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비엔나로>
첫날: 부다페스트→ 비엔나 → 벨베데레 궁 → 쿤스트 하우스 → 필름페스티벌
둘쨋날: 쉔부른 궁전 → 왕궁 → 미술사 박물관
아침 일찍 숙소를 떠나야 했다. 유레일 패스를 구입하지 않아 타임테이블이 없었던 우리는 인터넷으로 미리 기차시간표를 알아보고 온 터였다. 빈 행은 8시 5분이라 6시 30분부터 일어나서 7시에 체크아웃을 했다. 역에 도착한 시간은 7시 35분. 보통 기차가 먼저 와 있는 법이었으나 아무리 둘러봐도 기차는 없고, 안내판에도 빈 행은 표시가 없었다. 순간, 얼마나 당혹스러웠던지!
부다페스트에는 서역과 동역이 있어서 가는 곳에 따라 출발역이 다르다. 우리가 간 곳은 동역이었다. 혹시나 서역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머리가 쭈뼛 섰다. 이번 기차를 놓치면 또 언제 기차가 올지 모르니까. 게다가 김옥귀 선생님은 우리보다 일찍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빈에서의 일정도 빠듯하여 기차를 놓치면 큰일이었다. 지하도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물어본 결과 동역이 출발장소인 것만은 맞았다. 옆에 있는 관광안내소를 찾아갔다. 우리 같은 관광객이 많은 듯, 입구에는 “이곳은 기차 안내소가 아닙니다.”라고 크게 써 붙여 놓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주 미안한 목소리로 기차 안내소는 어디냐고 물으니, 퉁명스러운 상황인데도, 전혀 그런 내색보이지 않고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매표소의 직원은 아가씨였는데 너무나 퉁명했다. 9시30분이라는 말만 하고는 끝이었다. 황당했다. 무슨 타임테이블도 없고, 몇 번 레일에 기차가 도착하는지도 알 수 없고, 나는 또 줄을 서서 이번에는 할머니 직원이 계신 곳으로 갔다. 그러자 할머니는 나의 두려움을 읽은 듯, 너무도 친절하게, 아직 몇 번 레일인지 알 수 없지만 보통은 7번 레일이고, 조금 뒤면 알 수 있으니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건네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 참으로 위안과 용기가 되는 법이다. 물가 비싼 부다페스트에 며칠 머무르면서 인상이 별로 좋지 않았던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첫날 만난 택시 아저씨, 안내 할머니 등 몇 분들은 부다페스트를 좋은 느낌으로 간직하게 한다.
시간이 한 시간 정도 남은 우리는 맥도널드에 가서 아침을 해결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돈으로 플랫폼에서 사탕과 과일을 샀다.
빈 서역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30분. 16일 만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한번 왔었다고 그래도 친근감이 생겼다. 우리는 먼저 Wombat유스호스텔로 가서 체크인을 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체크인이 안 된다는 것을 사정사정하여 겨우 했다. 기차역에서 만났던 까치네 아줌마의 안내지를 본 산들이 김밥을 먹고 싶다고 하도 성화여서 우리는 까치네로 갔다. 그곳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으로 식당도 겸하고 있었다.
인터넷에는 까치네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들이 있었지만, 기차역에서 만난 인자한 아줌마의 모습을 보니 전혀 그러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그곳에 도착한 순간 기대가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우리보다 앞서 기차역에서 만났던 한국인 가족이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음식이 너무 부실해 보였고, 우리가 앉았던 테이블에는 아이들이 그런 듯 크레파스 자욱이 곳곳에 있었으며, 쓰고 씻어 놓은 나무젓가락 통이 보였다. 게다가 식당이라기엔 너무나 삭막한 곳이었다. 지금까지 갔던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무성의함이 넘쳐 났다. 조금만 더 신경 쓴다면 빈을 여행하는 한국인들에게 청량제가 될 수 있을 텐데 참으로 아쉬웠다. 오랜 이국 생활에 지쳐서일까, 아니면 힘들어서일까? 프라하에서 만났던 한국관의 아줌마와 아저씨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우린 먼저 교통카드를 샀다. 김선생님은 24시간권을 나는 72시간권을 샀다. 그것으로 모든 교통기관을 다 이용할 수 있었다. 산들이는 무료였는데,비엔나에서 산들이는 모든 것이 공짜였다. 입장권은 가족권으로, 차비도 없고, 유스호스텔에서의 아침도 공짜. 산들이의 천국이었다. 12살 이하 어린이는 모든 것이 공짜란다.
교통카드들 사러 갈 때의 에피소드. 산들이가 개한테 물려죽을 뻔한 일이 있었다. 역 앞에는 술에 취한 노숙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개를 푼 것이다. 장난으로 그랬는지, 아니면 일부러 그랬는지, 나는 그 순간 표 파는 곳을 찾는다고 정신이 없었고, 산들이는 김옥귀선생님과 함께 걷고 있던 중이었다.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산들이는 물리니 않았지만 정말 큰일이 날 뻔 했다. 동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이라든지, 부랑자들을 만날 수 있는데, 그들 대부분은 개와 함께 있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동정을 얻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점이었다.
점심을 먹은 우리는 오후에 벨베데레궁과 쿤스트하우스에 가기로 했다. 먼저 트램을 타고 벨베데레궁으로 갔다. 서역에서 U3를 탄 다음 Stubentor에서 내려 트램 1번을 타고 Schwarzenber platz에서 D호선을 갈아타고 가야했다. Schwarzenber platz에서 트램을 기다리다 산들이가 하도 아이스크림 타령을 하여 맥도널드로 갔다. 산들이는 아이스크림을, 우리는 아이스커피를 마셨는데, 그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비엔나에서는 어디서든지 커피가 맛있었다. 물론 아이스크림도 그렇지만. 우리는 매일매일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엄청 먹어대었다.
벨베데레 궁전은 상궁과 정원 그리고 하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궁과 하궁이 완만만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상궁에는 19, 20 세기 회화가 주로 전시되어 있었고, 하궁에는 중세와 바로크 미술이 전시되어 있다. 따라서 상궁부터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나의 입장권으로 모두 둘러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입장권을 또 끊어야 하는 줄 알고 한 곳만 갔다 왔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우리는 상궁을 위주로 보왔는데,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들이 압권이었다.
쿤스트하우스는 화가이자 건축가인 훈데르트 바서의 미술관이다. 자연을 소중히 여겨 자연을 담은 건물을 지었다. 미술관의 전시작품, 미술관 안의 카페, 그가 지은 시영주택 모두 다른 건물들과는 확연히 차이 나는 알록달록하고, 구불구불한 건물이었는데 마음에 확 와 닿는 건물이었다. 산들이는 쿤스트하우스를 너무나 마음에 들어 했다.
이번 여행 중 산들이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것은 쿠스트하우스와 헬브룬 궁전이었다. 인간미 넘치는 조형물들이 산들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시청 앞에서 열리는 film festival에 갔다.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모두들 그곳에서 가족단위로, 친구끼리, 연인끼리 모여앉아 음식과 술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사먹기도 힘들었지만 우리도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인상적이었던 점은 일회용을 쓰지 않는 점이었다. 야외 테이블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들 서서, 또는 벤취에 앉아서 음료와 음식을 먹는데 모두 유리잔과 도자기 접시였다. 일회용이라고는 대나무 포크가 전부였다.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나면 되돌려 주기도 하고, 자기가 앉았던 의자 아래에 두면, 수거하는 사람이 쟁반을 들고 다니면서 수거해 갔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거의 일회용컵과 접시가 판을 치는 우리나라와 비교해 볼 때 이 나라 사람들의 환경지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모두들 피곤하여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 일찍 서둘러서 모두들 지친 것이다. 그날은 다음날을 위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김선생님과 함께 하는 마지막 날. 김샘은 다음날 아침이면 한국으로 가야했고, 우리는 비엔나에서 며칠 더 묵어야 했다. 우리는 왕궁과 미술사박물관, 슈테판성당, 쉔부른 궁전을 가기로 했다. 김샘은 비엔나숲을 가고 싶어 하셨다. 그곳에서 포도주 한잔을 하며 여유를 즐기고 싶어 했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먼저 왕궁으로 갔다. 왕궁의 정원에서 모자르트 동상 앞에서 사진 한 장을 찍고, 바깥에서 건물들만 보고 미술사박물관으로 향했다. 미술사박물관은 처음부터 박물관 용도로 세워진 건물이라고 한다.
미술사박물관은 유럽 최대 미술관 중의 하나로 소장 작품도 엄청나게 많았으며, 현관 홀의 천장화, 화려한 중앙계단 등이 유명했다. 우리가 작품을 감상하고 있을 때, 갑자기 안내 방송이 나오더니, 모두들 1층으로 내려가라고 했다. 무슨 일이지 영문을 몰랐는데, 알고 보니 소방 훈련이었다. 관람객이 많은 평일의 소방훈련이 황당하기도 했지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은 집 앞의 청도중국식당에서 먹었다. 곽샘부부가 적극 추천하셨는데, 안 가 볼 수가 없었다. 우리는 속이 풀리는 완당과 샐러드를 시켜서 먹었는데, 지금까지 먹어본 중국요리 중 최고였다. 산들이도 체기가 있고, 김선생님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호스텔에서 환영 음료 쿠폰 준 것으로 맥주를 한 잔씩 들고 와서 마시며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훈데르트 바서의 시영주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