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거름에 나를 본다
김 난 석
해거름에 나를 본다.
허나 나는 나를 볼 순 없다.
하여 나의 그림자를 볼 뿐이다.
좁은 통로 따라 기다란 다리에 올라앉은 나약한 상반신.
머리는 차라리 육신이 지배하는 말초신경이라 해야겠다.
육신이 춤을 춤에 따라 불이 켜지는 신호등 같은 것.
추위 때문이라곤 하나 정적만 흐른다.
그림자 하나 지나가는 일 없이 창밖의 소음만 들려올 뿐
길게 늘어선 채 쳐 닫힌 문 안으론 저마다 자유의 안식(安息)을 취하고 있으리라.
미하일 엔데는 <자유의 감옥>을 써 자유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한다.
어느 사내가 악마의 농간에 빠져 수 천 개의 문이 달린 공간에 갇히게 되고
먹고 마시고 자고 배설하는 동물적 문제들은 그 안에서 모두 해결되지만
그는 그 곳을 빠져나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신의 전능함이 미치지 못하는 자유로운 곳이 없다는 걸 깨닫고
탈출을 포기하고 만다.
자유와 감옥, 그건 상반된 개념이다.
허나 안식은 그 양편에 모두 들어앉아 있다.
다만 의지의 자율이냐 타율이냐 로 갈릴 뿐이다.
학창시절에도, 군복무시절을 거쳐 직장생활 할 때에도
나는 규범을 지키기만 하면 됐었다.
자식들을 거느린 가정생활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두 자녀 출가하고 부부만 들어앉아있는 이제
둘 사이엔 규범이랄 것도 없다.
그렇다면 내 자유의지의 날개를 어디로 펴야 하나...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써 자유의 다른 속성을 일러주고 있다.
자유는 자유지만 그 이면엔 고독과 외로움이 붙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속박을 자초한다는 것인데
어느 집단에 스스로 예속되거나 커다란 시스템의 한 부품이 되어
고독을 달랜다는 것이다.
그것 말고는 자유의 적극적 가치를 찾아야 하는데
이 해거름에 기다란 다리를 끌고 어디로 간단 말이냐...
다리는 종아리, 대퇴부, 그리고 둔부 근육으로 구성된다.
어디를 갔었고 어디에 앉았었는지 그 근육세포는 모두 기억하고 있으리라.
저렇게 기다란 다리가 얼마나 험한 곳을 누비고 또 앉아 뭉갰기에
저렇게 기다랗게 늘어났는지...
생각해보면 상반신에 붙어있는 작은 머리통은 차라리 숨고 싶은 것이다.
니체는 인간정신의 세 단계 변신(낙타-사자-어린아이)을 이야기한다.
처음엔 사막의 낙타처럼 등짐을 잔뜩 싣고 가자는 대로 묵묵히 가다가
이런 속박을 모두 부정하는 사자의 포효단계를 거쳐
마지막엔 모든 걸 포용하고 철없는 어린아이가 되어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젠 낙타의 단계를 벗어나
무언가를 찾는 사자의 단계에 와있다 하겠지만
해거름에 무얼 찾는단 말이냐...
애덤 로비텔 감독의 영화 <이스케이프 룸(The escape Room) 이 있었다.
일정부분 부족함을 안고 살아가는 여섯 명의 남녀가
'방 탈출' 게임에 참여한다.
여섯 개로 구성된 방에 들어간 뒤에 제한된 시간 안에 힌트를 찾아내어
거기서 탈출에 성공하면 1만 불의 상금을 준다는 조건에 현혹되어
스스로 비밀의 방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첫 번째 방에 들어서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뜨거워지는데
가까스로 힌트를 찾아내어 두 번째 방으로 탈출하지만
아이스 룸(차가운 방), 업사이드다운 룸(상하로 흔들리는 방), 포이즌 룸(냉동 방),
일루전 룸(환각의 방), 크러쉬 룸(부숴버리는 방)을 거치는 동안
네 사람은 역경을 못 이겨 죽고 두 사람만이 살아 나온다는 스토리다.
살아 나온 두 사람은 미련이 남아서인지
게임회사에 다시 찾아가보자는 약속을 하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리지만
집에 돌아오는 내내 이 해거름에 자유를 담보하고 무엇을 노릴 것이냐?
아니면 제한된 것이나마 주어진 자유를 맘껏 누릴 것이냐를 두고
생각에 잠겨봤던 것이다.(2019. 3. 19.)
해를 건너 다시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는다.
올림픽 공원을 산책하고 나오다가 무슨 미련이 있었던지
다시 돌아서보았다.
긴 그림자가 나와 마주하자 한다.
잘가라는 것인가?
아니면 가지 말라는 건가?
무얼 흘리고 갔단 말일까?
그저 별 생각없이 바지의 왼쪽 주머니 한 번
오른쪽 주머니 한 번 만져볼 뿐이다.
야구의 신이라는 어느 야구감독의 제스쳐처럼 말이다.
하체나 잘 건사하자.
그리고 또 걷자.
맨 위 사진은 아파트 구내요, 가운데는 영화의 한 장면이요,
맨 아래는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앞에 선 필자이다.
첫댓글 남석님~
그림자 자신의 모습을 또한번 보여주고 있네요.
자유를 누리고 산 우리는 행복한 매일 매일을
줄겁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주 간 올림픽공원도 평화 스럽기만 합니다.
좋은글에 감사드립니다.
맞아요.
그 고마움을 느껴야겠지요.
올림픽 공원은
사계절이 아름다웁지요
평화의문 담으로 수북히 쌓인 가을의 은행잎은
환상 이드군요
그게 올림픽공원의 절경이기도 하지요.
난석님~
긴 그림자를 보니
우리네 삶도 저 그림자 처럼 길었으면 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2월의 끝 일요일 건강하게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선배님 늘 다양한
볼거리 마음의 양식
누군가 추구하는 삶에
나도 낑가고 싶은 이 마음
멋진 선배님
주일 행복하세요.
평화의문 앞에
선배님의 그림자
해그림에 길게 보이는 모습이
이후에 다시보면 더욱 정겨우리라 생각됩니다
휴일 멋진날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