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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참고말씀: 왕상19:4; 시42:5; 73:13,14; 잠24:10; 행20:22~24; 21:4,10~13; 28:18~20,30; 갈6:9; 빌3:15; 4:4; 몬1:9;
읽을말씀: 빌1:12~14
주제말씀: 빌1: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첫째, 내가 당한 일에 낙심치 말아야 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빌1:12 상)
살다보면 무엇을 당하기도 합니까? 뜻밖의 일, 곧 생각지도 못한 일입니다. 때로는 어떤 일을 겪기도 합니까?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보통 어떤 표현을 주로 사용하곤 합니까? ‘당한다’ 입니다.
또 어떤 경우에 ‘당한다’는 표현을 씁니까?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놓일 때입니다. 이를테면 고난당하다, 사고당하다, 사기당하다, 억류당하다, 구금당하다, 폭행당하다, 차별당하다, 외면당하다 등 말입니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됩니까? 낙담(落膽)하게 됩니다.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이 미약함을 보임이니라.”(잠24:10) /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시42:5 상) / “우리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갈6:9 상)
또한 실망하거나 자포자기(自暴自棄)하게 되고,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왕상19:4 상) 때로는 억울해하거나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합니다.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시73:13,14)
사도 바울의 경우는 어떤 일을 당했습니까?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의 감옥에 갇힌 일입니다.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몬1:9 하) /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행28:18~20)
물론 그의 경우는 감사하게도 전혀 뜻밖의 일을 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째서입니까? 성령께서 이미 사전에 여러 번 그에게 이와 같은 일이 있으리라고 경고하셨으며,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행20:22,23) /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행21:4) /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행21:10~12)
또한 바울 자신도 이미 수차례 각오했던 일이며,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 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행21:13)
무엇보다도 이 일은 자신이 자원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행28:18~20)
하지만 미리 인지도 하고 각오를 했어도 막상 구속되고 오랜 시간 동안 구금되어 있다 보면 어떤 마음이 들기 마련입니까? 낙심(落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당한 일 때문에 결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자신이 미처 다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攝理)를 인정하고 믿었기 때문이요, 또한 자신이 이해할 수 없을 때에라도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혹 우리도 예기지 못한 고난을 당했거나 뜻밖의 난관에 부딪혀있습니까? 그렇더라도 인간적인 생각으로 낙담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오히려 지금도 우리를 위해 그 크신 섭리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를 바랍니다.
둘째,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진전이 됨을 알아야 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빌1:12)
내가 당한 일이 우리를 퇴보(退步)시킨다고 생각합니까? 내가 당한 일이 내 인생의 흑역사(黑歷史 /주- 없었던 일로 치거나 잊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과거) 내지는 마이너스(minus)라고 생각되십니까? 그런 생각 자체를 내려놓기를 바랍니다.
어째서입니까? 오늘 본문이, 곧 성경이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당당하게 무엇이라고 고백했습니까? 자신이 당한 일, 곧 자신의 투옥이 오히려 복음 전파를 진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빌1:12)
어찌 된 영문입니까? 어떻게 그의 투옥 사건이 복음전파의 진전이 될 수 있었단 말입니까? 요즘 표현대로 말하자면, “하나님이 하나님 하셨다”, 즉 하나님께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방법으로 다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에는 천 명을 단위로 한 아홉 개의 보병대로 구성된 궁정 수비대(시위대)가 주둔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바로 죄수들을 감시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죄수들을 감시하였는데, 특이한 점은 죄수와 간수를 한 사슬에 묶어 두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 독특한 감시 방법 덕 뿐에, 바울은 2년간의 수감생활 동안 많은 간수들과 그 밖의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13절) 비록 투옥된 상태라서 밖에 나가서 전할 수 없었지만, 대신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간수들과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얼마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행28:30)
이를 통해서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인간적으로 관점으로 보면 위기(危機)이자 고립(孤立)이자 매임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위기가 아닌 기회요, 고립이 아닌 진전(12절)이며, 매임이 아닌 영향력(13,14절)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바울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입니다. 즉 갇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준비하신 새로운 기회를 만나는 중이었으며, 또한 매여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각지도 못한 기회들을 붙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영락없이 어딘가에 갇혀 있는 것 같습니까? 꼼짝없이 어딘가에 매여 있는 것 같습니까? 지금부터라도 생각을 달리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빌3:15 하)
갇혀 있다고 생각하면 꼼짝없이 갇혀 지낼 수밖에 없지만 그렇지 않다고 믿기 시작하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이며, 매여 있다고 생각하면 꼼짝없이 매여 있을 수밖에 없으나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갇혀 있으나 자유 했던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어딜 봐서 그가 수감 중에 있는 사람처럼 여겨집니까? 오히려 밖에 있는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자유하고 평안하고 기쁨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셋째, 내가 당한 일이 누군가에게 동기부여가 됩니다!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빌1:14)
내가 당한 일이 나에게만 진보가 됩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주변에 있는 사람들, 심지어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특정한 일에 대한 계기나 동기부여가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의 경우를 보십시오. 바울의 이 같은 전도 활동은 로마에 있는 다른 형제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는데, 그들은 바울은 이 같은 전도활동에 용기를 얻어 더욱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14절)
그러니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나 혼자서만 당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내가 당한 일이 오히려 누군가에게 선한 자극이 되고 또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더욱 용기를 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종종 우리가 당한 일을 누군가에게 선한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십니다. ‘이것 봐! 아무개도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해냈잖니! 너도 충분히 할 수 있어! 네 경우만큼은 예외일 것 같니? 전혀 그렇지 않아!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고 또 도와줄 테니 너무 염려하지 마렴.’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원망하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내가 당한 일이 오히려 누군가에게 도전이 되고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믿음으로 인내하고 잘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전까지 내가 당한 일이 우리를 퇴보시키고,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흑역사나 마이너스라고 여기면서 이 일에 대해 낙심하고 자포자기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당한 일에 낙심치 않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생각을 달리 하기를 바랍니다. 즉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진전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더욱 힘을 내고 용기를 내며 믿음으로 잘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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