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자사고’ 민족사관고, 결국 대안학교로 가나
사립 민사고→자립형사립 민사고→자율형사립 민사고→대안학교 민사고. 1996년 개교한 민족사관고의 설립 유형 변천사는 ‘백년대계’ 교육이 정권에 따라 변화무쌍했음을 보여준다. 지난 정부의 자사고 폐지 정책으로 일반고가 되거나 폐교될 뻔했던 ‘원조 자사고’ 민사고가 대안학교 전환을 추진 중이다. 현 정부가 자사고를 유지하기로 했지만 정책이 언제 또 바뀔지 알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민사고는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학교를 운영하기로는 대안학교가 낫다고 판단한 듯하다. 민사고가 추진 중인 대안학교는 학력이 인정되는 인가형이다. 수업시수의 절반까지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고 교과서를 자체 개발하는 것도 가능하다. 자사고는 영재학교나 과학고와 달리 일반고와 함께 후기에 신입생을 선발하고 지역인재를 20% 뽑아야 하는 데 비해 대안학교는 학생 선발 시기와 전형이 자유로운 장점도 있다.
▷민사고는 국내에선 SKY와 아이비리그 많이 보내는 학교로 유명하지만 해외에선 한국형 영재교육 모델로 주목받는 학교다. ‘민족정신으로 무장한 세계적 지도자 양성’이라는 교육 목표에 따라 명심보감을 외우고 전 과목 영어로 수업을 듣는다. 계열 구분 없이 관심사에 따라 수업을 골라 듣는 민사고의 수업 방식은 문·이과 통합과 고교학점제로 전체 고교가 채택하는 표준이 됐다. 융합 독서에서 시작해 융합 상상력을 거쳐 융합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3단계 융합 교육은 인공지능(AI) 시대 인재 교육 방식으로 평가받는다.
▷민사고의 교육 실험은 자사고와 외고를 없애는 지난 정부의 ‘제2 평준화’ 정책으로 중단될 뻔했다. 학교 서열화와 과열 입시경쟁의 주범으로 몰린 것이다. 주요 선진국은 다양한 학교를 운영하며 학교 선택권을 강화하고 학교 간 경쟁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미국의 차터스쿨, 스웨덴 프리스쿨, 영국 아카데미스쿨이 그 사례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평준화주의자들이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며 새로운 시도에 계속 제동을 건다. 한 해 100만 명이 태어나던 산업화 시대의 ‘붕어빵’ 교육을 25만 명이 태어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고수하자는 것인가.
▷민사고 캠퍼스에 맞춘 목발 설계, 횡성지역 대기질 연구를 위한 로켓 제작 및 측정, 수학적 수익 모델을 통한 주식시장 분석, 분자 미식학을 이용한 식습관 개선 방법…. 민사고 학생들의 융합 과제 주제들이다. 정답 찾기에서 벗어나 질문하는 능력을 키우던 명문고가 정규학교가 아닌 대안학교가 되려 한다. 지방 소멸을 걱정하면서 지방에 명문고 하나 못 키워내는 교육 풍토가 안타깝다. 대안학교 시행령을 바꿔 규제를 하려 들면 그때 민사고는 또 어디로 가야 할까.
이진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