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서방교회의 4대 교부 중에 가장 위대한 교부로서 그의 인물과 그의 역사적 의의는 실로 지대하다. 그는 고대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아들 아우구스티누스의 회개를 위해 오랜 세월 눈물로 하느님께 기도드렸던 어머니 모니카의 정성과 영적 스승이며 아버지 역할을 맡았던 성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도움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 후대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선사하는 인물이 되었다. 『어떤 성인도 과거가 없는 사람은 없다. 또한 어떤 큰 죄를 지었던 죄인이라도 미래가 없는 사람은 없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크신 사랑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교회는 어머니 모니카와 아들 아우구스티누스의 축일을 나란히 8월 27일과 28일에 지낸다.
독일의 교부학자 알타너(B. Altaner)의 말에 따르면 『위대한 주교 아우구스티누스는 테르툴리아누스의 창조적 정열, 오리게네스의 영적 풍부함, 치쁘리아누스의 교회적 의식, 아리스토텔레스의 예리한 논리를 플라톤의 높은 이상주의와 사변에 결합시킨 분이다. 그리고 라틴인의 실용적 감각을 그리스인의 영적 유연성에 일치시켰다. 그는 교부시대의 가장 위대한 철학가이며, 전 교회의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신학자이다. 그의 저서들은 동시대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독자들에게 열광적으로 읽혀지고 있다』
히뽀의 주교 아우구스티누스는 실로 엄청난 양의 저서들을 남겼으며, 그 안에서 자아인식에서 시작하여 존재, 진리, 사랑, 하느님 인식의 가능성, 인간 본성, 영원성, 시간, 자유, 악, 섭리, 역사, 행복, 정의, 평화 등 철학적인 분야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학 전반을 망라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는 철학자, 신학자, 신비가, 시인, 설교가, 논박가, 저술가, 목자 그리고 수도자라는 명칭이 두루 적용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모두 다루려면 많은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특별히 구원론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구원론
아우구스티누스의 구원론은 중재자이신 그리스도,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사제이며 동시에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종합할 수 있다. 첫째,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이시기 때문에 하느님과 인간사이의 중재자(mediator)가 되실 수 있다는 것이다(강론 47,12,21). 사실 진정한 중재가 이루어지려면 서로 연결시켜야 할 양편을 함께 지녀야 하는데, 의로우시고 불멸하시는 하느님과 불의하고 죽어야할 인간 사이에서 그리스도는 하느님처럼 의로운 분이면서도 다른 인간들처럼 죽어야할 분이시다(고백록 10,42,67). 그러므로 신-인(神-人)이신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의 중재자가 되신다. 이 보편적인 길 밖에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어느 누구도 구원받지 못한다(신국론 10, 32, 2).
둘째,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이기 때문에 구원자(redemptor)가 되신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첫째 목적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에 관련된 성서 구절 60여 곳을 열거한 다음,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과 죄의 어두움에 묶여 있는 인류를 살게 하고 해방하고 구원하고 비추기 위해 인간이 되셨다. 그러므로 생명과 구원과 해방과 비추임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이는 아무도 그리스도께 속할 수 없다」(죄인의 응보와 용서 1,26,39)는 내용으로 요약한다. 이 말에는 구원에 대한 세 가지 근본 요소가 함축되어 있다. 즉, 그리스도 없이는 아무도 구원될 수 없다는 필요성,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본받아야할 덕행의 모범이 되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과 화해를 이루는 데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대상성, 끝으로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돌아가셨고 아무도 여기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보편성이 있다.
한편 아우구스티누스는 구원론에서부터 원죄에 대한 가르침을 도출했다. 원죄는 인간을 하느님과 분리시켰지만, 그리스도는 우리를 그분과 화해시키셨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이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모든 이는 이 구원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온 인류가 첫째 인간인 아담 안에서 범죄 하였지만, 둘째 아담인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것이다. 이 두 가지 유대는 상반된 표지이지만, 인간은 아담과 그리스도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 전부는 바로 두 인물의 인과관계로 구성되어 있다』(그리스도의 은총과 원죄 24, 28). 『한 분은 죽음을 가져왔고, 또 한 분은 생명을 선사하셨다』(강론 151, 5).
셋째, 그리스도는 사제이며 제사이기 때문에 구세주이시다. 그리스도는 눈에 보이는 기름으로 도유 된 사제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께서 사람이 되실 때, 즉 인간 본성이 마리아의 모태에서 그 말씀과 하나의 위격을 형성하기 위해 결합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기름으로 도유 된 사제이시다』(성삼론 15, 25, 46). 그러면서 그리스도는 사제뿐만 아니라 제사가 되시기를 원하셨다. 『그분은 (하느님) 당신 앞에 우리를 위한 승리자요 희생이십니다. 희생이기에 승리자이십니다. 또 그분은 당신 앞에 우리를 위한 사제요 제사이십니다. 제사이시기에 사제이십니다』(고백록 10, 43, 69). 그리스도는 성부께 가장 참되고 가장 자유롭고 가장 완전한 제사를 바치셨고, 이를 통해 『우리를 악마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심으로써 인류의 모든 죄를 씻어주고 없애주고 소멸시켜주셨다』(성삼론 4, 13, 16~14, 19)라고 역설한다.
[가톨릭신문, 2003년 10월 26일]
아우구스티노 성인에게서 배운다
- 위대한 수사학자의 강론 특강 -
노희성(본지 편집장)
위대한 주교요 당대의 탁월한 수사학자였던 아우구스티노(354-430년) 성인은 『그리스도교 교양』(De doctrina christiana) 제4권에서 성경 말씀을 글과 말로 전달하는 방법에 관하여 다루었다. 물론 책 제목이 가리키듯 ‘성경 말씀의 전달’은 그리스도인의 교양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말씀 전례 안에서 권위 있게 하느님 말씀을 제시하는 사제의 ‘강론(homilia)’에 특히 해당된다. “하느님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선포하는 것”이 사제들의 첫째 직무이기 때문이다(사제의 생활과 교역에 관한 교령 「사제품」, 4항). 이 글은 『그리스도교 교양』 제4권의 내용을 바탕으로 강론 준비와 내용 그리고 방법을 정리한 것이다. 본문은 성염 역주(분도출판사, 1918년)를 인용하였다.
1. “웅변의 법칙을 좇기보다는 웅변가들의 말을 듣거나 (그들의 글을) 읽음으로써 쉽사리 웅변술을 터득할 것이다”(III 4).
이 말은 치체로의 수사학 교과서 『웅변가에 대하여』(De oratore)를 참조한 것이다. 문법을 몰라도 말을 잘할 수 있듯이, 수사학 법칙을 배우지 않고도 능변가가 될 수 있듯이, 강론 법칙을 몰라도 강론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강론 법칙을 배우는 것보다는 좋은 강론을 많이 읽고 듣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만일 무슨 내용의 강론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언변과 지혜를 다하여 쓴 글을 입수하고 암기하여 회중에게 전하는 것까지도 유익하다고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말한다(XXIX 62 참조).
2. “비록 달변으로 말은 못할지라도, 지혜를 갖고 말을 해야 하는 사람은 성경 말씀을 암기하는 일이 꼭 필요하다. 자기의 (언어가) 빈약하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그만큼 (적어도 성서 말씀에) 풍부해져야만 한다”(8).
강론과 성경은 뗄 수 없다. 교회법 제767조 1항에 따르면, “강론은 설교의 여러 형식 중에서 탁월한 것으로 전례의 한 부분이며 사제나 부제에게 유보된다. 전례 주기를 따라 강론 중에 신앙의 신비와 그리스도교인 생활의 규범이 성경 구절로 해설되어야 한다.” 강론을 한다면서 성경 말씀에서 벗어나는 것은 강론의 품위를 격하시키는 일이다. 신자들에게 신앙의 신비와 그리스도교인 생활의 규범을 해설할 때에 관련 성경 구절들을 암송하면서 제시한다면 유창한 수사가 없더라도 그 자체로 훌륭한 강론이 될 것이다.
3. “(성경 저자들보다) 더 지혜로운 자가 아무도 없을뿐더러 그들보다 언변이 더 좋은 자가 아무도 없다”(VI 9).
이 말은 성경 자체가 위대한 웅변의 모범이며, 어떤 성경 구절들은 수사학적으로도 훌륭한 강론의 본보기라는 뜻이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그 예로서 바오로 서간과 아모스 예언서 등을 제시하였다. 로마서 5장 3-5절에 관한 성인의 설명을 들어보자.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3-5, 공동 번역보다 원문에 더 충실한 것으로 알려진 새 번역 성경 인용).
여기서는 환난에서 인내로, 인내에서 수양으로, 수양에서 희망으로 연결되어 문세(文勢)가 높아감을 보게 된다. 둘째 문장(위 한글 번역에서는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 부어졌기 때문입니다.’임 - 필자 주)에 앞서 세 개의 절이 나오는데, 첫째 절은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둘째 절은 ‘인내는 수양을 (자아내고)’, 셋째 절은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이다. 그 다음에 온전한 문장이 뒤따르는데 그것도 세 절로 되어있다. 그 첫째는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습니다.’요, 둘째는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요, 셋째는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을 통하여’이다(한글 번역에서는 셋째를 둘째보다 먼저 옮겨놓았음 - 필자 주). 이런 형식이나 이와 유사한 화법은 원래 수사학에서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사도가 (의도적으로) 수사학의 법칙을 따랐다고는 말하지 않지만 그의 지혜에 언변이 따라주었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는다”(VII 11).
결국 성경은 좋은 강론의 내용과 형식을 모두 갖추고 있는 셈이다. 사도 바오로나 예언자 아모스는 당시 상황에 적합한 하느님 말씀을 명료하고 우아하며 설득력 있게 제시하였다.
4. “가르치는 사람은 얼마나 훌륭한 언변으로 할까에 마음을 쓰지 말고 얼마나 명료하게 가르칠까를 생각할 것이다”(IX 23).
하느님 말씀에 대하여 가르치는 데 훌륭한 언변이 반드시 필요한가?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입장이다(III 4: “이미 성숙했거나 더더욱 나이든 사람들이 그것을 배우는 데 다시 시간을 쏟을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명료하게’ 가르치려면 강론자 자신이 먼저 하느님 말씀을 명료하게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또 강론은 회중을 상대로 하는 것이므로, 곧 대화처럼 각자에게 질문할 여유가 없으므로 가르침을 명료하게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아무리 화려한 언어를 구사하더라도 가르치려는 진리의 내용을 명료하게 드러내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비록 열쇠가 금으로 되어있다 하더라도 열고 싶은 것을 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XI 26)
다른 한편, 『그리스도교 교양』 제4권에서 웅변의 세 가지 목표와 그에 따른 세 가지 양식에 관하여 상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을 보면 강론할 때에 되도록 그러한 방법을 활용하여 주기를 바라는 성인의 마음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으며, 화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목도 없지 않다. “까다로운 사람들에게는 진리를 아무렇게나 말하는 것은 흡족하지 않으며, 말하는 사람의 화술도 상대가 흡족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XIII 29).
5. “언변의 위력보다는 기도의 경건함으로 자기가 이 일을 해낸다는 것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을 위해서 또 연설을 할 상대방을 위해서 기도함으로써, 그는 발언자이기에 앞서 탄원자가 되는 것이다”(XV 32).
강론 중에 해설해야 할 신앙의 신비와 그리스도인 생활의 규범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강론자 앞에 앉아있는 신자가 한두 사람인가? 강론을 듣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처해있는 상황도 모두 다르다. 강론자 자신이 그들 모두에게 하느님 말씀을 전달하고 하느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게 해줄 수는 없다. 강론자는 하느님 말씀의 봉사자, 곧 하느님의 거룩한 도구일 뿐, 참으로 일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심는 사람이나 물을 주는 사람은 중요할 것이 없고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하십니다”(1고린 3,7). 그러므로 강론자는 자신을 쓰시는 분의 뜻에 따라 임무를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자신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성령께 온전히 의탁하여야 한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성령이시다”(마태 10,20). 또한 사제로서 하느님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도 강론자의 일이다.
6. “무엇을 가르칠 적에는 차분하게, 무엇을 책망하거나 칭찬할 적에는 절도 있게, 그러면서도 무엇을 행동에 옮겨야 하고 그 행동을 하여야 하는데도 하려는 의욕이 없는 사람들에게 말할 적에는 중대한 사안이니 장중하게 발언하고 그들의 심중을 설복시키는 데 적절한 형식을 써야 한다”(XIX 38).
로마 수사학의 창립자 치체로에 따르면, 웅변가란 사소한 일은 차분하게, 보통의 일은 절도 있게, 중대한 일은 장중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다. 물론 웅변가와는 달리 강론자에게 ‘사소한’ 소재는 없다. 강론대에 서서 회중에게 영원한 행복과 영원한 멸망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 어찌 ‘사소한’ 일이란 말인가? 그렇지만 강론 처음부터 끝까지 열변을 토할 수도 없고, 강론 내내 차분하게 말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위에서 언급한 차분한 어법, 절도 있는 어법 그리고 장중한 어법의 예를 성경에서 제시한다.
차분한 어법의 예는 갈라디아서 4장 21-26절이다. “율법으로 살기를 원하는 여러분,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율법을 들어보지 못했습니까? 율법서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둘을 두었는데 … ”
신중한 어법의 예는 디모테오 1서 5장 1-2절이다. “노인에게는 나무라지 말고 오히려 아버지를 대하듯이 좋은 말로 충고해 드리시오. 젊은이들에게는 형제에게 하듯이, 나이 많은 여자들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이, 젊은 여자들에게는 자매에게 하듯이, 오로지 순결한 마음을 가지고 충고하시오.”
장중한 어법의 예는 고린토 2서 6장 2-11절이다. “지금이 바로 그 자비의 때이며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 슬픔을 당해도 늘 기뻐하고 가난하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만들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린토의 교우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숨김 없이 다 말하였고 내 마음은 여러분에게 활짝 열려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성경뿐 아니라 암브로시오 성인과 치프리아노 성인의 문장의 예를 들면서 세 가지 문체를 설명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체들을 적절하게 섞어 씀으로써 어법을 다채롭게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 가지 양식으로만 강론을 하면 듣는 사람의 관심을 붙잡아둘 수 없기 때문이다. 장중한 어법을 오래 지속시켜야 하는 경우라도 중간에 차분한 어조를 삽입했다가 다시 장중한 어조로 돌아오는 것이 효과적이며, 특히 첫머리는 되도록 신중한 어조로 시작하여야 한다.
7. “말을 따르게 하는 데는 어조의 장중함보다도 말하는 사람의 삶이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XXVII 59).
바오로 사도는 디모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말에나 행실에나 사랑에나 믿음에나 순결에 있어서 신도들의 모범이 되시오.”(1디모 4,12)라고 하였다. 이는 사람들에게 멸시당하지 않는 방법이다. 아무리 화려하고 장엄한 어법을 구사한다고 해도 그릇된 행실로 멸시당하는 사람의 강론은 힘이 없다. 그러한 강론자는 오히려 신자들의 걸림돌이 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못된 생활의 핑계를 딴 데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존경받는 사제의 강론은 훨씬 많은 사람에게 선익을 가져다준다. 말을 지혜롭게 하지 못하는 강론자라 하더라도 그가 보여주는 모범적인 생활 모습은 훌륭한 강론에 견줄 만하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성경 말씀의 전달’에 필요한 태도와 방법과 기술 등을 알려주려고 하였다. 이는 비신자에게 하느님 말씀을 전하려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지만, 전례 안에서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고 그 말씀 안에서 신자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사제들에게 특히 유익한 내용이다. 성인이 제시한 내용들을 실행에 옮기기에 가장 유리하고 적합한 여건에 있는 이들이 사제들이며,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선포하는 것”이 사제들의 첫째 직무이기 때문이다.
사제들을 위하여 힘 닿는 데까지 『그리스도교 교양』 제4권에 담긴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이러한 기회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사목, 2005년 6월호, 주교회의 홈페이지]
교부들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 [7] 아우구스티누스의 ‘입문자 교리교육’에서
“들으면서 믿고, 믿으면서 희망하고, 희망하면서 사랑하라”
본문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명하셨을 때, 이 계명은 구약의 율법과 예언의 모든 말씀을 요약할 뿐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씌어졌으며 후손들에게 맡겨진 신약의 모든 거룩한 말씀들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구약에는 신약의 「가려짐」이 있고 신약에는 구약의 「나타남」이 있습니다. 이 「가려짐」 때문에 육적인 방법으로 이해하는 육적인 인간들은 징벌에 대한 두려움의 멍에를 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 「나타남」 덕분에 영적인 사람들은 교만하지 않고 경건한 신심으로 감추어진 신비의 문을 두드리며 나타난 것을 찾습니다. 영적인 이들은 열려졌던 신비의 문이 닫히는 불행을 피하기 위해 영적인 방법으로 이해하면서 사랑의 선물로 건네진 자유를 누립니다.
욕심보다 더 사랑에 반대되는 것은 없습니다. 욕심은 교만의 어머니입니다. 인간이 되신 하느님,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교만한 마음을 바로잡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요 거룩한 사랑의 표징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인간들 한가운데 계신 겸손의 모범이십니다. 인간의 교만은 진정 커다란 비참이며, 하느님의 겸손은 비할 길 없는 커다란 자비입니다.
교리교사는 모든 주제를 사랑과 관계시키고 사랑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을 설명하든지 예비신자들이 들으면서 믿고, 믿으면서 희망하고, 희망하면서 사랑하도록 가르치십시오.
-「입문자 교리교육」 4, 8
“하느님은 기쁘게 주는 이들을 사랑”
해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들을 사랑하십니다』
영혼의 목자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쓴 「입문자 교리교육」은 사목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젊은 부제 데오그라티아스의 간절한 요청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의 응답이다.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종교의 자유가 선포되고,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매우 많은 예비신자가 그리스도교의 문을 두드렸다. 북아프리카 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교리를 체계적으로 가르친 교재가 없었던 당시의 교리교사가 처한 어려움이 얼마나 컸으며, 이러한 교재가 얼마나 절박했는지는 데오그라티아스가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난다.
『어디서부터 가르칠 것인가? 어디까지 설명해야 할까? 강의를 끝내면서 몇 마디 권고해야 하는지, 아니면 오직 계명만을 일깨우면서 입문자들이 이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생활로 초대되어 삶으로써 이를 증거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지?』(입문 I, 1).
사실 오늘날 교리교육을 맡고 있는 이들도 거의 이와 같은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는, 교리를 가르치면서 부딪치는 어려움은 가르치는 내용이나 방법에 있지 않고 교리교사(봉사자)의 욕심에 있다고 지적한다. 곧, 봉사자는 자신이 이전에 내적으로 가장 귀하다고 느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힐 수 있으며, 이런 욕망이 큰 만큼 자신이 올바로 전하지 못한 사실에 실망하게 된다. 마침내 봉사자는 이런 실망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봉사직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를 기쁨을 잃은 상태라고 설명하면서 기쁨을 얻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이 기쁨이란 무엇일까?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들을 사랑하십니다』(2고린 9, 7).
아우구스티누스는 데오그라티아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주는 이들의 기쁨」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성경 말씀을 제시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에게 기쁨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선사한다.
『주님께서 현세의 재물에 대해서도 기쁘게 내주는 사람을 사랑하신다면 영적인 재물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사랑하시겠습니까! 적절한 때에 이 기쁨이 함께 하는 것은 이런 계명을 주신 그분의 자비에 힘입은 것입니다』(「입문」 2, 4).
아우구스티누스는 「가려짐」과 「나타남」의 관계를 통해 구약에서 가려진 기쁨이 신약에서 나타났음을 설명하고, 기쁨이 함께 하는 것은 사랑의 계명을 주신 그분의 자비에 힘입은 것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기쁨은 바로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의 겸손이라고 결론내린다.
그리스도의 은전을 멀리 나누는 봉사직에 초대받은 데오그라티아스는 아우구스티누스를 통해 그리스도의 겸손에로 초대된다. 그리고 데오그라티아스는 진정한 교사는 그리스도이며 자신은 그리스도의 봉사자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깨닫는다.
『나는 말하면서 배우고 당신들은 들으면서 배웁니다. 우리는 유일한 교사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 그리스도 학교의 동창생입니다』(「설교」 16A).
[이성효 신부(한국교부학연구회, 수원가톨릭대), 가톨릭신문, 2005년 5월 15일]
교부들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 [12] 아우구스티누스의 ‘시편 상해’에서
사제는 신자들 앞에서는 가르치는 선생이지만, 그리스도 앞에서는 동료 학생입니다
본문
제가 여러분을 「위하여」 있다는 사실이 저를 한없이 두렵게 하지만, 제가 여러분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 한없는 위로가 됩니다. 사실 제가 여러분의 주교이지만, 또한 저는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인입니다. 「주교」가 직무의 이름이라면, 「그리스도인」은 은총의 이름입니다. 「주교」가 「위험의 샘」이라면,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샘」입니다. … 저에게 가장 큰 기쁨이 되는 것은 제가 여러분과 함께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지 제가 여러분의 우두머리로 뽑혔다는 사실이 아닙니다(「설교」 340, 1).
우리는 참으로 여러분의 종입니다. 우리 가운데 아무도 여러분보다 더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여러분보다 더 겸손해진다면, 우리는 여러분보다 더 위대해질 것입니다』(「시편 상해」 146, 16).
이곳 강론대에서 우리는 여러분의 스승입니다. 그러나 유일하신 스승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 모두는 동료 학생입니다』(「시편 상해」 126, 3).
“사목이란 하느님 백성을 섬기는 것"
해설
약 1600년 전에 히포의 주교 아우구스티누스가 했던 이 말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제들의 마음을 뜨끔하게 만든다.
「사제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사제신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상식적으로 사제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자기가 똑똑하고 잘 나서 사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사제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교회와 하느님 백성에게 봉사하고 섬기기 위해 봉사의 삶과 겸손의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따라서 참 사제의 삶을 살았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충고는 사제들의 마음을 뒤흔들어놓기에 충분하다.
사제생활의 햇수가 한 해 한해 더해질수록, 사제로서의 삶이 더욱더 깊어지고 완성되어 가기보다는 오히려 신학생 때 그리고 새 신부 때 가졌던 겸손과 봉사, 사랑과 자비, 이해심과 용서의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교만과 고집과 아집으로 똘똘 뭉쳐, 차돌보다 더 단단하게 변해버린 옹고집과 좁쌀처럼 좁디좁은 소갈머리만 남아 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 많은 사제들이 겪고 있는 문제이다. 신자들의 말에 귀 기울기보다는 오히려 신자들에게 군림하면서 권위를 내세우는 사제, 자신의 주장을 마치 하느님의 뜻인 양 강요하는 사제의 모습은 결코 참 사제의 모습이 아니다.
그런 사제들에게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한다.
『올라가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밑에서부터 시작하십시오. 성덕이라는 건물을 높이 쌓아 올리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겸손이라는 기초를 먼저 닦으십시오』(「설교」, 69.1.2).
권위란 신자들이 인정해줄 때 권위이지, 사제가 강요한다고 해서 권위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겸손한 삶을 살았던 사제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아우구스티누스였다. 그리스도 강생의 신비야말로 인간이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과 겸손의 극치라는 사실을 정확히 깨닫고, 이를 삶으로 살아낸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목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말한다.
『사목이란 하느님의 백성을 섬기는 것입니다』(「설교」, 32).
하느님의 백성을 섬긴다. 과연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제들이 하느님의 백성을 섬긴다는 마음으로 사목을 하고 있을까? 사제들이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사목활동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본당 신부를 가진 신자들은 참으로 행복할 것이다.
그리스도교 영성의 근본은 겸손의 덕이라는 사실을 아우구스티누스처럼 깊게 통찰한 이도 드물 것이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다른 이들 앞에 세워졌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종이기도 합니다. 사실 봉사한다는 면에서 볼 때, 우리는 다스립니다』(「아우구스티누스 선집」 1, 565).
다스림을 통해서 봉사하고 봉사를 통해서 다스린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은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을 「하느님 백성의 종」이라고 표현했다.
진리를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겸손을 온몸으로 실천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한 마디로 겸손의 박사였다.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를 통해서, 사제는 선생의 삶과 학생의 삶을 동시에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제는 신자들 앞에서는 가르치는 선생이지만, 그리스도 앞에서는 사제도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배우는 학생인 것이다.
사제가 하느님의 백성을 섬기는 마음으로 사목을 하고, 신자들은 사제를 위해 기도하고 순명함으로써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친교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성기 신부(한국교부학연구회 · 광주가톨릭대학교), 가톨릭신문, 2005년 6월 19일]
교부들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 [19]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도
본문
힘자라는 데까지
임께서 주신 힘 자라는 데까지
임이 누구신지 물었습니다
믿는 바를 이치로 알고 싶어서
따지고 따지느라 애썼습니다
임이시여 저의 주님이시여
제게는 둘도 없는 희망이시여
제 간청을 들어주소서
임을 두고 묻는데 지치지 않게 하소서
임의 모습 찾고자 늘 몸달게 하소서
임을 두고 물을 힘을 주소서
임을 알아뵙게 하신 임이옵기에
갈수록 더욱 알아뵙게 되리라는
희망을 주신 임이옵기에
임 앞에 제 강함이 있사오니
임 앞에 제 약함이 있사오니
강함은 지켜주소서
약함은 거들어주소서
임 앞에 제 앎이 있사오니
임 앞에 제 모름이 있사오니
임께서 열어주신 곳에
제가 들어가거든 맞아주소서
임께서 닫아거신 곳에
제가 두드리거든 열어주소서
임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임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임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이 모든 염원을 제 안에 키워주소서
임께서 저를 고쳐놓으실 때까지
고쳐서 완성하실 때까지
- 「삼위일체론」 15권 51항
“두드리면 열어주소서”
해설
북아프리카 히포의 성인 주교 아우구스티누스(354~430년)는 수많은 교부들 가운데서 사상으로나 필력으로나 가장 빼어난 분이시다. 그는 학문적으로 완숙한 시절 약 스무 해에 걸쳐(399~420년) 「삼위일체론」을 썼는데, 자신의 역부족을 절감한 나머지 결론을 맺지 못하고 앞에서 소개한,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로 마무리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생각하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위격(位格)으론 세 분이시오 실체(實體)로는 한 분이신 하느님을 더는 논할 수 없는 막막한 순간에 저 간절한 기도를 바쳤다.
이 기도문과 어울리는 전설이 전해온다. 어느날 아우구스티누스가 삼위일체론을 쓰다가 너무도 막막해서 히포(지금의 알제리 공화국 안나바 항구) 앞바다 지중해변을 거닐고 있었는데, 어떤 아이가 모래사장에 작은 구덩이를 파고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퍼서 그 구덩이에 붓고 있었다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괴이하게 여겨 아이에게 그 연유를 물으니까, 『이 구덩이에 지중해 물을 다 담을 작정이에요』라고 대꾸했겠다. 이에 아우구스티누스가 『그건 당치도 않다』고 하니까, 『주교님께서 궁리하시는 삼위일체 신비는 더 어렵지요』 라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이 기도문을 풀이할 필요가 있을까? 아우구스티누스는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하는 대문호인지라 글을 쉽고 분명하고 구수하게 쓸 줄 안다. 그래서 굳이 해설할 필요가 없겠지만 노파심에서 사족을 달까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에서 배운 신조를 맹목적으로 믿지 않았다. 그는 『믿는 바를 이치로 알고 싶어서 따지고 따지느라 애썼다.』 그는 신앙과 지성 중 어느 하나를 일방적으로 골라잡지 않고, 둘 다 보듬을 줄 아는 지각있는 신앙인이었다. 그는 믿고 알고, 알고 믿으려는 신앙인이요 지성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을 생각할 때면 지성의 한계를 절감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느님은 초월이시니까. 불도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느님은 공(空)이시니까. 하느님을 생각할 때면 조금 아는 것 말고 온통 모르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애절히 간구했다.
『임 앞에 제 앎이 있사오니/ 임 앞에 제 모름이 있사오니/ 임께서 열어 주신 곳에/ 제가 들어가거든 맞아주소서/ 임께서 닫아거신 곳에/ 제가 두드리거든 열어주소서/ 임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임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임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이 기도문은 분도출판사에서 청춘을 바친 고 정한교씨가 초역했는데, 나는 그 기도문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여러 번 다듬었다. 나는 이 기도를 하느님 아빠께 바치기도 하고, 하느님 아빠의 화신이신 예수께 바치기도 한다. 그러나 성령께는 바치지 않는다. 나의 주보성인 사도 바울로를 눈여겨보고 흉내 내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 기도의 대가이신 바울로는 노상 하느님 또는 예수께 기도를 드렸다. 그렇지만 그가 성령께 기도를 드린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요즘 성령기도가 유행이라지만 나하고는 거리가 멀다.
[정양모 신부(한국교부학연구회 · 성공회대 초빙교수), 가톨릭신문, 2005년 8월 7일]
교부들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 [23] 아우구스티누스의 ‘요한 서간 강해’에서
“그리스도인은 사랑하는 사람”
본문
하느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식을 구별하는 것은 오직 하나, 사랑뿐입니다. 모두가 다 그리스도의 십자성호를 긋고, 모두가 『아멘』하고 대답하고, 『알렐루야』를 노래한다 할지라도, 모두가 다 세례를 받고, 교회에 다니고, 성전을 지어 올린다 할지라도, 하느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식을 구별하는 것은 오직 하나, 사랑뿐입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은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이고 사랑이 없는 사람은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이 아닙니다. 이것이야말로 기준이요, 이것이야말로 식별의 대헌장입니다.
그대, 원하는 것 다 가지십시오. 그러나 이것 하나를 지니지 못한다면, 그것들이 그대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비록 다른 것을 다 가지고 있지 않다 할지언정, 사랑을 지니고 있다면 그대는 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남을 사랑하는 이는 율법을 성취했다』고 하고, 또 『사랑은 율법의 성취』라고 하였습니다(로마 13, 8. 10).
저는 복음서에서 말하는 장사꾼이 찾는 진주가 바로 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면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산다』(마태 13, 46). 그렇습니다. 이 사랑이야말로 값진 진주입니다. 이것 없이는 모든 것을 다 가졌다 하더라도 득 될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그대, 이 사랑 하나만 지닌다면, 그것으로 넉넉합니다.
-「요한 서간 강해」 5장 7절
“사랑하라. 그리고 마음대로 하라!”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다면
성사마저도 구원에 도움 안돼
해설
아우구스티누스(354~430년)는 교부들 가운데 우뚝 솟은 큰 산이다. 길고 오랜 방황 끝에 뒤늦게 그리스도교에 귀의한 그는, 남은 인생을 송두리째 교회를 위해 바쳤다.
북아프리카 히포의 사제요 주교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40여 년의 사목 기간 동안 민중들과 더불어 동고동락하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수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 「요한 서간 강해」는 가장 아름다운 교부 문헌으로 손꼽힌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는 요한의 말씀보다 더 큰 사랑의 찬가를 성서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대로(7장 4절), 요한의 첫째 편지는 하느님의 사랑을 끊임없이 노래하고 있다.
요한의 편지가 우리 가슴에 사랑의 불을 놓았다면, 아우구스티누스의 「요한 서간 강해」는 그 사랑의 불길에 끼얹는 기름이다(머리말). 아우구스티누스 주교가 자신의 신자들을 위해서 행한 이 「설교식 성서 풀이」(講解, tractatus)는 어떻게 성서를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고, 기도하고, 실천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아우구스티누스 주교는 415년경 부활 축제 시기에 신자들에게 열 차례에 걸쳐 요한의 첫째 편지를 풀이해 주었다. 전례 도중에 제법 길게 행해진 이 강해는 열 권으로 엮어져 그 필사본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작품을 읽노라면, 민중들 앞에서 열정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선포하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숨결마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듯하다. 신구약성서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성서의 핵심을 꿰뚫을 때면, 청중들은 종종 뜨거운 박수와 환호성으로 화답하며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사랑은 처음과 마지막 말이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몸은 비록 교회 안에 있을지라도, 영으로는 이미 교회 바깥에 있다. 사랑이 없는 그곳에서는 심지어 성사마저도 구원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세례론」 1권 9장 12절).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반문한다. 『그대가 행동으로써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보여 주지 않는다면 모두가 그대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다 한들 그 이름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름만 있지 실상은 없는데 말입니다』(「요한 서간 강해」 5장 12절).
『의사라고 불리지만 치료할 줄 모르는 의사가 얼마나 많습니까? 파수꾼이라 불리지만 실제로는 긴 밤을 잠만 자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들은 삶과 행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에서 그들이 불리는 이름대로 살지 못합니다』(4장 4절).
그렇다! 우리가 세례를 받고, 십자성호를 긋고, 『아멘』하며 기도하고, 꼬박꼬박 성당에 다닌다고 해서 저절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참으로 그리스도인이게 하는 것은 오직 사랑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명함만 지닌 채,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안주하여 사랑을 하찮게 여기며 살아간다면, 더 이상 주님의 제자라 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만은 하느님을 알진대』(1요한 4, 7 참조), 우리 생애의 마지막 날 하느님 앞에 서게 될 때에 과연 우리는 하느님을 알아 뵐 수 있을까? 『너 얼마나 사랑했느냐』고 물어 오실 그분 앞에 초라한 사랑의 빈털터리로 서게 되지는 않을까?
모든 것은 다 사라질지라도 사랑은 영원히 남고, 사랑만이 우리 삶의 유일한 원칙이요 기준임을 꿰뚫어 본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다음과 같이 우리를 사랑의 삶에 초대하고 있다.
『사랑하라. 그리고 마음대로 하라!』(7장 8절).
[최원오 신부(한국교부학연구회 · 주교회의 사무국장), 가톨릭신문, 2005년 9월 4일]
교부들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 [29] 아우구스티누스의 ‘인내론’에서
“인내의 반대인 자살”
본문
삶을 찾는다면서 스스로에게 죽음을 안겨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정말 욥에게서 시선을 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들은 현재의 삶을 없애면서 동시에 미래의 삶도 포기합니다. …
이들은 인내하지 않고 죽음에 굴복하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을 평화스럽게 참아내야 했을 것입니다. 만일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자살하는 것이 가능했다면, 욥 성인은 악마의 흉포함이 재물, 자녀, 자신의 몸에 가한 그토록 심한 불행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죽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
물론 욥이 인내를 잃어버렸다면, 아내가 원했던 것처럼 불경스런 말을 했거나, 아내가 제안하지는 않았지만 자살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했다면, 그는 죽었고 “인내를 저버린 자들은 불행하리라!”(집회 2, 14)라는 성경 말씀처럼 불행한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
존속 살인자는 일반 살인자보다 더 죄가 무겁습니다. 그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살해했기 때문입니다. 존속 살해 중에서 자기와 가장 가까운 아버지를 살해한 사람이 이론의 여지없이 가장 흉악무도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이보다 더 흉악무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보다 더 가까운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인내론’ 14
“수난에 동참하면서 인내 청해야”
해설
하느님의 선물인 인내
영혼의 목자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년)는 인내가 무엇인지 신자들에게 설명한다. ‘인내론’은 미사 중에 행한 강론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어떤 사목적인 긴박한 이유가 있었기에 인내에 관한 주제로 강론을 했을까?
교회에서 봉사를 하다보면 긴급히 해결해야 할 사목적인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5세기 초 북아프리카 교회도 도나투스 추종자와 펠라기우스 추종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맞서야 했다. 도나투스파는 가톨릭에서 분열되어 자살을 마치 순교로 가르치고 있으며 펠라기우스파는 하느님의 은총보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우선시하는 가르침을 퍼뜨리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직접적이고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일까? 그래서 잘못된 이론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도 침묵해야만 할까?
아우구스티누스는 인내란 주제로 이 두 가지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다. 먼저 ‘하느님의 인내’를 설명한다. “그분의 질투에는 원한이 없습니다. 그분의 분노에는 격정이 없습니다. 그분의 연민에는 슬픔이 없습니다. 그분의 후회에는 뉘우침이 없듯이 그분의 인내에는 견딤이 없습니다.”(‘인내론’ 1, 1)
이어서 인간의 ‘참 인내와 거짓 인내’를 설명한다. “강도들은 여행자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지새웁니다. 이들은 통행하는 무죄한 이들을 붙잡기 위해 악천후 속에서도 몸을 움직이지 않고 그들의 그릇된 생각을 바꾸지 않습니다. … 여기에는 칭송받을 그 어떤 것도, 또한 배워서 유익할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 인내는 지혜의 동반자이지 탐욕의 노예가 아니며, 선한 양심의 친구이지 무죄함의 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인내론’ 5, 4)
그리고 “인내란 하느님 자녀의 선물입니다”(‘인내론’ 24)라는 결론을 제시한다.
위의 본문은 거짓 인내에 대한 설명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상에 속하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모범으로 보여야 한다. 덕스런 삶이 요구된다. 교회의 봉사자에게 인내의 덕이 필요함은 부연할 필요도 없겠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세상 속에서 그냥 고통을 참는 것이 인내가 아님을 강조한다. 시쳇말로 한을 품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인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탐욕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참 인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경제적인 가정적인 이유 등으로 궁지에 몰렸을 때 그리스도인은 이를 악물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혹은 절망 속에서 자살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 받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면서 하느님 자녀의 선물인 인내를 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통스런 세상 속에서 선한 양심의 친구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내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을 하느님의 말씀(욥기)에서 찾으면서 당시의 문제를 해결하였다.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말씀(성경)과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성전=거룩한 전통)이 있다. 만일 삶에 직면한 중대한 문제가 있다면, 아우구스티누스의 해결 방법을 음미해 볼만 하다.
“오, 부패할 육체 때문에 짓눌린 영혼아, 네가 할 수 있다면 알지어다. 수많은 그리고 변화무쌍한 지상의 생각들에 짐 지워진 영혼아, 네가 할 수 있다면 알지어다. 하느님은 진리이시다.”(‘삼위일체론’ 8, 2, 3)
[이성효 신부(한국교부학연구회, 수원가톨릭대학교), 가톨릭신문, 2005년 10월 23일]
교부들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 [41] 아우구스티누스의 요한1서 강해에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본문
본문1(요한 1서 4장 7∼21절)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실 사랑은 하느님으로부터 오고 사랑하는 모든 이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고 하느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모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 가운데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임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으니, 그것은 우리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도록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랑이란 이렇습니다. 곧,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임의 아들을 우리 죄 때문에 속죄의 제물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일찍이 아무도 하느님을 뵙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임의 사랑은 우리 안에서 완성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우리는 알고 있고 또 믿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고 하느님도 그 사람 안에 머물러 계십니다.
본문2(요한 1서 강해 7장 8∼11절)
사랑하라, 그리고 마음대로 하라
입을 다물어도 사랑으로 다물고
말을 해도 사랑으로 말하라.
나무라도 사랑으로 나무라고
용서해도 사랑으로 용서하라.
마음 속 깊이 사랑의 뿌리를 내릴지니
그 뿌리에선 오직 선만이 싹트리라.
“일찍이 아무도 하느님을 뵙지 못했습니다.”(1요한 4, 12).
하느님은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러니 육안으로 하느님을 찾아선 안되고 마음으로 찾아야지요. 우리가 저 해를 보고자 하면 육안을 닦아야 합니다. 그러면 햇빛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느님을 뵙고자 하면 하느님을 볼 수 있는 심안을 닦아야 합니다. 그럼 심안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복되어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뵐 것이니”(마태 5, 8)라고 하신 복음서의 말씀을 명심하세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 8.16).
사랑이 무슨 모습을 하고 있던가요? 어떤 형상이던가요? 키는 얼마나 크던가요? 발 모양은? 손 모양은? 어느 누구도 대답할 수 없지요. 그렇지만 사랑엔 발이 있습니다. 발로 성당에 오잖아요. 사랑엔 손이 있습니다. 손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잖아요. 사랑엔 눈이 있습니다. 눈으로 가련한 사람을 살피잖아요.…
형제 여러분, 진정 사랑을 지키고자 하시거든 무엇보다도 사랑이 따분하다거나 할 일 없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그저 유순함으로, 아니 유순함 보다는 무기력과 무관심으로 사랑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렇게 해선 결코 사랑을 지킬 수 없습니다. 종을 때리지 않는다고 해서 종을 사랑한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아들을 벌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들을 사랑한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이웃을 꾸짖지 않는다고 해서 이웃을 사랑한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이는 사랑이 아니고 무기력입니다. 사랑은 정열을 쏟아 교정하고 수정합니다. 품행이 선하면 기뻐하고 품행이 악하면 교정하고 수정해야지요. 사람의 잘못을 사랑하지 말고 사람을 사랑하세요. 사람은 하느님이 창조하셨으나 잘못은 사람이 저질렀습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은 사랑하고 사람이 저지른 것은 사랑하지 마세요.
해설
1) 요한 1서 4장 풀이
요한복음서 후반부에 예수께서 각별히 사랑하신 애제자가 나온다. 애제자의 영향을 받은 교우들이 서기 100년경 에페소 주변 아세아 지방에서 요한 1. 2. 3서를 썼으리라는 게 오늘날 신약학계의 통설이다. 그 중에서 요한 1서 4장은 백미인데, 그 짜임새는 간단명료하다.
① 하느님은 사랑이시다(8.16절).
②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강생 9절), 하느님은 외아들을, 우리 죄를 대신 속죄하는 속죄의 제물로 삼으셨다(대속죄 죽음 10절). 예수는 강생과 죽음으로 사랑이신 하느님을 우리에게 보여준 하느님 사랑의 화신이시다.
③ 사랑이신 하느님을 증득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형제들을 사랑하기 마련이다(7∼8.11∼12절).
④ 사랑이신 하느님과 사랑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은 서로 내주(內住 12.16절)한다.
하느님에 대한 정의도 설명도 많지만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8.16절)라는 말씀보다 더 좋은 정의를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사랑이신 하느님과 사랑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은 서로 내주한다는 말씀도(12.16절) 참 좋다. 그러니 사랑에 젖어야 이승에서 하느님을 모시고, 저승에서 임의 품에 안길 것이다. 비정을 일삼고서 어찌 사랑이신 하느님을 뵐 수 있으랴. 불가의 다정불심(多情佛心)에 빗대어 나는 다정신심(多情信心)이란 신조어를 빚고 싶다.
2) 요한1서 강해 7장 풀이
아우구스티누스(354∼430년)는 히포(지금의 알제리 공화국 지중해변 안나바 항구)에서 주교로 재직하면서 매일 강론했다. 그 강론 내용이 진솔한 데다 그 표현 또한 교우들 눈높이에 딱 맞추었던 까닭에, 청중은 귀를 쫑긋 세웠다. 아우구스티누스는 415년경 환갑 때 10차례에 걸쳐 요한1서를 강해했는데, 여기 소개하는 것은 제7차 강해 일부이다. 이 강해 때 교우들은 기립해서 환호, 칭송, 열광했다. 그만큼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명강해였던 것이다. 말씀의 핵심을 간추려 본다.
사랑이 무형무상이듯이 하느님도 무형무상이시다. 육안으로는 무형무상 하느님을 뵐 수 없고 오직 심안으로만 감지할 수 있다. 심안 대신 신령한 눈, 곧 영안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내 마음 속 깊디깊은 곳보다 더 깊이 계시는 임을 만나자면 마음을 깨끗이 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는 게 학덕을 겸비한 주교의 생각이다.
아울러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웃 사랑을 결코 유순한 덕목으로 보지 않는다. 참 사랑은 결코 무기력하지 않고 활력이 넘친다는 것이다. 정말 사랑한다면 나무라고 꾸짖고 교정하고 수정하는 등 정열적으로 행동하기 마련이라고 한다. 행동하는 사랑이야말로 인생의 열쇠라는 것이다. 학덕을 겸비한 성인 주교의 축일은 8월 28일.
[정양모 신부(한국교부학연구회, 성공회대 초빙교수), 가톨릭신문, 2006년 1월 22일]
[역사속의 그리스도인] 35. 교부편 (16) 아우구스티노(상)
아우구스티노는 「고백록」에서 절망속에서 진리를 찾고, 참 행복과 사랑을 발견한 환희를 담고 있다.
깊은 절망서 진리 찾으려 절규
동거생활 등 인간적 욕망 추구
하느님 발견으로 참 자아 찾아
『주여, 언제까지나? 주여, 끝내 진노하시려나이까? 행여 우리 옛 죄악을 기억치 마옵소서. 언제까지, 언제까지? 내일, 또 내일이옵니까? 지금은 왜 아니랍니까? 어찌하여 내 더러움이 지금 당장 끝나지 않나이까?』(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 중에서).
죄 많은 인간, 하지만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의 한 명으로 손꼽히는 성 아우구스티노(354∼430)의 절규이다. 육체적 욕망, 거짓된 사랑, 유한한 「지혜」에 대한 열정으로 젊은 날을 보낸 뒤, 아우구스티노는 막다른 길에서 그렇게 부르짖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자신이 그렇게 찾아 헤매던 참된 진리를 찾았고, 그 감격과 희열을 또 이렇게 표현했다.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내 안에 님이 계시거늘 나는 밖에서, 나 밖에서 님을 찾아 당신의 아리따운 피조물 속으로 더러운 몸을 쑤셔 넣었사오니! 님은 나와 같이 계시건만 나는 님과 같이 아니 있었나이다. 당신 안에 있잖으면 존재조차 없을 것들이 이 몸을 붙들고 님에게서 멀리했나이다. 부르시고 지르시는 소리로 절벽이던 내 귀를 트이시고, 비추시고 밝히시사 눈멀음을 쫓으시니, 향내음 풍기실제 나는 맡고 님 그리며, 님 한번 맛본 뒤로 기갈 더욱 느끼옵고, 님이 한번 만지시매 위없는 기쁨에 마음이 살라지나이다』(고백록 중에서).
우리에게 낯익은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 주는 감흥을 훌쩍 넘어서는 이 고백은 인간이 닿을 수 있는 가장 깊은 절망 속으로부터, 급기야 참 진리를 찾고, 참 행복과 사랑을 발견한 한 위대한 성인의 환희를 담고 있다.
아우구스티노는 그 당시의 모든 영적 보화를 한 몸에 지닌 듯한 느낌을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준다. 성인이자 히포(Hippo)의 주교이며 교회 학자로서 서방교회의 4대 교부 중 한 사람인 아우구스티노를 두고 독일의 교부학자 알타너(B. Altaner)는 이렇게 말한다.
『위대한 주교 아우구스티노는 테르툴리아노의 창조적 정열, 오리제네스의 영적 풍부함, 치프리아노의 교회적 의식, 아리스토텔레스의 예리한 논리를 플라톤의 높은 이상주의와 사변에 결합시켰다. 그리고 라틴인의 실용적 감각을 그리스인의 영적 유연성에 일치시켰다』
그래서 그는 교부 시대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며 전 교회의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신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오리제네스에 필적할 만큼 많은 저서를 남겼다.
이 저서들은 자아 인식에서 시작해 존재와 진리, 사랑, 하느님 인식의 가능성, 인간 본성, 영원성, 시간, 자유, 악, 섭리, 역사, 행복, 정의, 평화 등 철학의 주요한 주제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학 전반을 아우르고 있다. 그래서 그는 철학자, 신학자, 신비가, 시인, 논박가, 저술가, 목자, 그리고 수도자라는 모든 명칭이 두루 훌륭하게 적용된다.
하지만 이러한 천재성과 현대 교회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치는 학문적, 영성적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우리에게 깊은 매력을 주는 것 중의 하나는 스스로 고백록에서 이야기하듯 죄 많은 인간이 하느님을 발견함으로써 자신의 참 모습을 찾고 참 행복을 느끼게 되는 장면이다.
아우구스티노는 로마 제국에 속해있던 북아프리카의 작은 도시 타카스테(지금의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교도였지만 열심한 그리스도인이었던 어머니 모니카 성녀의 영향으로 그는 그리스도교적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잠시 학업을 중단했던 그는 은인의 도움으로 북아프리카의 수도였던 카르타고에서 공부를 계속하게 되는데, 바로 이곳에서 아우구스티노는 부끄러운 사랑을 꽃피운다. 떳떳하지 않은 동거생활이 14년 동안이나 계속됐고 그는 아들 아데오다투스를 얻기도 한다.
18살 때 그는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Hortensius)를 읽고 「지혜에 대한 사랑」(철학)에 빠지고 진리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기 시작한다.
부친의 사망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는 카르타고에서 돌아와 수사학 학교를 차렸고 다시 카르타고로 가서 9년 동안 수사학을 가르쳤다. 그 기간 동안 그는 마니교에 기울어지기도 했는데, 그 어설픈 교리와 지도자들에게 실망해 떠나온다.
384년 암브로시오가 주교로 있던 밀라노에 가서 수사학을 가르치던 아우구스티노는 여기에서 자신의 일생을 결정짓는 회심의 순간을 맞게 된다. 밀라노에서 암브로시오 주교의 강연을 들으면서 성서의 참뜻과 그리스도교 진리를 조금씩 깨우치던 그는 어느날 안토니오 성인과 여러 은수자들의 삶에 대해 듣고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괴로워 무화과 나무 밑에서 홀로 울부짖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집어서 읽어라, 집어서 읽어라』하는 노래소리를 듣고 방으로 달려가 성서를 펼쳐 바오로의 서간들을 읽었다. 『포식과 폭음, 음행과 방탕, 싸움과 시새움을 멀리합시다. 오히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시오. 그리고 욕정을 만족시키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라는 로마서의 말씀에 그는 지금까지의 모든 방황을 끝내고 마침내 387년 부활성야에 밀라노 대성당에서 암브로시오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고향집에 작은 수도 공동체를 세웠다. 이후 크게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그는 우연히 히포를 방문하게 됐고 여기서 그를 알아본 시민들에 의해 발레리우스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그것이 그의 나이 37살의 일이었다.
397년 히포의 주교가 된 그는 참된 사목자이며 탁월한 사상가로서 뜨거운 복음적 열정으로 주교로서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사목활동을 하면서 엄청난 양의 저서를 저술했다.
[가톨릭신문, 2004년 10월 24일, 박영호 기자]
[역사속의 그리스도인] 36. 교부편 (17) 아우구스티노(하)
아우구스티노의 저술들은 엄청나다. 그중에서도 방황을 거쳐 하느님 안에서 참 평화를 얻기까지 자신의 신앙을 묘사한 「고백론」이 친근하다.
평생 이단맞서 정통교리 수호
마니교 지도자와 토론, 개종시켜
삼위일체론 고백론 등 저술 왕성
아우구스티노 당시 북아프리카에는 몇 가지 이단 논쟁이 교회를 휩쓸고 있었다. 아우구스티노는 이러한 이단들과의 논쟁에 맞서서 정통 교리를 수호함으로써 당대의 아프리카 교회와 서방교회, 더 나아가 세계교회 안에서 신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고, 이는 지금까지도 그리스도교 신학의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되고 있다.
그가 히포의 주교로서 생애에 걸쳐 맞선 논쟁은 크게 네 가지이다.
가장 먼저 자신이 몸을 담고 기웃거렸던 마니교 논박은 그가 사제 시절부터 399년까지 주력했던 이단 논쟁이었다. 마니교는 영지주의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극단적인 이원론을 주장했다. 그들은 세상이 선과 악의 원리가 맞서 있으며, 선악의 잔혹한 싸움터가 바로 이 세상이라고 했다. 이는 『과연 악은 어디로부터 오는가?』(Unde Malum)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아우구스티노는 이 풀리지 않는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 9년 동안이나 마니교도로 지냈다.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몸담았던 만큼 마니교에 대해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논박할 수 있었다. 특히 398년 12월 7일 히포의 성당에서 마니교 지도자인 펠릭스와 벌인 토론에서 그를 승복시키고 개종시킨 이야기는 유명하다.
두 번째 논쟁은 도나투스주의에 대한 것이다. 당시 아우구스티노가 주교로 있던 히포는 이미 도나투스주의자들로 뒤덮여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을 「거룩하고 순결한 교회」, 가톨릭 교회는 「죄인들의 교회」라고 주장했다. 히포에서 도나투스주의자들은 교리적 논쟁에 더해 민족주의적 요소를 가미해 사태는 더욱 심각했다.
아우구스티노는 이들이 정통 교회로 돌아오도록 쉼없이 설득하고 논박했으나 이들의 폭력 행위가 심화되면서 점차 공권력의 개입을 정당시하고 나아가 적극적으로 개입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저술과 강연, 공개 토론 등을 통해 도나투스주의의 허구를 지적하고 정통 가톨릭 신앙과 교리를 확인해나갔고 411년 카르타고에서 열린 공개 토론회에서 가톨릭이 승리를 거둠으로써 도나투스주의는 막을 내린다.
세 번째는 펠라지우스주의와 벌어졌다. 펠라지우스는 아일랜드에서 로마로 건너 온 금욕적 수도자로서 느슨해진 신앙생활에 반발,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함으로써 결국 은총의 역할을 최소화시키는 오류를 범했다.
자신의 회심을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깊은 영적 체험으로 여기던 아우구스티노에게 이러한 주장은 충격이었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20여년 동안 그는 펠라지우스주의자들과의 논쟁의 와중에서 인간의 욕정, 홀로 내버려진 인간의 비참함, 예정과 은총에 대한 교의를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작품을 썼다.
마지막 논쟁은 아리우스주의와의 논쟁이다. 생애 마지막 10여년을 이들과의 논쟁에 개입하면서 보냈던 그는 자신의 신학저서 중에서 최고의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삼위일체론」(De Trinitate)을 근 20여년에 걸쳐 저술했다.
아우구스티노의 저술들은 엄청나다. 그의 전기를 쓴 포시디오(Possidius)는 그의 저서명을 모두 1030개나 열거했다. 아우구스티노가 자신의 저서 「재론고」에서 열거한 것은 93개로 이는 강론과 서간들을 모두 제외한 것이다.
그의 저술 중에서 가장 친근한 것은 아마도 「고백록」(Confessiones, 397~401)일 것이다. 오랜 방황을 거쳐 하느님 안에서 참 평화를 얻기까지 자신의 종교적 발전과 신앙을 영혼 깊숙이 묘사한 「고백록」은 자신의 죄에 대한 고백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찬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고백한다는 것은 바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자신의 죄를 아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삼위일체론」은 오랜 묵상을 통해 무르익었고, 한때 중단됐다가 다시 작업을 한 저서이다. 「고백록」을 반영하며 신학과 신비주의의 경계에 자리잡은 이 저서는 아우구스티노 자신이 고백하듯 『원기왕성한 나이에 시작해서 늙어서야 그 끝을 보았다』고 할 만큼 오랜 세월, 엄청난 노력과 정성이 깃들인 작품이다.
교의신학 분야에서 최고의 걸작이자 삼위일체에 관한 교부시대의 신학을 총괄하고 완성시킨 작품으로 이후 교회의 삼위일체 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 저서는 삼위일체에 관한 성서적 논거를 제시한 제4권까지에 이어 5권부터 7권까지는 사변 신학적 관점에서 삼위일체론의 정식(定式)을 설명한다. 제8권에서는 하느님에 관한 신비신학을 도입했고 이후 14권까지는 인간 안에 있는 삼위일체의 모상을 찾았으며 제15권에서는 모든 내용을 요약, 보완했다.
모든 역사의 전환점에서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지난 역사를 돌아보게 만드는 것은 「신국론」(De civitate Dei, 413~427)이다. 400여개 이상의 필사본을 만들어낸 신국론은 인간의 역사를 조명하면서 그리스도교를 옹호한 방대한 역사 신학서이자 호교론적 저서로서, 지상의 도시와 천상의 도시를 드러내면서 선과 악, 신앙과 불신앙의 갈등과 싸움으로서 인간 역사와 그 현실을 성찰한다.
그는 지상 도시는 천상 도시의 예형이며, 이는 결국 지상의 순례자들을 위해 현세의 지평선에 걸쳐진 천상 도시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여러분 고향의 사랑 노래를 부르시오. 새로운 발걸음, 새로운 나그네, 새로운 노래!』를 부르짖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4년 10월 31일,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