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이 멋진 부다페스트>
곽샘 내외분이 일정을 바꾸어서 다음날 스위스로 떠나기로 하셔서 오후에는 부다페스트 시내관광을 하기로 했다. 센텐드레에서 돌아오는 길에 처음 들른 곳은 영웅광장이다. 영웅광장은 이 나라 사람들이 결혼을 한 다음 기념 촬영을 하는 곳으로 유명한 듯, 여기저기 신혼부부와 하객들이 떼지어 있었다. 결혼식장에서 헤어지지 않고 야외까지 모두들 함께 와서 사진을 찍고 헤어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영운광장 근처에 시민공원과 세체니 온천이 있었다. 우리는 산책을 하며 시민공원을 가로질러 세체니 온천까지 갔다. 공원에는 노인분들이 많았는데, 남자들은 주로 체스경기를 하며 그룹을 짓고 있었다. 세체닌 온천에서는 앞 잔디밭에서 구경만 하다가 왔다. 왜냐하면 목욕준비도 하지 않았고, 시간도 어중간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음날 아침의 온천을 기대하며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성이슈트반 성당. 헝가리 최초의 국왕인 이슈타반을 기념하여 세운 성당이다. 이곳은 10년 전에도 왔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그때 친구랑 사진기를 올려가며 사진을 찍던 기억이 새로웠다. 이슈트반성당을 둘러본 우리는 바찌거리로 가기로 했다. 바찌거리는 서울의 명동거리와 비슷한 곳인데, 그곳을 찾아갈 때도 물어 물어서 갔다. 차를 타지 않고 걸을 때는 항상 도로에 대한 오해가 생겨 조금씩 착오가 생긴다. 다음으로 중앙시장까지 걸어서 갔다. 안타까웠던 것은 고생고생하며 간 중앙시장이 문을 닫은 것이다. 늘 시간을 염두에 두지만 밤늦도록 영업하는 우리나라와 달라서 적응을 못 하는 부분이 많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가 가려고 했던 식당을 찾은 것이다. Fatal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은 전통 헝가리 식당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보통 때는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자리가 없는 곳이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마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겨우 들어갈 수가 있었다. 우리는 세 가지 음식을 시켰는데, 모두 너무 맛있고, 양이 많아서 정말 행복한 저녁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모두 함께 하는 마지막 저녁시간이었다.
저녁을 먹고 아저씨의 강력한 주장으로 겔레르트 언덕으로 야경을 보러 갔다. 겔레르트 언덕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제법 걸어야 했다. 힘들게 오르긴 했지만 야경은 정말 좋았다. 야경을 보는 최고의 장소는 겔레르트 언덕이라더니 그 말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강이 내려다보이는 벤취에 앉았는데, 우리 뒤쪽으로는 레스토랑이 있었고, 그곳에서 연주하는 음악을 공짜로 들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 사진을 몇 장이나 찍었지만 모두 실패였다. 야경을 잘 찍으려면 반드시 삼각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흔들려서 모두 망치게 된다. 그렇지만 야경 사진 몇 장 찍자고 삼각대를 들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야경의 여흥은 가슴에 담아두고 새기는 것이 나을 것이다.
<영웅광장에서 만난 신혼부부>
<부다페스트에서의 온천>
겔레르트 온천 → 오페라 하우스 → 바찌거리 → 숙소
아침 6시 기상. 온천을 가기위해 새벽에 일어나기로 했다. 짜증을 부리는 산들이를 달래며 온천으로 향했다. 세체니 온천과 겔레르트 온천 두 곳 중에서 겔레르트 온천을 택했다. 이유는 집에서 가까웠고, 또 현금이 부족한 우리가 카드를 사용하려면 아무래도 호텔이 나을 것 같아서이다.
온천은 생각보다 비싸지 않은 편이었다. 입구에서는 산들이는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니 수영장 입구에서는 또 돈을 내야한다고 해서 다시 산들이의 표를 사려고 가기도 했다. 우리가 산 표는 수영장과 온천 두 곳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일본인 모녀를 도와주기도 했다. 공간이 넓어서 처음 온 사람은 헤매기가 일쑤인데 그 사람들도 입구를 못 찾아서 헤매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사우나실과 목욕탕, 수영장, 탈의실을 안내해 주었더니 무척 고마워했다.
헝가리와 까를로비의 온천 모두 특이한 점은 탈의실이 방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밖에서 옷을 벗어 사물함에 넣어 두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에게 탈의실을 한 개씩 주는 것이다. 그리고 탈의실 안에는 간이침대도 있어서 쉴 수도 있도록 되어 있었다. 아마도 온천을 치료용으로 생각한데서 그런 모양이다. 입구에 들어가면 넓은 탈의실로 빼곡히 들어서 있고, 다음 엔 수영장과 사우나실, 또 욕탕이 있는데, 너무 넓으니까 출입구를 찾기가 힘들다. 산들이는 공간감각이 발달해서인지 그 넓은 곳을 여기저기 쏘다니며 길도 잃지 않고 잘 다녔다.
겔레르트 온천은 욕탕과 사우나실만 이용하려는 사람은 옷을 벗고 하고, 우리처럼 수영장을 함께 이용하려는 사람은 수영복을 입고 한다. 그리고 수영장에도 자그마한 따뜻한 욕탕이 딸려 있어서 참으로 편했다. 온천물은 까를로비에 비하면 별로 좋지 않고, 시설도 우리나라의 대형 온천에 비하면 별것 아니지만 여행자의 피로를 씻어주기에는 그만이었다.
온천을 다녀와서 곽샘 내외분은 가셔야 했다. 우리는 기숙사 앞에 있는 햄버거 가게에서 아침을 먹고 과일을 사서 마지막으로 나누어 먹고 두 분을 배웅해 드렸다. 약간의 돈을 주면 미니 버스가 기숙사까지 와서 공항까지 데려다 주므로 참으로 편리했다.
두 분이 가시고 나자 너무 허전했다. 산들이도 세 사람만 남으니 너무 심심하고 재미가 없다고 했다. 그래도 힘을 내어 이곳저곳 다니기로 했다.
우리는 먼저 오페라극장으로 갔다. 트램 19번을 타고 Battnyter(Heb)역까지 가서 다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대학광장으로 간 다음 그곳에서 오페라하우스까지는 걸어서 갔다. 지하철 2호선은 다뉴브강 아래로 가로질러 가는데, 어떻게 시공되어졌을지 참으로 궁금했다.
오페라하우스에서는 시간을 정해두고 가이드 투어를 했다. 우리는 영어 기이드에 참가했는데,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한 팀 있었다. 그애들은 선교활동을 나간 팀이었는데, 대학생 때 자신의 일을 열정적으로 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얼마 전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읽으며 오페라 하우스를 머릿속에 그려보곤 했었는데 그런 오페라 하우스를 직접 보니 너무 좋았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발밑에 설치된 에어컨이었다. 너무나도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곳이었다.
오페라극장을 구경한 후 거리 카페에서 차를 한잔 마셨다.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 찾아간 카페였는데, 차를 마시지 않아도 선뜻 화장실을 이용하라고 해주신 친절에 감동받아 그 집에서 차를 마셨다. 더운 햇살 아래 잠깐 동안의 휴식은 또 새로운 활력을 주는 법이다.
우리는 어제 갔다가 실패한 중앙시장을 또다시 찾아가기로 했다. 그렇지만 역시 실패했다. 중앙시장 폐점은 5시였던 것이다. 보통 6시에 문을 닫는 것에 비라면 조금 빠른 듯했다. 시장 앞에는 우리처럼 허탕 친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시간이 남은 우리는 바찌거리를 구경했다. 상점에 들러서 토카이 와인도 한 병 사고, 너무 예쁜 수공예품점에 들러 산들이의 도자기 오카리나도 하나 샀다. 산들이는 프라하에서도 오카리나를 하나 샀는데, 하나는 예은이에게 주기로 하고 하나 더 산 것이다.
부다페스트에서의 마지막 식사. 우리는 어제 갔던 Fatal Restaurant에 한번 더 가기로 했다. 우리는 저녁식사비만 남겨 놓고 거의 헝가리 돈을 다쓴 터라 주머니에 돈이 별로 없었다. 산들이의 선물을 사지 않았거나 토카이 와인을 사지 않았더라도 근사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는데, 카드를 사용하기에도, 현금을 내기에도 어중간하여 고민하다가 음료수는 딱 한잔만 주문하기로 하고, 요리를 시켜 먹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물을 공짜로 주는데다, 음료를 굳이 주문하지 않아도 되는 문화에 적응해 있다가 항상 음료 먼저 주문해야 하는 식당에 오면 왠지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부다페스트에서의 마지막 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토카이 와인 한 잔을 하며 아쉬움을 달래었다. 10년 전의 부다페스트와 이번의 부다페스트 여행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한국이 관광객이 별로 없어서 우리가 묵은 유스호스텔에는 거의 가 서양아이들이었다. 내 친구와 나는 왠지 주눅이 들기도 하고, 자신이 없어지기도 했다. 그때도 토요일과 일요일이라 돈을 제대로 환전하지 못해 곤욕을 치뤘으며, 부다페스트에 대한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피곤에 지쳐 부다피스트트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수영할거라고 마르기트 섬까지 갔다가 달러밖에 없어서 들어가지도 못한 일, 고생고생하며 겔레르트 언덕을 오르던 일, 어부의 요새에서 바라보던 도나우강, 슈퍼에서 엄청나게 비싼 가격으로 빵을 사먹었던 일.... 앞으로 10년 후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여행을 하고 있을까?
<바찌거리의 전통 헝가리식 식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