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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이 점령한 사회
우상숭배라는 말을 들으면 현대인은 목상 앞에 절하는 원시인의 모습을 떠 올린다. 그렇다 지금 현대인들도 그들처럼 그 우상 앞에 절하고 있다. 바로 자본주의라는 목상에 ,기독인처럼 주일만; 회교도인처럼 하루에 메카를 향해 세 번만 절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순간 마다 자기의 우상들에게 절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박득훈 목사는 그의 명저 ‘돈에서 해방된 교회’에서 이를 극명하고 예리하게 기술하고 있다.
‘.. 부의 축적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절대화하는 자본주의 정신은 돈의 신, 맘몬이 호모 에코노미쿠스에게 불어 넣는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배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맘몬은 아주 교활하다. … 그래서 맘몬은 자신의 정체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성경 본문의 해석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뒤틀게 만든다. 이를 통해 맘몬을 숭배하면서도 하나님을 숭배하고 있는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돈에서 해방된 교회, 90쪽>
박 목사는 그 책에서 이후, 한국교회 저 밑바닥까지 몰든 모든 신앙인에서 경제적 ‘필요’를 넘어 경제적 ‘풍요’를 반드시 주님께서 주신다는 ‘기복신앙’의 실체를 들추어내고 있다. 이들의 실제 예로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부루스 윌킨스의 ‘야베스의 기도’, 김동호 목사의 ‘깨끗한 부자론’ 마지막으로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에 대한 예리한 비판으로 한국교회의 뿌리깊은 기복신앙과 우상숭배를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하나님께 올바로 나아오는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특히 이들 모두 성경말씀을 뒤트는 방법으로 말씀을 주님의 의도하는 바와는 완전히 다르게 해석하고 곡해하여 기독인이 하남님께 헌신하는 만큼 세상적 복들을 풍성하게 주실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기복신앙을 교묘하게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기복신앙에서의 기복은 ‘세상적 복들을 자신에게 풍성하게 내려주길 바라는 것’ 으로 돈, 권력, 명예, 사랑, 건강 등 세상적 부실한 것들을 바라는 것이다.
나의 우상숭배 시작
(이제 나의 어린 시절, 특히 기독교에 막 입문하여 주님의 가르침에 심취하여 그 믿음의 길로 막 달려가던 시절에서의 나의 우상숭배에 대해, 나의 기억 능력의 범위 내에서 기술하고자 한다.
1970년 10월 하순 예비고사 (대학 본고사 전 본고사 응시 자격을 부여하는 고사임)를 치른 후, 진로를 아버님은 법학과를 강력하게 권하셨으나 나의 경영학과로의 의지를 관철하여 어렵게 결정하였다. 목표 대학교는 연세대학교로 결정된다. 그러나 이과 동기가 연세대 경영학과에 응시한 것을 인지한 후에 그와의 경쟁을 피한다는 구실로 경제학과로 피난(?)..) 최종적으로 둘 다 목표하는 학과에 합격한다. 합격 통지를 받고 강원도 집으로 내려가 부모님, 친지와 주변 분들로부터 격려를 받은 후, 1971년 2월 초 장충동 하숙집으로 다시 올라와서 3월 초 대학교 입학식 참석을 준비하던 중 어느 주일 주변 교회로 첫 발걸음을 들였다. 입학 면접 시, 교수님의 믿음에 대한 질문에 ‘앞으로 교회에 다닐 예정입니다’고 답한 것이 떡밥이 되어서 교회로 들어가서 예배를 보게 된다. 그러나 목사님의 말씀 및 교우의 기도 등은 별 기억이 없고, 찬양단의 멋진 찬송과 교회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안내하시는 교우들의 깔끔한 모습이 첫 교회 예배에서의 기억으로 남는다.
경제학과에 입학한 덕에 박득훈 학우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입학식 및 이후 채플 시간 그리고 기독교개론 등 교양학습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게 된다. 그러나 1학년부터 학생운동 서클 (한국문제연구회; 한연회) 가입, 활동으로 하나님을 앎에도 심지어 경제학과 교육에 매진하기에도 버거움을 느끼게 된다. 71년 3월 말부터 연일 대학교 입구에서 백골 깡패 저네들과 투석전이다. 이 투석전에서 박득훈 학우와 난 함께 학원자유를 사수하기 위해 열심히 학원자유를 외치고 돌을 던지며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그 와중에 그는 나에게 짬짬이 교내에서 성경 구절을 읽어주면서 주님과 십자가, 하나님의 공의와 사회적 정의, 사랑 및 평화에 대해 친절하게 알려준다.
1학년 여름 방학 중 맞은 2학년 선배 (나의 사수)의 갑작스런 변사, 이 변사로 나의 박정희 정부에 대한 반감은 극에 달하게 된다. 그러나 그 해 가을 10월 유신과 그에 따른 학원탄압으로 나의 1학년 한연회 활동은 황망(?)하게 마감하게 된다. 다시 맞은 대학생활 2학년; 1학기를 좀 정신차려(?) 공부에 매진해 보려고 하였으나 개학 얼마후 느닷없이 위수령으로 학교가 군병력에 의하여 폐쇄된다. 그 방황 길에서 만나게 된 주님의 길을 바르게 가고 있는 박 득훈 학우; 난 그를 따라 신촌 역 앞에 위치한 '대학생성경읽기' 연합단체에 가입하게 된다. 이후 약 1년 여 이곳에서 나름 열심히 주님을 만나고 성경을 배우고 성령님을 만나고자 노력의 노력을 하게 된다. 3학년 1학기를 마친 후, 집안사정으로 더 이상 학업을 진행할 수 없게 된 난 낙향한다. 고향에 머물렀던 1년 휴학 중에, 그곳의 비승인 중학과정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 수학을 가르치기는 하였으나 교회엔 나가지는 않았다. 나가지 않은 주된 이유는 나의 게으름과 그 곳 교회의 수준을 너무 얏 본 것도 작용하였다.
(종합하면)
나의 대학생활은 경제학과 학도로서 지평을 넓히고자 ‘한국문제연구회’에 가입 활동한 것은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이 연구회가 연세대 학생운동의 리더 서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정치적 성향이었던 나는 이 서클과의 연을 끊지 못하고 1학기 학원자유화를 위한 거리 투석 저항활동에 선봉에 선다. (저 학년은 통상 거리 운동의 선봉에 섬).
나의 서클을 통한 학원자유화를 위한 저항활동으로, 채플 시간 등을 통해 간신히 하나님을 알기 시작했으나 성경을 접할 시간 나아가 본 학과인 경제학과 수업도 따라가기 버거운 상황에 빠지게 된다. 다만 이 운동을 통해 함께 열심 참가한 박득훈 학우를 알게 된다.
1학기 여름 방학에 마주친, 서클 사수 형의 변사(?)로 나의 박정희 정부에 대한 반감은 극에 달아오르게 된다. 그러나 이어진 10월유신과 박 정권의 민주인사 및 학원 탄압으로 나의 한연회 활동은 황망하게 마감된다.
2학년에 올라와서 위수령 등으로 학원은 계속 우울한 가운데 박득훈 학우를 통해 ‘대학생성경읽기’ 연합단체에 가입;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십자가; 성경 읽기 시작; 점차 주님께 조금씩 조금씩 다가가면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회적 정의에 대해 관심을; 그러나 우상숭배에 대해 신학적 공부를 하면서 주님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 사랑, 배려 그리고 돌봄에 대해 많은 감동을; 그러나 유신 압제 체제임에 아무 것도 배울 수 없었던 ‘공산주의’에 대해선 일자 무식; 미국식 경제학의 기본체제인 자본주의만이 이 세상의 경제체제를 움직이는 올바른 틀로 생각; 이 자본주의의 탐욕과 악독; 그리고 이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었던 구로공단 형님과 누님들; 글로벌 메이저들의 착취의 대상인 후진국 노동자 특히 여성과 어린이 노동자들에 대한 생각은 별로 하지 못한 채, 달린 입으로 형식적인 찬양과 기도를 하였다. 이는 십자가의 주님을 너무나 많이 슬프게 한 것이다. .
폴 틸리 목사의 우상의 종류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우상의 폭 넓은 범위를 보여주는 이런 목록을 통해 각자의 우상을 더 잘 식별할 수 있다.
신화적 우상 – 교리적 오류는 하나님관을 심히 왜곡해서 결국 거짓 신을 숭배하게 만든다.
성적 우상 – 포르노와 페티시즘 같은 중독은 친밀감과 수용을 약속할 뿐 실제로 가져다 주지는 못한다. 자신이나 파트너의 외모를 떠받는 행위나 로맨틱한 이상주의도 여기에 해당한다.
마술적, 의식(儀式)적 우상– 마법과 비교 (批敎)를 말한다. 모든 우상숭배는 결국 일종의 마술로서, 초월적 실재의 참 질서에 사랑과 지혜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써 반항한다.
정체적,경제적 우상- 좌파나 우파나 자유방임 등의 이념으로서 정치 질서의 어떤 단면을 절대화해 궁극의 해법을 삼는다. 자유시장을 신격화하거나 악마처럼 여기는 것도 그 한 예다.
인종적.민족적 우상 – 인종차별, 군국주의, 국수주의 등이다. 민족적 자긍심도 적의나 압제로 변하면 이에 해당된다.
관계적 우상 – 병적으로 의존하는 역기능적 가족관계, 부적절한 끌림. 자녀를 통해 대리 인생을 사는 것 등이다.
종교적 우상 – 도적주의와 율법주의 성공과 은사의 숭배. 종교를 빙자한 권력 남용 등이다.
철학적 우상 – 인생의 문제를 (죄가 아니라) 어떤 한 피조물로 보고 문제의 해담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인간의 산물이나 노력으로 보는 모든 사상체계를 말한다.
문화적 우상 – 서구의 극단적 개인주의는 공동체를 희생시켜 개인의 행복을 우상으로 삼고 수치의 문화는 개인의 권리를 희생시켜 가장과 가문을 우상으로 삼는다.
근원적 우상– 동기적 욕구와 기질이 절대화된 상태다. 1)권력의 우상; ‘남에게 행사할 권력과 영향력이 있어야만 삶의 의미와 내 가치가 성립된다. 2) 인정의 우상; ‘아무개에게 사랑받고 존경받아야만 삶의 의미와 내 가치가 성립된다’ 3)안락의 우상; ‘특정환 쾌락과 삶의 질을 누려야만 삶의 의미와 내 가치가 성립된다. 4)통제의 우상; ‘특정한 분야에서 내 삶을 정복할 수 있어야만 내 삶의 의미와 내 가치가 성립된다.
오늘 두번 째 글은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 5:19-21) 말슴으로 마친다. 한걸음
첫댓글 민주화 이전 세대(저 같은 86세대 바로 이전)의 삶을 정의롭고 순수하게 살아오신 것에 대해 무한한 존경과 응원을 보내 드립니다. 다음 카페가 많이 활성화 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하여, 예배시간이나 포럼 등을 통하여 장로님의 삶을 풀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게는 너무나 소중하고 은혜로운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