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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화엄경보현행원(부사모) 원문보기 글쓴이: 나무꾼
나무아미타불
저의 어머니께서는 갑술생으로 2013년 올해에 연세가 80세 인데 올해 5월부터 건강이 나빠져서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는데 차도가 없이 점점 상태가 안 좋아져서 요양병원에 모셨습니다. 10월 22일 밤 11시 30분 쯤 요양병원에서 저에게 전화가 와서 어머니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 와 보라고 하였습니다. 즉시 병원으로 가 보니 어머니는 산소를 코에 달고 있었으며 폐에서 물이 올라와서 입에서 흡인기로 물을 수시로 뽑아내는데 어머니는 몹시 고통스러워 보였습니다.
병원에서 이제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하시기에 임종 후 10시간은 염불을 해 주어야 되는데 요양병원에서 가능하겠냐고 병원장 선생님께 물으니 병원에서는 법적으로 2시간을 넘길 수 없다고 하면서 시신의 부패나 감염 등 문제점이 제기 될 수 있으므로 곤란하다고 하며 “임종하고 2시간이 지나면 물이 됩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즉 시신의 부패가 시작되어 물이 나온다는 뜻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임종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남은 것 같으냐고 물으니 그것은 아무도 알 수가 없다고 하며 며칠이 갈지 바로 임종할지 알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겠다고 하니 구급차를 불러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집으로 와서 나무아미타불 염불CD와 카세트, 옷가지 등을 챙기고 처와 같이 요양병원으로 가면서 두 동생들에게도 연락을 하여 요양병원으로 오라고 하고 요양병원에 도착하니 벌써 구급차가 와서 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동생들은 각자 시골집으로 출발하라고 하고 저와 처는 어머니를 구급차에 모시고 산소를 코에 연결하고 시골집으로 가면서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계속하면서 어머니의 상태를 지켜보았는데 계속 폐에서 물이 올라 와서 구급차에 같이 타고 있는 간호사가 수시로 흡인기로 폐에서 올라오는 물을 빼 주었습니다.
30분 정도 달려서 시골집에 도착하여 평소에 부모님께서 사용하셨던 온돌방이 차가워서 방바닥에 이불을 3개를 깔고 하나는 덮어서 어머니를 모셨습니다. 어머니는 입에 고이는 물을 빼내기 위한 호스를 넣을 수 있는 마우스피스 같은 것을 반창고로 붙이고 계셨는데 방향이 입의 왼쪽 방향이라서 머리를 북쪽으로 하고 서쪽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려고 보니 마우스피스가 입의 높은 쪽에 위치하여 입에 고이는 물이 나오기가 어려워 보여서 머리를 남쪽으로 발이 북쪽을 향하도록 눕혀 드리고 서쪽을 바라 볼 수 있도록 베개를 베어 드리고 얼굴이 서쪽으로 향하도록 해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저의 처와 두 동생 부부에게 두 마디씩 교대로 염불하는 방법을 간단히 설명하고 어머니가 임종하시면 절대 울지 말고 8시간에서 10시간을 염불할 것이며 임종하신 후에는 절대로 어머니의 몸을 만지지 말 것 등의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시간을 보니 새벽 2시였습니다. 시간이 너무 늦어 스님께 연락을 드릴 수가 없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모든 것은 인연에 맡기고 오직 조념염불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염불CD를 카세트에 넣고 스님께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두 마디 염불을 선창하실 때 듣고 후렴에 맞춰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두 마디 염불을 하며 저의 삼형제 부부가 어머니의 조념염불을 시작하였습니다. 조념염불을 하면서 어머니를 계속 지켜보았는데 구급차에 실려 오실 때 까지는 산소를 코에 연결하고 왔지만 집에서는 산소를 뺀 상태라서 호흡이 더 가빠진 것 같았고 입에서는 폐에서 올라오는 피가 섞인 물이 수시로 숨을 내쉴 때마다 넘어와 입 아래에 휴지를 대 놓고 휴지가 젖으면 갈아 드리고 하였습니다.
동생들에게는 시간이 늦어서 피곤한 것 같아서 2~3명이 지키며 조념염불을 하고 다른 방에 가서 좀 쉬고 교대로 조념염불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조념염불을 하기 전에는 곧 임종할 것 같이 호흡이 가쁘고 입에서도 계속 피가 섞인 물이 넘어 오더니 조념염불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점차로 숨이 편안해 졌고 새벽이 가까워 질 때쯤에는 입에서 피가 섞인 물도 거의 넘어오지 않고 멈춰 편안해 보이며 고통이 없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어머니의 상태를 계속 지켜 본 저로서는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니 아미타 부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듣고 어머니가 위급한 상황에서 벗어나 임종하시기까지 며칠이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전남의 ○○사에 주석하시는 저의 스승님이신 선○스님께 전화를 드려서 어머니의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고 방의 온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쭈어 보았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머니를 위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여 드리고, 추위를 느끼지 않도록 방을 따뜻하게 해 드려야 합니다.”
전남의 ○○사에서 저의 집까지는 승용차로 4시간이 걸리는 먼 곳인데다 얼마 전에 스님께서 두 다리를 크게 다쳐서 수술을 하셨는데 아직 몸이 불편하시기에 이번에는 저의 집까지 오시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하여 어머니의 조념염불에 대하여는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처에게 아궁이에 불을 지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구에 계신 혜○스님께 전화를 드려서 어머니께서 병원에서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집으로 모셔서 조념염불을 해 드리니 상태가 위급한 상황을 벗어난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어머니께서 임종이 임박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여쭈어 보았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의식이 없으시더라도 아미타부처님께서 본래 세우신 원력에 의지하고 염불해 드리는 것이 급선무이며 최선입니다.”
“예, 스님 잘 알겠습니다.”
“제가 도와 드릴 일이 있습니까?”
“○○사 스승님께서는 아직 몸도 불편하시고 멀리 계시니 스님께서 지금 오셔서 조념염불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 알았습니다.”
대구의 ○○사에서 저의 시골집까지는 승용차로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인데, 스님께서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시고 법○스님과 여○심보살님, 보○화보살님에게 전화를 드려서 저의 어머니 조념을 하러 가는데 동참할 수 있는지 여쭈어 보았다고 합니다. 법○스님께서는 예불도 뒤로 미루고 두말없이 승낙을 하셨고 법○스님의 승용차로 혜○스님과 두 분의 보살님을 절과 직장과 집으로 찾아가서 차에 태워서 신속하게 저의 집으로 출발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11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에 법○스님의 승용차로 혜○스님과 보살님 두 분이 저의 시골집에 도착을 하셨는데 법○스님께서는 바쁘셔서 저의 시골집에 들르시지 않고 바로 동○사로 돌아가시어 저는 인사도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오신 혜○스님과 처음 뵙는 두 분의 보살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의 주재로 방의 앞쪽에 아미타 부처님의 불화를 모시고 향을 올리고 삼귀의로 예불을 올린 후 바로 조념염불을 시작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조념염불을 하시며 중간에 저의 어머니가 사바세계의 모든 애착을 놓고 염불하여 극락왕생하시기를 권하는 법문도 해 주셨습니다. 법문을 들으신 어머니께서는 눈을 뜨거나 움직이지는 못하였지만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고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제가 예전에 지장보살님께 기도한 인연을 아시기에 나무아미타불 염불 도중에 나무지장보살 염불도 해 주셨습니다.
혜○스님, 여○심보살님, 보○화보살님의 순서로 저의 어머니 앞에 앉아서 조념염불을 하셨는데 도중에 보니 저의 어머니가 다시 폐에서 올라오는 피가 섞인 물이 숨을 내쉴 때에 수시로 올라와서 법요집의 표지에 피가 섞인 물이 튀고 법복에까지 튀어도 태연하고 온화한 모습으로 조념염불을 하시어서 제가 너무 죄송했지만 기도 중에 말씀도 드리지 못하고 어머니의 입 앞에 휴지통을 놓아서 더 이상 피가 섞인 물이 튀지 않도록 해 드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오전 11시에서 오후 3시까지 저의 어머니를 위하여 지극한 정성으로 조념염불을 해 주시고 보○화보살님이 일이 있어서 3시에 가보셔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스님께서 가시기 전에 저에게 법요집을 1권 주시기에 “조념염불 중에 피가 섞인 물이 튄 법요집을 저에게 주십시오.” 라고 말씀드리니 “그것은 스님용이라서 줄 수 없습니다.” 라고 하시며 전혀 개의치 않으시는데 그저 죄송한 마음뿐이었습니다.
나중에 여○심보살님이 카페에 올린 글을 보았습니다.
‘저희가 첨에 뵈었을 때 창백한 모습이었는데 중간에 염불하다 보니 복수를 토혈하는 고통스런 광경에서도 얼굴빛이 연분홍색을 띠며 본얼굴 색으로 되돌아와 있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이 얼마나 예뻐 보이는지 기쁨이 넘치고 신심이 넘쳐 염불하는 내내 부처님이 나투시어 계심을 느꼈습니다. 환희심이 솟구치어 지금 생각해도 구름위에 앉아있는 듯한 묘한 기분입니다.’
글을 보고 나니 법요집에 피가 섞인 물이 튀고 입고 오신 법복에까지 튀어도 태연하고 온화한 모습으로 조념염불을 하신 그 상황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초재에 참석하러 갔을 때 스님께서 법요집은 표지를 닦지 않았는데도 피가 섞인 물이 튄 얼룩이 말끔히 지워졌다고 하시며 저에게 보여 주셨는데 아무리 자세히 살펴보아도 얼룩의 흔적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었으며 표지가 깨끗하였습니다.
저의 아버지께서도 건강이 위중하시고 병원 약을 드시고 계신데 마침 약이 다 떨어져 가고 어머니가 임종직전이라 아버지까지 신경 쓰기가 어려워서 저의 처에게 아버지가 다니시는 병원에 들러서 약을 타고 아버지는 어머니가 계시던 요양병원에 잠시 모셔다 드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막내 동생 부부와 저의 처는 볼일을 보러 나가고 바로 아래 동생과 제수씨하고 셋이서 조념염불을 계속하다 보니 방이 조금 더운듯하여 어머니를 보니 얼굴에서 땀이 나기에 몸을 만져보니 몸에서도 땀이 나서 어머니를 이불채로 윗목으로 이동하고 덮은 이불을 조금 벗겨드리고 아궁이에 가서 타고 있는 장작을 꺼내서 물을 붓고 아궁이에도 물을 조금 뿌려서 불이 꺼지도록 하였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끄고 나오는데 혜○스님께서 전화가 와서 통화가 조금 길어졌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현관으로 들어가서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제수씨가 방문을 열고나오며 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방으로 들어가서 보니 동생은 조념염불을 하고 있고 어머니는 왼손을 들어서 서쪽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염불을 하며 어머니를 보고 있었는데 숨은 멈춘 상태였습니다.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 것이 아닌가하여 가슴이 철렁하였습니다. 잠시 후에 어머니께서 ‘후’ 하고 숨을 내쉬며 왼손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러고는 다시는 호흡을 하지 않으시어 마지막 임종의 순간이었습니다.
핸드폰의 시간을 보니 어머니의 임종 시각은 10월 23일(음력 9월 19일) 오후 6시 2분 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요양병원에서도 눈을 뜨지 못하고 몸을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며 말을 하면 알아듣고 간신히 대답하는 정도로 의식만 깨어 있는 상태였는데 ‘어떻게 임종직전에 손을 들어서 서쪽을 가리킬 수 있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며 조념염불을 계속하다가 내려놓은 어머니의 손을 보니 왼손 두 번째 손가락으로 서쪽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업장 두터운 미욱한 중생은 어머니께서 임종하시며 아미타 부처님의 접인을 받아 서방극락정토로 왕생하시는 순간을 눈을 뜨고도 알지를 못하였습니다.
저는 스님께 즉시 문자로 ‘스님 어머니께서 지금 편안히 임종하셨습니다 나무아미타불_()_’ 이렇게 알려드리고, 조념염불을 계속하다가 내려놓은 어머니의 손을 보고 ‘스님 저의 어머니께서 왼손 둘째 손가락으로 서쪽을 가리키며 임종하셨습니다 나무아미타불_()_’ 이렇게 다시 문자를 드리니 ‘나무아미타불 부처님 감사합니다 염불해주세요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답신을 주셨습니다. 저는 당시에 경황이 없어서 검지가 생각이 안 나서 문자에 둘째 손가락이라고 하였습니다.
전남의 ○○사 스님께서 저에게 전화를 주시어 임종염불을 해 주시려고 출발한다고 하시기에 저는 스님께서 다리를 크게 다치시고 아직 몸이 불편한 것을 알기에 전남의 ○○사에서 저의 집과는 4시간이 걸리는 먼 곳이라서 이번에는 오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을 드려도 괜찮다고 하시며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혜○스님께서는 오후 3시까지 조념염불을 해 주시고 대구의 ○○사에 5시 반 쯤에 도착하시어 조금 후에 저의 문자를 받으시고는 쉴 틈도 없이 다시 법○스님과 보○화보살님이 같이 출발하신다고 문자를 주셨습니다.
나중에 임종직전에 어머니께서 팔을 들어서 서쪽을 가리키는 순간을 제수씨에게 자세하게 물어 보았는데 어머니께서 호흡이 가빠지고 손을 힘들게 들어 올려서 제수씨가 어머니의 손을 잡아드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밖에 나간 저에게 알리려고 나오다가 거실에서 저를 만나서 저는 바로 방으로 들어가서 어머니께서 왼손을 들어서 서쪽을 가리키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였습니다. 동생은 잠이 부족하여 졸려서 눈을 감고 염불을 하고 있었는데 제수씨가 알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어머니는 왼손을 들어서 서쪽을 가리키며 감고 있는 눈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어머니께서 임종직전에 왼손을 들어서 서쪽을 가리키고 있는 장면은 저와 동생 그리고 제수씨 이렇게 3명이 목격한 사실입니다.
오후 8시가 못 되어 혜○스님께서 보○화보살님과 같이 다시 오시고 혜○스님의 주재로 조념염불을 시작하고 저의 처와 막내 동생 부부도 모두 돌아와서 같이 조념염불에 동참하였습니다. 아미타 부처님의 접인을 받아 서방극락정토로 왕생하시는 순간을 눈을 뜨고도 알지를 못한 눈뜬 장님인 저는 조념염불 도중에 태산같은 업장을 탄식하며 서러워서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오후 11시 쯤에 선○스님께서 광주에서 성○거사님과 무○심보살님을 같이 모시고 먼 길을 달려 오셨습니다. 선○스님과 혜○스님 그리고 성○거사님, 보○화보살님, 무○심보살님과 저의 가족들이 모두 모여서 조념염불을 하고 새벽 3시에 조념을 마치고 조념염불을 해 주신 두 분의 스님과 거사님, 보살님들이 떠나신 후에 서쪽을 가리키고 계신 어머니의 왼손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다시 보니 엄지와 검지로 서쪽을 가리키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임종하신지 12시간이 지나서 어머니의 손 곁에 있던 베개를 치우고 한 번 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두었습니다. 아침이 되어서 가까운 친척 분들에게 전화를 드려서 어머니께서 23일 오후에 임종하셨다고 알려드렸습니다.
24일 아침 8시쯤에 구급차가 와서 어머니를 장례식장으로 모시기 전까지도 물이 나오거나 그런 문제는 전혀 없었습니다. 계절이 10월 하순이라 덥지가 않아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장례식장으로 떠나면서 동네의 이장님께 전화를 하여 저의 어머니의 임종소식을 방송해 달라고 하고 어머니를 장례식장에 모셨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오후 3시쯤 장례지도사가 어머니의 염을 해 드리는데 가족이 모두 동참하여 염이 끝날 때까지 염불을 해 드렸습니다. 장례식장이 조금 외진 곳이었고 마침 다른 일행이 없어서 염불을 하는데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저녁에 장례지도사에게 저의 어머니 염을 하는데 문제가 없었는지 물어 보았는데 염을 하는데 굳지도 않고 관절이 부드러워서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어머니께 올리는 상식은 모두 채식으로 하고 술 대신에 음료수를 올렸습니다. 조문을 오시는 분들께도 모두 채식으로 하려고 하였지만 가족들의 반대도 있고 채식으로 하면 조문을 오시는 분들이 먹을 것이 없다고 하실 것 같아서 어머니께 올리는 상식과 저만 채식을 하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마침 25일에 김천의 시립 화장터가 수리를 한다고 하여 가까운 화장터는 모두 예약이 불가능하고 문경의 시립 화장터가 예약이 되어서 10시에 발인하여 11시에 도착하여 어머니를 화장실로 모시며 “어머니, 불 들어갑니다. 나오세요.” 이렇게 3번을 말씀드리고 옆에 있는 제를 지낼 수 있는 곳에 가서 준비를 하는 동안에 마침 먼저 화장을 마치신 일행이 계시다가 제를 마치고 나가시어 다른 일행이 아무도 없어서 여기서도 마음껏 1시간 가까이 고성으로 염불을 해 드렸습니다.
화장이 끝나고 ○○납골당에 어머니를 임시로 모시고 장례식장에 도착하여 저의 가족은 모두 혜○스님이 계신 대구의 ○○사로 출발하였습니다.
저는 어머니께서 임종하시면 어느 절로 모셔서 49재를 지내 드려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전남에 있는 ○○사 스님께서는 가까운 대구의 ○○사에서 하면 된다고 말씀하시고 혜○스님께서는 전남에 있는 ○○사에서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셔서 전남에 있는 ○○사는 지리적으로 너무 멀어서 49재는 두 분 스님께서 계신 절에서 모두 모시고 49재의 참석은 대구의 혜○스님이 계신 절에서 하겠다고 말씀드리고 1시간을 달려서 혜○스님이 계신 ○○사에 도착하여 어머니의 위패를 영단에 모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왕생하셨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여 어머니께 공덕을 지어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두 분 스님께서 계신 절에서 49재를 모셨습니다.
스님께서 차를 대접하시며 말씀하시기를
“거사님의 어머니께서 눈도 뜨지 못하고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는데 임종직전에 손을 들어서 서쪽을 가리키며 ‘지금 여기에 부처님께서 오셨다. 부처님께서 오셨다. 나는 서방정토로 간다.’ 고 알려주고 임종하시며 서상을 보여주신 것은 2013년(불기 2557년) 한국 불교사에 획기적이고 불가사의한 사건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임종염불과 극락왕생』에도 보면 대만에서는 임종하기 전에 조념염불을 7일간이나 해 드린 사례들도 있으며 사후 조념도 중요하지만 임종전의 사전 조념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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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_()_ 나무아미타불 _()_ 나무아미타불 _()_
서방정토 극락세계 아미타 부처님께 오체투지 하오며 감사의 삼배를 올리옵니다.
저의 어머니께서 극락왕생 하실 수 있도록 저를 바른 가르침으로 인도하여 주신 스승님이신 선○스님과 두 번이나 조념염불을 해 주신 혜○스님과 법○스님께 감사의 삼배를 올립니다.
그리고 조념염불에 동참해 주신 도반님과 멀리서 마음으로 조념염불을 해 주신 도반님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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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임종시에 지킨 것입니다.
1. 어머니께서 임종하시기 전에 집으로 모셨습니다.
2. 임종하시기 전에 스님을 모시고 조념염불을 해드렸습니다.
3. 임종하신 후에도 곡을 하지 않고 조념염불을 하며 12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어머니의 몸을 만지지 않았습니다.
4. 친척들에게는 임종 후 12시간이 지난 후에 연락을 드렸습니다.
5. 운명시 머리는 북쪽으로 얼굴은 서쪽으로 해야 한다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어머니께서 폐에서 올라오는 물을 올리기 편하도록 머리를 남쪽으로 하고 얼굴은 서쪽으로 향하도록 해 드렸습니다.
6. 장례식장에서 상식은 채식으로 올리고 술 대신에 음료수로 올렸습니다.
어머니의 임종시에 아쉬운 점입니다.
1. 어머니를 임종하시기 전에 집으로 모셔서 바로 방을 따뜻하게 해 드리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선○스님께 여쭤보고 바로 방에 불을 지펴서 따뜻하게 해 드렸는데 임종하시기 전에 땀을 흘리시기에 윗목으로 옮겨드리고 아궁이의 장작불을 꺼내어 물로 끄고 방에 들어와서 임종하실 때에 뵌 어머니는 얼굴에서 땀이 다 말라 있어서 임종시에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편안한 상태에서 임종하신 것으로 생각되어 그나마 위안을 삼습니다.
2. 임종을 지키는 염불행자는 꼭 필요한 전화라도 1분 이내로 간단명료하게 하고 빨리 끊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머니께서 임종하시기 전에 땀을 흘리시기에 아궁이의 장작불을 꺼내어 물로 끄고 나오다가 조념염불을 해 주시고 절로 돌아 가셔서 전화를 주신 혜○스님과의 통화가 길어져서 어머니의 임종을 가까스로 지킨 것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밖의 일은 다른 분에게 맡기고 자리를 지키며 조념염불에 전념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3. 저는 어머니의 임종시에 아미타 부처님의 접인을 받아 서방극락정토로 왕생한다고 알려 주시는데도 눈뜬 장님인 저는 눈을 뜨고도 알지를 못하고 임종하시며 내려놓은 손을 보고 왕생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태산 같은 업장을 탄식하며 서러워서 며칠 동안 가끔씩 혼자 서러워서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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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삼부경』에서 3구절을 모셔왔습니다.
『무량수경』상권 법장비구의 48서원 중에서
18.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저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신심과 환희심을 내어 제 이름(아미타불)을 다만 열 번만 불러도 제 나라에 태어날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십념왕생원]
19.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보리심(菩提心)을 일으켜 모든 공덕을 쌓고, 지성으로 저의 불국토에 태어나고자 원을 세울 제, 그들의 임종시에 제가 대중들과 함께 가서 그들을 마중할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임종현전원]
『관무량수경』 제 16절 하배관(下輩觀) 3. 하품하생(下品下生) 에서
그래서 이 사람이 지성으로 소리를 끊이지 않고 아미타불을 열 번만 온전히 부르면, 그는 부처님의 명호(이름)를 부른 공덕으로, 염불하는 동안에 80억겁 동안 생사에 헤매는 무거운 죄업을 없애느니라. 그리고 목숨을 마칠 때는 마치 태양과 같은 찬란한 황금의 연꽃이 그 사람 앞에 나타나, 그는 순식간에 바로 극락세계의 보배 연못 연꽃 속에 태어나느니라.
『무량수경』하권에서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시기를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함을 만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니라. 또한 여러 부처님의 경전을 얻은 것도 어렵고 설법을 듣는 것도 어려우니라. 그리고 보살행의 위대한 법인 육바라밀을 듣는 것도 또한 어려우며, 선지식을 만나서 법문을 듣고 능히 수행하는 것도 역시 어려운 일이니라. 그러나 만약 이 무량수경의 진리를 듣고 환희심으로 믿고 지니어 기억함은 참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더욱 어려운 일로서,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무량수경의 법문을 진리 그대로 이와 같이 마련하고(如是作), 진리 그대로를 이와 같이 말하여(如是說), 진리 그대로 이와 같이 가르치는(如是敎) 것이니, 그대들은 마땅히 믿고 의지하여 가르침과 같이 수행해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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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음력 9월 초하루에 『정토삼부경』을 부처님 전에 올리고 회향하며 저의 부모님의 업장소멸과 극락왕생을 발원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도 “무량수경의 진리를 듣고 환희심으로 믿고 지니어 기억함은 참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더욱 어려운 일로서,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기에
『정토삼부경』의 진리를 듣고 누구나 환희심으로 믿고 받들어 지닐 수 있도록 『정토삼부경』의 좌보처로서 인광대사님의 정토법문 『단박에 윤회를 끊는 가르침』을 음력 9월 18일 지장재일에 부처님 전에 올리고 회향하였습니다.
그리고 지장재일 밤에 요양병원에서 어머니께서 위독하다고 연락이 와서 바로 시골집으로 모시고 어머니께서 임종하시기 전에 『임종염불과 극락왕생』의 법공양을 발원하고 저의 부모님의 업장소멸과 극락왕생을 발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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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삼부경』에서 아미타 부처님께서 임종시에 아미타불을 열 번만 불러도 대중과 함께 마중하러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정토삼부경』어디에도 임종 후에 마중하러 오신다는 말씀은 찾아보지를 못하였습니다.
아미타 부처님의 48서원을 믿고 임명종시에 조념을 받으며 ‘나무아미타불’ 염불한다면 결정코 왕생할 것이므로 임종전의 조념은 임종후의 조념에 비한다면 백 천만배로 수승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임명종시에 조념을 받으며 ‘나무아미타불’ 염불한다면 아미타 부처님의 접인을 받아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누구나 반드시 결정코 윤회를 벗어나는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저의 아버지께서는 지난해 가을부터 저의 어머니는 올해 봄부터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절에서 하는 매달 초하루 방생에 사불을 저의 딸이 3번씩 하여 부모님 이름으로 부처님 전에 올리고 부모님의 연금으로 방생에 동참시켜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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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 namuamitabul
패스워드 0108
[사경용_우리말_아미타경] & [사불용_고려불화_아미타불_내영도2] & 발원문
내리기전용 폴더에서 다운받아 사경 또는 사불하여 인연 있는 절에서 방생에 동참하시면 됩니다.
저는 부모님을 이번에 반드시 결정코 왕생하도록 해 드리지 못한다면 다음에도 또 다시 빚을 갚으러 와서 한생을 헛되이 보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비록 최선을 다 하지는 못했지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저의 어머니께서 임종직전에 왼손을 들어서 서쪽을 가리키며 서상을 보여 주시고 왕생하신 것은 아미타 부처님의 가피이며, 서상을 보여 주신 것이 아미타 부처님께서 저의 발원을 섭수하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 인연공덕을 모든 대덕 스님과 불자님들께 회향하오며 법공양을 삼가 받들어 올립니다.
『정토삼부경』을 공부하실 분들께 『정토삼부경』과 『단박에 윤회를 끊는 가르침』과 『임종염불과 극락왕생』을 법공양 올립니다. 저에게 메일로 주소 연락처 성함을 알려 주시면 택배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스님께는 무료배송으로 불자님께는 유료배송 택배후불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skanqnf@hanmail.net 저의 다음 메일주소입니다.
『정토삼부경』을 만나는 모든 분들이 임명종시에 조념을 받으며 일념으로 '나무아미타불' 염불하여 아미타 부처님과 보살 성중님네의 인도로 결정코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기를 지심으로 발원합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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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원 문
거룩한 부처님께 지심귀의 하옵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지심귀의 하옵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지심귀의 하옵니다.
서방정토 극락세계 아미타 부처님이시여!
지난날 불법을 만나지 못하여 과보가 있는 줄 알지 못하고 막행막식한 어리석은 불자 ○○○은
아미타 부처님께 오체투지 하오며 지난날 지은 죄업을 눈물로 눈물로 참회하옵니다.
저의 아버지 무진생 ○○○ 불자님과 저의 어머니 갑술생 ○○○ 불자님이 중병이 들었습니다.
보시 중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법보시가 으뜸이라 하시기에
보물 중에서 보물이며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성불의 길로 이끌어 주는 가르침이신
『정토삼부경』을 법보시 하오며 이 인연공덕을 시방법계에 회향하옵니다.
원하옵나니 저의 부모님이 『정토삼부경』을 법보시 하여 회향하는 인연공덕으로 업장이 소멸되고
임명종시에는 또렷한 정신으로 조념을 받으며 일념으로 '나무아미타불' 염불하여
아미타 부처님과 보살성중님네의 인도로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결정코 왕생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이차인연 공덕으로 『정토삼부경』을 만나는 모든 분들이 일념으로 염불하여 업장을 소멸하고
임명종시에는 또렷한 정신으로 조념을 받으며 일념으로 '나무아미타불' 염불하여
아미타 부처님과 보살성중님네의 인도로 결정코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왕생하여지이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극락도사 아미타여래불 _()()()_
첫댓글 타종교인은 몰라서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불자님들은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를 포함해서 주변의 불자님들 역시 정확한 임종례나 장례 절차를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부모님 은혜에 보답코자 한다면 말로만 극락왕생을 빌 것이 아니라 글쓰신 분처럼 정확하고 철저하게 준비하고 실행해야겠습니다.
유심정토에 치우치다 보면 극락도 지옥도 없다고 하시겠지만 중생의 눈으로 본다면 분명 실존하는 것이겠고, 정토 삼부경의 부처님 말씀은 결코 방편으로 설하신 내용이 아닐 것입니다.
타방정토를 광신하여 현실은 도외시하고 죽어 극락가는 것만 바라는 단견도 경계해야겠지만 이런 부처님 말씀을 믿고, 따라야겠습니다. _()_
감사합니다.
저는 광명진언을 열심히 해 드렸거든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