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I Love NBA
 
 
 
카페 게시글
非스포츠 게시판 스크랩 소리주의 유럽 역사상 최고의 전략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OverTheHill 추천 1 조회 2,406 13.10.08 09:33 댓글 34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3.10.08 09:39

    첫댓글 잘 봤습니다 :)

  • 13.10.08 10:23

    헌법틀도 다지지 않았던가요?

  • 13.10.08 10:27

    법전 정비라든가 로제타석 해석 같은 깨알 같은 업적들도 많죠...

  • 13.10.08 10:30

    나폴레옹 키가 167정도라는데 사실인가여?
    장군치고는 작은키인데... 조조처럼 전력가이고 실제 전투는 참가안한 스타일이였나

  • 13.10.08 10:44

    160 초반일 겁니다.

  • 13.10.08 21:29

    167 정도인데 당대 프랑스 평균 따지면 작은 키가 아닙니다. 키가 작다는 오해가 생긴건 영국애들이 프랑스의 pied 단위를 자기네 feet 단위로 헷갈리는 바람에 작아진거죠.

    그리고 나폴레옹 전쟁 시기는 이미 대포를 이용한 포격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무슨 페르시아 전쟁 시절도 아니고 사령관이 최전방에서 칼들고 돌격하던 시기가 아니죠.

  • 13.10.08 10:42

    러시아로 쳐들어가지 않았다면 정말로 유럽 역사상 최고의 전략가로 평가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러시아 침공은 거대한 전략적 실수였죠. 대륙봉쇄령 또한 실패로 돌아간 전략이었구요. 나폴레옹은 전략에 있어선 전술만 못하다고 봅니다.

  • 13.10.08 16:39

    사실 러시아로 처들어가지 않았다면 영국이 경제적으로 먼저 망해서 나폴레옹의 생각대로 되었을겁니다. 당시 영국의 수많은 상가들이 봉쇄령때문에 파산하고 망했고 경제적으로도 위기가 찾아왔죠. 봉쇄한 프랑스와 그의 명령을 듣는 유럽국가들도 괴로웠지만 고립된 영국은 더욱 괴로운 상황이었습니다. 필요한 급한 물자같은건 해외식민지로 어느정도 때울수있지만 한계가 있었죠. 나폴레옹 최대의 실수는 결국 러시아 원정뿐 대륙봉쇄령 자체는 살을 내주고 상대의 뼈를 깎는데 성공하고 있었습니다.

  • 13.10.08 20:18

    대륙봉쇄령은 분명히 영국에게 큰 피해를 주었지만 유럽대륙에는 더욱 큰 피해를 주었습니다. 영국은 대륙에서 수입하던 식량이, 대륙은 영국을 통해 들여오던 원자재가 각각 부족해진 상황인데 영국은 식량을 식민지에서 들여오는 걸로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었지만 바다를 내준 대륙은 그게 안됐죠. 결국 러시아를 필두로 여러 유럽국가들은 영국과 밀수를 했고 심지어 프랑스에서조차 영국의 밀수품이 끊임없이 유통되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다 결국 러시아가 봉쇄령을 파기하고 영국과 무역을 공식적으로 재개했고 나폴레옹은 본보기를 위해 러시아 침공을 할 수 밖에 없었죠. 그냥 놔두면 모든 나라들이 러시아를 따라할 것이 분명하니까요.

  • 13.10.08 20:19

    즉 대륙봉쇄령은 나폴레옹의 몰락을 초래한 전략이며, 또한 애초부터 성공할 수 없는 전략이었습니다. 당시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영국과의 교역관계를 통한 국민경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프랑스 일국이 그 체제를 인위적으로 무너뜨릴 순 없는 거죠. 대륙봉쇄령이 성공하기 위해선 프랑스가 영국의 위치를 대신해야 했는데 당시 프랑스에게 이건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 13.10.08 21:20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나폴레옹이 그렇게 무리하게 진행하지 않고 차근차근 대륙봉쇄령에 반하는 나라들을 장악해 갔다면 어찌 되었을지 모르죠.

    대륙봉쇄령 당시에 나폴레옹에 반하던 국가들은 포르투갈, 스웨덴 정도였는데 원정 같은 무리한 행위 말고도 이 나라들을 충분히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스웨덴은 부하였던 베르나도트(이놈은 사실 부하라기보다는 웬수지만)를 통해서 나폴레옹 진영이 된 셈이었고 포르투갈은 스페인의 도움으로 제압한 상태였죠.

    영국에게 남은 건 러시아를 위시한 북해 무역 뿐이었는데 이조차 나폴레옹이 네덜란드를 합병하고 북해 연안을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위기에 봉착한 상황이었습니다.

  • 13.10.08 21:25

    영국이 당대 최고의 해군력을 가졌지만 북해의 좁은 특성상 연안 국들을 죄다 장악해버리면 러시아든 영국이든 버틸 수가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쓸데 없이 스페인에 욕심을 부려서 동맹국인 스페인을 자기 형에게 던져줬고 그 결과가 이베리아 반도 전쟁...엄청난 전력이 의미없이 스페인에 묶여 있어야 했으며 러시아를 고사시키기보다는 무리하게 한방에 밀어버리려는 러시아 원정의 무리수를 두어 버리죠.

    대륙봉쇄령을 선포할 당시에는 나폴레옹에게 충분히 승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식민지 수준으로는 절대 영국은 유럽 본토와의 교역 없이 버틸 수 없었던 반면 유럽은 자기네끼리 무역이 가능했으니까요.

  • 13.10.08 22:01

    우선 대륙봉쇄령은 영국과 대륙국가들간의 교역을 봉쇄하지 못했습니다. 밀수는 프랑스에서조차 활발히 이루어졌죠. 두번째로 영국은 남아메리카와의 무역을 활발히 성사시켜가고 있었습니다. 분명 영국이 대륙봉쇄령으로 받은 타격은 엄청났지만 영국을 경제적으로 괴멸시키기 위해선 대륙 또한 괴멸되어야 가능한 일이었어요. 특히 유럽 각국이 나폴레옹의 강권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관세장벽은 유럽을 요새화한 경제진영으로 나누었고 서로 대립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미 시대의 경제 상황은 '유럽 바깥이 막혔으면 유럽 안에서 해결한다'가 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 13.10.08 22:28

    또한 북해연안을 장악하려는 중에 러시아 황제의 매제가 다스리던 공국을 합병한 것이 러시아와의 충돌을 본격적으로 만들었단 점을 고려해보면 나폴레옹과 프랑스가 어떤 노력을 쏟아붓는다 해도 결국에는 유럽 전체를 봉쇄할 순 없었을 거란 생각을 하게 합니다.

  • 13.10.08 10:49

    베토벤의 "영웅"이 원제가" 나폴레옹" 이였다고, 세계사 시간에 들은적이 있는데.. 자세한건 모르겠고, 베토벤이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는 곡인건 맞는것 같습니다.

  • 13.10.08 13:28

    헌정하려 했다가 나폴레옹이 제위에 오르자 실망하여 취소했습니다.

  • 13.10.08 21:30

    전략이라는 개념이 작전술의 하위단계로서의 전략을 의미한다면 모를까 작전술을 포함하는 개념이라면 뛰어난 인물은 아니죠.

    커리어로 봐도 이집트 원정, 스페인 원정, 러시아 원정은 변명이 안되는 작전술의 삽질인데 차라리 나폴레옹보다는 프리드리히가 더 낫지 않나 싶네요.

    그리고 유럽 역사상 최고의 전략의 대가라면 만슈타인이 아닐까요?

  • 13.10.08 13:46

    동감합니다

  • 13.10.08 11:12

    잘 읽고가요~~

  • 13.10.08 11:29

    nasica란 분이 다음 블로그에 나폴레옹의 역사를 정리해 올려주고 계시지요. 지금 아우스터리츠까지 하셨는데 필력이 장난아닙니다. 들러보시면 재밌을 거에요

  • 13.10.08 11:57

    전쟁을 잘하는 전략가가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할까요?
    이순신이야 다른 나라의 침략을 전략적으로 방어한 장군이지만

    나폴레옹은 침략자 아닌가요.

  • 13.10.08 12:43

    위인전은위험한책입니다.저는 어릴때 나폴레옹 위인전 몇번이나보고 참멋진사람이구나하고 생각햇는데 전쟁광에 수많은사람들이희생됏겟죠. 어릴때 저런사람들 위인전기는 안읽는게좋다고생각합니다

  • 13.10.08 14:04

    정말 재능 있었던 사람이였던것은 맞는것 같습니다. 라플라스제자였는데, 군입대 한다고 했을때 그렇게 안타까워 했다고 하죠

  • 13.10.08 15:34

    재능만은 인정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나폴레옹 법전도 대단한 업적이니까요.

  • 13.10.08 15:36

    나폴레옹 잘 봤습니다.

  • 13.10.08 17:20

    나폴레옹은 전략보다 전술의 대가가 맞을듯.클라우제비츠의 말대로 전쟁의 신이죠.아서 웰즐리의 말 또한 나폴레옹의 위력을 나타내주고요. "보니 한 사람이 3만의 병력에 필적한다." 그리고 스키피오 광빠인 리델 하트조차 나폴레옹만큼은 스키피오와의 비교에서 애매한 태도를 보였죠.한니발.알렉산더 대왕조차 스키피오 발끝에도 못미친다고 했던 사람이....

  • 헐;;;;; 나중에 나폴레옹 쓰려고 했는데 ㅜㅜ 그리고 '유럽 역사상 최고의 전략가' 라는 제목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고대까지 다 포함시킬 경우 무적의 불패신화 알렉산드로스가 떡하니 있죠.

  • 13.10.08 20:31

    전 알렉산드로스도 카이사르에게 전략이란 측면에선 밀린다고 생각합니다. 알렉산드로스의 정복행을 보면 과연 알렉산드로스에게 최종적인 전략 구상이란게 있었을까?란 생각이 들어요. 병사들이 파업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인도까지 쳐들어가려 했는데 인도의 넓이와 기후등을 생각해보면 아무리 알렉산드로스라 해도 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의문이죠. 그에 반해 카이사르는 명확한 목표와 그를 이루기 위한 전략이 있었고 그를 완벽하게 수행해내죠.

  • 13.10.08 21:42

    동의가 안됩니다. 카이사르는 오히려 전략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던 장군이죠. 괜히 전쟁의 역사에서 몽고메리가 카이사르를 가루가 되도록 까는게 아니에요. 알렉산더의 경우 수백년 뒤에 트라야누스가 파르티아 원정을 떠났을때 알렉산더의 진행로를 그대로 따랐을 만큼 이론의 여지 없는 완벽한 진군로를 보였습니다.

    아무리 당시 페르시아가 정치적인 위기였다고 할지라도 알렉산더가 페르시아를 정복하는데 걸린 시간과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정복하는데 걸린 시간이 비슷할 지경입니다. 페르시아는 당시 세계 최강 문명이고 갈리아에는 나라라는 개념조차 없는 부족민들이 산개된 수준이었는데 말이죠.

  • 13.10.08 21:45

    갈리아 원정 당시 무의미한 호기심으로 브리튼 섬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 갈리아의 부족들이 재결집하여 반격당하는등 오히려 카이사르는 전략적인 면에서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죠.

    기본적으로 카이사르를 유명하게 한 알레시아 공방전조차 포위 자체는 카이사르의 의도였지만 이후 역포위 당하면서 앞뒤로 포위당한 위기상황이었습니다. 로마군의 전투력과 카이사르의 임기응변이 결국 승리를 이끌었지만 이건 전술적 승리지 전략적인 승리라고 보기는 어렵죠.

    카이사르는 전략적으로 뛰어나다기보다는 특유의 친화력과 천재적인 임기응변 능력이 뛰어났던 장군이라고 봅니다.

  • 13.10.08 22:46

    전쟁의 역사는 저도 읽어봤지만 몽고메리의 카이사르에 대한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책 자체가 자신이 이긴 롬멜을 과대평가하고 자신의 승리는 길게 서술하면서(2차대전 전체가 30여 페이지 분량인데 몽고메리 최대의 전공이지만 2차대전 젅체로 봐선 외곽부의 싸움이었던 알라메인 전투를 세 페이지 이상에 걸쳐 자세히 쓴건 참... ) 마켓가든 작전 같은 중대한 실패는 언급 자체를 거의 하지 않는 등 그닥 신뢰가 가지 않는 책이죠.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속주로 만든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를 완벽히 실행해냈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아마도 세계를 정복하려 했던거 같은데, 그건 언젠가는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목표가 아닐까요.

  • 13.10.08 22:46

    포루스왕을 격파하고 인도를 정복하려 했지만 인도가 얼마나 넓은지도 모르고 있었죠. 당시 인도엔 포루스왕이 다스리던 파우라바보다 훨씬 넒은 땅과 훨씬 많은 병사를 가진 왕국들이 여럿 있었고 지중해지역, 그리고 페르시아 지역과도 전혀 다른 기후까지 생각해보면 정말 너무나도 어려운 원정이 될 것이 분명했죠. 개인적으로는 병사들이 그 때 파업하지 않았다면 알렉산드로스는 인도에서 결국엔 패배를 맛보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13.10.08 22:54

    갈리아 정복과 페르시아 정복의 난이도를 비교하는 것도 달리 생각해보면, 분명 페르시아가 훨씬 더 문화적으로 발달한 선진문명이지만 어차피 병사들의 육탄전으로 전투가 결정되는 그 시대에 야만적인 갈리아인들이 전투에서도 더 쉬운 상대라고는 할 수 없죠. 왕을 없애고 귀족들의 기득권을 인정해주면서 중앙집권화된 왕국을 차지하는 것과, 작게는 수천 크게는 수십만에 이르는 수십여개의 야만스런 부족들이 어떤 중앙정치적인 기구도 없이 난립한 상태의 지역을 완벽하게 평정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어려운지도 생각해봐야 할 일이구요. 그리고 알레시아 공방전에서 앞뒤로 포위된건 카이사르의 의도였죠.

  • 13.10.08 22:47

    카이사르는 처음부터 로마군 진영의 앞뒤로 방어진지를 구축해놓고 알레시아를 구원하러 올 갈리아군을 기다렸습니다. 이것은 완벽한 전략의 승리죠.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