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025년 11월 8일)이 우리 부부의 혼인(婚姻)* 50주년인 금혼식(金婚式 : gold wedding) 날이다. 이를 기념하는 상징 보석은 금이며, 선물은 금제품으로 한다는 귀띔이다. 혼인을 하던 해 내가 서른하나이고 아내가 스물일곱이었는데, 어느 결에 세월이 흘러 나는 여든하나이며 아내는 일흔일곱으로 생의 황혼이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다. 그동안 변변히 이룬 게 없는 빈손일지라도 지난 삶을 반추하며 지난날을 회상한다.
지난 1975년 유월 초순이었다. 손위 오빠인 김 박사가 자기 여동생이라는 사실을 꽁꽁 숨기고 소개를 해줘 만났었다. 처음 소개 받고 피차가 별로라고 생각해 뜨악해하고 있을 때 여동생 혼인을 위함이었던지 김 박사가 스스로 적극적인 중매쟁이 역할에 나섬으로서 만남이 지속되었다. 그렇게 다섯 달 남짓 만남을 이어가다가 동짓달 초여드레 날 서울의 종로예식장에서 예식을 올리고 가정을 이뤘다.
가정을 이룬 뒤 서울에서 거주하며 두 아이를 얻었다. 혼인 뒤에 신접살림의 둥지는 수유리 화계사 부근의 전세방에 틀었다*. 그 집에서 일 년 반 남짓 살면서 큰아이가 태어났다. 같은 해 여름 강남 도곡동의 조그만 아파트를 구입해 이사했다(1977년 7월 1일 전입)*. 그 도곡아파트에서 작은아이가 태어났다. 작은 아이가 태어나고 불과 3개월 될 무렵 조금 너른 대치동 동원아파트로 이사를 갔다(1979년 5월 1일 전입)*. 동원아파트에 거주하다가 1980년 봄 학기부터 일터가 마산의 경남대학교로 확정되면서 그해 11월 말경에 온 가족이 마산으로 이사해 현재까지 45년 째 눌러 살아 제2의 고향이 되었다.
때로는 사소한 생각의 차이나 뜻밖의 돌발 변수가 생겨 보통의 가정처럼 갈등이 유발되기도 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별다른 탈이나 문제가 없었던 무던한 삶이었다. 가정을 꾸리면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이루거나 얻은 것이 없었던 때문에 아무것도 내 세울 바가 없다. 하지만 헛된 탐욕에 의(義)를 저버리거나 사소한 이(利)를 탐하려다 손가락질 받는 추(醜)한 꼴을 보이지 않았던 삶이었다고 단언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지난 삶에서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거나 욕되게 언행을 했던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전생의 업보를 되돌려 받았던 벌(罰)일까? 30대 중후반 무렵(1982년 8월 6일) 고속버스의 추락사고로 두 아이와 부부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병고로 병원을 드나들며 가볍지 않은 수술과 입원치료를 받았다. 그것으로 끝났으면 오죽이나 좋았을까. 지금은 부부가 노인성질환으로 종합병원 장기 환자로 등록하고 번갈아가며 찾아가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아 복용해야 하는 옹색한 구석으로 몰려있다. 이런 입장에 처하니 호호백발이 되어도 병원을 모르고 사는 이들은 외계인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무척 부럽다.
뒤늦게 삶을 되돌아본다. 좀 더 일찍 철이 들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큰 대목이다. 가정을 꾸리며 지나친 탐욕이나 허황된 생각은 과감하게 내려놓거나 비우고 버리는 게 바람직했으련만 그렇지 못하고 되레 그들의 볼모로 잡혀 곤혹을 겪었던 적이 숱하게 많았었다. 힘겹게 틀어쥐고 아옹다옹 가슴앓이를 할 게 아니라 내려놓거나 버릴 것은 좌고우면하지 않는 편이 정신건강이나 현실적인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는 첩경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깨우치지 못했던 지난날이 후회막급이다. 지난 일에 대해 끌탕을 치며 후회한들 무슨 쓸모가 있으랴. 지금부터라도 쓸데없는 생각이나 바람은 제아무리 욕심이 나고 구미가 당겨도 단호하게 내치는 과단성을 견지해 볼 작정이다.
옛날에 비해 과학이나 문화가 발달했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움을 누리는 백세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그렇다고 선조들보다 행복하고 삶의 질이 개선된 걸까. 그 옛날 선조들은 삼갑(三甲)을 누려야 진정한 복을 받은 삶이었다고 했다. 여기서 삼갑이란 첫째로 회갑(回甲)을 넘도록 수(壽)해야 하고, 둘째로 혼인 이후에 부부가 함께 예순 해를 해로(偕老)하여 회혼(回婚)을 맞아야 하고, 셋째로 남자가 과거에 급제하여 60년을 나라에서 녹(祿)을 받는 회방(回榜)을 누려야 한다는 철학을 이른다. 다시 말하면 회갑, 회혼, 회방 등 3가지의 갑(甲)을 누렸을 때 진정 행복한 삶을 누렸다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 행복한 삶을 논한다면 오늘날엔 회갑을 제외하고, 회혼이나 회방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현실이 아닐까. 우리 부부의 경우 둘 모두 60년 이상 살았다. 하지만 올해 겨우 혼인 50주년일 뿐 아니라 열심히 살았지만 녹을 받았던 세월은 아무리 부풀려도 마흔 해를 채우지 못하니 이를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문화가 발달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를 누리며 백세시대를 살면서 생을 찬미하지만 진정 행복했었는지 곰곰이 곱씹어 볼 일이다.
영생을 감히 넘볼 수 없기에 이따금 남아 있을 생의 시간을 어림해 본다. 아무리 장수시대라도 살아왔던 지난 세월에 견줄 때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이 훨씬 짧다. 그런데 이즈음 해가 지날수록 눈이 침침해지고 청력(聽力)은 현저하게 떨어지며 사고(思考)의 깊이와 폭이 좁아짐을 실감한다. 이런 취지에서 언젠가 생을 정리해야 할 순간을 맞으면 품위 있는 죽음을 맞으며 주위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심산(心算)에서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가입하고 등록증을 받아 두었다*. 젊은 시절 부부의 연을 맺은 뒤에 쉰 해를 넘긴 소회의 피력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그래도 따스한 정이 흐르는 세상을 살면서 큰 허물을 남기거나 증오의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다. 이 같은 맥락에서 오그랑장사로 밑지는 삶이 아니었다는 안도의 숨을 쉬며 느긋한 마음으로 지난 세월을 회억(回憶)한다.
(한판암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