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핵심기술 해외 유출 5년간 35건이나 관리 부실하다
국가연구개발혁신법 참여 제한, 사업비 환수 등 제재해야
보안과제 외국인 연구원 31명 중 사전 승인은 고작 3명뿐
산업통상자원부가 관리하는 산업기술 연구개발(R&D) 보안과제에 외국인 연구원이 참여하는 과정에서 사전 승인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연구원 31명이 참여한 보안과제 가운데 정상적으로 사전 승인 절차를 거친 사례는 3건에 그쳤으며, 나머지 28건은 사후 승인이나 대체 서류 제출 등으로 절차상 문제가 제기됐다.
국가핵심기술 해외 유출이 최근 5년간 35건에 달한 상황에서 산업부의 연구보안 관리체계가 허술하게 운영됐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기업의 인사 관련 결재문을 보안심의 증빙으로 인정하고, 외국인 연구원 참여 이후 수개월이 지나서야 승인 절차를 진행한 사례까지 드러나면서 보안과제 관리 전반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최수진 의원(국민의힘)은 11일 산업부와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보안과제 외국인 연구원 참여 현황 및 증빙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산업부가 보안과제의 외국인 참여 승인 절차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관련 실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부실한 답변과 자료 제출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 외국인 연구원 31명 중 28명, 사전 승인 절차 미준수
보안과제는 연구개발 결과가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안보나 경제·산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별도의 보안조치를 적용하는 과제다. 외국인 연구원이 참여할 경우에는 기술 접근에 따른 유출 위험을 사전에 검토하고, 관련 규정에 따른 승인 절차를 거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최 의원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연구원이 참여한 31개 보안과제 가운데 정상적인 사전 승인 절차가 확인된 사례는 3건(약 9.7%)에 불과했다. 나머지 28건(약 90.3%)은 사전 승인 미이행이나 승인 시점, 심의 증빙 등의 문제로 지적됐다.
산업부는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에서 승인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해 외국인 연구원이 과제에 참여한 뒤 사후 승인을 받은 인원이 16명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국립대에서는 외국인 연구원을 먼저 투입한 뒤 최대 10개월이 지나서야 서면심의를 진행한 사례도 확인됐다.
문제는 사전 승인과 사후 승인이 동일한 보안 효과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사전 심사는 연구원의 기술 접근 범위와 유출 위험을 참여 전에 검토하는 절차인 반면, 사후 승인은 이미 연구가 진행된 뒤 이뤄지기 때문이다.
최 의원은 산업부가 외국인 참여에 대한 사전 통제 원칙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한 데다, 관련 규정의 미비를 이유로 절차상 문제를 사실상 용인했다고 비판했다.
■ 대기업 인사 결재문을 보안심의 증빙으로 인정
대기업의 보안심의 절차를 둘러싼 논란도 제기됐다.
최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A대기업은 핵심 헬기 주기어박스 개발과제에 프랑스·영국 국적 연구원을 참여시키면서 정식 보안심의 회의록 대신 ‘조직(안) 대표이사 승인’, ‘해외전문가 채용 건’ 등 인사 관련 결재문을 증빙자료로 제출했다.
산업부는 해당 기업이 기관장 검토 절차를 거쳤다는 취지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의원실은 관련 규정의 예외 적용 범위를 일반적인 대기업까지 확대해 해석한 것 아니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산업부의 관련 규정은 정식 보안심의 운영이 어려운 중소기업 등에 대해 제한적으로 기관장 검토를 허용하는 구조다. 따라서 대기업이 정식 심의 절차를 생략하고 인사 관련 결재문으로 이를 대체할 수 있는지, 해당 서류가 실제 보안 위험을 검토한 결과를 담고 있는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보안심의는 단순히 외국인 연구원의 채용이나 과제 참여를 승인하는 행정절차가 아니다. 연구 대상 기술의 민감도, 접근 권한, 자료 반출 가능성, 참여 범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이다. 인사 관련 결재만으로 이러한 심사 기능을 대체했다면 보안심의 제도의 실효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적발 이후 과제는 제외 사후관리 실효성 논란
보안 절차 미준수 사실이 확인된 뒤 외국인 연구원을 과제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대응한 사례도 제시됐다.
최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B중소기업은 2026년 2월 회의록에서 산기평 실태조사 당시 외국인 연구원 승인 절차 미이행을 지적받았다며, 해당 연구원을 1차년도까지만 참여시키고 2차년도부터 전고체전지 개발과제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협약을 변경했다.
C대기업 역시 외국인 연구원을 승인 절차 없이 참여시켰다가 실태점검 이후 해당 인력을 과제에서 제외한 것으로 전해졌다.
과제 참여 제한이나 인력 변경 자체가 곧바로 위법한 은폐 행위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절차 위반이 확인된 이후 인력 제외만으로 사안을 종결했다면, 이미 진행된 연구에서 기술 접근과 자료 취급이 적절했는지, 추가적인 보안 사고 위험은 없었는지까지 확인했는지가 쟁점이다.
따라서 단순한 인력 교체나 협약 변경에 그치지 않고, 위반 경위와 연구자료 접근 이력, 자료 반출 여부, 보안조치 이행 실태 등을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부처별 규정 격차가 있고 국정원 통보 체계도 쟁점
부처별 연구보안 규정의 차이도 문제로 지목됐다.
최 의원 측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중소벤처기업부의 관련 규정에는 외국인 연구원 참여에 대한 연구보안심의와 승인 이후 국가정보원장 통보 절차가 명시돼 있는 반면, 산업부 규정에는 장관 보고나 국정원 통보 의무가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국가 지원 연구개발사업의 보안 수준이 소관 부처에 따라 달라질 경우, 유사한 위험을 가진 과제라도 심사와 사후관리의 강도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산업기술 분야는 반도체·이차전지·항공우주 등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기술을 다루는 만큼, 외국인 연구원 참여 심사와 보안사고 대응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산업부가 의원실의 1차 자료 요청 당시 보안심의 우회 실태에 대해 ‘해당 없음’이라고 답변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다만 해당 답변의 작성 경위와 자료 검토 범위, 고의적인 허위 보고 여부는 별도 확인이 필요한 사안이다.
■ 사전 심사부터 기술 유출 점검까지 전면 재검토하라
이번 논란은 외국인 연구원의 참여 자체보다 보안과제 관리체계가 사전 심사와 사후 통제라는 본래 기능을 수행했는지가 쟁점이다.
국가핵심기술은 해외 유출 시 국가안보와 국민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법률에 따라 지정·관리되는 기술이다. 최 의원은 최근 5년간 국가핵심기술 해외 유출이 35건에 이른다는 점을 들어 연구개발 단계에서부터 보안관리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의원은 “국가핵심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는 상황에서 이를 보호해야 할 산업부가 외국인 연구원 참여에 대한 사전 승인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며 “대기업의 서류 제출을 어떻게 심사했는지, 국회에 제출한 답변이 적정했는지 확인하기 위한 감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안규정 위반이 확인된 과제에 대한 전면 재조사와 함께 국가연구개발혁신법에 따른 참여 제한, 사업비 환수 등 제재 조치 검토를 촉구했다.
최 의원은 또 범부처 차원의 연구보안 지침을 마련하도록 하는 국가연구개발혁신법 개정안이 지난 1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며, 부처별 규정의 차이를 해소하고 국가정보원 통보 등 보안관리 절차를 일원화하는 통합 연구보안 기준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구개발의 개방성과 국제협력은 산업기술 혁신에 필요한 요소다. 그러나 보안과제로 지정된 연구개발사업은 기술 유출 위험을 사전에 평가하고, 승인 이후에도 접근 권한과 자료 취급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사전 심의가 서류상 절차로 전락하거나 위반 사실이 적발된 뒤 인력 제외만으로 마무리된다면 제도의 취지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번 사안을 계기로 외국인 연구원 참여 승인 기준과 예외 적용 요건, 심의 증빙의 적정성, 사후 승인 허용 범위, 위반 과제에 대한 제재 기준을 종합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보안과제의 신뢰성은 규정의 존재가 아니라, 연구 현장에서 그 규정이 실제로 작동하는지에 달려 있다.
*국가핵심기술은 해외 유출 시 국가 안보와 국민 경제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어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라 정부가 1급으로 통제하는 기술이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배터리), 우주항공 등 13개 분야 79개 핵심 기술이 지정되어 있으며, 이와 관련된 R&D는 무조건 ‘보안과제’로 분류된다.
(환경경영신문 https://ionestop.kr// 장계순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