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고속도로 군포 나들목에서 3km 떨어진 군포 부곡 지구. 현재 터파기 기초 공사가 진행중인 이 작은 아파트 단지에 여의도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해 부동산 가격 폭등을 잠재우기 위해 여·야가 경쟁적으로 꺼내든 '반값 아파트'가 동시에 들어서기 때문이다. 이 시범단지에는 한나라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토지임대부 주택 389가구,이에 대한 대항마로 옛 열린우리당이 꺼내든 환매조건부 주택이 415가구가 들어선다. 토지임대부·환매조건부 주택이 한 곳에서 경쟁하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문제는 아파트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승부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똑같은 땅에 짓는 두 종류의 아파트에 땅값이 다르게 적용됐기 때문이다.
토지임대부 주택에는 땅값을 비싸게 공급하고, 환매조건부 주택에는 땅값을 훨씬 싸게 매긴 것이다. 이에 대해 KTB자산운용 안홍빈 부동산투자본부장은 "(땅을 빌리는) 토지 임대부를 분양으로 간주해 땅 값을 높게 매기고, 거꾸로 환매 제한이 붙었지만 엄연히 분양주택인 환매조건부에는 임대와 가까운 할인 혜택을 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도 "이번 국정감사에서 정부의 반값 아파트 시범사업을 집중적으로 따지겠다"고 예고했다. 정부가 토지임대부·환매조건부 사업을 차별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상한 택지비 산정
건설교통부와 주택공사는 토지임대부 주택에 대해 땅값을 조성원가의 110%에 공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주택규모(60㎡~80 ㎡ 주택용지) 의 용지를 '분양'할 때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반면 환매조건부의 택지 공급가는 조성원가의 90%에 맞췄다. 규정대로라면 조성원가의 110%가 돼야 하지만 20년간 환매제한이 있음을 감안해 택지비를 20% 포인트 낮췄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이같은 내용은 국회 건설교통위 김석준 의원(한나라당)이 수집한 건교부·주공의 국감자료에서 나타났다.
하지만 전문가들조차 고개를 흔들고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땅값 산정 방식이라는 것이다. KTB자산운용의 안 본부장은 “정부가 분양과 임대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토지임대부 주택은 땅은 빌리고 건물만 분양하는 방식임에도 땅을 분양으로 간주한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정부 기준에 따라 사업 시행자인 주공이 제시한 토지 임대료는 월 42만5000원(전용면적 84㎡)과 37만 5000원(전용면적 74㎡). 만약 정상적인 임대주택 규정(조성원가의 85%)을 적용할 경우 토지임대료는 각각 32만8400원과 28만 9700원으로 낮아진다. 땅이 비싸게 공급되면서 토지임대부 주택의 월 임대료가 10만원 가까이 뜀박질했다는 이야기다.
건교부와 주공은 정확한 토지조성 원가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토지임대료를 기준으로 역산하면 전용면적 84㎡의 토지임대부 주택의 경우 땅을 ㎡당 138만원에 매입해 1억2750만에 공급한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환매조건부 주택에는 같은 땅을 1억431만8000원에 공급한 것으로 추정된다.
토지임대부 주택이 약 20% 비싸게 땅을 공급받은 셈이다. 한나라당 김석준 의원은 "정부가 한나라당의 토지임대부 주택 제안을 수용하는 척 하면서도 옛 열린우리당이 제안한 환매조건부 주택보다 훨씬 불리한 조건을 적용했다”며 정치적 의도를 의심했다.
이에 대해 건교부 박선호 주택정책팀장은 "토지임대부의 택지비를 조성원가의 110%로 산정했지만, 월 임대료를 계산할 때 적용되는 자본 비용율(약 4%)은 평소 주공이 적용되는 이자율(6.74%)보다 낮춰 임대료 부담을 줄였다"고 해명했다.하지만 이번에 군포 부곡지구 시범사업의 전체 재원 중 주공의 부담율은 10%에 그치고 절반이 국민주택기금에서 지원된다.
또 국민주택기금의 이자율은 통상 3~4%정도다. 한나라당 김 의원 측은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토지임대부에 적용되는 이자율(4%)도 결코 낮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비축용 임대주택에는 과도한 지원
정부가 자존심을 걸고 추진하는 비축용 임대주택에 대한 지원은 화끈하다. 정부는 2017년까지 총 50만 가구의 비축용 임대주택을 짓겠다고 발표했지만, 관련법이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정부는 비축용 임대주택 5000호를 프로젝트 파이낸싱(PF)방식의 시범사업으로 강행하기로 하고 최근 금융주간사까지 뽑았다. 재무적 투자자가 출자·융자 등을 통해 자금을 모집, 이를 통해 특수목적법인(SPC)이 사업을 전담하도록 할 계획이다.
정부는 업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택지매입가를 조성원가의 85%로 책정하고, 출자 원금과 민간융자 원리금을 보장해 주는 혜택까지 제공했다. 사업 시행자인 주공 이사회조차 “PF 사업에 원금을 보장해 준 전례가 없었다”고 어리둥절했을 정도다. 건축비도 20% 가량 후하게 조성해 건축비 차액만으로도 SPC가 사업별로 평균 100억원 정도를 차지하도록 배려했다. 아직 법이 제정되지 않았지만 정부는 내년도 예산에서 1000억원을 따로 편성해놨다.
연세대 서승환 교수(경제학부) "1.31대책의 핵심인 비축용 임대주택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정부가 무리수를 두고 있다"며 "결국 국민 세금으로 수익을 보전해 주는 무모한 실험을 왜 시도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자료원:중앙일보 2007. 1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