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가 남긴 것
10선의 중의원 의원 아베 신조 전 총리(67)가 유세 도중 모친의 통일교 헌금에 앙심을 품은 40대 남자의 사제 총 저격으로 어이없게 생을 마감해 일본은 큰 지도자를 잃었습니다. 세계 각국 정상들이 애도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 필자가 일본에 있을 때는 모리타 아키오 소니 창업자와 작가 이시하라 신타로가 함께 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NO」と言える日本』)의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고 있었습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한 해 800억 달러를 기록한 무역 흑자를 줄이자며 외국 상품 구매를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부러운 풍경이었습니다. 엔화는 초강세로 1985년 2월 25일 1달러 260엔이던 환율이 필자의 도일 직후인 1986년 4월 7일 178엔으로, 1년 뒤 3월 30일에는 146엔으로 뛰었습니다. 달러로 받아 엔화로 바꿔 쓰는 생활은 정말 쪼그라들었습니다.
해군 장교로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나카소네는 정계 입문 후 ‘자주헌법 제정, 군대 보유 금지 조항 반대’를 표방했습니다.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와 나카소네의 맥을 이어 전후 최장수, 통산 9년간 총리를 지낸 아베의 핵심적 꿈은 처음부터 평화헌법 9조의 전쟁과 군대 불인정을 없애 자주국방을 완성하는 보통국가 건설이었죠. 러시아의 푸틴과는 ‘북방영토’ 반환을 위해 27회나 만났습니다.
2002년 9월 아베는 관방 부장관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따라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을 만났습니다. 아베는 대북 강경론을 펼쳐 납치 사실을 인정받았고 피랍 일본인 5명의 귀국에 큰 역할을 해 정치적 성가를 높였습니다.
일본의 군대 부활은 원폭 투하를 두 차례 맞은 국민에겐 재앙으로 여겨질지 모릅니다. 나가사키에서 원폭에 맞아 현모양처인 아내가 <로사리오의 사슬>만 남긴 채 재가 되고 그걸 사흘 뒤 퇴근한 백혈병 환자인 남편 나가이 다카시(의학 교수)가 발견해 수습하는 수필의 내용처럼 말입니다.
일본은 그 악몽을 딛고 일어서야 할 만큼 국제정세가 험악해졌다는 생각인지, 아베의 참변에 참의원 선거에서는 개헌이 가능할 정도로 자민당 세력이 승리했죠. 국민 58%가 개헌 논의 활성화를 지지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 두 독재자의 밀월관계에 달라붙은 김정은 3대 세습체제의 핵무장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일본은 국방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깨달았을 것입니다.
나카소네와 레이건의 론-야스 밀월관계에 이어 아베는 트럼프와 이름을 부르는 사이였습니다. 미국을 빼고 상상할 수 없는 일본의 안보 전략은 지정학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확고한 지킴이로서 가치동맹을 신봉한다는 증거입니다. 아베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지역’을 내걸고 미·일과 호주, 인도가 참여한 4자 안보 협의체 쿼드(Quad)의 창설에도 핵심적 역할을 했습니다.
문재인 정권하에서 일본이 한국을 최혜국 대우에서 뺀 반도체 소재 무역 분쟁은 한일 협정을 무시한 한국의 과거사 재판 결과에 불만도 있지만 친북적 성향의 한국 정부를 견제하려는 뜻도 있었다고 분석됩니다. 일본산 고순도 불화수소가 북한으로 넘어가면 독가스인 사린가스 제조에 전용되거나 우라늄 농축에 사용될 수 있어 금수한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일본은 시스템 반도체에 강한 대만 TSMC가 70억 달러를 투자하는 첫 반도체 공장을 구마모토에 건설 중입니다. 소니는 5억 달러를 댑니다. 방한한 바이든 미 대통령이 삼성전자를 방문해 글로벌 공급망을 강조하고 미국이 8월까지 한국에게 반도체 동맹에 가담하라고 촉구한 데서 반도체 공급망의 중대성은 드러납니다.
2011년 3월 일본은 동일본대지진으로 1만 8,425명이 사망·실종했습니다. 230조 원의 복구자금이 필요한 어려운 시기인 2012년 재집권한 아베는 금융 완화와 재정확장의 아베노믹스로 닛케이 주가지수를 230퍼센트나 끌어올렸습니다. 2017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원전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1,368명이 사망했다”고 연설해 아베 정부의 항의를 받았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은 쓰나미가 덮쳐 원자로의 노심 용융 현상이 일어났으나 직접 사고 사망자는 당시까지 1명도 없었다는 겁니다.
아베는 피격 사망 당시에도 북한 피랍자를 잊지 말자는 파란 리본 배지를 달고 있었답니다. 일본 경찰은 북한이 약 800여 명의 일본인을 납치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는 피랍자에게서 일어를 배웠고 생사불명의 피랍자 요코타 메구미도 다른 북한 공작원에게 일어를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메구미 부모는 일본 정부의 집요한 노력으로 2014년 몽골에서 외손녀와 해후했습니다.
2020년 서해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에 대한 북한군 총격 소각 방치 사건이나 동해안 귀순 어부 2명을 귀순 의사가 없었다며 강제 북송한 것처럼 ‘사람이 먼저다’라는 문 정권은 일본의 대처와 너무 다르죠. 형량이 사형뿐인 여적죄 적용을 들먹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국정원이 박지원 등 전 국정원장 2명을 고발했으니 종북적 관리들의 죄상과 혐의가 속속 드러나겠죠.
윤석열 대통령이 주한 일본대사관을 찾아 아베 조문록에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로서 한국과 일본이 앞으로 긴밀히 협력해나가길 바란다‘고 썼습니다. 한·미·일은 가치동맹으로 단결해야죠. 급락 중인 원화부터 지키려면 일본과의 통화스와프 협정 부활이 시급합니다. 미국은 1941년 12월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으로 2,335명의 장병을 잃었습니다. 2016년 5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히로시마를 찾아 원폭 희생자들을, 아베 총리는 12월 진주만을 찾아 전사한 미군 수병들을 서로 추모해 화해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친북 총학생회장 출신들이 많이 설친 5년간의 문재인 정권은 국제정세에 아둔했고 소방(小邦)이라는 사대주의로 국민에게 실망을 안겼습니다. 한국은 ‘안미경중(安美經中)’을 읊었고 중국은 북한 비핵화 문제를 외면했죠.
아베는 갔지만 그 신조를 받드는 사람이 이어질 것입니다. 누가 침략한다고 외부의 가상적을 만들어 군비를 강화하고 독재체제를 강고히 하려는 중국의 위협이 본능적으로 일본을 미국으로 한층 더 이끄는 것이죠. 시진핑 주석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며 방명록에 제후의 충성을 다짐하는, 모든 강은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뜻의 ‘만절필동(萬折必東)~’을 운운한 사대주의자 노영민 전 중국 대사는 뭘 생각했나요?
한국의 여당은 30대 어린 대표의 성추문과 당원권 정지로 시끄러운데 일본 자민당과 비교가 안 되죠. 갈팡질팡하지 말고 얼른 정리해 부국강병, 자주국방으로 직진해야 합니다. 문 정권은 5년간 공무원을 11만 명 늘렸고, 그들의 연금 등으로 국채를 763조 원 급증시켜 국가부채가 총 2,196조 원이나 돼 재정으로 민생과 경제 살리는 묘책이 나오기 어려운 실정이랍니다. 집권당의 역할이 막중한 순간이죠.
국민을 지키는 안보를 바로 세워야 민생 경제도 잘 돌아갑니다. 안보 관련 일련의 수사는 구정권 보복이 아니라 재범하지 말아야 할 이적 행위의 단죄를 구하는 국가 근본의 확립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나라야 거덜 나건 말건 국고를 뿌려 얻는 좀스런 인기가 아니라 국민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이웃 일본 스타일의 정치가가 대접받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