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학교 후배가 전화를 했습니다. 서로 사무실이 가까와서 종종 전화로 약속하고 점심을 같이 먹는 터라 그날도 그런 일로 전화를 했겠거니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점심먹자는 이야기 전에 대뜸 "형, 요즘 글 잘 읽고 있어요" 하더군요. 속으로 뚱딴지 같이 뭔소린가 하다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교회상식 속풀이>(이하, 속풀이)가 생각났습니다. 충실히 신자생활하면서 교회의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은 친구인지라 속풀이에 올리는 글을 의미한다는 걸 눈치 챘습니다.
당연히 후배의 말이 격려로 들렸고, 고마웠습니다. 아들 녀석만 둘을 키우는 후배는 이어서 큰녀석이 벌써 중학교 2학년이 됐는데, 아직 첫영성체를 못했다고 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왔습니다.
첫영성체는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이 이성의 발달을 통해 이해력과 사리판단 능력이 어느 정도 생겨나는 시기인 만 9세 전후의 시기에 이뤄질 수 있습니다.
유아기 때는 부모님의 신앙과 의지에 따라 세례성사를 받은 것이지만, 아동기가 되면 신앙인으로서 무엇을 믿고, 실생활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교리를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일정한 기간의 교리교육 과정 안에서 당연히 성체와 성혈의 의미도 알게 되며, 교육기간이 마감되는 시점에서 영성체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제 후배 큰아들의 경우는, 초등학교 2학년 즈음에 첫영성체 교리반에 등록을 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녀석이 교리에 흥미를 못느낀 나머지 교육에 자주 빠지게 되었고, 급기야는 재미가 없다면서 투정을 부리는 바람에 적령기를 놓치게 된 것이지요.
제 소속 수도회의 공동 창립자인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께서는 특별히 어린이들에 대한 교리교육에 관심을 기울이라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녀석이 제 교리반에 있었다해도, 투정부리고 떼쓰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교리를 가르칠 수 있었을 거라고는 자신있게 말씀 못 드리겠습니다. 특히, 요즘 한국사회가 겪는 상황에서는 말입니다. 최선을 다할 수 밖에요.
특별한 경우는 일단 미뤄두고 일반적인 절차를 말씀드리면, 중학교 학생들의 첫영성체는 그 연령대의 청소년들이 모인 세례준비 교리반에 등록시키면 됩니다. 소속 본당 사무실에 세례준비반(혹은 예비신자 교리반)에 대해 문의하시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만약 본당에 청소년들을 위한 세례준비반이 개설되어 있지 않다면, 어쩔 수 없이 초등학생들과 어울려 세례/첫영성체 준비 교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중학생 아이가 너무 조숙해서 동생들과는 수준이 안맞는다고 하면, 성인 예비자 교리반에 등록시키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교리 담당자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제 후배 큰아들과 같이 나이가 들어서 첫영성체를 하게 되는 사람은, 세례 준비과정이 끝나고 교리반 동료들(자기보다는 다 어린 사람들이겠죠)이 세례를 받을 때, 세례예식만 빼고 영성체 예식을 함으로써 난생처음 영성체, 즉 첫영성체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대신, 그는 첫영성체를 앞두고 첫고백을 먼저 해야 합니다. 어릴 때는 몰랐지만 자라면서 자기가 어떤 삶을 지내왔는지 되돌아보도록 하고, 그것에 대해 난생 첫 번째 고백성사(요즘은 화해성사, 혹은 둘을 합쳐 고해성사라고 자주 불립니다.)를 통해, 주님을 모실 준비를 하는 것이지요. 고백성사에 대해서도 교리교육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제가 일반적인 절차로서 말씀드린 경우는, 아이가 예수님의 어린시절 모습처럼 부모님께 순종하며 지낼 때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살에 심각하게 당신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며 부모님과 동떨어진 채 사흘을 보내신 적이 있습니다(루카 2,41 이하 참조).
부모님 몰래 사라지셨던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사춘기 흔적을 볼 수도 있으나 유다사회의 전통에서 그 나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한 해를 더 보내고 열세 살이 되면 유다인 사내들은 율법을 준수해야 할 나이가 되며, '바르 미쯔바'(율법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라는 성인식을 치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바야흐로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느님 아버지와 깊은 대화를 시도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이들어서까지 부모에게 의존도가 높은 현대 사회에서 이 연령대의 소년소녀들에게 이런 진지함을 요구하는 것은 아무래도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에, 일반적인 절차와는 조금 달리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소년기에 교리가 재미없다고 심하게 투정을 부렸던 녀석을 상상해 보시는 겁니다. 아마도 녀석이 이제는 괴물이 되었겠지요?(어떤 기적같은 체험을 통해 믿음직한 아이가 되었다면 더 말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말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중학교 1-2학년은 거의 '외계인'으로 분류됩니다. 부모님과 사실상 소통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설득할 수 없다면 좀 더 철이 들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말은 들을 듯 한데, 교리반 참석에 대해 매우 까다로운 조건들을 나열한다면 본당 사제와 한 번 상의 해 보시기 바랍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본당 사제는 적잖은 부분에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기에 많은 도움과 조언을 해 줄 수 있습니다. 본당 사제가 양해를 해주고, 만약 부모가 어느 정도 교리를 가르칠 수 있는 역량이 된다면 집에서 일정 기간 교리교육이 이뤄진 후, 영성체를 할 수 있는 수준이 되는지 여부를 본당 사제에게 점검받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사항은 유아세례는 받았으나 첫영성체를 위한 교리를 받지 않은 채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분들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우리가 무엇을 믿고 살아가는지, 그래서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경험하는 '성사'의 의미에 대해서, 기도에 대하여, 교회 공동체 등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성체를 올바르게 모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첫영성체를 위한 교리에 대해 별 중요성을 기울이지 않았거나 아예 모른 채, 오랫동안 교회에 들르지 않았던 분이 회심하여 어느 주일에 미사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영성체를 위해 남들이 나가니까 따라나가서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서 영성체를 하게 되는 상황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사제가 눈치 못 챘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나중에 그 스스로 성사생활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면 교리공부를 시작하도록 권고합니다.
정교회처럼 유아세례 줄 때, 영성체까지 주면 좋을텐데, 로마 가톨릭은 성체의 의미에 대해 명확히 알아들은 후 성체를 받아모시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종 세례는 받았다고 하고 어른인데 성체를 못 모신다고 하는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성인들을 위해 속성 교리반을 마련해 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이 역시 본당 사제와 상의해 볼 일입니다.
아무튼 이런 특별한 경우는 우리가 좀 더 아이들의 신앙생활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줄어들 일입니다.
(짧은 후기) 그날 저는, 아침에는 후배의 질문을 받았고, 저녁에는 어떤 모임에서 다른 분들의 질문을 연속적으로 받았습니다.
제 미천한 지식과 경험으로 볼 때, 제 삶이 조금 더 바빠진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쩌면 독자들과 함께 '속풀이' 꼭지가 더욱 풍성하게 엮일 것이라는 장미빛 청사진을 그려보게 되었습니다.
게으른 신부를 일깨워 주시는 여러분의 질문에 감사드리며, 더 많은 분들이 관심가져 주시길 기대해 봅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