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列國誌] 200
■ 1부 황하의 영웅 (200)
제2권 내일을 향해 달려라
제26장 여희, 신생을 죽이다 (8)
- 모든 대부는 입궁하라!궁정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서로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미 내궁에서 일어났던 독주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 올 것이 왔는가.한명 한명 대부들이 궁으로 몰려들었다.
양오(梁五)와 동관오(東關五)는 정청 한구석에 앉아 들어오는 대부들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하며
나름대로 계산을 하기에 바빴다.'호돌(狐突)과 이극(里克)’
양오와 동관오가 가장 껄끄러워하는 사람은 바로 이 두사람이었다.
호돌은 국구(國舅)이자 대신급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세자 신생의 어렸을 적 스승이요, 공자 중이의 외조부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반여희파가 아닌가.이극(里克) 또한 다리를 다쳤다는 핑계로 그동안 입조하지 않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 어떤 방해를 펼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어느새 넓은 정청 안은 입궁한 대부들로 가득 찼다. 그러나 끝내 호돌(狐突)과 이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순조롭게 마무리되겠군.“
양오와 동관오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누런 이를 드러냈다.그랬다.
그 날 진헌공의 소집령에 응하지 않은 사람은 호돌(狐突)과 이극, 그리고 비정(丕鄭)
이렇게 세 사람 뿐이었다.당상 위에 앉은 진헌공(晉獻公)은 분노의 빛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당하에 모인 백관을 둘러보며 카랑카랑한 음색으로 입을 열었다.
"세자가 반역을 시도했다.!“
".......................“
"독주를 보내 나를 죽이려 했다."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침묵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넓은 정청 안에는 여전히 진헌공의
성난 음성만이 울리고 있었다."그대들은 이 일을 용납할 수 있겠는가?“
".......................“
"나는 세자를 죽이겠다."
진헌공(晉獻公)의 말이 여기까지 이어졌을 때, 한 신하가 고개를 들며 큰 소리로 외쳐댔다.
"세자는 참으로 무도하기 짝이 없습니다. 신에게 군사를 내주시면 신이 주공을 위해 세자를
처치하고 돌아오겠습니다.“대부 동관오(東關五)였다.
진헌공의 눈길이 그의 얼굴에 가 머무는 순간 또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양오(梁五)였다."신도 주공을 위해 싸우겠습니다.“그 외에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진헌공(晉獻公)으로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대들의 충성스런 마음을 받아들이겠소.
병차 2백 승을 내줄 터이니, 동관오는 대장이 되고 양오는 부장이 되어 곡옥(曲沃)을 치고 돌아오라!"
호돌(狐突)은 이미 이극이 다리를 다쳐 입조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댔을 때부터 신생(申生)의
죽음이 바야흐로 눈앞에 닥쳐왔음을 직감했다.'지나치게 어진 것도 병!'
일찍이 그는 진헌공이 신생에게 동산고락씨를 정벌하라며 잡색의 옷과 금결을 내린 것을 보고
타국으로 망명하라고 권유한 바 있었다. 그때 신생은 고개를 저으며이렇게 말했었다.
- 불효와 불충의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남기고 싶지 않다.
내 어찌 죽음이 두려워 타국으로 망명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말을 듣는 순간 호돌(狐突)은 마음속으로 신생을 포기했다.
'어짊만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상대는 신생(申生)의 효와 충을 이용할 만큼 독한 마음을 품고 있는 여희(驪姬).
신생은 결코 여희의 독수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 모든 대부는 입궁하라!진헌공의 명이 떨어졌을 때 호돌(狐突)은 마침내 그날이 왔다고 생각했다.
'세자를 구하기엔 이미 늦었다.‘호돌(狐突)은 입궁을 거부했다.
대신 그는 몸이 날랜 가복 하나를 불러 밀명을 내렸다.
"지금 곧 곡옥(曲沃)으로 달려가 태부 두원관을 찾아뵙고 세자를 타국으로 도망치게 하라.
그것만이 살 길이다, 라고 전하여라.“호돌(狐突)은 이것으로써 자신의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201편에 계속
열국지 [列國誌] 201
■ 1부 황하의 영웅 (201)
제2권 내일을 향해 달려라
제26장 여희, 신생을 죽이다 (9)
호돌(狐突)의 밀사로부터 강성의 소식을 들은 태부 두원관은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주공께서 세자를 해칠 리 없다.‘
그는 호돌의 전갈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곧 사람을 보내 강성소식을 알아오게 했다.
- 동관오(東關五)와 양오(梁五)가 병차 2백 승을 거느리고 곡옥을 향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척후의 보고에 비로소 두원관은 경악했다.'어떻게 그런 일이.........?'
그러나 경악만 하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그는 즉시 신생(申生)을 찾아가 강성의 소식을 사실대로 전한 후 말했다."제사 지낸 고기가
엿새 동안이나 궁중에 있었다고 하니, 그동안에 여희(驪姬)가 독을 넣은 것이 분명합니다.
세자께서는 지금이라도 강성으로 달려가 주공께 사실대로 아뢰고 억울한 누명을 벗으십시오.
강성의 대부중에 어찌 세자를 돕는 신하들이 없겠습니까. 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신생(申生) 또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환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대접하던 여희의 얼굴이 눈앞에 선하게 떠올랐다.
그런 그녀가 자신에게 독살의 누명을 씌웠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신생은 분노의 마음보다는 의문이 더 앞섰다.'해제(奚齊)를 세자로 올리기 위하여?‘
그 날 밤 신생은 한숨도 자지 못하였다.많은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쳐갔다.
자신의 생을 돌이켜보았고,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다음 날 아침, 신생(申生)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태부 두원관을 불러 선언하듯 말했다.
"나는 강성으로 가지 않겠소.“
"................?“
"지난 밤 나는 '충과 효'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소.
진정한 충과 진정한 효란 무엇일까. 하고 말이오.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의 결론에 다다랐소.
나는 누명을 벗기 위해 변명 따위는 하지 않겠소.
내 아버지는 나이가 많이 들어 여희(驪姬)가 하루라도 없으면 살 수 없는 분이오.“
"......................."
"만일 내가 억울한 것을 변명하려다가 사실을 밝혀내지 못하면 아버님께 죄만 더 짓게 되는 것이오.
또한 설사 사실을 밝혀 누명을 벗는다 하더라도 아버님께서는 여희(驪姬)를 벌하지 않을 것이며,
공연히 마음만 상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을 밝혀내든 밝혀내지 못하든 나에게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소."
이렇게 말하는 신생(申生)의 눈에는 어느덧 맑은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두원관은 가슴이 아팠다."주공을 위한 세자의 충과 효가 얼마나 깊은지를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잠시 다른 나라로 몸을 피하시어 후일을 기약함이 어떠할는지요?"
"그것 역시 불가하오. 임금이 죄 없음을 알아주지 않고 나를 치러 군대를 보냈는데, 내가 그것을 피해
다른 나라로 달아난다는 것은 곧 죄를 인정한다는 뜻이오. 또한 내가 다른 나라로 가서 나의 억울함을
호소한다는 것은 모든 죄를 나의 아버님에게로 돌리는 것이 되므로
결국은 아버님을 욕되게 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내가 듣건대, 어진 사람은 임금을 미워하지
않으며, 지혜로운 자는 안팎으로 곤란을 받지 않으며, 용기 있는 사람은 죽음에서 달아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그렇다면 세자께서는...........?“
비로소 두원관은 신생(申生)의 결심이 무엇인가를 짐작하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렇소.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겠소. 이것만이 내가 아버님께 충성하고 효도하는 길이오.“
"안 됩니다. 그것은 여희(驪姬)만을 좋게 하는 일입니다."
"여희(驪姬)가 기뻐하고 아버님이 기뻐하면 그것으로 나는 족하오.
나는 이미 결심했으니 그대는 더 이상 나를 만류해도 소용없소.“
이렇게 말하고 세자 신생은 진헌공이 머물고 있는 북쪽을 향해 재배한 후 궁중 빈방으로 들어가
목을 매고 자살하였다.이때가 BC 656년. 진나라 연호로는 진헌공 21년 겨울의 일이었다.
이 해는 제환공 30년에 해당하는 해로서, 제환공(齊桓公)이 초나라를 원정하여 제, 초, 동맹을 맺은
해이기도 하다.여희(驪姬)의 음모와 세자 신생의 죽음을 그린 이 일화 역시 위(衛)나라 세자인 급과
공자 수의 죽음을 노래한 <이자승주(二子乘舟)>만큼이나 소설적이며 비극적이다.
너무나 소설적이라 꾸며낸 이야기가 아닐까 여겨질 정도이다. 기록도 정보 교환도 여의치 않은
그 시대에 과연 어떻게 이토록 정교하고 치밀하게 이야기를 보존할 수 있었을까?
역사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감이 새삼 두텁게 쌓일 뿐이다.
그러나 미리 말하면, 세자 신생(申生)의 죽음은 이제부터 하려는 이야기의 시작에 불과하다.
신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이제 후계 다툼은 세 공자로 줄어들었다.
이 다툼의 최후의 승자는 진문공(晉文公). 진문공은 제환공에 이어 두 번째로 패자(覇者)가 됨으로써
진나라를 일약 초강대국으로 끌어올리는 위업을 달성하는 인물이 된다.
동관오(東關五)가 군대를 이끌고 곡옥에 달도한 것은 신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지 이틀 후의 일이었다.
태부 두원관은 성벽에 올라 크게 외쳤다.
"그대는 돌아가라. 세자께서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
그러나 동관오로서는 신생의 시체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성안으로 들어가 신생의 싸늘한 주검을 보고서야 두원관의 말이 사실임을 알았다.
"그대는 신생의 스승, 주공 앞에 가서 스스로 죄를 청하라.“
전쟁을 벌이지 않고도 맡은 바 소임을 다한 동관오(東關五)와 양오(梁五)는 신바람이 나서
두원관을 체포해 강성으로 끌고 갔다."신이 곡옥에 당도했을 때는 세자가 자신의 죄가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알고 이미 자결한 뒤였습니다."동관오(東關五)의 보고를 받은 진헌공은
고개를 끄덕거리고 나서 결박당한 채 무릎을 꿇은 두원관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너는 어찌하여 세자를 잘 보필하지 못하고 간악한 암수로서 나를 죽이려 했느냐?“
두원관으로서는 기다리고 있던 물음이었다.
그는 두 눈을 부릅뜬 채 궁성안이 울릴 정도로 큰 소리로 외쳐댔다.
"이 두원관이 세자를 따라 죽지 않고 이곳으로 붙들려온 까닭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제사 지낸 고기와 술이 궁중에서 엿새나 묵었는데,
그 사이 간사한 것들이 독약을 발라놓은 것을 어찌하여 모르는가."
예상치 못한 두원관의 반항에 동관오(東關五)와 양오(梁五)는 얼굴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때 진헌공의 뒤편에 둘러쳐져 있던 휘장 속에서 찢어지는 듯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늙은 놈이 증거도 없이 말을 함부로 지껄이는데, 군후께서는 어찌하여 속히 목을 베지 않는 것입니까?“
여희(驪姬)의 음성이었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듯 진헌공(晉獻公)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격노한 어조로 명을 내렸다.
"저놈을 단번에 쳐 죽여라!“정청의 좌우에 시립해 있던 역사(力士)들이 일제히 두원관에게 달려들었다.
두원관은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두 팔을 양옆으로 크게 벌리고 역사들을 향해 다시 소리쳤다.
"쳐라! 나 또한 세자의 곁으로 따라갈 것이다.“
역사들이 휘두른 동추(銅鎚) 하나가 두원관의 머리통을 쳤다.
- 퍽!
수박 깨지는 듯한 소리가 정청 안을 울렸다.피와 뇌수가 섞여 사방으로 튀었다.
휘장 뒤의 여희(驪姬)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20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