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의 카운터펀치… 괴담세력과의 전쟁 분기점
매 맞다 가출한 아내보다 남편 꾸짖어야 하듯
백지화 무책임 비난 앞서 괴담세력 책임 물어야
양평 노선, 野가 주민과 협의해 정하라고 맡기면
野, 주민 바람과 ‘괴담 固守’ 사이 딜레마 처할 것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양평고속도로 백지화를 발표하자 무책임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우파 성향 언론과 학자들도 주민만 피해 보게 됐다고 비판했다. 필자도 첫 느낌은 비슷했다.
하지만 곰곰 따져봤다. 정말 이 발표가 양평 주민과 장래 이 도로를 이용할 수많은 교통수요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결과가 될까. 더 나은 대안이 있었을까.
수년째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견디다 못해 아내가 집을 나갔다 치자. “아이 혼자 두고 집을 나간 무책임한 엄마”라고 비난을 퍼붓는 게 온당할까?
만약 원 장관이 “의혹이 제기됐으니 원안(양서면 분기점)대로 하겠다”고 했으면 더불어민주당과 좌파는 “국정농단을 막아냈다”며 투쟁 승리사로 기록하고, 양평주민에게는 진출입로(IC) 없는 도로가 주어질 것이다.
원 장관이 수정안(강상면 분기점)을 추진하겠다고 했으면 좌파는 “희대의 국정농단” “탄핵”을 외칠 것이다. 공사장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완공 후 수년이 지나도 도로에 ‘김건희로드’ 낙서가 생길 것이다.
물론 백지화 결정은 토론과 승복, 이성 과학 팩트가 존중되는 정상적인 사회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러나 슬프고 어이없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
학자나 언론인들은 야당을 찾아가 설명하고 설득해야 했다고 양비론을 펴지만, 실제 아무리 그런 노력을 한들 야당이 의혹 제기를 철회하고 정상적인 추진 여건이 회복될까. 아무리 설명하고 팩트를 제시해도 이재명 대표가 “납득이 된다”며 ‘김건희 로드’ 낙인찍기를 거둬들일 가능성이 1%라도 있다고 생각할 사람은 민주당 내에도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를 토론·설득이 불가능한 비정상 사회로 몰아간 책임의 99%는 민주당과 좌파진영 내 괴담세력에 있다. “궁극적으로 공론의 장에서 괴담과 가짜뉴스는 걸러지고 진실과 정의가 우뚝설 것”이라는 당위론은 수백 수천년 긴 역사의 눈으로는 맞는 얘기겠지만 당대를 사는 사람들은 고스란히 그 폐해에 노출된 채 일생을 속은 채 살아가게 된다. 괴담 세력의 악의와 간교함을 보면서도 정부의 대화 노력 부족을 탓하며 책임의 절반을 정부에 돌리는 건 무책임한 양비론일 뿐이다.
원 장관의 대응은 우파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던 충격 요법이다. 그동안 우파 진영은 괴담 공세가 시작되면 손놓고 있다가 뒤늦게 해명하고 어정쩡하게 타협을 시도하거나, 술대접하며 달래고, 질질 끌려가다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고 나중에 흐지부지되는 경로를 되풀이해 왔다. 좌파는 괴담 효용을 100% 거둔 뒤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책사업 반대론자들에게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했다. 그런 소신이 없었다면 경부고속도로는 구불구불 뱀 노선이 됐을 것이다. 원 장관은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했다. 보수가 살기 위해서는 괴담 세력에 맞서 자신을 다 던지는 정치인, 장관들이 계속 나와야 한다.
원 장관의 백지화 발표는 결과적으로는 더 신속한 진행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원 장관은 이제 다음 펀치를 내야 한다.
그것은 민주당에 노선 선택권을 줘버리는 것이다. 너무 오래 시일을 끌거나 지나친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민주당이 양평군민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입장을 정해 오면 정부는 그걸 존중해 즉각 사업을 재개하겠다고 제안하는 것이다.
원 장관의 백지화 선언 이후 많은 팩트가 쏟아지면서 이제 전 국민이 전문가가 됐다.
특히 도로 타당성 조사 용역을 맡았던 경동엔지니어링(교통 분석)과 동해종합기술공사(도로)의 지난 13일 브리핑은 논리와 합리성 모든 면에서 모두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전후관계를 따져보면 야당이 제기한 의혹은 근본적으로 허점이 많았다. 노선 수정안은 지난해 1월 문재인 정부가 선정한 이들 용역업체가 지난해 5월 19일 국토부에 제출한 결론이다. 당시는 윤 정권이 출범한지 9일, 원 장관이 취임한지 사흘밖에 안 된 시점이었다.
신뢰도와 실력을 인정받는 두 전문 업체의 의견이 정치적으로 오염됐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왜 노선 변경을 제안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누구나 수긍할 수 있을 만큼 합리적이었다.
그럼에도 만약 선택권을 위임받은 민주당이 오직 “김건희로드 저지”라는 프로파간다에 집착해 원안을 고수하면 주민들의 지탄을 받게 되고, 국민에겐 “정치적 계산을 국민의 편의보다 앞세운 집단”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민주당이 뒤늦게 픽업한, ‘원안에 IC만 추가하자’는 방안을 고집하면 도로가 기형적으로 휘고, 자연환경과 문화재 훼손 등 숱한 문제점을 야기하는 무책임한 선택이라는 비판을 받을 위험이 크다.
그렇다고 강상면 수정안을 택하자니 김건희로드 주장을 스스로 철회하는 것에 해당한다. 딜레마에 처할 수밖에 없다.
물론 야당에 선택권을 주는 것은 정상적인 정부 운영 원칙에 어긋나는 방법이다. 하지만 도로계획이 차질을 빚든, 수산업이 붕괴하든 개의치 않고 괴담을 유포하는 세력의 발목잡기에서 벗어나려면 특단의 방법을 동원해야 할 필요도 있다.
괴담세력의 수법은 항상 비슷하다. 더탐사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종점이라고 표현했다. 이해찬 전 대표는 “도로 노선을 변경해 자기네 땅 사 놓은 데로 지나가게 한다. 역대 누구도 그렇게 내놓고 해먹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들은 진출입이 가능한 IC가 아니라 분기점(JCT)이며, 보유 토지 대부분은 1987년 상속받은 선산이라는 점은 알리지 않는다.
선진국에서 괴담을 퍼뜨린 정치인이나 언론은 사회에서 매장되지만 한국에서는 궤변 논리로 퇴로를 만들며 승승장구해 왔다.
하지만 양평은 다르다. 민주당은 돌아나가기 힘든 진격을 했다. 자기들 정부 때 발주한 용역 결과를 국정농단이라고 비난한 건 자기 눈을 찌르는 자승자박이다.
양평고속도로 분기점은 수십 년째 온 나라를 수렁에 빠뜨려온 괴담세력과의 게릴라전에서 대반격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
만약 민주당이 의혹 제기를 철회하고 도로 건설이 정상적으로 재개될 경우 윤 대통령 처가는 상속받은 선산 이외에 최근 수년간 추가 매입한 도로 주변 토지가 있다면 국가나 공익재단에 기부하기를 바란다. 법적으로 떳떳하고 정상적인 과정으로 일이 진행됐다고 해도 그게 대통령 가족으로서 명예로운 처신이다.
이기홍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