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규 베네딕토 신부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티토서 2,1-8.11-14 루카 17,7-10
대부분의 고대 사회와 마찬가지로
예수님 시대에도 이스라엘에서 주인과 종의 관계는 종속적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열심히 일을 끝내고 돌아온 종에게 주인 자신이 먹을 음식을 먼저 준비하라는
주인의 모습은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또 모든 일을 마친 뒤에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복음서는 지금 우리가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주인과 종의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과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그 당시 주님을 위하여, 주님 뜻에 따라 사는 삶을 나타내는 적절한 비유가 주인과 종의 관계였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일하며 ‘누구를 위하여’ 행동할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종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일하거나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는 주인을 위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할 뿐입니다.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함께 생각해 본다면, 신앙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에게 중요한 것은 나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입니다.
세상의 화려함과 자기 자신을 포기함으로써 하느님께 더욱 다가서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느님을 ‘주님’으로 표현합니다. 겸손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런 삶의 태도는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우리의 선택으로 결정됩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종의 겸손과 순명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서울대교구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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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티토서 2,1-8.11-14 루카 17,7-10
「미사 통상문」에서 ‘공통 감사송 4’를 많은 신자분이 좋아합니다.
“아버지께는 저희의 찬미가 필요하지 않으나, 저희가 감사를 드림은 아버지의 은사이옵니다.
저희 찬미가 아버지께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으나, 저희에게는 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도움이 되나이다.” 이 감사송의 내용을 곱씹어 보면 겸손한 태도를 표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더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 감사송의 내용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이 주인을 겸손하게 섬겨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종은 종일 밖에서 일하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주인의 식사를 준비하고 시중드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종에게 고마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로 마무리됩니다.
그러면 공동체 안에서 봉사할 때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가짐은
어떻습니까? 인정받고 싶은 욕구,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 그리고 만일 이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밀려오는 섭섭하고 서운한 감정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만큼의 기도를 하였다면 하느님께서 하나만큼의 은총을 베푸셔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 일을 완성하시는 데에 반드시 우리의 찬미를
필요로 하시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봉사와 희생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데 보잘것 없을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라는 겸손하게 섬기는 신앙인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서울대교구 김상우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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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티토서 2,1-8.11-14 루카 17,7-10
예수님께서는 <복음>의 앞부분에서, 사도들이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루카 17,5)라고 말하자,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루카 17,6)라고 말씀하시면서
믿음을 양적인 개념이 아니라 질적인 개념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늘 <복음>에서는
율법을 잘 지켜 공덕을 쌓아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겠다는 인과응보사상과 공로주의에 젖어 있는
사도들에게 “종”의 비유를 통해, ‘겸손하게 섬겨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7,10)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일을 하고 그에 따른 보수를 요구하는 품꾼과는 달리
주인의 분부대로 일을 마치고서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 여전히 “쓸모없는 종”일뿐이라고 말하는
겸손히 주인을 섬기는 “종”에 비유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들은 “주님의 종”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그것은 우선 “분부 받은 대로”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보상을 받으려고 주인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종”으로 삼아주신 주님께 대한 헌신일 뿐입니다.
사실, “주님의 종”은 <이사야서>에서는 말하고 있는 ‘주님의 종의 첫 번째 노래’에서
‘주님께서 붙들어주는 이, 주님이 선택한 이, 주님의 마음에 드는 이’,
‘주님께서 주님의 영을 주는 이’(이사야 예언서 42장 1절)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에게 분부가 내려지고 사명이 주어집니다.
그를 신뢰하여 해야 할 일을 맡기는 까닭입니다.
그러니 “종”은 보상을 바래서가 아니라 오히려 감사하여 분부 받은 일을 수행할 뿐입니다.
그러니 먼저 해야 할 일은 “분부 받은 대로 다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야 할 일입니다.
여기서, “쓸모없는 종”이란 무익하고 불필요하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자신의 봉사가 전혀
보상이나 사례를 받을 가치가 없다는 의미의 겸손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한 일이 자신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주님께 대한 감사요 보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랑하려거든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분부를 주신 주님의 은총과 사랑을 자랑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먼저’ 자신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 신원을 정확하게 알고, 주인의 뜻을 따라
분부대로 살아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 속해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주어진 섬김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일입니다.
곧 “주님의 종”으로서 ‘자유로이 그리스도와 함께 주님의 거룩함에 참여하며
의로움으로 살아가는 일’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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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니, 주님!
오늘도 주님을 섬기는 일을 다 하게 하소서!
그러나 제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분부하신 대로 다 하게 하소서!
다 하였다고 해서, 교만하지 않게 하소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다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언제나 감사하게 하소서!
분부를 해 주심에 감사하고, 섬길 수 있도록 하심에 감사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 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 17,10)
그렇습니다. 주님!
분부 받은 일이 바로 제가 해야 할입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별하게 하소서.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비 본질인지를 알게 하소서.
부차적인 것보다 우선적인 것을 앞세우고,
무슨 일을 하든 당신의 뜻에 합당하게 하소서.
당신과 함께 사랑으로 일하고,
제 안에서 일하시는 당신을 찬양하게 하소서. 아멘.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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