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2.
니어재단, 『한국의 새 길을 찾다』 출판기념회 개회사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전 과기처장관
전 서울시립대총장
2022년이 간다. 1948년 건국 74년이 간다. 며칠 뒤 내년은 75주년이다. 건국 75년 대한민국은 세 가지 절정을 맞고 있다. 3중의 절정이다.
첫 번째 절정은 성공의 절정이다. 지금 안팎에서 모두 대한민국을 선진국이라 부른다. 이 나라 비판에 격렬했던 좌파 지식인들조차 정치민주화 선진국, 경제성장 선진국, 문화세계중심 선진국이라 부를만큼 성공선동을 합창하고 있다.
1876년 강화도조약, 강제된 한·일수호조약으로 개항, 문호개방이후 1953년 6.25전쟁 휴전까지 77년간 우리는 「절대상황의 비극」, 4개(청·일, 러·일, 2차대전, 6.25) 전쟁, 식민, 착취, 가난, 억압, 죽음, 분단의 고통을 견뎌야 했다. 그리고 1953년 ‘휴전’이라는 이름의 또 하나의 강제된 분단은 한반도 역사에서 처음으로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2022년 오늘까지 대한민국에 70년 평화를 주었다. 문호개방 이후 가장 긴 평화시간이다. 강제된 분단과 주어진 평화, 미국주도 세계질서의 자유개방 다원체제, 강제된 해양화의 파도를 타고 단군이래 처음으로 잠재된 대한민국 국민, 한민족, 한인(韓人)의 ‘개인재능요소’(Individual Talent Element-ITE)가 세계를 향하여, 세계를 무대로 분출하고 「코리안의 고동」을 울렸다.
강제된 개방과 평화, 주어진 해양화 질서 속에서 위대한 〈대한민국 근대화 혁명〉을 성취했다. 1945년 이후 독립한 150개 가까운 제3세계 국가 중 유일한 근대화 성취이며 선진국 근대화 과정에서도 찾을 수 없는 문명사적 기록이다. 후진국 중진국 강소국 중견국 global pivotal state(중추국)론을 넘어 이젠 통계로나마 세계중심국가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근대화 현대화 성공의 절정을 보는 듯하다. 이 절정의 순간, 26년 뒤, 며칠 뒤면 25년 뒤, 대한민국 100주년을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맞이할 것인가.
우리는 성공의 이 절정에서 또 하나의 절정을 체험하고 있다. 역(逆)성공, 역성장, 반발전(counter-development), 반근대화-‘도착(倒錯)적 근대화’ 기록의 절정이다. 현재 세계 비교에서도 1등기록일 뿐 아니라 인류역사상 유일한 기록―저출산율, 고령화, 인구감소속도, 낙태율, 성형수술율, 고소 고발 무고건수……. 인륜에 부끄럽고 우리가 과연 유교전통 가족문화인가 의심스러운 국제비교에서 특출한 존비속 살인상해율, 고아수출, 돈가치 최고, 사회신뢰지수 최저……. 그리고 우리가 매일같이 보고 겪고 있는 이념 계층 노사 교육 지역 세대 젠더의 7대 갈등과 분열……. 특히 적전분열. 36세 김정은과 여동생 김여정 막말에 쩔쩔매는 대한민국.
너무나 허망하고 맹랑한 기록들이다. 그 어느 선진국 후진국에서도 찾기 힘든 특이한 이들 역발전, 역성장, 도착적 근대화 현상은 대한민국 근대화과정의 특출한 초(超)고속 압축성장이 안고 있는 극단적 양극성 단절성의 ‘극성’스러운 전개 때문이다. 대한민국 특유한 성공의 절정에 이르는 과정에서 동반될 수밖에 없는 도착적 근대화, 가장 ‘대한민국적 절정’이다. 근대화 현대화 본고장인 서양에서는 물론 같은 문화권인 중국 일본 베트남 북한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극단 단절 현상이다.
나는 이 도착적 근대화 현상을 ‘실패’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이를 어떻게 미래에 정리 수용하느냐에 따라서는 다른 선진 후진국들에서 볼 수 없는, 앞장선 귀중한 경험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성공의 절정과 반근대화 도착(倒錯)의 절정은 이제 대한민국의 주역들에게 이 두 절정을 모두 냉철하게 정리 반추 수렴 발효 승화하여 새 가치 새 이념 새 체제로 대한민국을 재창조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근대화혁명〉과 도착적 근대화를 녹이고 승화하여 지구촌 중심되는 제2의 대한민국 되고 새 문명사적 위기와 대전환기 지구촌 인류 새 삶의 길을 개척 개벽 부활하여 새 문명의 선구자 되라는 천명(天命)으로 받아들이자 호소하고 싶다.
이 천명의 명제는 대한민국이 맞고 있는 또 하나의 절정, 세 번째 절정과 부딪쳐 더욱 선명히 대한민국의 새 길, 피할 수 없는 새 길 개척을 재촉하고 있다. 세계 근대화 역사에서 가장 빠른 초고속 성장으로 발전과 역발전의 2중 절정에 이른 순간. 우리는 공간과 시간에서 훨씬 여유로운 앞선 선진국들보다 더 빨리, 더 앞서 근대 현대의 종말과 환경재앙이라는 지구촌 인류문제군을 선두에서 맞고 있다. 3중 절정이다. 대한민국이 77년의 절대고통과 70년의 평화를 거쳐 〈대한민국 근대화 혁명〉이 성공한 이 순간. 대한민국뿐 아니라 세계는, 지구촌 인류는 지난 500년의 근대·현대를 거부하는 문명사적 위기, 복합위기에 맞부딪쳤다.
우리가 그리도 이상으로 생각했던 근대적인 것 현대적인 것―가치 제도 기능이 바로 청산 정리 전복 폐기되는 문명사적 대전환이다. 마틴 루터도, 미국 독립혁명도, 프랑스혁명도, 영국의 왕실도, 산업혁명도, 세계화도, 칼 마르크스와 마오쩌둥도, 윌슨도, 간디도, 아타튀르크도……. 소비가 미덕이 아니라 악덕이 되고 현대의 편리와 안락을 위한 에너지와 쓰레기가 미래세대 삶을 훔치는 온실효과 기후온난화의 주범이 되었다.
영구적 위기(Perma Crisis), Perfect Storm, No Normal, digital democracy 아닌 digital dictatorship, digital populism의 전개를 보면 이른바 4차산업혁명과 singularity point의 도래가 과연 Homo Deus(신이 된 인간)을 만들 것인지 의심스럽고 오히려 useless people(쓸모없는 인간)의 폭증과 Homo sapiens의 종말을 재촉하는 것은 아닐까. 인류의 생존 자체에 의문을 던지게 된다.
근대 현대에 성공한 나라일수록 근대 문명의 쓰레기, 현대 문명의 잔여(residual)를 가장 많이 치워야하는 문제에 부딪쳤다. 대한민국은 근대화혁명 성공의 절정에 이른 이 순간 이 지구촌 근대문명문제군(global problematiques)을 가장 첨예하게 떠안게 되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무거운 고뇌와 엄숙한 원망 앞에 망연자실하게 된다. 우리는 근대화에 가장 성공했기에 현대의 편리 복지와 낭비가 만든 쓰레기와 재정의 빚을 가장 빠르게 후세들에게 무거운 짐으로 넘기고 있다.
2048년 지금부터 25년 뒤 대한민국의 100주년에 지금 이 자리 우리는 후세에 어떤 답과 길을 주고 떠날 것인가. 대한민국은 근대화에 특출하게 성공했고 특출한 방식으로 성공과 도착을 겸전했기에 지구촌 인류문제군도 가장 앞장서 첨예하게 맞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AI, Bio, Digital 미래 첨단과학기술 산업에서 미국 중국 EU 일본과 더불어 참여하는 제3세계 유일한 나라, 유일한 인구 5천만 중간규모 국가이면서 동시에 물리적 생존조건은 이들에 비하여 처절하게 취약한 국가이다. 생명자원(에너지와 먹거리)의 실질적 자립 없는 선진국은 없다. 대한민국같이 에너지와 먹거리를 적나라하게 외국에 의존하는 선진국은 없으니 이점에서는 여전히 우리가 후진국 취약국가인 것이다.
안보조건은 북한의 핵과 ICBM이 완성단계에 접어들고 일본마저 전수방어 헌법 사문화하고 반격 군사능력 보유국으로 전환(2022.12.16.)했으니 미중갈등과 더불어 대한민국으로서는 6.25전쟁 이후 최악의 안보환경이다. 프란시스코 교황이 ‘작은 3차대전’이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요사이는 핵전쟁까지 언급하는 ‘3차대전’의 소리가 심상치 않게 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다음 차례가 대만과 한반도라고도 한다.
굳이 통계를 인용할 필요도 없이 대한민국의 footprint와 bio-capacity는 국가순위에서 가장 나쁜 카테고리와 기록의 나라 중의 하나이며 이른바 선진국 중에서는 유일한 나라이다. “Highway to Climate Hell”(UN 사무총장 표현)로 가장 빨리 앞서 달리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제 대한민국에서의 삶의 조건, 「‘대한민국 문제군’은 지구인류문제군을 가장 앞서가는 선구자」의 삶이며 「이 땅에서의 삶은 곧 80억-100억 인류지구촌문제군 진앙지에서의 삶」이 되었다. 유발 하라리의 표현으로는 ‘인류딜레마가 가장 농축된 지역’에서의 삶이다.
이제 1876년 개화에서 2022년 146년간의 시간―성공 역성공의 화려한 두 절정 위에 새로 2050년을 향해가는 지구촌 기후온난화 참극……. 인류지구촌문제군의 절정까지 맞게 되었다. 세 가지 절정을 함께 맞았다. 3중절정이다. 우리 안의 두 가지 절정을 소화 수렴 승화할 시간도 주지 않고 보다 복잡 복합 거대한 지구촌문제군의 격랑에 맞부딪쳤다.
이 냉엄하고 엄숙한 도전, 왜 이 현대문명 쓰레기치우기의 거대한 인류생존문제군의 도전을 70년의 평화밖에 누리지 못한 대한민국이 가장 앞서 맞게 되었는지. 하느님을 원망하게 되지만 이 또한 대한민국의 극성스러운 성공과 도착적 근대화의 자업이라 평가한다. 아니 오히려 이 지구촌 인류의 문명사적 대도전을 극복 새 문명을 창조하라는 천명(天命)의 기회이기도 하다. 한인 대한민국이 이 땅의 역사이래 반복된 반도의 단절성 분단성을 극복하고 처음으로 반도의 중심성 가교성 균형성을 발휘하여 세계의 중심으로 도약하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문호개방이후 146년간 ‘강제된’ ‘주어진’ ‘모방적 혁신’의 성취가 아니라, ‘목표가 주어진 추격’의 길이 아니라, 목표와 혼과 가치와 체제를 스스로 창조하는 길이다. 절정의 고비에서 끝과 새 시작, 버림과 창조, 죽음과 부활을 스스로 결단하는 자립, 자성(自成), 자강(自强)의 길이다. 더 이상 미국, 중국, 유럽, 일본 배우기를 우선하지 말자. ‘우리’ ‘이 땅’에서의 삶의 문제군해결에 온 국민, 지도자, 엘리트, 국가공동체가 지극한 간절함으로, 지극한 정성으로 이 천명으로 주어진 명제, 새 삶의 길, 대한민국의 새 길 찾는 것이다.
지구촌 인류문제군 해결의 열쇠를 찾을 수 있는, 세계의 중심 새 문명 창조자가 될 수 있는, 단군이래, 근대 시작된 이래, 건국이래 최초요 어쩌면 유일한 기회이다. 이 땅, 대한민국 문제군 해결 그리고 후대의 평화와 안녕을 지극한 간절함과 정성으로 천착하는 것이다.
근대 현대 500년의 종말과 호모 사피엔스 종말의 위험까지 극복해야하는 지구촌 대체문명 창조. 이 위대한 소명의 작업은 지극한 보편윤리(global ethic) 보편적 도덕(사랑 인의 자비) 그리고 보편적 가치(자유 평등 공동체)에의 강고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대한민국은 불교 유교 기독교라는 동서양 세 종교를 두루 섭렵하고 삭힌 이 지구상 유일한 다종교 수렴국가요 국민이다. 미국도 유럽도 중국·일본도 중동도 아프리카에도 북한에도 그런 경험 없다. 한인, 대한민국이 과거의 주어진, 강제된 역사를 극복하고 새 가치 새 윤리를 개척 창조하려는 자강의 뜻을 세우고 그 뜻을 간절함과 정성으로 키워간다면, 즉 대한민국이 맞고 있는 세 가지 절정, 3중의 절정을 모두 반추 수렴 승화시켜 불교 유교 기독교를 넘는 새 가치 새 영혼 새 윤리의 새 문명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을 〈한교(韓敎)〉라 부를까. 탄허교(呑虛敎)라 부를까. 그것이 탄허스님이 이르는 개벽의 길이고 기독교에서 이르는 부활의 길이고 ‘2050년 한국 서울이 아시아태평양연합의 수도(J. Attali)가 되는 길이다. 세계의 중심, 새 문명창조의 길이다. 불교의 원효, 유교의 퇴계 율곡,천주교의이승훈 김대건 배출한 역사지닌 대한민국에서 21세기형 석가와 공자와 마틴 루터가 나와야한다. 나오도록 힘써야한다
대한민국판 21세기 세계적십자운동 또는 DMZ 세계평화지대(Global Peace Zone, ‘GPZ’), Highway to Climate Hell을 멈추게 하는 K-환경, K-기술 그리고 지도자 엘리트의 머리를 바꾸는 K-정치를 개척하여 K-평화가 곧 세계인류 지구촌평화창조의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
25년 뒤 2048년 대한민국 100주년을 어찌 맞을 것인가. ‘조신인민민주주의공화국’ 김일성 3대왕조는 80년 집권 넘어 800년 8000년의 진로를 떠들고 있다.
대한민국 100년, 운명론자 주기론자들처럼 정치-경제-문화 놀이 번영순서를 끝으로 3중 절정에서 추락할 것인가. 자강 자립 자성의 지극함 간절함의 정성으로 창조 개벽 부활의 길을 닦아 지구촌 중심, 새 문명창조의 주역이 될 것인가. 한국판 세계평화 K-환경 K-정치를 창조할 것인가.
우리 모두 후손들에 대한 약속으로 대답해야 한다. 입으로가 아니라 머리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울려야 한다. 지극함과 간절함으로.
오늘 출판되는 책이 성공하고 이 자리가 역사적 절정에서 의미가 있는 자리되기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