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람이
선종구
농번기 끝나고 빈 몸으로 훌쩍 떠나 닿은 밤은
진도 어느 바닷가의 포장마차, 여행자의 객수에 젖어
밤바다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여그 사람은 아닌 것 같은디,어디서 오셨스까?”
옆 테이블의 늙수그레한 여인네 셋이 말을 붙여왔다
“가까운 전라도에서 왔습니다” 우아하게 폼 잡은
내 고독이 방해받기 싫어 짧게 끊고 다시 술잔을
막 들려는데
“젊은 사람이 살아야제!”
“나 그런 사람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여
딱 본께 기구마, 잔 들고 이리 와보씨요”
“살다 보먼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는 것이제
항시 좋타요, 그런 맴으로 더 독하게 살아야제
젊디나 젊은 사람이!”
술잔은 연거푸 쏟아지고, 구절양장 같은 여인네들의
인생사가 펼쳐지고, 늦게 합석한 두 남정네의 파란만장
까지가 진도의 겨울 밤바다에 끝도 없이 이어졌다
공짜 술에 취한 나에게, 이담에 꼭 다시보자는 말과
함께 택시비까지 쥐어주며 그들은 떠났다
나는 그곳에 죽으러 가지 않았지만
다시 살아 돌아왔다
욕의 기원
싹아지 없는 새끼
싹수가 노란 놈
가장 대중적인 이 욕을 들을 때마다
농사꾼인 나는 씁쓸히
이 욕의 기원을 생각한다
싹아지는 벼의 이삭 목아지를 말하는 것이고,
싹수가 노란 것은 알맹이 없는
쭉정이에서 온 말이기 때문이다
싹아지가 없거나, 싹수가 노란 해는
배를 곯아야 하는 흉년인지라,
옛 사람들에게 이 욕은
욕 중에서도 큰 욕이었는데
이젠 욕하는 이도 뜻을 모르고
욕먹는 사람도 부끄럼을 모르니
들판의 죄 없는 나락들 보기에도
영 거시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