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下惠爲士師 三黜 人曰 子未可以去乎 曰 直道而事人 焉往而不三黜 枉道而事人 何必去父母之邦 유하혜가 재판관이 되었다가 세 번 쫓겨났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대는 떠날 수 없었는가?"라고 하니, 유하혜가 말하기를, "도를 곧게 하고 사람을 섬기면 어디를 간들 세 번 내쫓기지 않을 것이며, 도를 굽히고 사람을 섬기려면 어찌하여 부모의 나라를 떠나야만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 士師 獄官 黜 退也 柳下惠三黜不去 而其辭氣雍容如此 可謂和矣 士師는 옥사를 담당하는 관리다. 黜은 물러나는 것이다. 유하혜가 세 번 쫓겨나고도 떠나지 않았으면서도, 그 말의 기운이 온화하고 용납함이 이와 같았으니, 가히 ‘성지화자(聖之和者)’라 일컬을 만하다. 魯齋王氏曰 舜命皐陶汝作士 士之名始見於刑官 周禮秋官司寇之屬 有士師之職 刑官曰士 其長曰師 故士師之下有鄕士遂士縣士方士訝士 皆掌獄詞者 노재왕씨가 말하길, “순임금이 고요에게 ‘너는 士가 되라’고 명령하였다는데, 士의 명칭이 처음으로 刑官에서 보였던 것이다. 주례 추관에 기재된 형법의 집행을 담당하는 관리의 무리로서 士師라는 직책이 있었으니, 刑官을 士라 불렀고, 그 우두머리를 師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士師의 아래에 향사, 수사, 현사, 방사, 士가 있었는데, 모두 獄詞를 관장하던 자들이었다.”라고 하였다.
○ 然其不能枉道之意 則有確乎其不可拔者 是則所謂必以其道 而不自失焉者也 그러나 도를 굽힐 수 없다는 그의 뜻에는 곧 확실히 그 뽑아낼 수 없는 것이 있다. 이것이 곧 이른바 ‘반드시 그 도로써 행하되 여기서 스스로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 胡氏曰 此必有孔子斷之之言而亡之矣 호씨가 말하길, “여기에 반드시 공자께서 그를 뭐라고 판단한 말이 있었을 테지만, 그것이 없어졌다.”라고 하였다. 問柳下惠三黜 雖可以見其必以其道而不失焉者 然亦便有箇不恭底意思 故記者以孔子兩事序於其後 觀孔子之事 則知下惠之事亦未得爲中道 朱子曰 也是如此 惟是孟子說得好 曰聖人之行 或遠或近或去或不去 歸潔其身而已矣 下惠之行 雖不比聖人合於中道 然而歸潔其身 則有餘矣 누군가 묻기를, “유하혜가 세 번 쫓겨난 일은 비록 그가 반드시 자신의 도로써 일하면서 그것을 잃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지만, 그러나 역시 곧바로 공손하지 못했다는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록한 사람이 공자님의 두 가지 일을 그 뒤에 편차했던 것입니다. 공자님의 일을 살펴보면, 유하혜의 일이 역시 中道가 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오직 맹자가 말한 것이 제일 좋은데, 성인께서 행하신 바는 혹은 멀고 혹은 가까우며 혹은 떠나고 혹은 떠나지 않는데, 결국 자신을 깨끗이 하는 것으로 귀결될 따름이라고 하였다. 유하혜가 행한 바는 비록 성인께서 중도에 부합하는 것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그러나 제 몸을 깨끗이 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에 있어서는 남음이 있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柳下惠三黜而不去 其言若曰苟以直道事人 雖適他國終未免三黜 若肯枉道事人 自不至三黜 又何必去父母之邦 觀其意蓋自信其直道而行 不以三黜爲辱也 此其所以爲和而介歟 若徒知其不去之爲和而不知其所以三黜者之爲有守 未足以議柳下惠也 未知是否 曰得之 누군가 묻기를, “유하혜가 세 번 쫓겨나고도 그 나라를 떠나지 않았는데, 이 말은 마치 ‘만약 올바른 도로써 사람을 섬기면 비록 타국을 가더라도 세 번 쫓겨남을 면하지 못할 것이고, 만약 도를 구부려 사람을 섬기면 저절로 세 번 쫓겨남에 이르지 않을 것이니 또 어찌 반드시 부모의 나라를 떠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 뜻을 살펴보면, 대체로 자신이 道를 곧게 펴서 행한다고 스스로 믿고 있고, 세 번 쫓겨나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지 않는 듯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잘 화합하면서도 기개가 있는 까닭이 아닐까요? 만약 그가 떠나지 않는 것이 和가 된다는 것만을 헛되이 알면서도, 그가 세 번 쫓겨난 것이 지키는 바가 있음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유하혜를 논하기에 부족한 것입니다. 이러한지 아닌지 알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잘 터득한 것이다.”
或問柳下惠仕而屢黜 黜而復仕 至於三黜而又不去焉 何也 曰 進不隱賢 必以其道 不以三公易其介 所以屢黜而至於三 降志辱身 援而止之而止 雖袒裼裸裎於我側 不以爲浼 所以黜而復仕 旣三黜而遂不去也 或曰 惠知直道之必黜而不去 然則其將枉道以事人乎 曰 不然也 惠之意 若曰我但能直道事人 則固不必去魯而適他國矣 其言泛然 若無所指 蓋和者之氣象如此 而其道則固自信其不能枉道而事人矣 是以三黜之後 雖不屑去 然亦意其遂不復仕 故孔子列之於逸民之目 혹자가 묻기를, “유하혜가 벼슬을 하다가 여러 번 쫓겨났고, 쫓겨났지만 다시 벼슬을 하였는데, 세 번이나 쫓겨나는 지경에 이르렀어도, 또한 그 나라를 떠나가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벼슬길에 나아가면 자신의 능력을 숨기지 않고, 반드시 그 道로써 행하였고, 三公의 벼슬로도 자신의 기개를 바꾸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누차 쫓겨나서 그것이 세 번에 이르렀고, 뜻이 꺾이고 몸을 욕되게 하더라도, 떠나지 못하게 붙잡으면 또 머물렀던 것이다. 비록 소매를 걷고 웃통을 벗어젖힌 나쁜 사람이 내 옆에 있더라도 나를 더럽힌다고 여기지 않았으니, 그래서 쫓겨나도 다시 벼슬을 했던 것이고, 이미 세 번이나 쫓겨났어도 마침내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혹자가 말하길, “유하혜는 곧은 道로 하면 반드시 쫓겨난다는 것을 알고서도 그 나라를 떠나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그가 장차 道를 구부려서 사람을 섬기려고 한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그렇지 않다. 유하혜의 생각은 마치 이렇게 말한 것과 같다. ‘나는 단지 곧은 도로써 사람을 섬길 줄만 아니, 그렇다면 본래 노나라를 떠나서 타국으로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말이 피상적하기 때문에, 마치 가리키는 바가 없는 것 같지만, 대체로 和者의 기상이 이와 같은 것이면서, 그 道에 관해서는 곧 본래 도를 구부려 남을 섬길 줄 모름을 스스로도 믿었던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세 번 쫓겨난 뒤에도 비록 떠나가는 것을 무슨 대단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지만, 그러나 역시 그가 마침내 더이상 벼슬을 하지 않기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공자께서는 그를 숨어사는 덕행이 높은 백성의 항목에 열거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柳下惠仕則仕黜則黜 而未嘗枉其道也 若枉道則害於和之理矣 至於孔子道不行父母之邦可以去而亦去 雖周行天下而未嘗苟仕也 則與下惠異矣 此篇記柳下惠於三仁之後以明其趨之一 下文又詳著孔子之事以見聖人之爲至矣 如楚狂耦耕荷蓧之徒 則陷於一偏而不足以知聖人者 夷齊之下 雖各得其道而未盡 其至者 終之以孔子之無可無不可 蓋於是無以加矣 此孟子集大成之意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유하혜는 벼슬하게 되면 벼슬을 했고 쫓겨나게 되면 쫓겨났지만, 일찍이 자신의 도를 구부린 적은 없었다. 만약 道를 구부렸다면, 화합하는 이치에 해가 되었을 것이다. 공자께 이르러서는,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부모의 나라도 떠날 수 있다 하고서 역시 떠났고, 비록 천하를 두루 다녔을지라도 일찍이 구차하게 벼슬을 한 적이 없었으니, 유하혜와는 다른 것이다. 이 편에서 유하혜를 세 분의 어진 사람 뒤에 기록함으로써 그 나아가는 방향이 동일함을 밝혔고, 아랫 글에서 또 공자님의 일을 상세히 드러냄으로써 성인께서 지극한 경지기 됨을 보여준 것이다. 만약 초나라의 미치광이나 밭가는 사람이나 삼태기를 멘 사람의 무리의 경우라면, 어느 한쪽의 치우침에 빠져서 성인을 알아보기에 부족한 자들이고, 백이숙제 아래로는 비록 각자 그 도를 터득하였을지라도 그 지극함을 다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기록자가 공자님께서 하신 ‘항상 되는 것도 없고 항상 안 되는 것도 없다’는 말로써 이 편을 끝맺음을 한 것은 대체로 여기에 더할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맹자가 말한 집대성의 의미다.”라고 하였다.
勉齋黃氏曰 列二章於篇首以見古人出處不同 亦各有義然後 著孔子之事以見聖人之出處也 면재황씨가 말하길, “두 장을 편의 첫머리에 열거함으로써, 옛사람의 벼슬자리에 들고남은 서로 다르지만, 또한 각자 의로움이 있음을 보여준 연후에, 공자님의 일을 드러내어 성인께서 벼슬자리에 들고남을 보여준 것이다.”라고 하였다.
洪氏曰 是時三家漸已用事 其於獄必有以私意行之者 禽不曲法以徇之 所以三黜也 然悅佞而惡直者 天下皆是 何必去哉 홍씨가 말하길, “이 당시에 三家가 점차 이미 권력을 부리고 있었기에 그들이 獄事에 있어서 사사로운 뜻으로 행하는 바가 반드시 있었을 것이지만, 유하혜는 법을 굽혀서 그것을 따르지 않았으니, 이 때문에 세 번이나 쫓겨났던 것이다. 그러나 아첨하는 말을 좋아하고 올곧은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러하니, 어찌 반드시 떠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柳下惠謂直道事人 焉往而不三黜 是欺天下無一君之可事 無一國之可往 此便是他不恭處 若夫子則歷聘侯國 何嘗以天下爲無可有爲之人 但惠辭氣雍容不迫而不枉道之意 自在其中 此所以爲聖之和也 胡泳嘗云 蚳䵷辭靈丘而請士師 士師在邑宰之下官小 可知惠三爲之不卑小官 可見三黜亦想因諫諍刑罰不中而然 쌍봉요씨가 말하길, “유하혜가 ‘도를 바로 펴서 사람을 섬기니 어디를 간들 세 번 쫓겨나지 않겠는가?’ 라고 말한 것은 천하에 섬길만한 임금이 하나도 없고 갈만한 나라가 하나도 없다고 업신여긴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공손하지 못한 부분이다. 공자의 경우에는 제후국을 차례로 찾아가면서 언제 일찍이 천하에 훌륭한 일을 할만한 사람이 없다고 말하신 적이 있었던가? 다만 유하혜는 말하는 기운이 온화하고 포용력이 있으며 급박하지 않아서, 도를 구부리지 않겠다는 뜻이 저절로 그 안에 들어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성인 중에 제일 잘 화합하는 사람이 된 까닭이다. 호영이 일찍이 말하길, ‘지와는 영구의 읍재자리를 마다하고 士師의 직위를 청하였는데, 士師는 읍재의 아래로서 관직이 작았다’고 하였다. 유하혜가 세 번이나 士師가 되었으니, 그것을 작은 관직이라고 비천하게 여기지 않았음을 알 수 있고, 세 번 쫓겨났으니, 또한 생각하건대, 형벌이 中道에 걸맞지 않다고 간쟁함으로 인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볼 수가 있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直道難容 雖他國皆然 枉道易合 雖吾國亦可 言終不能枉道而求合 則姑守道而不去也 其三黜不去 雖見其和 而不能枉道 則不失其介 可謂和而不流 强哉矯者矣 신안진씨가 말하길, “올곧은 도는 용납되기 어려우니, 비록 타국이라도 모두 그러하고, 도를 구부리면 영합하기 쉬우니, 비록 내 나라에서라도 또한 가능하다. 끝내 도를 구부려 영합하기를 추구하지 못한다면, 잠시 도를 지키면서 그 나라를 떠나가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가 세 번 쫓겨났어도 떠나지 않은 것은 비록 그가 잘 화합한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지만, 제 道를 구부릴 수 없었으니, 곧 그 기개를 잃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잘 화합하면서도 세속에 흐르지 않으니, 굳세구나! 그 꿋꿋함이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