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충주는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하는 곳으로, 일찌기 중원으로 불렸다.
이곳에는 탄금대(彈琴臺)가 있는데
가야의 악성(음악의 성인)으로 추앙받던 우륵이 가야금을 탔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한편 이곳은 비운의 장군 신립이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배경으로 하여
임진왜란 초기 왜군과 격전을 치른 곳으로 더 유명하다.
신립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작전계획을 세우고
왜군들을 충주 벌판으로 끌어들여 싸우고자 하였으나,
그의 기마병은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 여지없이 패하고 말았다.
최고의 정예부대가 패퇴한 뒤 조선의 관군은 파죽지세로 무너지고
선조는 의주까지 밤을 새워 피난하였고,
조선은 이후 전 국토가 아비귀환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그 처참했던 임진왜란이 이순신장군의 수군과 승병
그리고 제나라를 지키겠다고 분연히 일어선
의병들에 의해 간신히 국가의 명을 잇게 되었지만,
그로부터 300년 뒤에
또 다시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을 당하여 다시 나라를 빼앗기고
조선의 백성들은 온갖 수모를 당하였다는 사실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찾은 조국 대한민국에서 근래 피땀흘린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한 국방예산을 착복한 해군참모총장 이하 장성들과,
각종 무기 구입에 자신들의 배만 불리고
무기는 헛점투성이인 감사결과가 속속 밝혀질 때마다
국민들은 허탈한 마음 뿐이라고 아우성이다.
신립장군은 자신의 작전과오를 인정하고
이곳 탄금대에서 자신의 몸을 던져 역사와 국가에 속죄하고자 했다.
신립장군은 비록 실패했지만
그의 장렬한 죽음을 상기하기 위하여 패전한 현장에
그의 비를 세우고 동상을 세웠다.
또 절을 지어 그와 함께 순국한 병사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지킨 대한민국에서 오늘날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
국민의 세금을 착복한 장성들은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복되어 터져 나오는 방위산업 비리 소식을 뒤로 한채
새싹이 움트는 계절 아름다운 봄날에
비운의 역사 유적 탄금대를 돌아보며 감회에 젖어본다.