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있던 회사에서 비오는 날 일시킨다고 노동청에 고발한 사건으로 두 달 가량 힘들게 버티다가 스스로 지쳐 그만 둔 적이 있었다. 다른회사에 들어 가서 반나절 일 잘하고 점심 먹고 소장이 불러서 갔더니 제발 좀 나가 달라는 것이었다.
[앞에 회사와 당신 회사를 취업방해로 고발하겠다]
[제발 조용히 좀 나가달라. 잠잠해지면 다시 부르겠다]
하긴 이 소장은 무슨 죄가 있나. 조용히 그만 두었다. 신체검사 비용하고 오전 일당만 받고 그야말로 조용히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한진 노무과와 안전과에서 압력이 있었다고 한다.
집에서 걸어서 오분도 안 걸리는 좋은(?) 회사를 다니지 못하고 통영으로 온산으로 다대포로 떠돌아 다녔다. 그러다가 한진사태가 났고 두 명의 노동동지가 죽음으로써 노조를 지켰다. 아직도 사무장과 특수선 지회장이 영도 경찰서로 불려 다니는 등, 정상적인 업무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 들어간 현대상사는 탑재만 하는 회사인데, 탑재란 다 만든 블럭을 도크에 내려서 갖다붙이는, 조선업의 마지막 공정인 셈이다. 지금은 4도크에서 115호선을 한참 만들고 있다. 곽재규 동지가 온 몸으로 유서를 쓰면서 떨어져 죽은 바로 그 곳에서 태연하게 일하고 있는 것이다. 3도크에 건조된 114호선은 이 달 15일 전후에 진수를 하게 될 예정이다. 진수란 도크에 물을 넣어 배를 뺀다는 말이다.
하루 일당은 칠만 이천원 책정 되었다. 최고 단가가 칠만 오천원이니 아마 곧 올려 받을 수 있지 싶다.잔업 좀 하면 하루벌이가 십만원 가까이 되는 셈이다.
이번 회사에서도 삼일째 일하던 날 직장이 사무실로 나를 불렀다.
[오해는 말기를 바란다. 먼저 있던 회사에서 노동청에 고발을 해서 골치가 아팠다고 하던데, 사실이냐?]
[사실이다. 그쪽 말만 듣고 나를 판단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일을 부당하게 시켰고 감정이 많이 쌓여서 그랬다. 마지막에는 욕을 하는 바람에 성질이 났다. 그래서 고발했다]
[골치 아픈 놈이라고 각서라도 받고 나서 일을 시키라고 하더라]
[각서는 못쓴다. 잘못한 게 없다. 앞으로는 유의하겠다. 그리고 비오는 날은 출근하지 않겠다. 회사가 바빠서 나오라면 좋다, 출근은 하되 일은 하지 않겠다.]
[비 오는 날 일 시켜봤자 어차피 일이 안된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부디 이 회사에서는 불미스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열심히 해보겠다. 애로사항이 있으면 언제든지 상의하겠다]
[나도 작업자 편에서 최대한 들어주겠다]
대충 이런 사연을 거쳐서 이주일째 일하고 있다. 한파주의보가 내린 오늘(일요일, 내가 미쳤나 보다) 세시까지 일하고 왔다. 점심으로 밖에 나가서 갈비탕을 사 주길래 잘 먹기도 했다. 반주로 소주를 한 병 시켰는데, 나는 일하면서는 절대로 술을 먹지 않는다.
한진중공업은 참으로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는데, 인간을 차별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배는 하청업체가 다 만든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그런데도 하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아주 물로 본다. 회사 자체 노무관리도 그렇고 직영작업자들도 대부분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있다. 직영들이 여름휴가를 받아 출근하지 않으면 세상에, 물도 마실 곳이 없다면 말 다 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번에는 아주 단단한 마음을 먹고 입사를 시도 했고, 성공한 셈이다. 이른바 비정규직에 대한 인간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심스런 행동을 시작했다. 한 업체에서 그런 움직임이 있다고 낌새를 차리면 악랄하게도 업체를 바꾸어 버린다. 물론 당사자를 자동으로 내보내면 다시 이름만 바꾸어서 문을 열지만 말이다.
세웅선박이라는 업체가 예전에 유일하게 하청노조가 있었는데, 지독한 탄압으로 결국은 업체를 바꾸었다. 삼양선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다시 두 업체로 사람들을 갈라 놓은 것이다. 지금의 외길기업과 원일기업인데, 알고 보면 전에 있던 그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조직을 깨어서 무력화 시킨 결과이다. 전에 한 놈이 노조를 재조직하려다가 실패를 하고 지금은 진해로 가기도 했다. 인건비가 싼 우즈벡 노동자들을 고용해서 섞어서 쓰고 있다.
한진중공업에는 큰 회사답게 통근버스가 운영되고 있다. 부산시내 각 각 지역은 물론이고 김해에서도 오는 버스가 있다. 그런데, 협력업체 직원들은 이용하지 못한다.못타게 된 원인을 가지고 회사와 노조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실정이다. 누구 책임이기 이전에 못타고 다니는 사람들만 바보들인 것이다. 실제로 다대포 다닐 때 출입증을 보여주고 탄 적이 있는데, 눈치는 좀 주었지만 내리라고 강요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중에는 내가 더러워서 안 타고 차를 빌려서 운전하고 다녔지만 말이다.
이처럼 하청노동자들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나름대로 분석을 해보면 스스로 회사에 크게 애착심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언제든지 그만 둘 궁리를 한다. 돈 만 조금 더 준다면 훌쩍 가버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걸 어떻게 바꾸어 내야하나?
전체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아우르는 조직이 하루빨리 만들어져야 할 텐데 현실적으로 아주 접근이 힘들다. 실제로는 내가 몰라서 그렇지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만나는 것이 가장 급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한진 노조가 위원장을 새로 선출하고 정상을 되찾으면 거기 가서 머리를 맞대 볼 생각을 가지고 있다. 통근버스 문제는 분명히 따낼 수 있는 현안이고, 그걸 따내는 과정에서 사람들도 분명히 보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자신감을 가지게 되면 하청노조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차별에 대한 항의를 할 수 있는 모임이랄까, 조직이 만들어 질 것이다. 여러업체가, 가능하다면 모든 업체가 참여해야만 이길 수 있는 싸움이다. 동시에 다 바꾼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옳을까?
죽기 전에 뭔가 보람된 일을 한가지라도 이루고 싶다.
인간에 대한 차별은 반드시 철폐되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람이다. 아아! 사람,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