않도록 한다.
(해석)
其政悶悶 其民淳淳
(기정민민 기민순순)
言, 善治政者, 無形, 無名, 無事.
말하자면, 잘 다스리는 일은 고정된 모양이 없고, 지어 부를 이름이 없고, 일부러 일삼는 바(事)가 없다.
無政可擧. 悶悶. 然卒, 至於大治.
잘 다스리는 일에는 이렇다 할만한 것이 없다. 흐릿하고 흐릿하다. 그러나 마침내(然卒), 큰 다스림에 이른다.
故曰其政悶悶也.
따라서 其政悶悶이라고 일컬은 것이다.
其民無所爭競, 寬大淳淳.
그 백성이 통치자의 다스림을 꺼리거나 피하기 위해서 내지 그것에 앞장서거나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다투거나(爭), 싸우는(競) 바가 없다. 관대하고 순박하다.
故曰其民淳淳也
따라서 其民淳淳이라고 일컬은 것이다.
(왕필주)
無形은 언제나 자신의 마음을 고정하지 않으며,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聖人常無心, 以百姓心爲心) 다스림의 상태 내지 모습을 비유한다.
悶悶은 백성의 실정(實情)을 밝히거나 살피지(明, 察; 제49장 왕필주) 않는 다스림의 상태 내지 모습을 비유한다. 왕필이 말한 大治는 善治를 의미한다.
其民無所爭競, 寬大淳淳에서 無所爭競은 백성이 일부러 일삼아 자신의 실정을 밝히거나 살피는 통치자의 다스림에 응함을 다투지(夫以明察之, 物亦競以其明應之. 以不信察物, 物亦競以其不信應之) 않는다는 의미이며, 寬大淳淳은 백성이 자신의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에 따라서 살아가는 상태 내지 모습을 비유한다.
其政察察, 其民缺缺.
其政察察은 통치자가 형벌질서(刑)와 명분질서(名)를 세우고, 상벌제도를 밝힘으로써, 백성의 간사함(姦)과 거짓됨(僞)을 살핀다(檢)는 말이다. 따라서 察察이라고 일컬은 것이다.
그러나 통치자가 형벌질서, 명분질서, 상벌제도를 밝히고 간사함과 거짓됨을 살펴서 그 종류 또는 수준이나 정도에 따라서 백성 혹은 그 실정을 나누거나 가르면, 백성이 그것을 꺼리거나 피하기 위해서 내지 그것에 앞장서거나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다투거나(爭), 싸우려는(競) 마음을 품게 된다. 따라서 民缺缺이라고 일컬은 것이다(立刑名, 明賞罰, 以檢姦僞. 故曰察察也. 殊類分析, 民懷爭競. 故曰民缺缺也).
왕필이 말한 간사함, 거짓됨은 통치자가 일부러 일삼은 형벌질서, 명분질서, 상벌제도 등에 대한 백성이 응한(應之) 결과적인 상태 내지 모습을 의미하는 동시에, 통치자가 일부러 일삼은 형벌질서, 명분질서, 상벌제도에 의해서 백성 각자의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가 망가뜨려진(失) 결과적인 상태 내지 모습을 의미한다.
禍兮! 福之所倚. 福兮! 禍之所伏. 孰知其極? 其無正.
孰知其極?은 말하자면, '누가 잘 다스리는 일의 끝점(極)을 알겠는가?' 라는 말이다. 잘 다스리는 일에는 오히려 이렇다 할만한 것이 없다. 형벌질서와 명분질서를 세움이 없다. 흐릿하고 흐릿하다. 그러나(然而) 천하가 잘(大) 다스려진다(化). 이것이 그 끝점(極)이다.
言, 誰知善治之極乎? 唯無可正擧. 無可刑名. 悶悶. 然而, 天下大化. 是其極也.
(왕필주)
誰知善治之極乎?와 是其極으로 미루어 볼 때, 왕필이 말한 極은 다스림(治)의 형식과 절차, 내용과 방법 등에 있어서 잘함(善)의 상대적인 수준 또는 정도가 끝점에 다다른 상태 혹은 모습을 뜻하는 것으로서, 다스림의 형식과 절차, 내용과 방법 등이 가지고 있는 그 상대적인 수준의 정점(頂點) 내지 정도의 극점(極點)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노자가 그 정해져 있음이 없다(其無正)고 한 것은 만물 또는 세계가 존재 양태와 존재 양식에 있어서 제2장의 있음(有)과 없음(無), 어려움(難)과 쉬움(易), 장(長)과 짧음(短), 높음(高)과 낮음(下), 내지른 소리(音)와 들리는 소리(聲), 앞(前)과 뒤(後), 제22장의 곡(曲)과 전(全), 왕(枉)과 직(直), 와(窪)와 영(盈), 폐(幣)와 신(新), 소(少)와 득(得), 다(多)와 혹(惑), 제28장의 웅(雄)과 자(雌), 백(白)과 흑(黑), 영(榮)과 욕(辱), 제29장의 혹행혹수(或行或隨), 혹허혹취(或歔或吹), 혹강혹리(或强或羸), 혹배혹휴(或培或隳) 등과 같은 다양한 측면들을 소유하면서 서로 낳고(相生), 서로 이루며(相成), 서로 드러내고(相較), 서로 뒤바뀌고(相傾), 서로 어울리고(相和), 서로 따르기(相隨) 때문이다(제2장).
正復爲奇.
일부러 일삼은 바름으로써 나라를 다스리게 되면, 이내(便) 반대로(復) 기이하게 무력을 일삼게 된다(제57장)는 것이다. 따라서 正復爲奇라고 일컬은 것이다(以正治國, 則便復以奇用兵矣. 故曰正復爲奇).
善復爲妖.
일부러 일삼은 착함(善)을 세움으로써 백성(萬物)을 어울리게(和) 하면, 이내(便) 반대로(復) 간사함이라는 근심거리가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다(立善以和萬物, 則便復有妖之患也).
(왕필주)
立善以和萬物에서 善과 和는 통치자의 일부러 일삼은 다스림의 형식과 절차, 내용과 방법 등에 대한 백성의 응함(應), 따름(從), 다툼, 싸움 등을 전제한다.
人之迷, 其日固久!
말하자면, 사람들이 미혹되어 도(道)를 망가뜨린지 아주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善治로써 꾸짖어 이내(便) 바르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言, 人之迷惑, 失道, 固久矣. 不可便正善治以責).
(왕필주)
失道에서 道는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를 의미한다.
是以聖人, 方而不割.
方은 평평함으로써 백성(物)을 이끈다는 말이다. 내버려 둠(舍)으로써 그 어긋남(邪)을 없앤다는 말이다. 따라서 方而不割은 평평함으로써 백성을 나누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른 바, 크게 평평한 것은 모남이 없다(大方無遇)(以方導物. 舍去其邪. 不以方割物. 所謂大方無遇).
노자가 말한 方과 不割, 왕필이 말한 舍는 언제 어디서나 일부러 일삼음이 없는(道常無爲) 도(道)의 움직임 내지 일삼음(道之動, 道之用)에 대한 비유로서, 제5장 以萬物爲芻狗와 의미가 통한다.
다시 말하면, 方과 不割, 舍는 성인(통치자)이 천하(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백성 각자의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에 따를 뿐, 자신이 개인적으로 지향하는 욕구나 가치, 사회적으로 합의된 목표나 이상 등이 반영된 기준에 따르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28장 대제불할(大制不割)과 의미가 통한다.
廉而不劌.
廉은 맑고(淸) 깨끗하다(또는 곧다)는 말이다. 劌는 다치게 한다(傷; 또는 해롭게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廉은 맑음과 깨끗함(또는 곧음)으로써 백성을 맑게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어긋남(邪)을 없애게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깨끗하지 못함(汙; 또는 곧지 못함)을 없애게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廉而不劌는 맑음과 깨끗함(또는 곧음)으로써 백성을 가르거나 다치게 하지(또는 해롭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廉, 淸廉也. 劌, 傷也. 以淸廉淸民. 令去其邪. 令去其汙. 不以淸廉劌傷於物也).
直而不肆.
直은 곧음으로써 백성(物)을 이끈다는 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치우침을 없애게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直而不肆는 곧음으로써 백성을 이끌어 서로 부딪치게 하거나 끓어오르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大直若屈(제45장)이다(以直導物. 令去其僻. 而不以直激沸於物也. 所謂大直若屈也).
왕필이 말한 치우침(僻)은 응함 또는 피함(應, 避)을 의미하며, 부딪침(激)이나 끓어오름(沸)은 다툼 혹은 싸움을 비유한다.
光而不耀.
光은 빛남으로써 그 미혹되는 원인을 비춘다는 말이다. 따라서 光而不耀는 빛남으로써 그 미혹되는 원인을 비추지만 그 숨겨진 바(隱)나 가려진 바(匿)를 비추고자 하거나(求) 비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明道若昧(제41장)이다.
이와 같은 모든 것들은 일부러 일삼지 않는 다스림의 근본을 높임으로써 무력과 같은 말단을 일삼지 않으며, 일부러 일삼은 밝힘과 살핌으로써 백성의 실정을 공격하지 않고서 그것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것이다(以光鑑其所以迷. 不以光照求其隱匿也. 所謂明道若昧也. 此皆, 崇本以息末, 不攻而使復之也).
(왕필주) 不攻而使復之에서 之는 일부러 일삼고자 하거나 일부러 일삼지 않는 도(道) 내지 백성 각자의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를 의미한다.
광이불요(光而不耀)
노자 도덕경 제58장에 광이불요(光而不耀)로 '빛은 있으나 빛내지 않는다.' 즉 빛은 빛이지만 빛이 겉에서 빛나는 빛이 되어서는 안된다. 바로 인간의 풍성은 밖으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는 가르침이다.
중국 속담에 낭중지추(囊中之錐)란 말이 있는 데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송곳은 그 끝이 뽀족하여 언젠가는 주머니를 뚫고 나온다.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사람들이 알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혜를 지키는 데에는 어리석음을 가지고 하라는 말 역시 겸손의 한 방편이고 보면 겸손은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태도임을 강조하고 있다.
장경(藏經)의 경구로 '부자의 겸손은 빈자(貧者)의 벗이 된다.' 사명의식과 철학의 선행 요건을 보면 '겸손하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기를 높이는 일인데도 사람은 이 이치를 모른다'고 겸손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는 매사에 겸손과 여유의 미덕을 가져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이런 생각 모두는 나를 보다 진취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력으로 나아가게 하며 자기를 너무 내세우지 않는 광이불요(光而不耀)의 글귀를 귀감으로 삼아보자.
▶️ 光(빛날 광)은 ❶회의문자로 火(화; 불)와 사람 인(人=亻; 사람)部의 합자(合字)이다. 사람이 횃불을 들고 밝게 비추고 있다는 뜻이 합(合)하여 빛을 뜻한다. 또 전(轉)하여 번영하다로 되고 가차(假借)하여 광대(廣大), 광원(廣遠)의 뜻으로도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光자는 '빛'이나 '빛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光자는 儿(어진사람 인)자와 火(불 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光자는 사람의 머리 위에 빛이 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光자를 보면 儿자 위로 火(불 화)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람 주위가 매우 밝게 빛나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光자는 '빛'이나 '비추다'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光(광)은 (1)빛 (2)화투의 스무 끗짜리 패. 모두 다섯 장임. 또는 그런 패 짝을 넷 또는 다섯을 땄을 때 상대편으로 부터 끗수를 더 받게 되는 일 (3)어른어른하게 비치고 번지르르하게 보이는 환한 윤기(潤氣). 광택(光澤) (4)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빛, 어둠을 물리치는 빛 ②세월(歲月) ③기세(氣勢), 세력(勢力), 기운(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오관(五官)으로 느껴지는 현상) ④경치(景致), 풍경(風景) ⑤명예(名譽), 영예(榮譽) ⑥문화(文化), 문물(文物) ⑦문물의 아름다움 ⑧빛깔, 번쩍거리는 빛 ⑨어른어른하게 비치는 윤기(潤氣) ⑩영화롭다 ⑪빛나다, 비치다, 비추다 ⑫크다, 넓다 ⑬멀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볕 경(景), 갤 청(晴), 빛 휘(暉), 빛 경(耿), 빛 색(色), 밝힐 천(闡),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그늘 음(陰), 흐릴 담(曇), 비 우(雨)이다. 용례로는 옛일을 되찾음이나 잃었던 나라를 되찾음을 광복(光復), 벌어진 일의 형편이나 모양을 광경(光景),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는 빛을 광채(光彩), 빛의 반사에 의하여 물체의 표면에 어른어른하게 번쩍이는 윤기를 광택(光澤), 아름답게 번쩍이는 빛을 광휘(光輝), 밝은 빛이나 밝고 환함을 광명(光明), 아름다운 빛이나 빛나는 기운을 광화(光華), 빛의 자극에 의하여 일어나는 감각을 광각(光覺), 발광체가 내는 빛의 강한 정도를 광도(光度), 스스로 빛을 내는 물체를 광원(光源), 세상에서 인정받는 좋은 이름이나 자랑을 광명(光名), 해와 달이라는 뜻으로 흘러가는 시간이나 세월을 광음(光陰), 다른 지방이나 나라의 명승과 풍속 등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을 관광(觀光), 경쟁에서 이기거나 남이 하지 못한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의 빛나는 영예를 영광(榮光), 사람이나 사물의 어떤 방면에서 있어서의 등장이 눈부실 만큼 찬란히 빛남을 각광(脚光), 경치나 모습을 풍광(風光), 번쩍이는 빛을 섬광(閃光), 밤 또는 어둠 속에서 스스로 내는 빛을 야광(夜光), 아침의 햇빛을 신광(晨光), 등불이나 촛불의 빛을 촉광(燭光), 흐르는 물과 같이 빠른 세월을 유광(流光), 빛을 감춘다는 뜻으로 학식이나 재능을 감추고 남에게 알리지 않음을 도광(韜光), 언행이 떳떳하고 정당함을 일컫는 말을 광명정대(光明正大), 세월의 흐름은 흘러가는 물과 같이 빠름을 일컫는 말을 광음유수(光陰流水), 세월의 흐름이 화살과 같이 빠름을 일컫는 말을 광음여전(光陰如箭),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이 빠름을 일컫는 말을 광음여류(光陰如流), 비가 갠 뒤의 맑게 부는 바람과 밝은 달 또는 마음이 넓고 쾌활하여 아무 거리낌이 없는 인품을 일컫는 말을 광풍제월(光風霽月), 때를 벗기고 닦아 광채를 낸다는 뜻으로 사람의 결점을 고치고 장점을 발휘하게 함을 이르는 말을 괄구마광(刮垢磨光), 흘러가는 세월의 빠름은 달려가는 말을 문틈으로 보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인생의 덧없고 짧음을 비유하는 말을 극구광음(隙駒光陰), 눈빛이 종이의 뒤까지 꿰뚫어 본다는 뜻으로 독서의 이해력이 날카롭고 깊음을 이르는 말을 안광지배(眼光紙背), 혁혁한 빛이라는 뜻으로 성명이 세상에 빛남을 이르는 말을 혁혁지광(赫赫之光), 어둠 속에 빛이 비친다는 뜻으로 뜻밖에 일이 잘 해결됨을 이르는 말을 암중방광(暗中放光), 이전에도 그런 예가 없었고 앞으로도 또한 없을 것임을 일컫는 말을 절후광전(絶後光前) 등에 쓰인다.
▶️ 而(말 이을 이, 능히 능)는 ❶상형문자로 턱 수염의 모양으로, 구레나룻 즉, 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을 말한다. 음(音)을 빌어 어조사로도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而자는 ‘말을 잇다’나 ‘자네’, ‘~로서’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而자의 갑골문을 보면 턱 아래에 길게 드리워진 수염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而자는 본래 ‘턱수염’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지금의 而자는 ‘자네’나 ‘그대’처럼 인칭대명사로 쓰이거나 ‘~로써’나 ‘~하면서’와 같은 접속사로 가차(假借)되어 있다. 하지만 而자가 부수 역할을 할 때는 여전히 ‘턱수염’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그래서 而(이, 능)는 ①말을 잇다 ②같다 ③너, 자네, 그대 ④구레나룻(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 ⑤만약(萬若), 만일 ⑥뿐, 따름 ⑦그리고 ⑧~로서, ~에 ⑨~하면서 ⑩그러나, 그런데도, 그리고 ⓐ능(能)히(능) ⓑ재능(才能), 능력(能力)(능)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30세를 일컬는 이립(而立), 이제 와서를 이금(而今), 지금부터를 이후(而後), 그러나 또는 그러고 나서를 연이(然而), 이로부터 앞으로 차후라는 이금이후(而今以後), 온화한 낯빛을 이강지색(而康之色)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부적절(不適切), 부당한 일을 부당지사(不當之事),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부정부패(不正腐敗), 그 수를 알지 못한다는 부지기수(不知其數),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한다는 부달시변(不達時變) 등에 쓰인다.
▶️ 耀(번쩍거릴 요)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光(광; 빛나다)과 음(音)을 나타내는 翟(적, 요)의 변음으로 이루어지며 빛나다의 뜻이다. 그래서 耀(번쩍거릴 요)는 ①빛나다 ②빛내다 ③광휘(光輝)를 발하다 ④영광스럽다 ⑤현혹(眩惑)되다 ⑥미혹(迷惑)되다 ⑦빛, 광채(光彩) ⑧영광(榮光), 영예(榮譽)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빛날 환(奐), 빛날 빈(彬), 빛날 엽(曄), 빛날 요(曜), 빛날 화(華), 빛날 혁(赫), 빛날 휘(輝)이다. 용례로는 무력을 드러내어 보임을 요무(耀武), 말을 아름답게 꾸미고 장황하게 늘임을 요부(耀富), 값을 높임을 요가(耀價), 덕을 빛나게 함을 요덕(耀德), 번쩍이는 번갯불을 요전(耀電), 빛이 비쳐 밝음을 요요(耀耀), 광채나 빛남을 광요(光耀), 밝게 빛남을 욱요(昱耀), 밝게 드러나 빛남을 병요(炳耀), 자랑스럽게 빛냄을 긍요(矜耀), 밝게 비치어서 빛남을 조요(照耀), 밝고 환함을 낭요(朗耀), 빛을 덮어 가림을 엄요(掩耀), 눈부시고 찬란하게 빛남을 현요(眩耀), 명예를 얻으려고 거짓 뽐내는 일을 현요(衒耀), 권력이나 부를 얻어서 번성한다는 뜻으로 호화롭고 화려하다는 영요영화(榮耀榮華), 태양빛과 달빛은 온 세상을 비추어 만물에 혜택을 주고 있다는 희휘낭요(曦暉朗耀)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