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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야호♬ (lil_ili@hanmail.net)
친정 ★ 야호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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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빌려주세요!
Please, Lend me your name. <16>
“채수씨…….”
“아, 내가 깨웠나보군. 더 자도 돼.”
“어디 가려고?”
“밖에. 잠깐 나갔다 올 일이 있어서.”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 올려 맨살을 가린 여자가 아직 잠이 덜 가신 얼굴로 채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깔끔한 정장을 갖춰 입은 채수가 마지막으로 손목 시계를 채우더니
여자가 누워있는 침대로 다가왔다.
나 고급스럽소 하고 온 몸으로 외치듯 넓다 못해 운동장 같은 호텔은 여자와 채수가 심상찮은 관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다.
“조금만 기다려줘. 나 금방 준비 할게. 같이 나가.”
“여자의 금방은 기본이 한시간이라더니.”
“그건 한국에 있을 때 얘기지. 여기선 얼굴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냥 선글라스만 끼고 나갈래. 같이 가.”
“그래.”
채수가 짧게 대답하며 침대에 앉자 여자가 몸을 일으켰다. 물끄러미 채수를 바라보던 여자는 살짝 눈을 감으며 채수의
얼굴 가까이 다가갔다.
여자의 갑작스런 스킨쉽에 놀라는 기색도 없이 채수가 여자의 얼굴을 감싸쥐었다.
길지 않은 시간 짧은 입맞춤을 나눈 후, 채수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아침부터 담배야?”
“담배한테도 질투하냐?”
채수가 픽 웃으며 담배 연기를 입 밖으로 뱉어냈다.
여자는 뾰루퉁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 입기 위해 이불 밖으로 나왔다.
채수 앞에 고스란히 드러난 여자의 나체는 호리호리하게 말랐으면서도 말 그대로 나올 때 나오고 들어갈 곳 들어간
예의바른 몸매였다.
여자는 채수 앞에 자신이 나체로 서있다는 사실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지 옷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제 부끄러운 게 없군?”
“채수씨 앞이니까. 채수씨 이게 이뻐? 아니면 이게 나아?”
여자는 옷장 문을 열더니 안에 가득 차있는 원피스를 바라보았다. 모두 명품 라벨이 떨어지지도 않은 새 옷이었다.
물끄러미 여자가 들고 있는 옷 두벌을 보던 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의 옆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여자가 꺼낸 옷이 아닌 옷장에서 새로운 옷을 한벌 꺼냈다.
“이게 더 낫군.”
“내가 고른 것 중에서 골라주면 안돼?”
“입고 싶은거 입어.”
“벌써 골라줘놓고 치사해.”
여자는 귀엽게 채수를 노려보고는 채수가 건네준 옷을 들고 욕실로 걸어갔다.
채수의 옆에 서있어도 결코 작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장신의 여자는 새하얀 피부와 검은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유혹하듯
걸음을 옮겼다.
물끄러미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채수는 여자가 욕실로 들어가자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이윽고 채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번호를 찍더니 통화버튼을 눌렀다.
“어. 나다.”
- 형님! 아침부터 무슨 일이십니까?
“아침?”
채수는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두 시. 아침이라기엔 부끄러운 시간이었다.
픽 하는 웃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채수가 심드렁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뭐 좀 사갈까 하는데 뭐가 필요할까 싶어서.”
- 아, 뭐 쑥스럽게 그런 걸 다 사오십니까. 뭐, 그래도 굳이 사오시겠다면 저는……
“너 말고.”
- 예?
“나하인꺼.”
채수의 말에 핸드폰 너머의 상대방은 약 10초동안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았다.
상처를 받은 것인지 놀란 것인지 짐작할 수 없었지만 채수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한 얼굴이더니 이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침묵이 너무 길었다.
“이 새끼가 왜 말이 없어? 못들었어?”
- 형님! 너무하십니다. 제 선물은요?
“아, 알았어. 넌 뭐.”
- 전 메이드 인 재팬 써있는 거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형님! 제가 해외여행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흐흐.
“메이드 인 재팬 써있는 쓰레기 봉투라도 사다주랴?”
채수의 말에 건너편에 있던 상대가 컥컥거리며 놀란 듯 기침을 내뱉었다.
그러더니 목소리를 두어번 가다듬고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 그냥, 팬티 한장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사무실 녀석들꺼 다 사오실거잖습니까? 단체로 팬티라도 맞추죠 뭐 하하.
“그래. 그럼 나하인은.”
- 그건 한이한테 직접 묻는게 낫지 않을까요? 사실 뭐가 필요한지 딱히 잘 모르겠습니다.
“넌 포장마차에서 일까지 돕는 새끼가 그것도 몰라? 사무실 쉬는 동안 얼굴 좀 봤을 거 아냐.”
통화 상대는 아무래도 달수인 듯 했다.
채수의 말에 달수는 머쓱해진 듯 ‘흐흐 형님도 참’하는 말만 내뱉고 웃어댔다.
그러자 채수의 얼굴에 슬슬 짜증 섞인 주름이 자리잡더니 이윽고 채수가 말을 씹어 뱉은 말했다.
“웃지마 이새끼야. 변태같아.”
- 예! 형님.
“빨리 뭐가 좋을지 말이나 해.”
- 그냥 학생이니까 펜 같은 건 어떨까요? 그 일본펜이 비싸다던데, 그거나 한 세트 사다주시죠.
“펜?”
- 예, 형님.
“펜은 아무거나 쓰면 되지 까다롭긴. 알았어. 끊어.”
- 예, 즐거운 여행……
달수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채수가 전화를 끊었다.
채수가 전화를 끊자마자 욕실 문이 열리더니 채수가 골라 준 옷으로 갈아입은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간단하게 씻은 듯 했다.
“나가지.”
“근데 채수씨 무슨 일인데?”
“선물 좀 사다주려고.”
“사무실 사람들꺼? 그거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사다줘도 되잖아.”
여자의 말에 채수가 담배를 재떨이에 떨구며 시선을 돌렸다.
채수의 눈빛이 여자에게 닿자 여자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내뱉었다.
“알았어 알았어. 하여튼 사무실 사람들 끔찍하게 여기는 건 알아줘야 해. 나가자. 쇼핑하기 좋은 곳 내가 알아.”
여자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난 채수가 의자에 걸쳐놨던 정장 마이를 집었다.
슬림하고 길게 빠진 채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여자가 채수의 곁으로 다가와 다정스레 팔짱을 꼈다.
채수는 여자를 한번 쳐다보더니 이윽고 심드렁하게 말을 내뱉었다.
“이틀 후면 귀국이군.”
“응. 아쉽네. 채수씨랑 이렇게 일주일 내내 붙어있는 거 흔치 않잖아. 더 있고 싶다. 더 있으면 안돼?”
“안돼.”
여자의 물음에 채수는 새로운 담배를 꺼내 물며 별다른 기다림 없이 말을 내뱉었다.
여자는 채수의 대답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하여튼 당신은…….”
*
“우리 오늘 영화 보러 가자. 나 무진장 보고 싶은 영화가 생겼거덩.”
계획에 없던 모의고사를 치룬 덕에 학교가 일찍 끝나게 됐다.
예고도 없이 사설 학원의 모의고사를 학교에서 치게 하다니 왕 치사한 학교다.
느닷없이 치룬 모의고사 때문에 스트레스가 머리 끝까지 올라갈 지경이 되어 표정 관리가 잘 되지 않는 나와는 달리
수리는 모의고사따윈 아무래도 좋은 듯 영화를 보러 가자며 나와 사름이의 팔을 붙잡았다.
“영화? 무슨 영화?”
“이게 액션인데 스릴 넘치고 야하다고 소문이 자자하더라고.”
사름이는 수리의 제안에 관심이 있는 듯 수리의 설명을 열심히 들었으나 나는 두사람의 대화를 한 귀로 흘려보내며
묵묵히 가방만 챙겼다.
아무래도 저번에 본 모의고사 보다 성적이 떨어질 것 같았다.
요 근래 공부도 제대로 못했고 어쩐지 몸 상태도 뻐근해서 모의고사에 집중할 수 없었으니 결과는 불보듯 뻔했다.
“난 빠질래.”
“뭐? 그런 게 어디있냐! 야, 너 진짜 치사하게 군다.”
빠지겠다는 내 말에 수리가 버럭 소리부터 지르며 고개를 돌려 날 쳐다보았다.
아, 제발.
난 좀 쉬고싶단다 친구야.
“곽수학. 한이 몸 안좋아뵌다.”
“에이씨! 나 진짜 이거 보고 싶었다고!”
“아, 나랑 보러가 나랑. 내가 같이 봐줄게. 한이는 아픈 것 같으니까 그냥 둬라 좀.”
“내가 언제 귀찮게 했냐? 야, 손. 니 진짜 웃긴다. 한이만 친구냐? 앙? 내가 뭐라고 했는데? 내가 뭐! 내가 뭐!”
수리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쩌렁쩌렁 울리자 뇌도 흔들흔들 거리는 것 같다.
그냥 영화 보겠다고 할까? 그러고 극장에서 자버릴까.
어쩌지 하고 난처한 표정으로 수리와 사름이를 보자 사름이는 수리가 내뱉는 말을 곰곰히 듣더니 이내 박수를 짝 쳤다.
“뭐, 뭐야?”
“자 다들었다. 이제 나랑 영화 보러 가자 곽수학. 한이야 나는 수학이랑 영화보러 갈테니 집에 가서 바로 쉬어. 알았지?”
사름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자 사름이가 ‘집에 도착하면 문자해!’라는 말과 함께 수리의 손을 억척스레 이끌어
교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교실에서 나가는 순간까지도 수리가 ‘손 놔! 손 놔 이자식아!’라며 발버둥 쳤지만 아무리 수리라고 해도 사름이가
힘이 더 쎈지라 질질질 끌려나갈 뿐이었다.
마치 한채수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구나 하하, 하하하.
“으, 머리 띵해.”
마지막으로 시험지를 잘 챙겨 가방에 넣고 나서 교실을 빠져나왔다.
사무실을 다니는 동안 잊고 있던 내 신분이 뼈져리게 와닿았다. 그래, 나는 대한민국 고쓰리다 고쓰리. 빌어먹을.
제발 성적이 많이 떨어진 것이 아니길 바라며 계단을 내려와 교문으로 향했다.
“어라?”
교문으로 느긋하게 걸어가던 걸음을 천천히 멈추었다. 교문 앞에 서있는 슬림한 실루엣의 사내 때문에 한참동안
원래 가려던 길로 가야할지 아니면 반대쪽 교문으로 냅다 뛰어야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일단 내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당당해야 할 입장이기 때문에 원래 가려던 길로 정하고 다시 발걸음을
떼었다.
천천히 걷는다고 걷는 것이 머뭇거리는 걸음이 되어버렸지만.
“한이야!”
“아, 안녕하세요.”
교문에 서있던 사내도 그제야 날 발견한 듯 환히 웃으며 내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얼떨결에 나도 같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내뱉었다.
오른팔에 깁스가, 얼굴엔 덕지덕지 반창고가 붙어있는 꼴이 ‘한채수에게 개기지 말자’를 몸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한동이씨가 여긴 어쩐 일로……?”
그렇다. 교문 앞에 서있던 사람은 한동이씨였다.
이 사람은 춘계훈련도 안가나? 껄끄럽게 왜 여기에 와있는거지?
머뭇거리며 한동이씨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동이씨는 내 물음에 씨익 웃으며 내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절뚝거리는 것으로 보아 다리도 다친 것 같았다.
어디 멀쩡한 구석이라고는 한군데도 없구만?
“학교 일찍 끝났네? 다행이다. 사실 보충수업 같은거 하고 있으면 기다려야 할지 데리고 나와야할지 고민했거든.”
“아, 오늘 모의고사를 봐서요…….”
힐끔힐끔 한동이씨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내뱉자 그는 ‘아, 그렇구나’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다가 너무 격하게 고개를 끄덕여 목이 아팠는지 깁스한 팔로 목을 툭툭 내리쳤다.
저러다 목까지 부러질라.
“잠깐 시간 좀 내줄래? 나랑 밥 먹으러 가자.”
“네?”
“밥 사줄게.”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고 어쩐지 거절하면 한동이씨가 펑펑 울 것 같아서 슬그머니 그가 몰고왔을 차에 올라탔다.
다리도 절뚝거리는 양반이 어떻게 차를 운전했는지 모르지만.
차에 올라 안전벨트를 하고 나니 이 차가 한동이씨와 저번에 같이 탔던 차라는 것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한채수가 애인을 만나러 가는 바람에 한동이씨가 나를 집에 데려다주던 날 탔던 차…….
그날 내리기 바로 직전에 그 빌어먹을 부탁을 받아서 한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망할 놈의 돈!
“뭐 먹고 싶니? 먹고 싶은거 사줄게.”
한동이씨는 차에 타더니 낑낑거리며 안전벨트를 맸다. 힘겹게 안전벨트를 매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나둘씩 애들이 쉬지않고 빠져나오는 학교는 으리으리하게 큰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고기요. 전 원래 고기 좋아하잖아요.”
“고기? 그래, 가자.”
한동이씨는 그러면서 내 쪽을 향해 활짝 웃었다.
눈 주름이 지도록 활짝 웃는 그의 얼굴이 반창고들 때문에 미소를 다 드러내지 못하고 수줍은 듯 숨었다.
한채수한테 엄청 얻어터지긴 얻어터졌나보다. 얼굴이며 몸이며 성한 곳이 하나도 없구만.
에휴.
“……춘계훈련 안가셔도 돼요?”
아직 한채수가 일본에서 돌아오지 않았으니, 사무실 덩치들의 춘계훈련도 끝나지 않았다는 말인데 너무나 당당하게
차를 몰고 우리 학교로 온 한동이씨가 이상했다.
혹시 돈을 가로챈 그 사건이후로 사무실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한다던지……그런건 아니겠지?
서, 설마. 사무실 덩치들이 나이가 몇인데 유치하게 왕따를 시키겠어? 하하, 하하하.
……아냐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야. 유치하기가 하늘을 찌르고 유치뽕으로 쌈싸먹을 사람들이니까. 설마 진짜는 아니겠지?
“왕따……”
“우왁!”
“……는 아니고. 내가 다친 것 때문에 춘계훈련을 받을 수가 없어서 그냥 비상 인원으로 여기 남았어.”
“아, 그렇구나. 노, 놀랬잖아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왕따 운운하더니 능청스레 진짜 이유를 알려주는 한동이씨를 살짝 흘겨보았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하하 웃더니 창문을 내렸다.
지잉 하고 내려간 창문을 통해 시원한 사람이 쏟아지듯 흘러들어왔다.
“사무실 형님들 착한 거 알잖아. 그분들이 어디가서 누구 왕따시키고 그럴 위인도 아니고.”
“저도 알아요.”
그냥 걱정되서 혹시라도 왕따를 당하나 했던거지. 사무실 덩치들이 은근히 순수하고 착하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구.
내 대답을 끝으로 나와 한동이씨는 말을 더이상 내뱉지 않았다.
뭐 딱히 내뱉을 말도 없었고 머쓱한 분위기를 더 심하게 만들까봐 말을 내뱉을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동이씨는 무슨 생각에서 입을 닫아버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다왔다. 내리자.”
그가 운전대에서 손을 떼며 차키를 뽑았다. 한방에 시동이 꺼진 차 안에서 시선을 바깥으로 돌렸다.
깔끔하고 세련된 건물 앞엔 현수막으로 ‘(성인) 1인당 15,000원.’이라고 써있었다.
더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자 고기부페라는 네글자가 두 눈동자에 선명히 박혔다.
고기 먹고 싶다고 했더니 정말 실컷 먹으라는 소리군.
“앉아있어. 고기는 내가 담아올게.”
“절뚝거리는 다리에 깁스한 손으로 그런 말 해봤자 별로 와닿지 않는다는거 아시죠?”
내 말에 한동이씨가 그런가 라며 뒷머리를 긁적거린다. 옅은 한숨을 한번 내쉰 후 그와 함께 고기를 담기 위해 접시를
집어 들었다.
비싸다 라고 생각하며 들어왔던 가게는 가격값을 하려는 것인지 밑반찬도 아주 훌륭했고 고기 질도 괜찮은 것 같았다.
진열된 고기들을 보니 삼겹살이 절실하게 생각나서 그릇 가득 삼겹살을 담았다.
“……사실은 너를 어떻게 봐야할지 좀 고민했었는데, 채수 형님한테 전화가 왔어.”
한채수라면 일본에 있는데 국제전화라도 했나? 이 사람을 언제 이렇게 돈독한 사이가 된거지?
느닷없이 들려온 한동이씨의 말에 고기를 담다 말고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내가 고기를 담는 것을 보았는지 고기보다는 밑반찬 위주로 쟁반에 담고 있었다.
“너한테 꼭 사과하라고, 밥이라도 먹이면서 미안하다고 하라고. 그래서 밥먹이면서 사과하려고.”
“……그럼 얼른 사과하세요.”
고기를 담던 집게를 내려놓고 한동이씨를 향해 몸을 돌려 세웠다.
그는 당당한 내 태도에 환하게 웃으며 깁스한 손을 내 어깨 위에 얹었다. 윽! 무거워.
물끄러미 한동이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반창고가 다섯개는 너끈하게 넘길 정도로 덕지덕지 붙어있는 얼굴은 안쓰러웠지만
또렷하게 사람을 응시하는 그의 눈은 예전과 별다를 것이 없었다.
“미안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너까지 고생시켜서……미안, 미안했다.”
내 두 눈을 보며 한치의 흔들림 없이 말을 내뱉은 한동이씨는 마지막 사과를 내뱉고서 고개를 숙여 나에게 사과했다.
그가 마치 한채수에게 하듯 허리까지 숙여 사과했을 땐 식당에 있는 다른 사람의 눈치도 보이고, 아무래도 민망해서
그의 어깨를 붙잡아 얼른 일으켜야했다.
젠장. 이건 사과가 아니라 쪽팔림을 주는거라고!
“괘,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우리 얼른 먹죠? 하하, 하하하!”
한동이씨를 잡아 끌듯 얼른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내가 가져온 고기를 불판 위에 올려놓자 치이익 소리와 함께 고기가
익기 시작했다.
입 안에 침이 가득 고이는 것을 느끼며 한동이씨가 가져온 밑반찬을 주섬주섬 집어 먹기 시작했다.
“사실 오늘 몸도 너무 안좋고 마음도 싱숭생숭해서 집에서 쉬려고 했는데, 한동이씨 보면서 밥 먹으니까 쫌 낫네요 흐흐.”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샐러드를 집어 먹으며 말을 툭 내뱉자 한동이씨의 손이 허공에서 우뚝 멈췄다.
내가 이상한 말이라도 했나?
의아한 표정으로 한동이씨를 바라보자 그는 씨익 웃으며 고기를 뒤집기 시작했다.
노릇노릇 잘 익은 한쪽 면이 모습을 드러내자 허기가 더욱 강해졌다.
내가 원래 이렇게 밥 욕심이 많은 사람은 아닌데(……) 배, 배고파!
“고맙네. 한이가 아무렇지 않게 대해줘서.”
“뭐 그렇다고 제가 이미 다친 사람 상대로 발로 차거나 주먹을 날릴 수는 없잖아요. 사실 마음만 먹으면 벌써 때렸죠.”
“하하, 한이야 많이 먹어. 먹고 싶은 만큼 먹어야지.”
한동이씨가 그렇게 말하며 다 익은 고기를 잘랐다. 그가 먹기 좋게 잘라놓은 고기를 한점 집어 상추 위에 올려놨다.
상추 위에 올려진 노릇노릇한 고기를 보니 정말 느닷없이 한채수가 생각났다.
아마 애인과 오븟한 데이트를 즐기고 있을 한채수의 얼굴이 아른아른거려 얼른 상추쌈을 입 안에 넣었다.
한채수를 씹는 것처럼 고기를 한입한입 꼭꼭 씹었다.
맛있긴 맛있다.
……빌어먹을.
***
읽어주신 분들과 꼬리말을 달아주신 분들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비가 와서 더위가 잠시 주춤하네요. 잠깐이지만 본격적인 더위 전에 주어진 서늘한 바람을 마음껏 즐겨봅니다T_T
야호♬ 올림.
첫댓글 얼른 ㅋㅋ 다음편도 ㅋㅋ 기다리고 있었다구여!!! ㅋㅋㅋ
굿~!!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저여자 뭐야 -_- (일본여자) 괜찮아 괜찮아 진정해 저여잔 원나잇스텐드일꺼야. 무시해 무시해 약혼녀라도 상관없어 결혼할사람이라도상관없어
채수야!!!빨리 돌아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