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동문
산업공학과 유일 여교수…“1+1=2 일까요”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22호(2021.09.15)
이성주 산업공학과 교수
경영학 박사 딴 기술경영 전공자 “사회 도움되는 기술 예측하고파”
“제가 원래 좀 무덤덤한 성격이에요. 좋아도, 슬퍼도 특별히 달라지는 게 없죠. 그런데 그날은 가슴이 벅차 오르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9월 1일자로 서울대에 부임한 이성주(산업공학98-02) 교수의 첫 수업 소감이다. 이 동문은 현재 산업공학과의 유일한 여성 교수. 앞서 산업공학과가 주관하는 대학원 협동과정에서 2명의 여성 교수가 강의한 적 있지만, 학부에 적을 둔 여성 교수는 이 동문이 처음이다.
서울대에서 석박사 통합 과정을 마치고, 아주대 교수를 거쳐 23년 만에 서울대 산업공학과로 돌아온 그를 9월 6일 이삿짐도 채 풀지 않은 연구실에서 만났다. 이 동문의 서울대 첫 강의 과목이자 전공 분야는 ‘기술경영’. 한 마디로 미래 먹거리를 찾는 연구다.
“‘기술을 잘 경영한다’는 건 많은 걸 포괄합니다. 우선 미래를 예측하고,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판단해야 하죠. 그 기술을 어떻게 확보하고, 상품에 적용하고, 보호할지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고요. 의사결정자인 정부나 기업이 신성장 동력을 발굴할 수 있도록 좋은 데이터를 분석해서 지원해 줘야 하는데, 저는 그 데이터 분석방법과 결과물을 시각화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어요.”
기술 특허는 이 동문이 미래를 예측하는 창 중 하나. 그는 알고리즘을 이용해 특허를 분석하는 방법에 대한 특허도 여럿 갖고 있다. 기업이 꽁꽁 숨기는 기술 데이터가 유일하게 오픈되는 통로이기에 “발명자 수, 출원 기업, 다른 기술과의 관계 등 특허에 담긴 정보만 잘 분석해도 그 기술이 미래에 얼마나 유망한지 예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공학과의 전통적인 진로로 생산관리와 품질관리를 꼽지만 이렇듯 데이터사이언스, IT 등으로 영역이 확장되는 추세. 이 동문 또한 컨설팅 회사와 IT 붐 덕분에 취업 걱정
이 없었다. 그러나 “생산, 품질관리를 지망하는 여학생들과 상담해 보면 현장에서 여성을 선호하지 않는 것 같다며 고민이 크더라”고 했다.
“‘일단 문을 두드려보라’고 조언했죠. 생산 현장도 데이터 분석이 중요해지고 있으니 능력을 갖춰두면 기회가 있을 거라고요. 현장에 여쭤봤더니 다른 이유보다 기존에 남성 위주로 인프라가 구축돼서가 아닐까 싶더군요. 이제 현장도 IT시스템 기반이 돼서 성별 상관 없이 능력만 보겠다는 쪽으로 바뀌는 것 같아요. 조금 걱정을 덜어도 되겠다 싶죠.”
과학고 출신으로 남초 환경에 익숙한 그도 임신과 출산을 겪을 땐 의지할 멘토가 절실했다. “프로젝트 동료에게 임신했다는 얘기를 해도 될지, 연구실 운영은 어떻게 되는 건지, 고민할 게 너무 많은데 물어볼 사람이 없더라”는 것. 빠르게 발전하는 공학분야에서 뒤처질 수 없어 아이들 자는 아침에 일하고, 같은 일을 하는 남편의 적극적인 역할 분담에 힘입어 버텼다. “사실 산후조리원에서도 계속 일했다”면서도, 그런 모습이 바람직한 것처럼 비치는 것은 우려했다.
“제가 그렇게 했다고 다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되죠. 그때보다 여성 연구자의 출산과 육아를 지원하는 제도는 많이 생겼어요. 있어도 못 쓰는 제도라면, 있어서 쓰는 제도가 되도록 노력해야죠.”
‘공대의 경영학과’라는 말에 산업공학과를 택했고, 적성에 맞았다는 그는 “아무리 연구해도 부족하다”는 생각에 안식년을 이용해 2016년 영국 서섹스대 SPRU (과학정책연구소)로 진학, 경영학 박사학위를 따서 돌아왔다. 낯선 사회과학 분야 파고들랴, 어린 두 아들과도 떨어져 지내랴 고됐지만 기술경영 연구자로서 강점을 만든 셈이다. 그의 공대 수업에선 재무제표와 주식시장 보는 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기술경영 강의 첫 시간에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이 과목에는 정답이 없다. 주어진 정보를 가지고 최적의 결정을 내려주는 방법을 배울 것’이라고요. ‘1 더하기 1은 2’에 익숙한 공학도들에겐 어색해도 재밌는 경험인 것 같아요. 공학 하는 사람은 자기 분야를 발전시키는 훈련을 주로 받죠. 내가 발전시킨 기술이 다른 분야와 어떻게 조화될지, 경제적으론 어떤 이득을 가져올지 알 수 있다면 더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에요.”
20년 연구 여정에서 잊지 못할 기억 한 자락. “처음 논문이 국제 저널에 실렸을 때예요. 지도교수(박용태 명예교수)님이 연구실에 들어오셔서 ‘논문이 저널에 붙었단다. 축하한다’ 하시고는 쿨하게 나가셨죠. 내 연구를 처음으로 인정받은 순간이었어요. 교수님들의 수업내용, 조언이 아직까지 생생해요. 제 학생들에게도 저와 같은 기쁨, 특히 친구, 선배들과 서로 부대끼면서 뭔가 해내는 경험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어요.”
산업공학과 98학번 동기 46명 대부분이 단톡방에서 만나고 있다. 누군가 유튜브 영상에라도 등장하면 번개같이 링크가 올라오는, 와글와글한 공간이다.
“즐거운 추억이 많죠. 같이 프로젝트 하고, 광장에서 술 마시고, 당구장, 농구장 따라가서 응원하고…… 우린 20년 전과 똑같은데 학교는 카페랑 식당이 많아져서 놀랐어요. 저희 때 공대생의 주식이라면 ‘깡통식당’ 비빔밥과 제육덮밥이었거든요. 후식으로 커피우유 마시고 팩차기 하다가 수업 들어가는 게 코스였는데, 요즘도 그럴까요? (웃음).”
이 동문은 “아주대에서 앞서 계셨던 여성 교수님들이 잘해주신 덕을 많이 봤다. 처음 들어가는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며 서울대에 온 후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한국차세대과학기술한림원 멤버로 활동하면서 “미래를 예측하고 전략을 짜는 게 나의 일이라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기술을 예측해 보자”는 사명감도 생겼다. “‘잡초 같은 사람이 되라’던 지도교수님의 말을 늘 되새겨요. 어느 환경에서든 꾸준히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