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포션이 필요하세요?>
나의 이름은 '붕붕이'이다. 두쌍의 은빛 투명한 날개와 동그랗고 멋진 겹눈을 지니고 있다. 그 뿐인가? 길게 쭉뻗은 붉은 꼬리는 엉덩이만 통통한 매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으며, 강력한 턱과 이빨은 나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렇다! 나는 잠자리다.
DragonFly.. 어떤 망할 놈이 그따위 학명을 지었는지 모르겠다. 드래곤플라이라니.. 내가 용파리란 말인가? 드래곤과 똥파리의 교배잡종쯤으로 오해 받기 쉬운 이름이 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암컷 드래곤과 숫똥파리의 교접장면을 상상해 보던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어쨌든 나는 잠자리, '붕붕이'다.
권태로움에 못 이긴 나는 재미있는 놀이를 생각해냈다.
이름하여 '꼬리잡기 놀이'.
그런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나와 같은 잠자리 동료는 보이지 않았다. 하긴 이런 큰 도시처럼 인간들이 북적거리는 곳은 친구들이 꺼려한다. 도시 외곽까지 날아간 나는 어느 조그만 집에서 한 소년을 발견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 소년을 내 놀이상대로 삼았다.
1시간쯤 흘렀을까? 좀처럼 침대에서 꼼짝도 않던 소년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드디어 '꼬리잡기 놀이'가 시작될 기대감에 가슴을 두근거렸다. 소년은 아파보였다.
병약해 보이진 않았지만 오랫동안 침상에 있었던 듯 많이 야위어 있었다. 소년은 겉옷을 걸치고 집을 나섰다. 스피드하게 움직이지 않아 적잖이 실망했지만 딱히 할 일이 없는 난 그를 쫓았다.
열에 들뜬 얼굴의 그 소년은 힘겨운 걸음으로 시내 중심가를 향해 타박타박 걸었다. 나라면 3분이면 갈 거리를 그 소년은 2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했다. 그 도중에도 몇 번이나 길가에 앉아 쉬었는지 모르겠다.
소년이 도착한 곳은 커다란 사원이었다. 백색의 은은한 오로라를 피워 올리고 있는 신성한 사원 앞에 선 소년은 품 속에서 가죽 주머니를 꺼내 그 안을 몇번이나 살펴 보았다. 그의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잠시 스쳐가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사원의 높은 계단을 올라가는 소년의 숨이 턱까지 닿을 정도로 힘들어 보였다. 사원에 들어선 소년은 또 한참을 기다려서 성직자의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재빨리 문이 닫히기 전에 방에 몰래 들어갈 수 있었다. 문은 소년의 병세를 대변이라도 하듯 힘없이 닫혔다.
소년을 아래 위로 훑어 보던 성직자가 내뱉듯이 말했다.
"돈은 있는거냐?"
"네."
성직자는 의심스러운 얼굴을 지우지 않고 말했다.
"만약 나중에 돈이 없다고 발뺌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거다. 알고 있겠지?"
"....."
성직자는 소년의 가슴께에 손을 댔다. 사원에서 피워 오르던 것과 같은 색깔의 오로라가 성직자의 손에서 스물스물 흘러나왔다. 오로라는 소년의 가슴 부분을 휘감는 듯 하더니 그가 손을 떼자 마자 사라져버렸다.
"고열이군. 대수로운 병은 아니니까 그렇게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얼굴은 하지 말라구, 꼬마야."
"...."
"자, 이 종이를 가지고 가서, 치료 주문이 적힌 마법 스크롤을 사오도록 해라."
"네..."
"다음!"
소년은 성직자의 '다음'이라는 말에 쫓기듯 방에서 나왔다. 소년은 아까보다도 힘이 없는 걸음으로 사원의 계단을 내려왔다. 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소년이 안타까워 보여 이미 '꼬리잡기 놀이'도 잊은 채였다.
소년이 도착한 곳은 마법사길드였다. 그 곳은 사원에 비해 한가해 보였다. 소년은 그 곳에서 어느 젊은 마법사에게 성직자가 적어 준 종이를 보여 주고는 치료 주문이 적힌 스크롤을 하나 받았다. 그 값으로 소년은 젊은 마법사에게 금화 2개를 건네 주었다. 손이 떨리는지 소년은 마법사에게 금화를 주려다 그만 바닥에 2개의 주화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많이 아픈 모양이구나. 어서 가서 이 스크롤로 치료를 받도록 해라."
"...."
소년은 말없이 마법사길드를 나왔다. 또다시 똑같은 과정을 거쳐 사원의 성직자 방에 돌아 올 수 있었던 소년이었다. 소년의 눈동자는 이미 생기를 잃고 있었다.
성직자는 소년에게서 스크롤을 받아 그 앞에서 찢어내 치료를 했다. 잠자리인 내가 보기에도 별로 대수롭지 않은 마법같아 보였다.
"치료 주문은 다했다. 하지만 이걸로는 네 병이 완벽히 낫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겠지, 꼬마? 자, 이번엔 이것을 가지고 가서 힐링포션을 사서 마시도록 해라. 치료비는 금화 5개다."
성직자는 또다른 종이를 소년에게 건네고는 다른 빈 손을 소년 앞에 내 놓았다. 소년은 떨리는 손을 억지로 참으며 가죽 주머니에서 금화 5개를 꺼내 성직자에게 주었다. 나는 소년의 가죽 주머니 속을 볼 수 있었다. 그 안엔 때묻은 은화 3개가 들어 있었다.
치료 주문의 스크롤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내가 걱정하던 사태가 벌어졌다. 소년은 사원 계단을 내려오다 다리가 풀려 계단에서 구르고 말았던 것이다. 그 곁을 지나던 사람 누구도 소년을 일으켜 주지 않았다. 죽은 듯이 보이던 소년은 한참만에야 일어섰다. 소년의 입가에는 가느다란 핏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소년은 옷소매로 쓰윽 입가를 닦아 내고는 또다시 어딘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다. 소년의 걸음이 멈춘 곳은 아티펙트나 마법용품을 파는 가게였다.
주인은 친절하게 보이는 스무살 안팎의 여성이었다.
"힐링포션이 필요하세요?"
소년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화 1개입니다."
소년은 품 속에서 가죽 주머니를 통째로 내놓았다. 그리고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가게의 프런트를 떨리는 손으로 붙잡았다. 가죽 주머니를 살펴본 여주인의 표정이 조금 바뀌었다.
"은화 일곱 개가 더 필요한데요, 손님?"
소년은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었다.
"돈이 없는 모양이군요. 미안하지만 공짜로 힐링포션을 줄 수 있을만큼 저희 가게는 여유롭지가 않아요."
쌀쌀맞은 여자의 음성이었다. 눈을 질끈 감은채 식은땀을 흘리던 소년은 다시 가죽 주머니를 품 속에 소중히 넣고는 가게를 나왔다. 나는 그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며 그가 무사히 집까지 돌아가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소년은 비척거리며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의 입에서는 피와 침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걷던 소년이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품 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빵이었다. 딱딱하게 굳은 반쪽짜리 보리빵이었다. 그것을 조금 떼어 먹던 소년은 갑작스럽게 구토를 해댔다. 그의 토사물은 약간의 죽같이 된 빵이 섞여 있을 뿐, 대부분은 걸쭉한 피덩어리 뿐이었다. 아무래도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것 같았다.
소년은 참을성이 많은 듯 했다. 온몸의 고통을 참으면서도 그는 집까지 돌아왔다. 나는 진심으로 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소년이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각이었다.
집에 돌아온 소년은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똑바로 누운 소년은 그렇게 평안해 보일 수가 없었다. 무표정하기만 하던 소년의 얼굴에 잠시 신이 내려준 것 같은 평온한 미소가 번졌다. 아마도 좋은 꿈을 꾸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시는 힘든 세상에 돌아오지 않아도 될 그런 좋은 꿈을..
나는 잠자리, '붕붕이'다.
어느 소년의 외로운 마지막 잠자리를 지켜보아 준 유일한 잠자리이다.
너무나 슬픈 잠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