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불(阿彌陀佛) 기도법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타 신앙이라고 하면 죽은 다음의 내생을 떠올립니다.
죽은 다음 서방 극락세계에 태어나기 위해 찾아야 하는 분이 아미타불이요,
그렇기 때문에 늘그막에나 나무아미타불을 염원하면 족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미타불은 내세만을 위한 부처님이 아니요, 극락은 서방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아미타불이라는 명칭을 통해서도 능히 알 수 있습니다.
아미타불의 아미타를 범어로 표기하게 되면 <아미타유스 아미타바>의 두 가지로 써집니다.
이중 <아미타유스>는 무량한 수명을 뜻하는 무량수(無量壽)로 번역되고
<아미타바>는 무량한 빛을 뜻하는 무량광(無量光)으로 번역됩니다.
이 무량수. 무량광은 부처님뿐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있습니다.
나 속에 감추어져 있는 영원한 생명력이 무량수요,
나 스스로가 능히 발현시킬 수 있는 맑고 밝은 작용이 무량광(無量光)입니다.
실로 아미타불은 무량한 빛 그 자체의 부처님이요. 무량한 수명 그 자체의 부처님입니다.
일찍이 나를 떠나지 않았던 그 빛,
영원한 우리와 함께하는 불멸의 생명력을 간직한 분이 아미타 부처님입니다.
그러한 아미타 부처님께서는 아주 오래전에 지극한 원을 발하였고 지혜로운 수행 끝에
뭇 생명 있는 자의 고통을 영원히 쉬게 하려고 끝없는 행복의 세계를 이루어 놓았습니다.
그 세계가 바로 고뇌하는 중생의 영원한 피안(彼岸)인 극락입니다.
극락(極樂)! 그곳에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은 빛이 있고 생명이 있고 행복이 있고 해탈이 있습니다.
아미타 부처님의 끝없는 설법이 펼쳐지고 있는 그곳에 태어나는 자는
모두가 성불을 보장받게 되어 있습니다. 극락은 그토록 좋은 곳입니다.
그러면 아미타불께서 이룩하신 그 극락은 죽은 목숨이라야만 갈 수 있는 곳인가?
아닙니다. 극락은 내생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아미타불을 염하며 영원한 생명력을 찾고 다함 없는 빛으로 살아가면,
이 고통의 사바세계 그대로가 극락정토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결코 미타 신앙은 내생의 극락왕생만을 위한 믿음이 아닙니다. 현세에서도 행복하게 살고
내생에도 지극한 행복을 만끽하며 살도록 하기 위한 가르침이 미타 신앙입니다.
중국 원나라 때 서호 지방에 살았던
도씨 집안의 십육랑은 26세의 젊은 나이로 남편과 사별하였습니다.
아이마저 없었던 그녀는 한동안 실의에 빠져 멍하니 살다가
부근 사찰에 계신 스님의 권고로 아미타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혼자만의 삶이 가져다주는 외로움. 두려움. 슬픔 등을
아미타 부처님께 모두 바치고 의지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아침저녁으로 아미타경을 한 번씩 읽었습니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며 지냈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일 년쯤 된 어느 날
흰옷을 입은 노인이 흰 연꽃 한 송이를 들고 꿈에 나타나 말했습니다.
“너에게 먹이기 위해 이 꽃을 가지고 왔다. 어서 먹으려무나.”
십육랑은 공손히 꽃을 받아먹고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이 가뿐하고 마음이 즐겁기 짝이 없었습니다.
홀로 된 이후 언제나 자기를 짓누르고 있던 외로움. 두려움. 슬픔 등도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아미타불의 가피를 입은 십육랑은 자기의 방에 아미타 불상을 모신 다음
더욱 열심히 아미타경을 읽고 나무아미타불을 염했습니다.
그런데 만 3년이 되는 날 방안에 모셔놓은 아미타 불상이 방광을 하더니
경상 위의 아미타경에 불덩어리 같은 것이 놓여 있었습니다.
십육랑은 경이 타는 줄 알고 황급히 불을 끄려 하였으나 꺼지지 않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것은 한 낱의 사리였습니다.
그날 이후부터 십육랑 에게는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였습니다.
그녀는 항상 부드러운 미소와 따스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아미타불을 염할 것을 권하며 한평생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가 되었을 때 주위 사람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극락세계의 아미타 부처님께로 갑니다.
부디 염불을 잘하여 극락세계의 연화대에서 다시 만나도록 합시다.”
그리고 단정히 앉은 채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십육랑 경우처럼 한평생을 아미타불의 자비 광명 속에서
평온하고 행복 속에 살다가 수명이 다한 다음 극락왕생하였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많습니다.
또 현실적인 고난과 불행을 아미타불 염불을 통하여 극복하고
행복과 성공. 소원 성취를 하였다는 영험담도 매우 흔합니다.
약 30년 전의 일입니다.
부산에 사는 거사님 한 분은 공장을 경영하다가 실패하여
전 재산을 모두 날리고 가족마저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만 했습니다.
잘 살다가 갑자기 닥친 불행으로 가족 모두는 물질로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큰 불안을 느끼며 지내야 했습니다. 특히 가장인 거사님의 고통은 말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거사님은 통도사 극락암의 경봉 스님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한 다음 울먹였습니다.
“스님 지금 심정 같아서는 그냥 죽고만 싶을 뿐입니다. 모두지 어떻게 해야 할지…”
“처사, 보게, 낙엽이 땅에 떨어져 있으면 사람도 밟고 개도 밟는다.
떨어진 낙엽은 아무런 가치가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그 낙엽도 비바람을 타고 벽공(碧空)을 활기차게 날 때가 있다.
낙엽도 벽공을 풀풀 나는데 만물 중에 가장 슬기로운 사람이 좀 실패했다고 하여
근심에 잠겨 있어서야 쓰겠는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힘을 내어야지.”
“스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하여야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까?”
“오늘부터 백 일 동안 아미타불을 외우게,
죽기 살기로 밤낮없이 외우면 틀림없이 다시 살아갈 수가 있을 것일세.”
스님은 간략히 염불하는 방법을 일러주셨고 거사님은 그날부터 열심히 나무아미타불을 외웠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을 생명줄로 알고 밤낮없이 외웠습니다.
그렇게 약 50일이 지나자 밥을 먹을 때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나무아미타불을 외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80일 정도 되자 채권단이 빚을 받지 않겠다고 하였고 백일기도가 끝나자,
은행과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다시 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손을 대는 사업마다 불꽃이 타오르듯 크게 일어나 채 3년도 되지 않아
부산에서 몇 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대단한 재력가가 되었습니다.
부디 명심하십시오. 미타 신앙은 현세와 내세의 행복을 함께 보장해 주는 신앙입니다.
어찌 우리의 짧은 소견으로 마음대로 생각하여 아미타불의 무량한 가피를 팽개치고 살 것입니까?
현생과 내생 모두 극락 속의 삶을 영위하고자 한다면 깊이 아미타불을 믿고,
아미타불의 무량한 수명과 무량한 빛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더욱이 그 어떤 신앙보다 미타 신앙이 수승(殊勝)하다라는 것을
역대의 큰스님들께서는 한결같이 천명하였고
관음(觀音). 문수(文殊). 지장(地藏) 등의 큰 보살님들까지도 화현하여 아미타불을 염할 것을 권하였습니다.
중국 당나라의 혜일 스님은 불법을 공부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서 천축(天竺)국으로 갔습니다.
스님은 천축국의 여러 고승을 찾아다니며 물었습니다.
“가장 빨리 불법을 이루고자 하면 어떠한 공부를 해야 합니까?”
“빠르고 흔들림 없이 불법을 이룰 수 있게 하는 데는 미타 정토 신앙이 으뜸이오.”
천축국의 고승들은 한결같이 미타 신앙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러나 혜일 스님은 미타 신앙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계속 천축의 여러 나라를 다니며 새로운 불법을 배우고자 했습니다.
마침내 건타라 국에 이른 스님은
도성의 동북쪽에 있는 큰 산속에 관세음보살상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갔습니다.
스님은 죽기를 각오하고 7일 동안의 단식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먹지 않아 기운은 갈수록 빠졌지만, 관세음보살상을 향해 일 배, 일 배 정성껏 절하면서
불법을 이룰 수 있는 지름길을 일러주실 것을 청하였습니다.
7일째 되는 날 마침내 관세음보살께서 자금색의 몸을 나타내어 보련화 위에 앉더니
손을 늘어뜨려 혜일 스님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대가 불법을 구하여 자리이타(自利利他) 자각각타(自覺覺他)를 이루고자 한다면
서방 극락세계의 아미타불을 염하도록 하여라.
미타 정토 법문은 그 어떤 방편보다 뛰어나느니라.”
말씀을 마치신 관세음보살님은 홀연히 사라졌고,
혜일 스님은 고국으로 돌아와 미타 신앙을 널리 퍼뜨렸습니다.
인도의 여러 고승이 한결같이 미타 신앙을 권하였을 때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혜일 스님은 오히려 관세음보살을 신봉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도 끝에 시현 하신 관세음보살께서는
미타 신앙이야 말로 가장 뛰어난 방편이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관음 당신을 더 믿도록 한 것이 아니라 아미타불을 믿도록 한 것입니다.
나아가 관세음보살께서는 나도 살리고 남도 살리고
나도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
이 길을 걷고 나도 깨닫고 남도 깨닫게 하는
자각각타의 도를 이루려거든 아미타불을 염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더는 미타 신앙에 대해 의심할 까닭이 없습니다.
틀림없이 미타 신앙은 현세와 내생의 행복을 함께 보장합니다.
그 어떤 신앙보다도 빛과 행복과 자유를 크게 가져다주는 값진 신앙이 미타 신앙입니다.
주저 없이 아미타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서십시오.
분명 아미타불의 빛은 나의 빛이 되고
지금 이 자리에서 극락을 내 것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 월호 스님 법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