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후(西太后)(1835 -1908)
"이후로 아녀자가 정사에 간여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반드시 엄격한 제한을 두어 각별히 대비해야 하오. 특히 내시가 대권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하시오. 명나라 말기에 내시가 전횡하였던 일을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오."
서 태후는 죽기 직전 위와 같은 유언을 남겼습니다. 자기는 여자의
몸으로 48년을 섭정으로 중국대륙을 통치하고서는 다른 아녀자는
정치를 하지 못하게 하라고 한 것은 여자가 정치하는 것에 대한
한계를 고백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그 동안 그녀가
보여준 언행으로 보아 자기 말고는 정치할 능력이 있는 여자가
없으니까 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 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또 명나라
말기에 내시를 경계하라는 대목에서는 청나라 내시들을 경계하라는
것을 명나라 내시들로 빗대어 말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명나라가 망한 원인 중의 하나가 왕관, 왕직, 유근 위충현등
환관들이 정사를 전횡한 것입니다. 그러나 청나라 자금성에 환관이
천명(이중에는 거세 안한 가짜
환관도 포함)이상이나 되면서 궁중 질서를 어지럽혔습니다. 환관
이연영은 서태후와 밀착하여 매관매직하며 치부하였고 정적들을
잔인하게 숙청했습니다. 환관 소덕장도 융우 태후(마지막 황제
부의의 어머니)에 매달려 온갖 부정을 저질렀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본인과 본인의 환관들이 함께 저지른 온갖 부정을
솔직히 말 못하고 명나라 환관의 핑계를 대는군요. 그야말로
“내로남불”의 전형을 서태후에게서 보군요ㅅ 서태후(1835 - 1908)는
청나라 말기 함풍제의 세 번 째 황후이며 동치제의 생모, 또
광서제의 이모로서 무려 48년간 수렴청정하면서 청나라 패망에
일조를 한 여인입니다.
중국 역사상 3대 악녀(惡女)중에 한 명입니다. 나머지 둘은 한 고조가
죽자 그의 애첩들을 모조리 죽인 여(呂)태후와 당나라 때 아들 딸을
죽이면서까지 정권을 쟁취한
측천무후입니다. 서태후는 어려운 가정에 태어났으나 빼어난 용모로
17살에 궁녀로 뽑혀 자금성으로 들어갔습니다. 노래를 잘하여
함풍제의 관심을 샀고 1856년 첫 아들(훗날의 동치제)을 낳습니다.
함풍제는 그녀를 비로 책봉했으나 그녀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황제의
사랑을 독점하는데 혈안이 되어 아들을 돌보는 것도 소홀했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애정을 모르고 자란 동치제도 커서 어머니를
경원했습니다. 1860년 2차 아편전쟁에서 영불 연합군에게 대패하고
막대한 배상금과 영토 할양 등의 치욕을 당한 함풍제는 별세합니다.
서태후는 황후 뉴호록씨와 함께 태후가 되어 자기는서태후, 황후는 동태후로 부르게 했습니다. 사실 측실인 그녀가 세 살 아들 황제
동치제를 대신하여 섭정을 했습니다. 동치제가 20세에 급사하자
그녀는 자신의 여동생의 아들을 다음 황제로 승계시키고 자기는
또다시 수렴 청정합니다. 이 조카가 광서제입니다. 광서제는 자라면서
모든 일에 간섭하는 서태후와 자주 충돌합니다.
서태후는 일종의 쿠테타로 광서제를 자금성 안에 유폐시켰는데 영국
등 열강이 그녀의 처사에 반대하여 광서제를 다시 옹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사치와 남색을 즐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음식도 한 끼에 100가지 반찬이 준비되어야 하고 입는 옷도 수 천 벌
된다고 합니다.
청일 전쟁 전 청국의 해군력을 증강하려는 자금을 뺏어 영불군이
불 지른 이화원(여름 별장) 복원에 써버렸습니다.
남색도 밝혀서 미소년들을 골라서 즐겼습니다.
자기의 성욕을 만족 시키지 못한 소년을 죽였습니다.
영국 남작으로 청나라 황실에서 통역사 역할을 했던
에드먼드 백하우스가 죽기 전에 발간한 ‘태후와 나’ 라는 책에서
자기는 서태후와 4년간 연애를 했고 서태후는 성욕이 지나쳐 365일을
성이 다른 남자와 잤는데 자기를만족시키지 못하는 남자는
처형했다고 썼습니다.
또 서태후는 건강식으로 젊은 여인들의 젖을 자주 빨아 먹었답니다.
1908년 광서제가 죽자 서태후는 광서제의 조카 세 살 먹은 부의를
황제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그녀도 죽고 청나라도 망했습니다.
살인 고문 사치 남색 등 남자로서도 하기 어려운 가지가지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기울어져가는 청나라를 쓰러뜨리는데 일조를 한 서태후도
이제는 까마득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첫댓글 . . . 그런데 '강가에서'님은 어떻게 이런 내용의 책들을 읽으시나 ?
서태후에 대해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여자들 조심하겠습니다 !
젊어서 책 좀 읽었습니다. 청나라 말기 서태후의 위세는 대단했지요. 그러나 나라를 말아먹은 여인으로 후세에
전해 집니다. 우리나라에도 788만원 짜리 코트며 구두를 맞추면 적어도 여 섯 켤레 맟추는 옷이 수천벌 된다는
여인이 국민의 조롱꺼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